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로랑스 레이나르트의 아파트

벨기에에서 패션을 공부했지만 정작 모로코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발견한 여인. 재봉틀 하나만 달랑 들고 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설립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로랑스 레이나르트가 마라케시 구도심의 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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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로랑스 레이나르트(Lurence Leenaert)와 남편 아욥 보알람(Ayoub Boualam)이 자신들이 디자인한 소파에 앉아 있다. 소파 뒤 아트 프린트는 나탈리 두 파스퀴에(Nathalie Du Pasquier)의 작품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만들 수 있고, 또 이를 대량 생산할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만 제작할 수 있는 모로코. 치밀한 전략과 계산을 통해 디자인을 뽑아내는 유럽 기반 메이저 브랜드의 시스템을 당연하다 여긴 젊은 디자이너에게 마라케시 수공예 산업의 형태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능수능란한 손놀림으로 앉은 자리에서 뚝딱 수공예품을 완성하는 장인들, 그리고 다양한 재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장. 여행지로 방문한 마라케시였지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신세계를 발견한 기쁨에 고무된 25세의 앳된 디자이너는 재봉틀 하나와 현금 400유로를 손에 쥔 채 모로코 땅을 다시 밟았다. 그리고 모로코로 이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옷부터 가구까지,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LRNCE’ 브랜드의 설립자로 전 세계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로랑스의 디자인과 취향으로 연출한 거실. 왼쪽에 보이는 소파는 직접 디자인한 것이고, 오른쪽 곡선형 의자 ‘파그루(Pagru)’는 디자이너 클라우디오 비뇨니(Claudio Vignoni) 빈티지다.

 

거실에 놓인 삼나무로 만든 코모드는 로랑스가 디자인하고 목공예 장인이 손으로 조각해 완성한 수공예품이다. 벽에 걸린 그림은 나타샤 만코우스키(Natacha Mankowski) 작품. 

 


벨기에 겐트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 로랑스 레이나르트(Laurence Leenaert). 그녀는 학교 졸업 후 독일의 한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근무하다 겐트로 돌아와 작은 스튜디오를 열고 가방 디자인을 시작으로 자신의 개성을 차근차근 풀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스튜디오를 운영한 지 2년여, 로랑스는 돌연 모로코행을 선언했다. “매우 자발적인 결정이었어요.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모로코의 수공예 문화에서 정말 좋은 느낌,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으니까요.” 여행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슬리퍼부터 옷과 그릇, 가구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디자인이 의도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닌, 크래프트맨과 아티잔 손끝에서 자유롭게 탄생하는 것을 목도한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고.

 

 

(왼쪽) 세이지 그린 컬러의 수납장과 주문 제작한 모로코 전통 유약 타일로 단장한 주방. 벽면에 걸린 이국적인 세라믹은 포르투와 멕시코 여행에서 구입한 것이다. (오른쪽) 주방과 연결된 베란다에는 로랑스가 운영하는 디자인 브랜드 LRNCE의 철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마라케시로 이주한 후 디자이너 로랑스의 삶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마라케시에 가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기회를 얻기로 다짐한 그녀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무작정 수공예 시장으로 나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들을 함께 제작할 장인들을 찾아다녔고, 그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긴 시간 공을 들였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모로코의 장인들은 유럽에서 온 어린 여자 디자이너의 말을 처음엔 귀담아듣지 않았고, 신뢰와 존경이 쌓이지 않는 한 함께 일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패션을 전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패션 산업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모로코에서 다채로운 수공예를 접하며 무한한 창작의 묘미를 깨달았고, 이런 그녀의 진심은 지역 장인들의 공감을 사며 러그, 도자기, 조명,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랑스가 디자인한 대리석 테이블과 디자이너 토비아 스카르파(Tobia Scarpa)의 대표작인 수도사(Monk) 의자 빈티지 컬렉션으로 꾸민 다이닝룸. 

 


로랑스는 모로코에서 살면서 창의성은 결국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전통 수공예 매력에 눈뜨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재되어 있던 예술혼을 일깨우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마치 피카소와 미로의 드로잉을 보는 듯한 그녀의 그림은 모로코에서 생활하며 접한 원시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 일례로 아프리카 일부 부족의 마스크와 의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지만 로랑스에게는 순수하고 매혹적인 무언가로 다가왔고, 이를 구성하는 재료와 색상 등은 그녀의 감각과 과감한 상상력을 거쳐 다양한 오브제로 탄생한다. 로랑스는 모로코에서 그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고 조각과 도예에 도전하며 자신의 개성을 표출해낼 다양한 공예, 디자인 언어를 익혔으며 어느 하나 두려움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무한한 자유가 허락되는 비현실적인 세계, 모로코에 살며 ‘완벽한 구도와 선’에 집착하지 않는 화가로 성장한 로랑스는 지역 장인이 정성스레 빚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고, 장인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드로잉이 더해진 도자기는 이제 전 세계 유명 편집매장에서 소개되고 있다.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그림 작품이 걸려 있는 홈 오피스. 왼쪽 벽면에 걸린 콜라주 작품은 벨기에 겐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트 그룹 레오 가빈(Leo Gabin)의 작품으로 멤버 중 리벤 데코닌크(Lieven Deconinck)가 로랑스의 친구다. 맞은편 벽면에 걸린 오리지널 석판화 포스터는 피카소 작품. 석회암으로 만든 다리가 독특한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로랑스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로랑스가 살고 있는 집을 설명하자면 그곳은 디자이너 로랑스가 모로코에서 찾은 정체성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라케시 전통 공예와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 자신이 디자인하고 아티잔과 협업해 완성한 가구와 소품, 그리고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서 컬렉션한 아트워크와 빈티지는 모두 로랑스가 모로코에 살면서 구입한 것들이다.

