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취향을 찾는 탐험

카페 ‘자그마치’, ‘오르에르’, ‘W×D×H’ 등 성수동의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어온 김재원 대표가 기존 브랜드를 정리하고, 창작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가게 ‘포인트오브뷰’를 재정비했다. 브랜드와 창작에 대한 김재원 대표의 관점은 이렇다.

202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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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자그마치’를 시작으로 10년째 다양한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해왔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무엇이 기억에 남나요?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죠. 그때는 비즈니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 몰라서 힘든 게 많았다면, 지금은 알아서 힘든 상태예요.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지난해는 그동안 운영해온 브랜드를 정리하는 시간이었어요. ‘포인트오브뷰’와 ‘아틀리에 에크리튜’만 남기고 나니 사업 2년 차라는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기더군요. 


브랜드를 정리한 계기가 있나요? 너무 많은 브랜드를 만들다 보니 한 브랜드만 우직하게 이어온 사장님들이 부러웠어요. 그동안 새로운 것에만 집중했구나 싶더라고요. 앞으로 20년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보고, 발전 가능성이 불확실한 브랜드는 정리했어요. 

 

 

손때가 타지 않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문진과 스티커, 클립이 접시에 담겨 있다. 

 


‘오르에르’와 ‘자그마치’ 등 대표님 자아가 투영된 공간, 오래 손발을 맞춰온 정든 직원들을 정리하는 건 큰 결단이었을 것 같습니다. ‘오르에르’ 주방 팀은 시작부터 함께한 친구들이라 헤어지기 무척 힘들었어요. 그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 브랜드는 새로운 상품, 서비스, 감성, 기술, 유행 등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를 지속해서 투입해야만 한 계단 성장해요. 특히 F&B 사업에선 디자인이 부수적이고 본질은 맛과 대표 메뉴예요. 그런데 제가 디자인 기반이라 맛과 메뉴 개발에 한계가 있었어요. 발전이 필요할 때 신메뉴를 제시하지 못하고, 직원들에게 의존하게 됐어요. 저는 공부하고 디렉션 주는 게 사업의 큰 즐거움이고 흥미가 원동력인 사람인데, 커피나 디저트 공부는 그렇지 않았어요. 원동력과 즐거움 없이 브랜드를 계속하면 더 이상 발전이 어렵겠다고 판단했죠. 차라리 이 에너지를 모아 다른 일에 쓰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브랜드를 정리했어요.


브랜드는 사람과 비슷합니다. 피노키오처럼 창업자의 자아가 들어 있고,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며, 감정을 터치한다는 점에서 인간미도 느껴지죠. ‘포인트오브뷰’를 둘러보면서 매력적인 브랜드는 곧 매력적인 사람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지속시키는 건 사람인데, 그 사람의 정수가 들어 있지 않은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픈은 화려해도 지속해서 빛을 내려면 처음부터 그 사람의 무언가가 반영되어야만 살아 움직여요. 저희가 브랜드 제작이나 작업 의뢰를 받다 보니 그런 점을 중요하게 얘기해요. 작업 시작 단계부터 클라이언트 인터뷰를 많이 하는데요. 브랜드를 만들려는 분이 어떻게 자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수다를 떨면서 찾아봐요. 그래야 브랜드에 그 사람의 영혼 같은 걸 담을 수 있어요. 

 

 

포인트오브뷰에는 매대 대신 일상에서 쓸 법한 가구가 있다. 가구에는 주인이 쓰려고 정리해놓은 물건처럼 상품이 정돈되어 있다. 상품은 엽서, 노끈, 돋보기, 펜, 노트 등 다양하다. 고객은 매대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돌아보게 된다. 

