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스페인의 이색 디자인 듀오

스페인 디자인 듀오 라스 아니마스의 디자인 세계를 접하다 보면 천재의 즉흥성이 빚어낸 창작물이 바로 이것이지 싶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우주만물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제작법이 결합된 지극한 노동의 산물!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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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 라스 아니마스(Las Animas)를 이끄는 트리니 살라망카(Trini Salamanca)와 파블로 파라가(Pablo Pa′rraga) 부부.

 

메자닌 구조로 된 집 거실. 테이블과 의자, 조명, 크레덴자 등 이곳에 놓인 모든 가구와 소품은 라스 아니마스 디자인 결과물이다.     

 

 

스페인 세비야(Seville)에서 활동하는 디자인 듀오 ‘라스 아니마스(Las Ánimas)’는 여느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가구, 조명, 오브제 등 다양한 일상용품을 제작하지만 그 결과물은 차원이 다르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자면 라스 아니마스는 통상적인 디자인 언어를 벗어난, 생경한 ‘외계어’를 구사한다. 제아무리 디자이너의 개성을 담은 창조물이라 하더라도 형태나 재료 면에서 어느 정도 전형성이 있기 마련인데, 라스 아니마스의 작업에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단번에 시선을 끄는 독특한 형태, 생각지도 못한 재료 선택, 그리고 모호한 기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낯설고 기이하지만 답답함이나 불편한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 존재가 무엇인지 기대감과 호기심을, 그 정체성을 밝혀내고 말겠다는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킬 뿐. “우리의 디자인 의도는 제작자와 사용자 사이에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 연결과 에너지 흐름이 세상을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라스 아니마스 스튜디오에서 생산하는 모든 작품에는 제작자인 우리들의 감정, 영혼, 감동이 가득 차 있습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작업장 벽면에는 각종 도구가 걸려 있다. 2 라스 아니마스의 아이콘과 같은 에폭시 레진으로 만든 토템 오브제. 3 다른 예술 및 공예 공방과 비주얼 아트 스쿨 건물로 둘러싸인 라스 아니마스 스튜디오 뒤뜰. 초록색 문이 있는 곳이 부부의 작업실이다. 

 

 

트리니 살라망카(Trini Salamanca)와 파블로 파라가(Pablo Parraga) 부부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라스 아니마스를 이해하려면 우선 그 이름 뜻부터 살펴봐야 한다. 라틴어로 ‘영혼’을 의미하는 ‘아니마(Anima)’에서 유래한 스튜디오의 이름은 그들이 디자인을 하는 근본적 이유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이기 때문.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전반적인 정보 의식은 우리가 세상을 보고 표현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그 정보 의식이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영혼은 우리가 하는 창조적인 일의 원천이자 힘이기 때문에 ‘아니마스’라는 단어를 저희 디자인 듀오의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니마’는 스페인 남부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져요. 강력한 종교적 의미인데, 삶과 사후의 중간 길에 놓인 죽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아니마에 담긴 신비한 의미에 방점을 찍는 설명을 듣고 보니 실제 부부의 작품은 단순한 수수께끼라기보다는 초자연적 세계를 품은 듯 영적인 느낌도 든다. 에폭시 레진으로 된 블록을 쌓아 만든 듯한 삼각형의 펜던트 조명에 불을 밝히면 마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가 태양을 품은 듯 신묘하게 보이고, 기하학적인 다리 모양이 독특하다 생각한 식탁은 주술적 힘이 서린 상형문자처럼 다가오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이 당신을 다른 세계로 이끄는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오브제가 누군가에게 토템, 부적이 되어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과 다른 차원의 세상을 볼 수 있게 자극하고 싶어요.” 

 

 

부부가 함께 디자인한 결과물을 전시한 스튜디오. 작업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파블로와 트리니는 2008년부터 디자인 듀오로서 ‘공생’하고 있다. 캐비닛 제작과 목가구 디자인을 전공해 제작 기술이 뛰어난 파블로와 예술과 인문학을 전공한 트리니는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상호 보완하며 시너지를 발휘한다. “우리는 각자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 문명과 유실된 예술적 형태를 찾는 데 공동의 관심사를 키우며 협력하는 사이예요.” 

 

 

주방 가구 역시 부부가 직접 디자인하고 손수 제작했다. 도어 표면은 선조 문화와 상징주의에서 받은 영감을 조합해 만든 패턴과 컬러로 장식했다.