 

 

(왼쪽) 로랑스는 집에서 항상 그림을 그리며 명상을 즐긴다. (오른쪽) 현관 홀에는 로랑스가 그린 회화 작품과 터프팅 기법으로 짠 카펫으로 프레임을 장식한 LRNCE 거울이 걸려 있다.

 

(왼쪽) 모로칸 전통 타일과 테라코타 느낌의 방수 회벽으로 마감한 욕실은 야외 파티오 공간 전망까지 품는 이상적인 휴식처다. (오른쪽) 모로코의 붉은 흙과 햇빛을 닮은 톤의 침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작품은 직조와 자수, 회화와 그라피티가 조합을 이룬 것은 로랑스의 작품이다. 리넨 베딩은 파리의 메르시 편집숍에서, 플로어 램프는 이탈리아 빈티지, 화병은 LRNCE 디자인이다.

 


마라케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인 겔리즈(Gueliz)에 자리한 로랑스의 집은 1980년대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노 멜로토(Bruno Melotto)가 지은 현대식 아파트다. 모로코 특유의 붉은 흙빛으로 물든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고층에 자리한 집은 채광이 잘 들어 밝은 데다 아파트 특유의 단순한 형태로 어떤 스타일이든 도화지처럼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했다. “저랑 남편은 4년 전 이 집을 둘러본 후 바로 사랑에 빠졌어요. 실내 자체도 마음에 들었고, 주변 환경도 우리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았답니다.” 로랑스와 남편 아욥 보알람(Ayoub Boualam)은 LRNCE 브랜드를 키워가는 동료이자 삶의 동반자로 취향 또한 잘 통하는 사이다. 모로코 출신인 아욥은 결혼 전 파리에서 근무했는데 그녀가 모로코에 정착한 지 2년 후 직장을 그만두고 경영자로서 LRNCE에 합류했다. “우리는 브랜드를 함께 가꿔가는 덕분에 매일매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도 같은 일상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LRNCE의 모든 제품은 로랑스의 디자인과 모로코 장인들의 협업으로 생산되는 수공예품이기 때문에 제품 수만큼 다양한 공예가, 아티스트와 인연을 맺고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한 작업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은 부부가 함께 사는 집 안 곳곳에 일종의 진화 과정처럼 전시되어 있다. 주방 가구를 주문 제작하고 욕실을 개조한 것 외에는 벽면의 먼지를 털고 화이트 페인트로 단장한 게 전부인 아파트는 그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이 모여 있는 쇼룸이 아닐까 싶을 만큼 모든 것이 로랑스 한 사람을 가리킨다. 실제 이곳의 물건은 대부분 그녀의 창작품이고, 그렇지 않은 것을 두고 그녀의 제품이라 착각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 컬렉션을 일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로랑스가 여행지에서 구매한 도자기, 본능적으로 좋아해서 모은 미드센추리 모던 빈티지 가구, 영감을 주는 그림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그녀의 결과물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집을 꾸미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었어요. 원래 저는 강렬한 컬러를 좋아하지만 이 집은 가능한 한 자연스러운 톤으로 연출했죠. 바쁜 일과를 마치고 오롯이 휴식을 취하며 자아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집을 위해 로랑스는 그에 부합하는 가구와 소품을 추렸고, 여기에는 새롭게 구상해 만든 실험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파키스탄에서 공수한 대리석으로 만든 식탁을 비롯해 둥근 돌을 쌓아 올린 형태로 생긴 석회암 다리의 책상, 대형 그림 작품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디자인은 역시 이곳만을 위해 탄생했다는 것을 직감케 한다. “문제는 이런 가구와 소품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 전부 우리가 직접 아파트 맨 위층까지 날랐다는 거죠.” 당시 남편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로랑스는 그 고생마저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고군분투하며 자신만의 디자인을 찾기까지, 모로코에서의 도전은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남편을 비롯해 10명으로 구성된 팀, 그리고 마라케시 주변에서 활동하는 40명 이상의 장인들과 매년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며 로랑스만의 추상적인 에스닉 스타일을 발전시키고 있다. “저는 제가 걸어온 진화와 변화의 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일시적이고 트렌디한 디자인보다는 영원히 간직할 오브제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 목표니까요.” 그리고 로랑스가 전한 최신작은 다름 아닌 호텔. 지난 수년간 비상한 능력을 소지한 장인들과 함께 전통적인 모로코 저택을 개조해 만든 호텔은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 로랑스의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출된 또 다른 세상이다. 오는 6월 말 오픈하는 그녀의 미적 세계관이 궁금하다면 로즈메리마라케시(@rosemarymarrakesch)를 찾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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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GAELLE LE BOULICAUT(Photof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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