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박병은의 즐거운 인생

해마다 드라마와 영화 두세 편을 선보이는 성실한 배우 박병은. 올해도 다채로운 영화와 드라마로 한 해를 꽉 채울 예정이다. 취미도, 재주도, 사연도 많은 그에게 재밌게 잘 사는 비결을 물었다.

2023.03.23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슈트 셋업 네이비 바이 비욘드클로젯, 폴로셔츠 찬 by 샘플라스, 스니커즈 베이글리 빈티지, 안경 마노모스.

 

 

노력하면 언젠가 이뤄진다. 누구에게나 때가 온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또 희망 고문이 뭐가 있더라? 우리는 종종 가능성 없어 보이는 걸 포기하지 못한 사람을 본다. 옆에서는 ‘다른 길을 알아보라’, ‘관두고 남들처럼 살라’고 하지만, 허황한 꿈에 매달린 사람을 지상에 발붙이게 하는 건 악독한 짓이다. 누가 아끼는 사람에게 절망을 주고 싶겠나. 어떤 말도 그를 완전히 현실에 정착시킬 수는 없을 거다. 미련이 남아서, 아니면 미련해서 저렇게 산다지만. 못다 이룬 꿈이 직업만은 아니며,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이 사람일 수도, 물건일 수도, 이국의 어느 땅이 될 수도 있다.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어떤가. 꿈을 품고 있고, 도전할 목표가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준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삶은 주변 사람이 안타까워할지 몰라도,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자신을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괜찮은 삶일 터. 배우 박병은은 연기가 좋아 예고에서 연기를 배웠고, 성인이 되어서도 무대 위, 카메라 앞 어딘가에서 자신의 몫을 다해왔다. 대사량이 얼마가 됐든, 카메라에 얼마나 비치든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잘 사는 삶이 아닐까. 그가 즐겁고 재미있게 잘 사는 비결은 뭘까.

 

 

후디 마틴 로즈 by 지스트릿 494 옴므, 자수 패턴 팬츠 보디 by 지스트릿 494 옴므, 스니커즈 호간,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40대가 되면 가치관이 달라져요. 예전에는 제 삶의 중심이 저 자신의 행복이었어요. 돈 잘 벌고 즐거우면 그만이었는데, 친구들이 아이 사진을 자랑하는 걸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삶이란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면 더 좋은 거고, 함께 운동하면 더더욱 좋고요. 자극적인 즐거움을 좇기보다는 지인들과 맛있는 안주에 적절한 술 한잔 마시면 그게 행복이더라고요.” 박병은의 삶에 양념 같은 재미는 낚시와 골프다. 골프에 푹 빠진 그는 낚시와 골프의 공통점을 ‘설렘’이라고 했다. 낚시터로 향할 때의 설렘, 골프채를 챙길 때의 설렘이 심장을 뛰게 한다고. 그는 설렘이 사라지면 우울함이 남는다고 한다. 인생은 알 수 없는 만남과 사건으로 가득하다는 그의 말은, 설렘을 안고 사는 건 인생에 기대할 게 많다는 소리로 들렸다. 상대가 어떤 연기를 할지, 카메라는 빛과 표정을 어떻게 담을지, 박병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촬영장에 간다. “일하는 게 즐거워요. 촬영장에서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일은 스트레스고 힘든 것인데, 저는 현장에 갈 때마다 설레요. 오늘은 어떤 연기가 나올지, 처음 호흡 맞추는 그 배우 연기가 장난 아닌데, 어떤 시너지가 나올지 상상만으로도 설레요.” 

 

 

배색 트랙 톱 에곤랩 by 아데쿠베, 브라운 팬츠 에스티유, 스니커즈 반스, 캡 모자 빈티지 베이글리.

 


처음부터 현장이 즐거운 건 아니었다. 박병은은 30대 후반까지 현장이 무서웠다고 한다.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자신이 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자신을 속이고 두려움을 걷어낼지 몰라 흔들렸고, 하나 맡은 배역이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좋은 배우로 소문나서 작품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은 배우의 절박한 바람이었다. 박병은은 20년 동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경제적으로 힘에 부쳤고, 장성했지만 아들 노릇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다 영화 <암살>의 ‘카와구치 스케’를 만나면서 작품 의뢰가 들어왔다. “20대부터 작품을 제안받았다면, 제 나이가 됐을 즈음에는 피로도가 쌓였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20년간 갈구하던 상황이 이제야 펼쳐졌으니 감사하고 설레는 거죠.” 

