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범죄도시를 잇는 카지노

디즈니플러스 <카지노>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강윤성 감독이 말하는 진정성.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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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성 감독에게 궁금한 건 취재 과정이었다. 어떤 드라마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전개되고 완성되지만, <카지노>는 다르다. 노트북 앞에 앉아 상상만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다. 취재가 필요하다. 사건 당사자를 만나 집요하게 인터뷰하고, 사건과 연관된 사람, 사건의 배경 장소, 시대상을 찾아다니며 기록해야 한다. 취재한 내용을 짜맞추며 이야기를 엮어야 한다. 촘촘한 세계관은 발로 뛰어다녀야 구축된다. 


드라마 <카지노>에서 필리핀 카지노 세계는 16화에 걸쳐 방대하게 펼쳐진다. 사건 하나를 다루는 영화와 달리 호흡이 긴 드라마는 중심 서사에서 파생한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더구나 이 드라마에는 등장인물도 많다. 각 인물은 저마다의 서사를 갖고 작가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행동의 이유를 조금이라도 설명해야 한다. 그럼 이야기는 고목처럼 굵은 줄기와 빼곡한 가지로 풍성해진다. 가지 하나를 붙잡고 강윤성 감독에게 물었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개념인 카지노 정킷방을 취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작품을 기획하기 전 강윤성 감독은 극 중에 나오는 무고한 한국인과도 같았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필리핀에서 정킷방을 운영하는 남자를 만났다. 해외 카지노에서 VIP 대접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킷방을 알기 어렵다. 감독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카지노 정킷방이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카지노 세계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시스템과 그 세계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그 이후로 강윤성 감독은 필리핀 카지노 세계를 취재했다. 

 

그렇게 모은 카지노 세계의 정보를 취합해 드라마 창작에 돌입했다.아직 드라마가 방영 중이니 스토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강윤성 감독이 카지노를 취재했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고, 객관적인 자료를 취합하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모았다는 것이다. 그건 2시간짜리 영화로는 압축할 수 없는 양이었다. 긴 호흡으로만 다룰 수 있었기에 10개월간 각본 작업에 돌입해 16부작 시리즈를 완성했다. 이 중 이야기 틀을 짜는 데만 4개월, 대본 작업에는 6개월이 걸렸다. 과거 강윤성 감독은 현실에서 사건을 찾아내 스크린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전작인 <범죄도시>와 <범죄도시2>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왜 실제 사건을 다뤘냐고 물으니, 리얼리티를 위해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영화는 허구일지라도 관객에게 이런 세계가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리얼리티의 근간은 취재고, 실제 자료를 조합해 이야기를 만들면 관객은 영화 속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죠.” 강윤성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 세계를 믿게 하려면 진짜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즉, 리얼리티의 근간은 인물이라는 것. 하지만 수많은 캐릭터에 모두 개성을 부여하는 건 작가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하다. 강윤성 감독이 선택한 효과적인 방법은 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자식처럼 키워낸다. 대사가 적더라도 배우는 맡은 배역을 연구하고 전사를 상상한다. 강윤성 감독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개성 있게 만들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 인물이 진짜처럼 보이면 상황이 진짜처럼 묘사되고, 결국 관객은 이야기에 빠져든다고 강윤성 감독은 말했다.  

 

 

낯선 세계를 농밀하게 관찰하고, 익숙한 장르를 색다르게 연출하는 강윤성 감독. 그가 필리핀 카지노를 배경으로 170명에 달하는 매력적인 인물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흥미롭게 조합해 카지노라는 왕국을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드라마 캐릭터의 모델이 된 취재원을 작품에 그대로 넣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감독은 취재 과정을 복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증언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들을 모두 만날 수는 없으니, 증언을 들으면서 그 사람들을 상상해 캐릭터를 만듭니다. 취재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만난 사람 중 행동과 말투가 독특한 사람은 기록해두고, 각본 작업에 활용하기도 하죠.” 강윤성 감독이 배우에게 기대하는 건 그 인물이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다. 대본에 쓰인 대사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배우의 입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면 관객은 가짜 같은 느낌이 들기에, 배우에게 대사를 정확히 말하는 것보다 배우가 자신만의 언어로 바꿔서 말하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어쨌든 <카지노>는 픽션이다. 극화를 위해 창작한 인물과 사건도 있고, 실제 인물이라도 설정만 가져올 뿐 새로 만든 인물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취재는 동반됐다. 취재 없이는 불가능한 세밀한 묘사가 드라마를 생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필리핀 한인 사회를 섬세하게 묘사한 드라마는 없었다. 외국에서 도박업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비즈니스는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카지노>는 욕망의 집합체인 이 세계를 관찰하며 대한민국 밖에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상업영화에서 획기적이고 낯선 시도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건 누구 말처럼 남의 돈으로 예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감독은 생경하지 않지만 꽤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한다. 강윤성 감독이 그렇다. “맞다가 죽을 것 같으면 벨 눌러”, “니 눈에는 내가 렌트카 하는 사람으로 보여?” <범죄도시2>의 명대사다. 강윤성 감독 작품에는 말맛이 살아 있는 ‘찰진’ 대사가 꼭 나온다. 여타 액션 영화와는 다른 개성 있는 액션 신도 강윤성 감독 작품의 특징이다. <카지노>에서도 충격적인 장면과 ‘찰진’ 대사가 매회 등장했다. 강윤성 감독 연출의 포인트는 관객이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는 자동차 액션신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카 체이싱을 답습하는 정도에 불과할 테니, <범죄도시>에서는 카 체이싱을 빼고 주인공이 10차선 도로를 두려움 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넣었습니다.” 관점을 달리하는 연출은 <카지노>에도 적용됐다. 