 


브랜드가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런데 일할 때는 숫자도 중요해요. 기업이 브랜드를 만드는 궁극적 목적은 수익이니까요. 브랜드의 가치와 기업의 책무 사이에서 어떻게 타협하나요? 브랜드가 진화하면 저도 사업가로서 진화하는 게 당연하죠. 처음 사업을 할 때는 세무나 회계를 몰랐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물건을 갖다 놓고 안 팔리면 제가 갖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직원이 늘면서 매출도 신경 쓰고 숫자를 생각해야 했죠. 리테일로 본다면 숫자가 중요해요. ‘예쁘잖아’는 설득의 근거가 안 되거든요. 내 취향은 아닐지라도 매장에 팔리는 장치를 갖다 놓아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런 장치는 브랜드를 희석하는 해로운 요소가 될 수도 있어요. 숫자의 관점에선 필요하지만, 브랜드 관점에서는 있어선 안 될 것이죠. 취향에 기반한 브랜드인데, 타협을 하다 보면 그 취향이 무엇인지 새로 정의해야 해요. 대표인 제 취향을 기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포인트오브뷰’ 관점에서 선택한 물건이라면, 더 많은 상품을 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세상과 타협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브랜드가 나아가기 위한 선택이고, 처음부터 그렇게 세팅됐어야 했어요. 현재는 ‘포인트오브뷰’라는 브랜드 관점으로 선택하고, 이 관점에는 숫자적인 것도 포함돼요. 


취향은 방향이자 이미지 아닙니까. 내 머릿속 이미지를 타인과 정확히 공유하기 어려운 것처럼, 직원들이 이해할 기준을 명확히 수립하고 정리하는 건 취향 기반 브랜드에서는 까다로운 과정일 것 같아요. 일부러 기획할 때 이미지를 먼저 꺼내지 않아요. 단어에 대한 제 느낌과 이미지를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들 머릿속에 그 단어의 이미지가 굳어지니까요. 그래서 기획은 먼저 텍스트로 정리하고, 텍스트를 계속 다듬어요. 그러다 보면 이미지가 생기고, 그 이미지를 공유해요. 브랜드 세팅할 때도 텍스트만 정리했어요. 

 

 

포인트오브뷰는 창작의 과정을 3단계로 구성한 3층짜리 건물이다. 1층은 창작에 필요한 도구를 파는 곳, 2층은 창작을 위한 환경인 신(scene), 3층은 창작자의 물건으로 구성된 아카이브를 테마로 한다. 사진은 3층 아카이브 공간 전경이다. 

 


그럼 ‘포인트오브뷰’의 슬로건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포인트오브뷰’를 문구점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창작의 도구라고 해요. 창작의 도구를 제안하는 창작의 신(scene)을 보여주는 브랜드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언젠가 알아주겠지 하면서요. 글로 써도 사람들은 글보다는 공간을 보고 경험하기 때문에 그냥 느끼게 해줘야 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요. 문구점이라고 말하지 않는 건 저희가 기획하고 제품을 만들고 편집하는 데 있어서 문구보다는 창작의 도구라는 게 훨씬 넓은 영역이자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기 때문이에요. 저희 스스로 창작의 도구라고 말하고 인식해야 브랜드를 지속해서 꿋꿋하게 끌어갈 수 있어요.


개념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새로운 걸 도출해내는 과정은 미술 작업과도 유사합니다. 맞아요. 창작의 영역이 이 프로세스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있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표현해서 자기 고유의 것을 만드는 게 소설이나 영화, 미술에 해당하죠. 창작이란 미지의 세계잖아요. 창작에는 도구가 필요하고, 저희는 그 도구를 제안해요. 결과물은 새롭거나 재밌거나 기괴한 어떤 것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그 창작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포인트오브뷰’를 만들었어요. 


