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컬렉터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패기 넘치는 20대 청년 둘이 의기투합해 사업을 시작했다. 수집에 남다른 감각과 소질을 비즈니스로 풀어내기로 한 두 친구가 택한 아이템은 컨템퍼러리 아트와 1970년대 디자인 컬렉션. 파리 몽마르트르 인근의 한 아파트는 그들의 집이자 회사인 펄프 갤러리가 되었다.

2023.02.16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건축가 마리오 보타 디자인의 ‘쇼군(Shogun)’, 원통 등받이 의자 ‘세콘다(Seconda) 602’, 지브라 패턴 소파 ‘오블리쿠아(Obliqua)’로 연출한 흑백 대비가 돋보이는 거실. 왼쪽 벽면에는 도예가 미테 에스펠트(Mithé Espelt) 거울 컬렉션, 벽난로 위에는 화가 폴 주브(Paul Jouve) 작품이 걸려 있다. 

 

 

예술과 디자인에 열정이 넘치는 두 청년이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시작한 때는 4년 전. 각각 법률과 비즈니스를 전공한 폴 루이스 베토(Paul-Louis Betto)와 폴 메나세르 푸생(Paul Ménacer-Poussin)은 그림 작품과 가구 디자인을 컬렉션하며 이를 사업적으로 확장해야 할 운명의 시간을 맞이했다. 


“수집을 하면 할수록 더 좋고 중요한 다른 작품을 갖고 싶게 되고, 그러다 보면 기존 컬렉션과 헤어져야 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두 사람은 기업가의 영혼을 품은 채 예술 분야에 종사할 것을 결심하고 갤러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갔다. 전통 갤러리와는 다른 대안 공간을 모색하던 그들은 4개월간 연구하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적당한 공간을 찾다가 몽마르트르 사크레쾨르(Sacré-Cœur) 대성당에 인접한, 70㎡ 규모의 오스만 양식 아파트에 갤러리를 오픈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서늘한 화이트큐브 안에 서서 그림을 보고 질문하고 구매하고 떠나는 전통 갤러리 운영 방식을 벗어나고자 한 두 청년의 계획은 이러했다.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1950년대 세라믹 칼리체(Calice) 화병. 2 거실과 마찬가지로 흑백 대비가 돋보이는 주방. 인물화는 런던 신진 작가 홀리 브랜드릭(Holly Brandrick) 작품. 

컬렉션의 묘미를 아트&디자인 영역으로 확장해 펄프 갤러리를 설립한 폴 루이스 베토(Paul-Louis Betto)와 폴 메나세르 푸생(Paul Ménacer-Poussin).

 


“우리는 여기서 식전주와 식사 자리를 마련해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과 공통된 관심사, 즉 예술과 디자인 취향에 대해 다채롭게 논의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이 찾고 있는 예술품이나 디자인이 무엇인지 절대 묻지 않습니다. 이 공간을 즐기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정확하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아파트는 거의 2주 간격으로 아트&디자인 컬렉션과 디스플레이가 바뀝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갤러리가 다수 포진해 있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 2022년 1월 오픈한 ‘펄프 갤러리(Pulp Galerie)’는 당시 23세밖에 안 된 ‘애송이’들이 운영하는 곳임에도 단시간에 ‘기대 이상’으로 성공의 문턱에 다다랐다. 예술과 디자인 작품에 진심인 폴 루이스와 폴의 컬렉션, 그리고 그들의 열정이 담긴 실제 주거 공간은 많은 예술 애호가들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았기 때문. 


전공은 서로 달랐지만 예술 시장 마케팅 수업을 들으며 만난 폴 루이스와 폴은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다는 운명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렇게 뜻을 같이한 두 친구는 수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약속하며 지금의 펄프 갤러리를 설립하였으니,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을 터. 

 

 

모던 디자인 아이콘인 ‘쇼군’ 플로어 스탠드와 ‘세콘다602’ 의자가 놓인 거실 코너. 왼쪽 벽면에는 빈티지 상업 포스터부터 프랑스 입체파 화가 앙드레 로테(André Lhote)의 1930년대 ‘미르망드 앞 소나무’ 작품이 걸려 있다.  

거실 소파는 스위스 디자이너 우발트 클루그(Ubald Klug)가 1974년에 디자인한 ‘테라차(Terrazza)’, 알루미늄 원형 커피 테이블 ‘에일리언(Alien)’은 일본 디자이너 야스히로 시토(Yasuhiro Shito)의 1998년 작품. 벽면 가운데 걸린 그림은 파리 화가 파블로 토메크(Pablo Tomek), 오른쪽 그림은 프랑스 화가 샤를 라피크(Charles Lapicque)의 1950년대 작품 ‘타메를란(Tamerlan)’이다. 왼쪽의 검은색 구성 작품은 미국 화가 댄 밀러(Dan Miller)의 2004년 그림.

 


“저는 지금의 갤러리를 만들기까지 다양한 수집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왔어요. 옷, 운동화, 시계 등등을 수집하다 예술에 이르게 된 거죠. 수집이라는 큰 개념 안에서 보면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컬렉션의 여왕은 예술이니까요.” 폴 루이스의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즈니스를 전공한 폴 역시 사업가적 기질이 다분할 뿐 아니라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 가구와 소품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펄프 갤러리는 아름다움과 취향에 대한 우리만의 비전을 제시하고 수집 가치가 높은 컬렉션으로 생활 공간을 연출해 보여줌으로써 고객들에게는 취향의 발견이자 현명한 구매의 장이 됩니다.”


