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도자기로 쓴 조각, 류젠화

14살 때부터 도예를 배웠지만 도예가가 아닌, 현대 미니멀리즘 조각가로 우뚝 선 그. 도예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으로 세계의 이목을 끈 류젠화가 한국을 찾았다.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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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 하면 공예부터 떠올리는 게 아직 우리의 정서다. 그는 14살 때부터 중국 도자 생산의 중심지 징더전(Jingdezhen, 景德鎭)에서 도예를 배웠다. 하지만 길은 달랐다. 그는 공예, 장인의 길 대신, 도자를 현대미술로 끌어들여 현대 미니멀리즘 조각으로, 설치로 펼쳐내며 새로운 도자 세계를 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2003), 싱가포르비엔날레(2006), 테이트모던 증축 개관전(2016), 베니스비엔날레(2003, 2013, 2017) 등 도자와 함께한 50여 년의 값진 시간에 세계 미술계는 뜨겁게 화답했다. 그가 세계적인 중국 현대미술가 류젠화(Liu Jianhua, b. 1962)다. 도자, 공산품, 발견된 오브제, 폐기물 등 다양한 재료를 매개로 중국의 역사, 문화와 조응하는 방법을 탐구해온 류젠화. 특히 도자는 그의 작업에 중요한 요소다. 공예라는 장르 안에 갇힌 도자를 현대미술의 장으로 확장시킨 그의 작업은 간결함과 단순함, 무엇보다 그 너머의 정신성에 집중한다. 그 때문일까. 그의 작업에는 사색과 시적 감수성이 가득하다. 이 지점에서 서구의 미니멀리즘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도자로 구현한 현대 미니멀리즘, 그의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다. 4월 29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서울 1, 2층에서 류젠화의 개인전이 열린다. 동시에, 7월 9일까지 펼쳐질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쟁쟁한 라인업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빈 종이처럼 보이지만 이것의 재료는 도자기이다. Blank Paper, 2009~2019, Porcelain, 200×120×0.7cm each 

 

 

한국에서의 첫 전시인가요? 서울에서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동시에 있다죠?
2007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 이후 두 번째 개인전입니다. 3월 16일 서울에 도착해 21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서울의 설치를 마쳤고, 바로 광주로 넘어가 28일까지 설치를 끝냈어요.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본전시와 무각사라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이는데, 전시장 두 곳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는 유일합니다.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될 작품은 각기 다른가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에는 ‘셰이프 오브 트레이스(The Shape of Trace)’ 시리즈가 전시됩니다. 서울에 소개될 작품보다 규모가 크죠. 세계 여러 곳의 박물관을 다니며 그곳의 유물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고대 유적을 떠올리게 하는 형상으로, 역사와 시간에 대한 사고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무각사에서는 원형으로 된 작품 8개를 선보입니다. 절이라는 공간에 전시되는 만큼 일상과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해주고 싶었어요. 관객이 잡념을 없애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요. 

 

 

동양의 유연한 선을 차용한 ‘Lines’ 시리즈. 도자기의 유약함, 취약함이라는 물성은 현대인의 정신과도 닮았다. Liu Jianhua, March 31~April 29, 2023, Pace Gallery Seoul, Photography Courtesy Pace Gallery

 


<셰이프 오브 트레이스>에 사용된 붉은색이 인상적인데, 직접 개발한 건가요?
청나라 시대부터 쓰인 붉은 유약인 홍유예요. 홍유 안에서도 종류가 나뉘는데, 랑홍유와 균홍유 염료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서 제가 원하는 적절한 느낌을 찾아냈어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두 가지 유약을 섞었죠. 랑홍유는 덜 끈적이고 그래서 잘 흘러내리는 특징이 있어요. 저는 흔적, 시간의 느낌을 표현하고자 꾸덕하고 찐득한 느낌을 내고 싶었죠. 그래서 균홍유를 섞어 시간의 흔적을 담아냈어요. 붉은색으로는 강렬함을 주었고요. 

