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뮤지컬 <물랑루즈!>의 이충주

뮤지컬 <물랑루즈!>에서 크리스티안을 연기한 배우 이충주. 무대와 카메라를 오가는 그의 배우 인생은 장밋빛이다.

202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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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재킷은 에스티유 오피스. 팬츠는 몽세뉴. 벨트와 부츠는 아워 레가시. 이너 톱과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쉴 새 없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지난해 12월 시작해 3월 5일 막을 내리는 뮤지컬 <물랑루즈!>의 무대는 화려하고 거대하다. 붉은 풍차 모형, 비현실적인 코끼리, 수많은 샹들리에와 겹겹이 쌓인 붉은 커튼은 동명의 영화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내용 역시 원작 영화와 같다. 1899년 프랑스 파리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었던 물랭루즈를 배경으로 가수 사틴과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다. 배우들은 슬픔과 환희, 격정을 노래한다. 음악은 엘튼 존, 마돈나, 레이디 가가, 리한나, 아델 등 팝스타들의 음악을 편곡한 것으로,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익숙해 쉽게 솟아오르는 흥을 멈추기 쉽지 않다.


뮤지컬 <물랑루즈!>는 2019년 첫선을 보인 뒤 브로드웨이를 휩쓴 작품이다. 2020년 74회 토니상에서는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의상 디자인상 등 10관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물랑루즈!>의 한국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의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누가 사틴 역을 맡을지, 누가 크리스티안의 순애보를 노래할 것인지 이목이 쏠렸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기에 배우의 연기가 해당 캐릭터의 기준이 될 수도 있었다. 작품에 대한 기대만큼 주연 배우에게는 막중한 부담과 책임이 주어졌다. 주인공 크리스티안을 맡은 배우 이충주는 기분 좋은 부담이었다고 한다. “편하게 준비한 건 아니에요. 작품 내용은 즐겁고 행복한데 연습 과정은 치열했어요. 공연을 앞두고 중압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사랑받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물랑루즈!>에서 크리스티안은 극을 끌어가는 스토리텔러다. 배우가 조금만 몰입을 놓쳐도 작품 전체가 날아갈 수 있다. 이충주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셔츠는 코스. 이너 톱과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배우의 노력과는 별개로 관객 후기는 정직하다. 좋으면 좋고, 별로면 별로라고 쓴다. 뮤지컬 배우에게는 매 작품이 평가고, 모든 공연이 시험이다. 늘 일정한 수준의 연기력을 펼치는 것도 배우의 역량일 것이다. 극을 이끄는 주인공을 선발할 때는 그 역량을 더욱 면밀하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특히 크리스티안은 많은 배우가 탐낸 역할이었기에 팬들뿐 아니라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누가 맡을지 관심이 컸다고 한다. <물랑루즈!>팀이 크리스티안 역할을 뽑는 과정은 길고 깊었다. 이충주는 오디션이 7개월가량 지속됐다고 했다. 제작진이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이충주 안에 담긴 크리스티안의 면면이었다. 가장 크리스티안 같은 사람을 뽑는 데 주력한 것이다. “최대한 크리스티안과 비슷한 사람을 뽑아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줬어요. 마음껏 연기할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죠.” 이충주가 말했다. 오디션 과정이 길었던 것은 배우가 공연하면서 이런 부분도, 저런 부분도 가능함을 알려주기 위한 제작진의 배려였을 터다. 제작진은 오디션 과정에서 다양한 표현을 요구했고, 배우는 오디션이 평가가 아닌 공연 연습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제 안에서 뭔가를 계속 끌어내고 싶어 했어요. 이런 걸 생각해봐라, 저런 걸 표현해봐라. 화두를 계속 던졌죠.” 오디션이 계속되면서 제작진은 이충주에게서 크리스티안다운 면이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어 했고, 이충주는 자신이 생각한 크리스티안과 그들이 원한 크리스티안의 모습을 맞춰가며 오디션을 보았다. 


뮤지컬의 크리스티안은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원작과 거의 흡사하다. 크리스티안의 이야기로 극이 시작되고, 영화에서처럼 뮤지컬에서도 크리스티안은 심장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하트 포워드’로 소개된다. 사랑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다. 이충주는 자신만의 크리스티안을 만들었다. 연습 과정 그리고 공연이 거듭되며 동료 배우들과 연출은 이충주를 크리스티안 그 자체라고 믿게 됐다. 연출은 이충주를 향해 스스로 어떤 것도 의심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건 가장 크리스티안다운 사람을 뽑은 자신들의 안목을 믿어달라는 뜻이었고, 마음껏 연기하라는 응원이기도 했다. 동료 배우들도 입을 모아 칭찬했다. 사틴을 연기하는 배우 아이비는 이충주가 맡은 역할 중 최고로 잘 맞는 캐릭터라며, 앞으로 이 정도로 잘 맞는 역은 맡기 어려울 정도로 이충주 자체가 크리스티안이라고 치켜세웠다.