예약과 초대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펄프 갤러리는 고객의 사생활과 비밀이 보장되는 안전하고 친근한 장소다. 마치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듯한 설렘과 친밀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실제 폴 루이스와 폴은 손님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며 환영의 뜻을 전하고, 손님들은 디자인 컬렉션 소파와 안락의자에 앉아 집 안에 있는 모든 컬렉션을 직접 보고 사용하며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여기에 파리지앵 아파트 특유의 스타일은 이러한 경험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쪽모이 세공 마루와 섬세한 몰딩, 그림을 걸기 좋은 흰색 벽면은 전형적인 파리지앵 아파트의 특징이자 갤러리로서 훌륭한 배경을 갖춘 셈이니 말이다. 

 

 

디자이너 겸 건축가 마크 헬드(Marc Held)가 프랑스 잡화점 프리스니크(Purisunic)를 위해 1966년에 제작한 침대가 놓인 침실. 파이버 글라스 소재로 만든 더블 침대는 사이드 테이블과 조명이 침대 프레임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으며 1인용으로 분리할 수도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 아이콘인 플로어 램프는 하비 구찌니(Harvey Guzzini)가 조명 회사 메블로(Meblo)를 위해 제작한 것이며 벽에는 70년대 자유의 상징인 우디 앨런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침실에는 카메룬 출신의 젊은 화가 앙팡 프레코체 (Enfant Précoce)의 2017년 작품인 ‘클럽 플라밍고(Club Flamingo)’가 걸려 있다. 화분이 놓인 사이드 테이블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셰(Gaetano Pesce), 벽난로 옆에 놓인 기둥 형태의 플로어 램프 ‘메가론(Megaron)’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지안프랑코 프라티니(Gianfranco Frattini)가 1979년에 발표한 것이다.

 


펄프 갤러리의 메인 전시실은 거실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림이나 가구가 팔리거나 새 컬렉션이 입고될 때마다 디스플레이가 바뀐다. 폴 루이스와 폴은 열정 넘치는 수집가답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프랑스 전역을 누비고, 일정한 정보가 모이면 일정을 짜고 직접 밴을 운전해 수집 여행을 떠난다. 벼룩시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다반사, 골동품 상점과 개인 주택 방문은 물론이고 중고품 인터넷 거래 장터에서 예상치 못한 작품을 찾는 데도 열성이다. 예술 경영을 배우고 경매장과 미술관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예리한 안목을 지니게 된 그들은 다락방 안에 방치된 짐 무더기에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이 과정에서 만난 컬렉션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에도 몰두한다. 실내장식공, 세라믹 복원공, 특정 예술 전문가 등 전문가와 장인의 도움을 받아 수집품 중 손상이 있는 것은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고, 예술 작품은 진품 인증서를 발급하는 전문가를 통해 감정을 받는다. 


“우리는 보수나 복원을 할 때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해요. 함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죠. 실제 이를 위해 많은 연구를 했고, 천갈이할 때 필요한 직물의 유형과 색상은 우리가 직접 선택합니다.” 폴은 이러한 과정을 두고 예상치 못한 매력적인 헌신이라 말한다. 

 

 

자연 채광이 풍부하게 드는 욕실. 욕조 위에는 교각, 하천, 저수지의 수위를 표시하는 눈금인 스태프 게이지(staff gauge)를 위트 있게 올려놓았다. 침실과 욕실 사이 복도에 마련한 홈 오피스. 데스크 위에 놓인 거울은 프랑스 여성 도예가 미테 에스펠트(Mithé Espelt) 작품으로, 이는 작가가 1950년대 여성들의 일상 용품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들고자 전통 도예 기법을 벗어나 반짝이는 유리와 금칠을 더해 독보적인 개성을 창출한 디자인이다. 

 

 

폴 루이스와 폴은 작품과 디자인 수집 외에 이를 조화롭게 전시하는 일도 직접 해결한다. 갤러리기도 하지만 컬렉터인 두 사람이 생활하는 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펄프 갤러리 실내는 무척 개성 넘치는 모습이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 거실과 다이닝룸을 꽉 채운 다양한 가구는 보는 이의 심미안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겠지만, 이곳의 주인장들에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다. 그들은 늘 새로운 컬렉션이 중심이 되도록 디스플레이를 변경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새 작품이 주변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를 2주에 한 번씩 손쉽게 해낼 수 있는 비결은 다음과 같다고.

 

“우리가 수집하는 것들이 탄생한 시대를 존중하다 보면 디자인 정신이 꽤 일관성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잘 풀어낼 수 있습니다.” 


폴은 디자인의 산업화 시기와 미래 시대를 꿈꾸던 스페이스 에이지를 관통하는 1960~1990년대 가구와 빈티지 조명 컬렉션으로 각 공간의 구심점을 만들고 그에 어우러진 색감과 스케일을 지닌 아트 워크를 매치한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펄프 갤러리의 가구 컬렉션 대부분은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을 이끈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의 작품인 반면 아트 컬렉션은 1920년대부터 전후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중요한 예술가들의 이름부터 현대 화단에서 주목받는 신진 작가들까지,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는 것. 이는 펄프 갤러리의 두 오너가 각자의 취향과 장점을 두루 반영한 결과이자 궁극적으로는 고객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운 재능을 지닌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를 찾는 폴 루이스는 미래의 위대한 예술가를 찾는 데 집중하고, 옥션과 갤러리에서 일하며 살아 있는 예술 시장을 이해한 폴은 20세기 프랑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에 푹 빠져 있기 때문. 폴 루이스와 폴은 파리 18구에서 시작한 ‘아파트 갤러리’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 비즈니스 모델을 이탈리아에서도 시도할 계획이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디자인과 예술을 선보이고,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수집한 디자인을 제공할 겁니다. ”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공간

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Fabienne Delafraye(Photofoyer)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