 

서울 전시에는 ‘셰이프 오브 트레이스’, ‘블랭크 페이퍼(Blank Paper)’ 등 4개 시리즈가 소개됩니다. 특히 2m 크기의 얇은 종이 형태인 ‘블랭크 페이퍼’는 그 재료가 도자기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2008년 구상해서 2009년 완성한 시리즈로, 처음에는 160cm 크기를 시도했어요. 전시장의 작품은 최신작으로 2m 크기죠. 최대 2m 40cm까지 구현 가능해요. 많은 이들이 왜 쉽게 나무나 스테인리스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묻죠. 그런데 저는 취약함, 연약함이라는 도자기의 성질 때문에 이 재료를 택했어요. 얇은 판 형태는 ‘자판화(瓷板畵)’라는 중국 전통 공예에서 차용한 거예요. 자판화는 1cm 판을 사용하는데, 제 작업은 0.7cm로 그보다 더 얇게 구현했어요. 수공이라 균일하고 평평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고 건조 과정에서 갈라지기 일쑤죠. 가마에서 굽고 식혀 나오는 과정에서도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고요. 이 시리즈는 얼핏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지문, 흔적, 숨결이 묻어 있어요. 

 

 

천장에 매달린 무수한 도자 조각이 마치 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A Unified Core’ 시리즈. Liu Jianhua, March 31~April 29, 2023, Pace Gallery Seoul, A Unified Core, Porcelain, Installation size variable

 

 

종이의 모서리 부분을 각기 다르게 살짝 말리게 한 것도 그런 의도가 담긴 건가요? 
맞아요. 정말 좋은 발견입니다. ‘블랭크 페이퍼’에서 종이 끝이 구부러지는 요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에요. 단지 평평하면 서구 미니멀리즘과 다르지 않습니다. 동양적 사상, 정신성에서 비롯한 것이 이 작업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이성적이고 차가운 서양의 미니멀리즘 형식을 취하지만, 중국 작가로서 저만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작업 과정이 담겨 있기에, 비어 있지만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빈 종이에 펜으로 쓰듯, 여러분의 마음을 써 내려가며 이 작품을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공중에 매달린 수백 개의 도자기 조각이 압도적인 ‘유니파이드 코어(A Unified Core)’는 도자 조각의 진수를 목격하는 것 같아요. 명상을 부르는 작업 같기도 하고요.
자유와 속박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매달린 조각의 형태를 보고 관객들이 나뭇잎, 물고기를 표현한 것이냐고 묻곤 하는데,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어요. 설치 형태나 개수 역시 선보일 장소마다 달라집니다. 공간을 캔버스라고 생각하고 그 공간 안에 창작합니다. 사전 계획 없이 설치하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려요. 이번 작업도 4일 꼬박 철야 작업을 했어요. 

 

그의 초기작으로 2000년 무렵부터 작업의 색이 바뀌었다. Liu Jianhua, Colored Sculpture–Merriment, 1999~2000, Porcelain, 58×58×18cm © Liu Jianhua Studio, Courtesy Pace Gallery

 


대략 몇 개 정도의 도자 오브제가 매달린 건가요?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형태도 흥미롭습니다. 
도자기 약 500개를 천장에 매달아 설치했어요. 장소 특정적 작품으로, 설치할 때마다 공간에 따라 그 수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고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성 있는 작품입니다. 자유와 속박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간 안에서도 유동성을 느끼도록 했어요. 


이러한 유동성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 관객에게 이 작품의 감상법을 알려주신다면요?
작품 사이를 거닐면서 소통하고, 명상과 사색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신, 머리만 안 다치게 조심해주세요(웃음).


