
HERMÈS
1961년 시작된 가구 박람회는 최근 패션 하우스의 적극적인 참여로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졌다. 그중 가장 손에 꼽히는 브랜드는 단연 에르메스다. 올해 에르메스가 내세운 타이틀은 ‘본질의 힘’. 전시장에 선보인 시노그래피도 금속 막대와 콘크리트의 골조가 생생히 보일 수 있도록 여타의 장식 요소는 모두 배제했다. 골조와 선의 담백한 어우러짐으로 더 강력하고 힘찬 구조를 완성해 단순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홈 컬렉션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
가죽과 우드 소재가 어우러진 암체어, 1930년대 의자, 시대를 초월한 실루엣의 소파를 비롯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가구들은 공통적으로 덜어냄을 통해 고요한 힘이 드러나고, 뺌을 통해 오히려 선명해지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블로운 글라스 기법을 적용한 미니멀한 램프,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의자용 커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래픽 패턴의 수공예 자수 러그 등에서 에르메스만의 품격과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승마’ 코드 역시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프랑스 디자이너 요헨 게르너가 펠트 펜으로 스케치한 포슬린 테이블웨어 ‘소 에르메스’ 위 유쾌한 일러스트레이션은 물론, 피에르 샤르팽이 디자인한 기계체조 안마, 펜스 막대, 승마 트랙, 말 머리 등을 구현한 러그 ‘코르델리 - 아르송’, 기수의 유니폼을 상징한 플래드 ‘카자케시키에’, 마구에서 영감을 받은 돔형 박스 ‘파틴 데르메스’ 등에서도 승마 모티프를 찾을 수 있었다.

LOEWE
투박하고 단순한 스틱 체어가 여러 가지 재료와 다채로운 색감을 입고 색다른 오브제로 다시 태어났다. 팔라초 이심바르디 안뜰에 전시한 '로에베 체어'를 통해 공개된 의자들이 그 주인공. 가죽, 라피아, 포일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30개의 스틱 체어는 시어링과 펠트 소재로 의자 일부분을 감싸 부드러운 텍스처를 강조한 한편 대비되는 색감으로 의자에 대한 해석을 극대화하고 장식적 형태를 새롭게 창안했다. 전시된 30개 의자 중 22개는 앤티크 피스이고, 나머지 8개는 스틱 체어 전문 영국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것이다. 또한 벨기에의 가구 브랜드 빈센트 셰퍼드에서 제작한 8개의 로이드 룸 의자는 종이를 꼬아 금속 와이어에 감은 후 기계로 직조해 대형 시트를 만드는 로이드 룸 공법을 적용해 눈길을 끌었다. 로에베 로이드 룸 체어는 천연 섬유와 가죽 소재로 제작했으며, 그중 하나는 버섯을 모티프로 채색했다.

DOLCE & GABBANA
강렬한 색상과 패턴으로 유명한 돌체앤가바나의 까사 컬렉션 역시 그 결을 이어간다. 특히 이번 202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는 시칠리아의 전통 손수레 카레토, 지중해의 블루, 레오퍼드, 지브라 등 돌체앤가바나의 다양한 상징 컬렉션에 이어 ‘DG 로고’와 ‘오로 24K’ 컬렉션을 추가했다. 정교하게 각인한 알파벳 두 글자로 이뤄진 DG 로고는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드러내며, 오로 24K 라인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과 기이하면서도 세련된 형식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준다.