 

 

라스 아니마스는 2014년 자신들의 디자인 세계와 문화적 코드가 밀접한 세비야로 근거지를 옮기고 디자인 세계를 더 다채롭게 확장해가고 있다. 고대 문화로 시작해 공상과학 소설, 실험적인 전자음악, 브루탈리즘 건축 등 개인을 둘러싼 모든 것을 통찰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안에서 테마를 찾고 상상력을 더해 그린 스케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전환되어 정교한 설계, 이상적인 소재와 제작 기법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작품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요. 우리가 의도한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기술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하는 파블로의 설명이다. 상징성, 신비함, 난해함을 지향하는 라스 아니마스는 자신들의 작업 방식을 덧셈과 뺄셈의 무한 반복이라 말한다. “우리의 작업은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이며 반복적인 패턴의 언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재료, 형태, 질감의 실험을 통해 과거와 미래,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존재하는 심오한 세계를 도상학적으로 표출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재료와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죠.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이뤄집니다.” 최근에 라스 아니마스를 접했다면 아마도 그들의 대표적 디자인인 에폭시 레진으로 만든 컬러풀한 지오메트릭 조명이나 토템 오브제일 것이다. “우리 작품은 꽤 많은 단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어요. 처음에 우리는 순수한 작품을 만들고자 나무를 사용했는데 표현의 한계가 보이면서 석고, 펄프, 에폭시 레진, 바이오에폭시, 아크릴수지, 스티로폼, 유리섬유, 콘크리트 등 신소재로 나아갔고, 온갖 건축 자재를 실험하며 형태와 컬러에 급진적 변화가 일어났죠.” 라스 아니마스의 과감한 색상 조합 역시 근래에 시작되었다. 나무를 사용하며 검은색과 회색에 빠져 있던 그들은 현재의 과감한 컬러로 오기까지, 부드러운 오렌지, 아쿠아마린 같은 톤을 단계별로 거쳤다. “요즘 우리는 인공지능적인 이미지, 사이키델리아(Psychedelia), 복고풍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색상을 즐겨요. 이 모든 컬러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떠올리게 하는 정서적 유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침대 매트리스만 놓인 심플한 침실. 침대 옆 램프는 레진으로 만든 화병 두 개를 합쳐 만들었다.

 


트리니와 파블로는 자신들의 작품에는 현재, 과거, 미래가 완전히 연결된 무한 세계가 담겨 있다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라스 아니마스의 작품이 탄생하고 부부가 생활하는 공간을 본다는 것은 낯선 우주로의 여행과 같을 터. 한적한 골목 안 창고 건물에 자리한 부부의 집에 들어서면 은하계에 도착한 듯하다. 군청색 벽과 천장은 그 오묘한 빛깔만으로 실내를 무중력 상태로 만들고, 기하학 형태의 펜던트 조명, 말미잘처럼 생긴 수납장, 그리고 샛노란 테이블은 별처럼 반짝인다. “우리 집의 모든 공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녔어요. 벽과 문이 없기에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화할 가능성이 다분하죠.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무척 유연하고 자유롭게 생활한답니다.” 아틀리에와 주거 공간이 나뉘어 있음에도 둘 사이의 경계는 큰 의미가 없다. 메자닌 구조로 된 주거 영역은 라스 아니마스의 디자인이 탄생할 때마다 리허설 무대가 되고, 소파가 없어 동선이 자유로운 거실은 6세, 9세 두 자녀가 강아지와 뛰어노는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이런 유동성과 확장성은 ‘일하고, 놀고, 요리하고, 파티하고, 먹고, 자는’ 가족 모두의 생활이 조화로운 이상향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1 파블로가 딸의 첫 번째 생일 선물로 만들어준 목가구 여러 점이 놓여 있는 아이들 방. 학습과 놀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디자인 퍼니처다. 2 욕실 세면대 아래는 ‘버림받은 도시’ 시리즈 중 하나인 건축 오브제 ‘하렘(The Harem)’이 놓여 있다.  

 


수작업에 익숙한 파블로와 트리니는 인테리어 공사 역시 직접 해결했다. 기존보다 바닥을 낮추고 콘크리트를 새로 부어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부터 둘이서 디자인한 컬러풀한 지오메트릭 패턴을 입힌 주방 가구 제작까지, 이 집 어디에도 부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저희가 정작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환상적인 주변 환경 때문이에요. 문을 열고 나가면 금속 세공가, 목공예가의 작업실이 즐비하고, 음악 학교와 비주얼&공연 예술 학교가 골목 끝을 에워싸고 있으니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데 이처럼 좋은 환경이 또 있을까요.” 파블로와 트리니는 골목에 울려 퍼지는 톱과 망치질 소리 그리고 음악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가 환상적으로 느껴진다고. “우리는 매일 우리 안에서 살고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우주를 세상 밖으로 전송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집단 기억에서 비롯되기도 하지요. 이웃 예술가들이 매일같이 들려주는 소리가 긍정적인 경험을 선사하듯, 우리의 소리도 그들 모두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기억된다면 이곳에서 라스 아니마스의 우주는 무한히 확장해나갈 겁니다.” 

 

STYLING Erika Gom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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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Daniel Schae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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