<카지노>는 전체 16화 중 초반 3화가 주인공 차무식(최민식 분)의 전사다. 차무식이 어떻게 필리핀 카지노 왕이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 대학생 시절, 한국에서 사업하던 30대 모습까지 그린다. 한 인물의 전사치고는 긴 양이지만 사건 중심으로 플래시백을 이루어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본래 시나리오상에는 차무식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나열했다. 편집 과정에서 보니 관객이 과거 분량을 지루하게 느낄 수 있기에 인물과 사건을 쫓는 방식으로 다시 편집했다. “현재와 중간 과거, 대과거로 나눠 이야기를 교차 배열했습니다. 그럼 인물에 대한 소개가 명확하고 사건에도 개연성이 생깁니다.” 차무식의 전사를 보여주면서도 ‘카지노’와의 연결 고리를 놓치지 않았다. 차무식이 한국에서 카지노 바를 설립한 1화나, 카지노 바 운영으로 세금 폭탄을 맞고 필리핀으로 잠적한 2화, 필리핀 카지노 세계에서 빠져드는 3화 모두 카지노를 중심으로 차무식의 인생이 설명된다. 차무식 인생이 중요한 것은 <카지노>가 카지노에서 벌어진 사건만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왜 차무식의 인생 전체를 다뤄야만 했는지 이해할 것이라 덧붙였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면, 주인공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전작인 <범죄도시>는 선악의 대립이 명확했지만, <카지노>는 차무식을 쫓아가며 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착한 아들, 책임감 있는 형님, 신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업가의 모습은 긍정적인 면이다. 반면 사람들을 도박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나쁜 인간이기도 하다. 강윤성 감독은 처음부터 주인공을 정의롭게 그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사선에 서 있는 사람의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카지노는 차무식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벌어지는 욕망과 배신, 애정이 이 드라마에 녹아 있기를 바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지노>에서 욕망을 쫓는 건 도박 중독의 다른 말일 것이다. 등장인물은 돈을 쫓지만 명분은 없다. 왜 성공해야만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모두 욕망에 중독되었기에 도박판에 서 있는 게 어색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이 도박에만 몰입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사업을 벌여 돈을 만든다. 도박판에서 도박이 아닌 일로 성공을 꿈꾸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카지노>는 카지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지만 갬블링은 깊게 다루지 않는다. 강윤성 감독은 인물들이 카지노에서 게임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도박에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다른 이유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카지노에 들어온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을 다뤘다. 


<카지노>는 매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비중 있는 인물이 매회 나오니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주요 인물 몇 명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는 게 아니라 차무식의 인생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인물들로 에피소드가 채워진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별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에 등장한 많은 인물을 어떻게 정리할 계획인지 물었다. “대본에 나온 인물을 세어보니 170명이더군요. 매회 10여 명이 등장하는 겁니다. 카지노는 소수의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곳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는 공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수가 드라마와 갈등을 만드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이 영입되고 또 나가면서 카지노의 의미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강윤성 감독은 호흡이 긴 드라마의 아쉬운 점으로 인물들의 관계가 좁은 것을 꼽았다. 좁은 커뮤니티에서 얽히고설키면서 사건이 벌어지는데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 특히 외지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사건 사고가 아니라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경험하게 되고, 그게 카지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앞서 설명한 영화는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차무식을 둘러싼 캐릭터도 카지노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쾌한 양정팔(이동휘 분)의 존재는 차무식에게 가해진 무게추를 덜어내며, 차무식의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면모를 끌어낸다. 하지만 양정팔은 본래 무거운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동휘 배우가 캐릭터를 구현하는 순간 양정팔은 저렇게 재밌게 가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차무식과 친밀한 버디 무비처럼 보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동휘 배우가 캐릭터를 참 잘 잡았습니다.” 한편, 어느 회사에서나 볼 법한 현실적인 직장인을 구현한 오승훈(손석구 분) 캐릭터도 예측 불가한 인물이다. 오승훈은 차무식과 대립하는 인물이다. 본래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은 주인공보다 더 강한 성격이거나, 사이코패스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로 설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손석구는 생각이 달랐다. “손석구 배우와 많은 논의를 했는데, 평범한 인물이 특별한 목적 없이 필리핀에 도착해서 차무식을 만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제안하더군요. 손석구 배우의 의견이 관객에게 더 어필할 것 같았습니다.” 배우가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수용하는 능력은 강윤성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배우와 스태프를 비롯한 촬영장의 모든 사람이 강윤성 감독에게 편하게 얘기한다. 누구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더구나 <카지노>와 같은 블록버스터 제작 현장에서는 감독이 어렵기 마련이다. “제가 믿는 좋은 연출은 이 상황이 진짜처럼 보이는 겁니다. 캐릭터도 이 상황을 진짜처럼 인식하고 연기하기를 바랍니다. 배우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연기하는 것이 제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1월 중순까지 16부작 중 6화까지 공개됐고, 3화까지는 많은 부분을 인물 설명에 할애했다. 본격적인 사건은 5화부터다. 전개 속도에 불이 붙었다. “<범죄도시>를 뛰어넘는 통쾌함을 기대해도 좋다”고 강윤성 감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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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조진혁PHOTO :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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