LOUIS VUITTON
2012년 첫선을 보인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은 올해 아틀리에 오이, 로우 에지스, 아틀리에 비아게티, 마르셀 반더스, 자넬라토/보르토토, 스튜디오 루이 비통 등의 오브제 노마드 신작 11점 및 캄파냐 형제의 스페셜 에디션 2점을 선보였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 것은 팔라초 세르벨로니 안뜰에 위치한 프랑스 건축가 마크 포르네스의 노마딕 파빌리온. 메종의 정규 프로그램인 노마딕 건축 전시로, 알루미늄판 1600여 장을 사용해 유기적으로 솟아오르는 듯한 생명력 넘치는 구조물을 선보였다.
오브제 노마드 론칭 이래 꾸준히 협업해온 아틀리에 오이는 총길이 145m에 달하는 투톤 스트랩 36줄을 섬세하게 꼰 높이 1.2m의 ‘스파이럴’ 샹들리에, 비행 중인 새를 묘사한 모빌 ‘케찰’, 솔방울에서 영감을 얻은 ‘피바’ 램프, 가죽 조각으로 정교하게 구성한 ‘오리가미’ 볼 등 4점을 새롭게 추가했다. 테니스 공의 곡선 라인에서 고안한 디자이너 듀오 로우 에지스의 신작 ‘빈다’ 암체어 & 소파, 모노그램 패턴 유리 버블 15개로 이뤄진 아틀리에 비아게티의 램프 ‘플라워 타워’, 여성 모자에서 착안한 마르셀 반더스의 ‘카펠린’ 램프도 눈길을 끌었다. 캄파냐 형제의 ‘코쿤’ 체어는 실버 모자이크를 덧입힌 디스코볼 버전으로 재탄생했고, 눈부신 메탈 효과의 조각 작품으로 변모한 ‘봄보카’ 소파도 만날 수 있었다.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호기심의 트렁크’는 루이 비통 여행용 트렁크를 우아한 오브제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트렁크를 180도로 활짝 열면 책과 예술품 및 여행 기념품을 위한 큐브 진열장이 펼쳐진다.

CASSINA
카시나는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 등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아카이빙한 ‘이 마에스트리’ 컬렉션 50주년을 맞아 아트 디렉터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페데리카 살라와 함께 기획한 ‘Echoes, 50 years of iMaestri’로 안내했다. 밀라노 코르두시오 지역의 역사적 광장인 팔라초 브로기 안, 현대적인 인더스트리얼 세팅을 배경으로 20세기 가장 상징적인 디자인 작품을 모은 전시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특별한 축하의 장이 연출되었다. 국내에서는 크리에이티브랩을 통해 카시나의 주요 제품을 접할 수 있다.

VERSACE
베르사체 홈 컬렉션은 도나텔라 베르사체와 ps+a 스튜디오의 건축가 로베르토 팔롬바 및 루도비카 세라피니의 크리에이티브한 디렉션을 통해 완성되었다. 하이라이트는 베르사체의 고전주의와 신화적인 영감 및 편안한 디자인에서 이름을 따온 ‘젠세이셔널’ 모듈러 소파. 베르사체의 2023 F/W 컬렉션과 조화를 이룬 바로크 프린트와 자카드 패턴의 크로커다일 엠보스드 레더를 사용하고 유선형과 기하학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현대적 헤링본 패턴과 베르사체의 V 문양이 들어간 ‘디스커버리’ 소파, 가죽으로 덮인 물결 모양의 테이블 다리와 금색 고리와 메두사 장식이 들어간 베이스를 선보인 ‘디스커버리’ 테이블과 체어도 주목받았다.

GINORI 1735
‘고소영의 그릇’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지노리 1735는 올해 밀라노를 통해 ‘지노리 도무스’를 론칭했다. 스웨덴 기반의 이탈리아 디자이너 루카 니체토를 영입해 선보인 홈 컬렉션은 지노리 1735의 문화를 재해석해 럭셔리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예술 작품 같은 조명을 선보여온 바로비에르&토소, 텍스타일 전문 브랜드 루벨리와 협업한 것도 이런 연유다. ‘라 비너스’ 라운지 체어, ‘둘키스’ 암체어와 포프, ‘라 투르’ 캐비닛, ‘옵티크’ 커피 테이블은 지노리 1735의 전통을 따른 루카 니체토의 디자인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크리에이티브랩을 통해 만날 수 있다.