‘포인트오브뷰’의 각 층에서 다루는 내용은 무엇인가요? 1층은 툴, 2층은 신(scene), 3층은 아카이브예요. 창작의 영역에서 필요한 것들이죠. 1층은 연필, 노트 등 창작의 원초적 도구를 다룬다면, 창작 프로세스에서 도구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발상을 끌어내는 환경도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 환경에 놓인 도구가 창작에 도움 줄 수도 있고요. 2층은 신(scene)이라 부르며, 당신이 창작하는 장면에 이 물건을 한번 놓아보라고 제안하는 거죠. 또 창작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갖고 있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도구를 선택할 테니 그들을 위해 3층을 아카이브라고 지었어요. 슬로건으로 본다면 3층은 자기만의 관점, 2층은 다른 관점, 1층은 모두의 관점이 됩니다. 창작 과정을 이 수직 공간에 녹여 넣었어요.

 

 

 


창작자가 성장하는 과정이 그려지네요. 공간을 기획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건 무엇인가요? 창작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자극받고, 욕구가 올라오는 지점을 생각했어요. 지양한 것은 다른 문구점처럼 쓰임별로 물건 진열하기였어요. 쓰임별로 나눈다면 펜이 1층에만 있겠죠. 그럼 펜이 필요한 사람은 1층만 들렀다가 나가잖아요. 그럼 온라인과 다를 바 없어요. 온라인에서는 펜만 검색해서 저렴하고 빠르게 사죠. 오프라인은 그렇지 않아요. 사람을 공간으로 기꺼이 들어오게 만들려면 산책하게 만들어야 하고, 걷고 둘러보며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스며들어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펜이 1층에도, 2층에도, 3층에도 있어요. 취향에 따라 세분화해서 펜을 추천해줄 수 있지만 단순하게 펜을 찾는다면 전 층에 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단순해 보이는 구조지만 고민이 많았어요. 


소비자들의 구매 방식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는데,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온라인에서는 상품을 빠르고 저렴하게 구매한다면, 오프라인에서는 물건을 보며 추억하고 여러 자극을 경험해야 해요. 매장에서 브랜드를 계속 경험하게끔 하기 위해 산책하는 느낌을 주고, 상상해보도록 많은 요소를 넣었어요. 그런 장치들이 매출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면 언젠가 숫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런 과정이 필요한 시대예요.


리테일에서 온라인은 목적이 중요하고, 오프라인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네, 온라인은 아무리 화려하게 만들어도 무형이에요. 사람들은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임팩트는 공간이 더 강렬하다고 봐요. 오프라인은 규모와는 상관없이 온라인으로는 줄 수 없는 경험을 전한다면 그거로 충분해요. 

 

 

2층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각종 지류와 도구가 있다. 나무 자를 수집품처럼 전시한 것이 인상적이다. 

 


‘포인트오브뷰’는 관점을 뜻하는데요. 다른 관점을 가지려는 창작자들의 고민은, 제시한 새로운 관점이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할 때겠죠. ‘포인트오브뷰’가 생각하는 관점이란 무엇일까요? 그렇죠. 사람은 저마다의 관점이 있고, 모든 창작물이 빛을 내야 하는데 소수의 것만 관심을 받습니다. 창작에 앞서 대전제는 미감일 거예요. 미감 없이 관점만 다르다고 사람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건 이유가 될 수 없어요. 제가 말하는 미감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아니에요. 괴기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서사 없이는 재미가 있을 수 없어요. 서사는 창작물의 스토리가 될 수도, 배경이 될 수도 있어요. 서사와 미감 없이 관점만 달리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다르게 보는 건 쉽지만 미감과 서사는 단번에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AI처럼 아름다운 정보를 많이 접하면 경험이 쌓여 미감도 생길까요? 미감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있는 것 같아요. 완벽한 비율, 괴팍한 것, 귀여운 것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엄청나게 섬세한 것에서 전율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는 작품도 있어요.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는지, 그 사람의 노트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을 넘어서 작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그런 무언가가 필요해요. 그래야 다음 작업이 기대되니까요. 


대표님이 솔직해서 브랜드에도 진정성이 담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오프라인에는 오래가는 브랜드가 별로 없어요. 노포라면 음식점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포인트오브뷰’가 사람들이 오래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것뿐 거창한 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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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조진혁PHOTO :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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