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시간을 담은 예술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산다. 하지만 예술가에게 시간은 더욱 특별한 의미와 창조적 단서를 던진다. 그들이 ‘시간’을 담고 풀어내는 흥미로운 방법.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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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Ferna′ndez, Solar Moon in March (Mojave and Long Valley Caldera), 2020, Hand-carved walnut, poplar, oil on tin, house paint, ceramic tile, copper, hour and second hands, and quartz clock movement on panel, 31.8×24.1×3.8cm, 이미지 제공 휘슬

 

 

기억을 캡슐화한 시계

파트리시아 페르난데스 

불확실성과 고립감 속의 시간은? 파트리시아 페르난데스(Patricia Fernández, b.1980)는 인간의 감각 활동을 탐구하고 이와 연결되는 개인의 기억과 이야기를 회화와 조각으로 재조립하는 작가다. LA에 거주하는 작가는 심각한 팬데믹 기간에 캘리포니아의 황야, 산, 계곡에서 타인과 단절된 채 고립의 시간을 보냈다. 걷기, 땅 갈아엎기 등이 일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일상을 통제할 필요성이 적어지면서 시간 측정의 유용성도 줄어들었다. 점차 시곗바늘의 시간 대신, 시간의 흐름을 감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된 감각의 시간. 그것은 심장 박동처럼 개인의 고유한 속도를, 내면의 시간을 나타낸다. 작가는 땅을 갈면서 발견한 암석, 나무, 주철 조각 등 기원이 불분명한 자연의 그것과 개인의 역사에서 찾은 물건으로 시계 조각을 만들었다. 역사의 실타래를 감듯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 담아 시계로 캡슐화했다. 

 

 

 

백남준, 시간도 끝나가고 테이프도 끝나간다, 1984, 종이에 동판화, 29.7×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시간에 대한 성찰

백남준 

그가 예측한 미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간을, 시대를 앞서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첨단의 기술과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그는 인간의 삶의 근원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예술로 풀어냈다. 비디오 작업뿐 아니라 판화에도 이러한 기조는 흐른다. 백남준의 판화 작품은 그의 새로운 정신에 기초하여 비디오와 음악을 인쇄 기술과 결합한 것으로, 지난 2월 끝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 전시 <백남준 효과>에 흥미로운 작품이 소개됐다. ‘시간도 끝나가고 테이프도 끝나간다’이다. 동판화로 제작한 이 작품은 시간을 근거로 하여, 흰색의 선 밑에 원색의 글씨가 겹쳐 보이는 우연적 요소를 화면에 차용함으로써,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창출했다. 평면이지만 글자가 움직이는 듯한 착시마저 느껴진다. 흑백 브라운관 속 원색의 ‘TIME’은 도래할 미래의 시간에 대한 경고와 함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안종대, 실상 Le Temps, 2010-2019, Mixed media, 136×146cm, 53.5×57.5 in, 이미지 제공 가나아트

 

 

시간의 흐름과 재탄생

안종대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상(實相)을 탐구하는 안종대(b. 1957). 그의 대표 연작 ‘실상’의 프랑스어 제목이 ‘시간(Le Temps)’인 것은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는 천, 종이, 쇠, 나무 등 일상적 오브제를 오랜 시간 외부 환경에 노출해 퇴색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시간과 실상을 탐구한다. 자연적 풍화를 이용하는 작업인 만큼 기다림의 시간도 길다. ‘실상’은 작가가 염색한 한지를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약 9년간 외부에 노출해서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햇빛, 비, 눈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으로 본래의 색을 잃은 색지를 통해, 시간 앞에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실체(實體)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시간의 변화는 낡음이 아닌 숙성에 가깝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순환하는 삶과 우주의 진리를 시간의 기다림을 통해 담아낸다. 

