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화가 나난의 랜드로버 프리랜더

화가 나난은 친구에게 물려받은 아이보리색 랜드로버 프리랜더를 탄다.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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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식 랜드로버 ‘프리랜더2’가 깻잎 한 장 간격을 두고 새하얀 주택에 붙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나난(Nanan Kang) 작가의 작업실 겸 자택이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벽면에 바짝 주차해야 차들이 이 앞으로 지나다닐 수 있어요. 저 주차 잘하죠?” 윈도 페인팅과 ‘롱롱타임 플라워’ 종이 꽃다발 시리즈 등 다양한 작업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데 능한 그녀가 인디언 보조개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녀의 일상과 작업 세계에는 언제나 타인이 존재한다. 지난해 그녀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그림을 괴산 찰옥수수로 패러디했다. 옥수수를 선물해준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그녀만의 즐거운 방식으로 표현한 것뿐인데,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켜버렸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소장한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과 영국의 사치 갤러리가 그녀의 패러디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그녀의 작품을 사용하기도 했다. 

 

 

 

자연광이 흠뻑 들어오는 나난 작가의 1층 작업실. 

 


관계 속에서 피어난 독창성, 그 창의성이 내뿜는 진한 향기는 대중의 코끝에 닿았다. 그녀 작업 중 주목받은 작업들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보통 친구가 있다. “제가 준 건 잘 기억하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은 마음에 오래 남아요. 마음 안에 마음이 들어오면 그 마음을 다시 돌려주어야 거리낌이 없어요. 이것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오가면, 마음과 마음이 오갔던 통로가 허물어지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요. 그렇게 지속되는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의무감에 억지스럽게 주는 마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타이밍이 핵심이죠.” 

 

 

 

부드럽고 편안한 실크 블라우스 겸 재킷. 애정하는 옷이라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EENK 제품. 

 

 

그녀는 모델이자 배우인 장윤주가 타던 프리랜더를 2021년 여름에 물려받았다. 프리랜더는 영국 랜드로버에서 1997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한 럭셔리 콤팩트 SUV이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코드명으로 처음 개발된 만큼, 고전적인 ‘바디 온 프레임’ 방식이 아닌 모노코크 구조를 사용하는 랜드로버의 과감한 시도로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현재는 단종된 모델이지만 그 자리를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이어가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좋아요. 아이보리 컬러도 마음에 들고요. 사라진 아이팟 같은 느낌이에요.”  자동차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살았다는 그녀가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느낄 땐 작품을 조심스럽게 운반해야 할 때였다. 그러한 속사정을 알던 친구가 나섰다. “친구 윤주가 오랫동안 타던 차를 어느 날 제게 덥석 물려줬어요. 제 자동차 면허는 아주 오래 장롱에 고이 있었는데, 제가 운전할 수 있도록 윤주가 물꼬를 터준 거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가 운전 연수를 마친 후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 미술관 전시 일정이 잡혔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어요. 서울과 원주를 수없이 왕복해야 했거든요. 그때 운전 실력이 확 늘었어요(웃음).” 자동차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나난 작가의 집 앞으로 찾아온 것. 그보다 그녀에게 이 프리랜더가 각별한 이유는 친구 장윤주와의 관계를 품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 자주 탔던 자동차라서 인수받기 전에도 친숙했어요.” 나난 작가는 이 자동차를 만난 지 2년이 채 안 됐지만, 그녀에게 차가 생기길 우주가 기다린 양, 운전해야 할 상황이 늘어만 갔다. 그렇게 혼자서 결정하고 이동할 수 
있는 삶의 반경이 확장되었다. 

 

 

 

현재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나난 작가의 <TeaTime> 개인전이 진행 중이다. 

 


그녀의 프리랜더는 이제 서울 강남구 이길이구 갤러리로 향한다. 
4월 22일까지 나난 작가의 개인전 <TeaTime>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은 주로 회화 위주로 표현됐다. 그동안 그녀가 이야기해온 자연의 아름다움과 영원성, 작가의 정체성과 한국의 미를 엮어서 현대적인 코드로 전달한다. “작업에 몰두할 때 제 안에서 찾고 밀어붙이고 이겨내는 과정이 찾아와요. 그러한 과정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 특이할 것도 없어서 언급하는 게 맞나 싶은데요, 고뇌의 과정이 평정심이고 보통의 감정이에요. 결코 쉽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어렵지만 다른 길은 없죠. 결국 창조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반을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겠죠.” 눈으로 마시는 차 한잔하기 좋은, 봄날의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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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송은(카 클럽 ‘에레보’ PD)PHOTO :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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