FENDI
살로네 델 모빌레가 한창인 4월, 밀라노 펜디 카사 부티크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요스트 판 블레이스베이크와 함께 윈도를 꾸몄다. 고대 로마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는 아치 모티프에서 착안한 윈도 디스플레이는 장인정신에 뿌리를 둔 펜디의 우아한 감각을 담은 것. 또앙 응엔이 디자인한 ‘토투’ 시리즈를 비롯해 콘트로벤토 스튜디오와 협업한 ‘피카시트’ 소파, 로고가 없는 스트라이프인 펜디 페퀸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블로운’ 모듈 소파, 피에로 리소니가 합리적인 스퀘어 형태로 디자인한 ‘타이코’ 소파, 디모레 스튜디오의 ‘에로스’ 테이블, 크리스티나 셀레스티노의 ‘오타비아’ 체어 등 신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침실에는 2가지 디자인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헤드보드에 2개의 작은 테이블 또는 베드 사이드 테이블을 더한 ‘델라노’ 침대와 선형 바닥, 부드러운 가장자리의 패브릭을 덧댄 베드 프레임, 헤드보드의 가죽 포인트가 돋보이는 또앙 응엔의 ‘토투’가 그 주인공. 루이스 폴센과 협업한 조명 컬렉션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루이스 폴센의 대표작 ‘아티초크’ 펜던트 램프는 메탈 소재에 펜디 로고를 활용한 패턴 장식이나 옐로 글라스 소재에 FF 로고의 꽃잎 하나를 장식했으며, ‘PH’ 플로어와 베드 사이드 테이블을 포함한 ‘PH’ 테이블은 브론즈 마감의 손잡이와 옐로 디퓨저로 이뤄졌다.

MARNI
올해 밀라노에서 가장 놀라운 협업을 진행한 브랜드로는 마르니를 꼽을 수밖에 없다. 벨기에 디자인 브랜드 ‘세락스’, 월페이퍼 브랜드 ‘런던아트’와 창의적이고 신선한 협업을 진행해 독특한 무드의 식기와 벽지를 내놓은 것. 세락스와 함께 선보인 120피스의 도자기 세트 ‘미드나이트 플라워’ 컬렉션은 다양한 꽃 모티프 디자인을 마르니 특유의 경쾌한 색감으로 완성했으며, 런던아트와는 마르니가 의상을 통해 보여준 프린트와 패턴의 유산을 벽지로 재구성했다.

TOD’S
토즈는 사진작가 팀 워커와 함께한 프로젝트 ‘장인정신의 미학’을 공개했다. 팀 워커는 토즈의 아이코닉 제품인 ‘디아이’ 백, ‘고미노’ 로퍼 등의 가죽을 자르고 바느질하고 붓질하는 단계에 다양한 비율의 오브제와 도구를 사용해 초현실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이미지와 비디오를 완성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전문 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지닌 12인이 등장한다. 팀 워커는 “디지털 세계에서 장인정신의 가치는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고 말하며 “토즈 팩토리에서 직접 목격한 제품 제작 과정을 ‘초현실적인 초상화’라는 테마로 풀어냈다”고 덧붙였다. 그의 소개처럼 토즈의 프로젝트는 품질과 전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든 제품 뒤에는 그것을 만드는 도구가 있고, 도구 뒤에는 이를 사용하는 장인의 손기술과 지식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BOTTEGA VENETA
보테가 베네타 2023 여름 컬렉션 패션쇼의 베뉴 공간을 디자인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티스트인 가에타노 페셰는 살로네 델 모빌레 기간 동안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플래그십 스토어에 ‘Vieni a Vedere(Come and See)’라는 이름의 몰입형 설치 작품을 제작했다. 레진과 패브릭으로 제작한 작품 안으로 들어가 마치 동굴을 탐험하듯 매장 전체를 가로지르게 한 것. 전시에서는 가에타노 페셰가 디자인하고 보테가 베네타가 구현한 리미티드 에디션 핸드백 ‘마이 디어 마운틴’과 ‘마이 디어 프레리’도 감상하거나 구입할 수 있었다. 일출과 일몰을 배경으로 한 두 개의 산을 형상화한 그의 수채화 랜더링과 유사하게 에어브러시 기법으로 개별 페인팅한 마이 디어 마운틴은 15점, 섬세한 크로쉐 기법을 활용해 7가지 그린 톤의 카프 레더와 램스킨 소재로 초월을 표현한 마이 디어 프레리는 3점 제작되었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