 

 

재킷과 이너 모두 디올 맨. 팬츠는 뮐. 부츠 후망. 벨트 세퍼.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공연은 3월 5일까지다. 인터뷰하는 시점에선 공연 기간이 약 3주 남아 있었다.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아쉬워요. 모든 작품이 그런데 <물랑루즈!>는 특별히 더 그래요. 치열하게 준비했고, 오래 연습해서 공연 기간이 짧게 느껴져요.” 이충주는 배우가 자신에게 잘 맞는 역할을 만나 즐겁게 공연할 기회는 큰 행운이고 행복이라 덧붙였다. 지금 이충주는 크리스티안을 연기하지만, 커리어를 보면 수많은 인물을 거쳐왔다. 배우라면 욕심낼 캐릭터도 많았다. 어떤 역할은 간절히 바랐음에도 맡지 못했다. 자신이 적임자라 생각해도, 아무리 자신 있어도 전혀 다른 역할이 찾아왔다. 이제는 역할을 욕심내기보다는 소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배우로 성장했다. 다만 이전 캐릭터와 같은 면이 두드러지진 않길 바란다고 했다. 한 가지에 특화된 배우가 되고 싶진 않다는 것, 다양한 면을 연기하고 싶다는 것은 배우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관객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과정이 재밌어요. 이충주가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거죠.” 약 14년간의 활동 중 다시 만나고 싶은 캐릭터가 있느냐는 물음에 이충주는 바로 직전에 했던 뮤지컬 <썸씽 로튼>의 닉 바텀을 꼽았다. 이충주가 닉 바텀을 맡았을 때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진중한 역할을 맡아온 그가 밝고 경쾌한 코미디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고, 이충주도 행복감을 느꼈다. “작품이 너무 재밌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닉 바텀은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는 인물인데요. 관객들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요즘 자극적인 작품이 많은데, 마냥 웃을 수 있는 닉 바텀을 다시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마음속 1위는 크리스티안이라고 덧붙였다. 


무대에선 관객과 대면한다. 관객의 시선을 받고, 숨소리를 듣는다. 연기에 대한 반응도 즉각적이다.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란 무엇일까. 이충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행위 자체가 행복이고 즐거움이라 말했다. 커튼콜에서 관객의 눈빛을 보고 박수 소리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저는 그냥 제 일을 했을 뿐인데, 제 공연을 보고 삶의 위로를 얻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 사명감이 생겨요.” 배우로서 일하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는 영감이고 위로가 된다. 배우가 무대에서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 관객도 있다.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이충주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지금 그가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성실함이다. 자신이 택한 직업인 만큼 연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관객의 사랑을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것도 배우의 일이라고 이충주는 말했다. “꾸준히 노력하며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 위로를 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데뷔 후 승승장구해온 것 같은 그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코로나19로 출연 중이던 공연이 중단된 것이다. 공연계에 종사한 사람들은 당장 일거리가 사라지고, 앞날이 막막했다. 그 역시도 인고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염없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각자의 처지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제야 겨우 회복했다는 이충주는 다시는 그때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사태는 직업에 대해 깊이 고민할 시간이 된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활동한 그도 목표를 다시금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특별하고 귀한 것임을 알게 됐다. 이제 목표는 사랑받으며 오래 일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선택받는 배우가 되는 것, 반짝 빛나는 스타보다는 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과 연극은 칼로 나누듯 구분할 순 없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 노래를 빼면 연극이라 하고, 연극에 노래를 넣으면 뮤지컬이라 생각하는 이도 많다. 연극과 뮤지컬 모두 경험한 이충주에게 두 장르의 차이는 무엇인지 물었다. “연극과 뮤지컬은 전혀 다른 장르예요. 드라마는 드라마의 언어가 있고, 영화는 영화 언어가 있듯이 연극도 고유의 언어가 있어요. 연극은 마이크 없이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표현 방법부터 뮤지컬과는 달라요.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것만은 아니에요. 뮤지컬 또한 연기가 엄청 중요하니까요.” 

 

 

 

재킷과 이너 톱은 모두 제냐.

 


무대에서 활동해온 그이지만 영상 작업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 두 편을 작업했다. <물랑루즈!> 이후에는 영상 매체를 시도할 생각이다. 무대에 익숙한 그에게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 경험은 낯설지 않을까. 다른 연기 메커니즘에 익숙해지는 과정은 어땠는지 물었다. “연기라는 맥락은 같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건 1500명 관객을 두고 무대에서 하는 연기와는 호흡 방법이 달라요.” 드라마 첫 작품을 1년 가까이 촬영하며 카메라 연기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카메라와 무대를 넘나드는, 이 언어와 저 언어를 자유자재로 변속하는 선배 연기자들에게 존경을 보였다.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에게는 매 작품이 도전일 것이다. 더 큰 도전은 전혀 다른 연기 언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터를 옮기는 것이다. 이충주는 드라마와 영화에 도전했다. 도전이란 편할 수도 쉬울 수도 없다. 그는 편하게 작업해온 무대를 벗어나, 다시 신인 배우로 돌아간다. 못 만나본 배우들, 스태프들, 그리고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에서 연기해야 한다. 새로운 영역의 문을 두드리는 건 외로움보다 어려움이 크다. 무대에선 베테랑이지만 카메라 앞에선 신인인 그가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관객이 아닌 시청자에게 연기를 보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그의 연기는 더 많은 곳에서 쉽게 노출될 것이다. 이 도전이 이충주에게는 큰 의미다. 계속해서 쓰임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배우 이충주는 믿는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기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 잘되는 사람에겐 잘될 만한 이유가 있고, 요행이란 없다고 그는 믿는다. 언젠가 올 기회를 대비해 잘 준비하고 있는 지금, 그는 우직하게 무대에 오른다. 

 

stylist 박선용 hair 재황(롤링제이) makeup 나리(롤링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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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조진혁PHOTO : AN JU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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