 

 

화려한 패턴 재킷 보디 by 지스트릿 494 옴므, 티셔츠 와일드 동키 by 샌프란시스코마켓, 태슬 로퍼 알든 by 유니페어,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 분야에서 오래 버티기만 해도 존중받아야 한다. 일이란 게 안 풀릴 때가 있고,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열심히 했음에도 실패할 때가 있다. 그런데도 묵묵히 견디는 건 어디서 비롯한 힘일까. 배우는 촬영 현장에서 퇴근하면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현실에는 어른으로서 해야 할 몫이 있다.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갖는 책임감 같은 것이다. 장성한 자식이 꿈만 고집한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저를 그렇게 봤을 거예요. ‘왜 걔는 다 키워놨더니 배우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뜬구름만 잡느냐’고.” 박병은에게 현실의 책임감과 꿈 사이에서 살아가는 힘, 견뎌내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제 길을 가는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배우는 온전히 몸과 목소리로 연기해야 해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은 배우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배 배우들을 보면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에는 화가의 자아나 감성이 담기지만,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어떤 매개도 없이 투영해요. 그래서 연기를 하기로 했어요. 저는 제 직업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박병은이 침대에 누워 작품만 기다리며 산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살았다. 신발도 팔고, 자전거도 팔고, 팔 수 있는 것 모두를 팔아봤다. 아르바이트하다 억울한 상황을 겪거나, 때로는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별별 아르바이트를 다 했지만, 그중 대리운전할 때 에피소드가 가장 많았다고. “예전에는 대리 기사님들이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기다렸어요. 그러다 술에 취한 분이 ‘어느 마을 몇 단지!’ 소리 지르면 대리 기사님들이 선착순으로 뛰어갔죠. 운전하고 1만5000원 받고 길에 서 있으면 봉고차가 돌아다니면서 대리 기사님들을 픽업해서 다시 번화가로 다시 데려다줬어요. 그 아르바이트도 재밌었어요.” 박병은은 얼굴이 알려진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한번은 한 젊은 승객이 자신을 알아봤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대리 기사한테 장난치지 말라며 그 친구를 말렸는데, 박병은은 되레 그런 상황이 이상했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았어요. 남들은 뭐 슬프다 어쩌다 하는데, 그게 왜 슬퍼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날 하루 10만원 넘게 벌었는데 뭐가 창피하죠? 나쁜 짓 한 것도 아니잖아요.” 일상의 경험은 연기 활동할 때 소재가 됐다. 어떤 외모를 가진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한 시간이 캐릭터 구성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요즘에는 인물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폭력적인 인물인데 화사한 옷을 입는 식이죠. 깔끔한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분노할 때 더 강렬한 인상을 주잖아요. 제 연기를 보고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해요.” 남이 했던 연기가 무의식중에 그대로 남아 있어 그것을 반복할 수 있다고 한다. 상투적인 연기에서 벗어나려고 찾은 자신만의 솔루션이다.

 

 

줄무늬 시어서커 셔츠 메종 키츠네 by 올림피아 르탱 제품.

 

 

박병은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의 촬영을 마쳤다. 연상호 감독이 극본을 쓰고, 민홍남 감독이 연출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물이에요. 처음 대본을 받을 때 서늘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인물 하나하나가 미스터리하고, 선산을 둘러싼 이야기가 너무 재밌게 펼쳐졌고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없기에 우리는 명절에 선산을 벌초하고 과일을 먹던 추억을 주고받았다. 


배우 박병은이 연기에만 몰두해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야구도 하고, 낚시도 즐기고, 골프에도 푹 빠져 있었으니까.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으냐고 묻자, 그는 언더파라고 답했다. “골프 1년 차예요. 사회인 야구도 하고, 농구와 수영, 스노보드도 6년 정도 탔고요. 운동을 즐기는 편인데, 골프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스포츠는 처음이에요. 연습장에서는 잘 맞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와서 다시 치면 안 돼요. 멘탈 스포츠라 옆 사람 한마디에 집중력이 무너지고요. 정신과 육체가 혼연일체되어야 잘할 수 있는 스포츠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인생에 애착 가는 취미와 목표가 생기니 삶의 동력을 하나 더 얻은 듯하다고 말했다. 잘 사는 법을 얘기하다 보니 인생의 재미를 하나씩 늘어놨고, 느닷없이 그 많은 재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유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박병은 역시 유머는 소중하고 중요하다면서, 유머를 잘 구사하는 사람은 타고난 기질이 다르다고 했다. “유쾌한 사람을 만나면 무언의 대결을 펼쳐요. 상대의 개그에 절대 안 웃으려고 하는데, 제 주변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을 정도로 웃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는 재밌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닮아가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결론은 이렇다. 말마다 유머가 묻어난다면 그와 함께하는 삶은 즐거울 것이다. 좋아하는 일에 설렘을 갖고 사는 것, 취미에 치열하게 몰두하는 것, 당당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 것. 박병은처럼 살 수 있다면 꽤 즐거운 삶 아닌가. 

 

stylist 김성덕 hair 옥연(끌로에) makeup 시나(끌로에)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조진혁PHOTO : 임한수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