작품의 주요 소재인 ‘도자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징더전에서 오랫동안 도예 기술을 배웠다고요?
원래 다른 곳에 살다가 12살 무렵 징더전으로 이사했어요. 삼촌이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는데, 1977년 무렵 중국에서는 한 집안에 장인(匠人)이 있으면 그들의 자녀가 기술을 배우는 정책을 시행했어요. 저 역시 삼촌의 기회로 14살부터 도예를 배우게 됐어요(8년 동안 징더전에서 도예를 배운 그는 이후 도자전문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꿈을 담아낸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Liu Jianhua, Regular Fragile, 2002~2003, Porcelain, Dimension variable © Liu Jianhua Studio, Courtesy Pace Gallery

 

 

징더전이 도자로 유명한 것은 기술력뿐 아니라 흙의 중요성도 작용하나요? 당신의 작업도 그곳의 흙을 이용하나요? 
흙, 유약 등은 징더전 현지 재료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워낙 오랫동안 도자기의 도시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보니, 재료가 계속 고갈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징더전과 지리적 조건이 비슷한 다른 도시의 흙도 사용합니다. 하지만 전통이나 기술은 징더전 고유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도자기라는 재료의 특성상 작업실 위치도 중요할 것 같아요. 여느 작업실과 규모나 컨디션도 다를 것 같은데요?
아마 상상하는 것과 제 작업실 분위기는 다를 거예요. 도자 작업을 하니 규모도 크고 도공도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예요. 평소에는 상하이에 거주하고 도자기 제작을 할 때는 징더전으로 가요. 징더전은 한국의 이천과 비슷한 곳인데, 유약 전문가, 흙으로 판을 만드는 전문가 등 분업화가 잘 되어 있어요. 작품의 특징에 따라 각 전문가의 작업실을 찾아가 함께 작업합니다. 물론 징더전에 제 작업실도 있지만, 작업을 구상하거나 수정하는 정도로 쓰입니다. 그러니, 징더전이라는 도시 자체가 제 작업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광주비엔날레 무각사에 설치된 작품. Installation view, 14 Gwangju Biennale, Mugaksa, 7 April~9 July, 2023 © Liu Jianhua Studio, Courtesy Pace Gallery

 


한국 역시 도자기와 친숙한 문화입니다. 중국의 도자 문화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개인적으로 중국 송대의 문화를 높게 삽니다. 특히 중국 도자기 역사 중 송대의 도자기는 가장 높은 경지예요. 거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송대의 백자는 순수, 순결, 단순함,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한 정신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심리, 정신성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 한국 도자기는 공예성이 뛰어나다면, 송대 도자기는 정신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도예와 조각의 결합이 굉장히 유니크합니다. 도자기라는 재료의 까다로움, 한계성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을 것 같아요.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실패담이 너무 많아서 하나로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죠. 회화나 사진은 작가가 컨트롤할 수 있지만, 도자기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요. 예를 들어 온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가마 안에 놓인 작품의 높낮이에 따라서도 결과나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굽기 전에 무수히 실험하고 가장 적합한 상태를 만들어놓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옵니다. 제 작품은 큰 작업이 많아서 더 그렇죠. 하지만 한계를 한계로 끝내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찾고, 나만의 작품 언어로 만들기 위해 늘 도전합니다.

 

 

광주비엔날레에 설치된 ‘The Shape of Trace’. Installation view, 14 Gwangju Biennale, Gwangju Biennale Exhibition Hall, 7 April~9 July, 2023 © Liu Jianhua Studio, Courtesy Pace Gallery

 

 

도자뿐 아니라 발견된 오브제, 폐기물 등 다양한 재료를 매개로 한 작업을 40여 년 동안 선보였는데,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초창기에는 옷 오브제를 사용했다가 시각적 변화를 주고 싶어서 익숙한 도자기를 선택했고,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설치를 했다가, 2008년 도자기의 물성으로 다시 돌아오고, 이렇듯 내 안에서 끊이지 않고 순환했어요. 재료는 계속해서 변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도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미술이라는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계획과 실험이 펼쳐질까요.
작년에 상하이의 포선아트센터라는 주요 전시장에서 대규모 전시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작업 구상이 필요한 시기예요. 6월 일본의 토와다 아트센터에서 그간의 시기별 작품을 선보이는 회고전 형식의 전시가 열릴 예정입니다. 

 

Cooperation Pace Galler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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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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