 

Bosco Sodi, Untitled BS 3872, 2022, Mixed media on canvas, 81×100cm 이미지 제공 조현화랑

 

 

시간이 만든 균열과 흔적 

보스코 소디

마치 푸른빛의 땅이 쩍쩍 갈라진 듯 보이는 거친 표면의 부조 회화. 멕시코 출신 작가 보스코 소디(Bosco Sodi, b. 1970)의 작품으로, 선명한 푸른빛은 해 뜨기 직전인 여명의 시간(Blue Hour)을 담은 것이다. 작가의 작업 제작 과정은 일종의 퍼포먼스 같다. 일단 캔버스 위에 안료, 톱밥, 목재 펄프, 천연 섬유질과 아교의 혼합물을 오랜 시간에 걸쳐 흩뿌리고 두껍게 쌓아 올린 후 굳도록 내버려둔다. 때로 몇 달간 방치하기도 한다. 그리고 물질이 건조되면서 표면에 첫 갈라짐이 나타나는 순간, 작업을 중단한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시간과 자연적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다. 시간과 세월의 흐름으로 이루어낸 형태가 작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온도, 습도, 기류 등 환경적 요인이 주체가 되며, 시간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 그곳에 빛과 고요, 마음의 기억이 담겼다.

 

 

 

Tatsuo Miyajima, Three Hundred Lives, 2022, L.E.D., IC, electric wire, steel frame, 156.8×207.6cm, Photo by Nobutada Omote,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의문의 숫자와 LED

미야지마 타츠오 

“내 작업에서 숫자는 서로 대화하고 어떠한 관계를 형성한다. LED 작품의 경우, 하나의 작은 기기가 설정된 속도값에 따라 숫자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변화한다.” 일본 현대미술가 미야지마 타츠오(b. 1957)의 화면에는 1부터 9까지 점멸하는 숫자 LED가 가득하다. 단, 무한함, 비존재,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 0은 제외된다. ‘Three Hundred Lives’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LED 300개가, 세계 미술계에 그를 알린 ‘Sea of Time’(1988)에는 LED 2072개, ‘Mega Death’(1999)에는 LED 2400개가 등장한다. 그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이고 비물질적 개념을 단위 LED로 치환한다. 이때 각각의 LED는 각 개인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들 역시 일본 대지진 참사 등 역사적 사실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관념을 LED로 시각화한 것으로, 생의 순환, 시간의 순환을 보여주듯 끊임없이 점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서로 대화한다.

 

 

 

안규철, 머무는 시간 I, 2017, Wooden rail, wooden balls, 가변 크기,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박준형,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중력의 시간

안규철

지그재그처럼 쭉 이어진 나무 레일과 나무로 만든 공. 이 기이한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안규철(b. 1955)의 움직이는 조각, ‘머무는 시간 I’(2017)이다. 일상의 사물, 언어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사유하는 안규철. 이 작품은 나무로 만든 레일 위에 나무 공이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든 직선의 궤도다. 덜그럭덜그럭하는 나무 레일 위를 이끌리듯 구르는 공. 지형과 중력, 여러 우연이 공이 굴러갈 길과 속도를 정해주는 상황에서 공은 궤도를 따라 낮은 곳으로 임하기 위한 임무를 다하듯 끊임없이 나아간다. 자유낙하로는 1초도 걸리지 않을 거리지만 레일을 타고 때로는 ‘머물며’ 도착하는 나무 공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정해진 길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굴러가는 공을 보고 있자면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중력에 의해서 흐르는 시간, 시작과 끝이 있는 이 시간 속에 우리가 머무는 ‘시간’은 어디쯤일까. 

 

 

 

Byron Kim, Sunday Painting 1/7/01, 2001, Acrylic and pencil on panel, 35.5×35.5cm, Courtesy of the Artist,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매주 일요일의 하늘

바이런 킴

매주 일요일 그날의 하늘을 동일한 크기의 소형 캔버스(35.5×35.5cm)에 그리는 작가.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바이런 킴(Byron Kim, b. 1961)이다. 그는 특정 대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작업의 주요 기조로 삼는데, 선데이 페인팅(Sunday Paintings)이라는 흥미로운 연작도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그날의 날씨에 따라 푸른색과 회색조를 넘나드는 하늘 풍경 위에 자신의 일상적 소회, 작업이 완성된 시간 및 장소를 펜으로 적는다. 평범한 하늘은 매주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연속성과 장소성이 더해져 새로운 의미를 입는다. 그는 소소한 일상 내의 작은 변화를 연결시켜 보다 큰 그림의 ‘삶’을 그린다. 그리하여 ‘선데이 페인팅’은 하늘의 기록이 아니라 삶의 기록이다. 나아가 광활한 하늘 너머의 존재들과 연결하는 매개로서, 깊은 명상을 이끈다. 이것은 2001년부터 시작된 ‘선데이 페인팅’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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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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