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박원민

내년 1월 7일까지 파리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에서 박원민 작가의 개인전 <On Earth>가 열린다. 자연의 윤곽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은 빛과 공기로 결합된 초현실적 물성이 특징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는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박원민 작가의 작품 세계.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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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캐슬, 캄파냐 형제, 릭 오웬스 등 동시대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작가들을 전속 리스트에 보유하고 있는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Carpenters Workshop Gallery). 런던과 파리, 뉴욕과 LA에 지점을 두며 아트 퍼니처 분야에서 독보적 위상을 점유하고 있는 이 갤러리에서 박원민 작가는 유일한 한국인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0월, 아트바젤의 첫 번째 파리 에디션인 ‘파리 플러스(Paris Plus)’가 개최되는 아트 주간을 맞아 갤러리마다 선보인 비장의 전시와 행사 중에 박원민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On Earth>도 있었다. 2015년 ‘헤이즈(Haze-희미한 연작)’ 시리즈 첫 개인전부터 알루미늄 소재의 <Plain Cuts>, 화산암과 산업용 강철판을 사용한 <Stone & Steel> 그리고 모든 소재를 합친 이번 <On Earth>까지, 그의 작품과 전시를 지켜봐왔다. 아트 퍼니처에서 점차 조각에 이르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결국 인간과 자연의 공진화를 추적하고 탐구하는 길을 찾고 있는 박원민 작가와 파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파리 플러스’ 주간에 가진 개인전 오프닝에 많은 인사들이 다녀갔다고 들었어요. 중요한 시기에 신작을 선보이는 만큼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전 세계 아트 신의 이목이 집중된 기간에 전시를 연다는 것은 영광스럽고 기분 좋은 일이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갤러리마다 경쟁이 심하고 이벤트가 많은 기간이라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와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줬어요. 같은 시기에 프티팔레에서 전시를 가진 우고 론디노네 작가도 방문했고, 한국 미술계 분들도 여럿 오셨습니다. 유럽 현지 기자들에게도 취재 요청을 꽤 받았고요. <르몽드> 지와 인터뷰했는데 그 신문의 주말판 한 면에 동시대 한국 작가가 이렇게 크게 실린 일은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 <On Earth>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유럽에서 활동하며 출장을 많이 다니는데, 어느 날 비행기 창밖 아래로 펼쳐진 지상의 모습이 유난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인간과 자연에 대해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참이었거든요. 거대한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그저 육지와 물로 이루어진 행성의 모습이잖아요. 인간은 너무나 작은 존재고요. 존재 그대로의 자연 그리고 기술을 가진 인간,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공진화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둘 이상의 종이 상대 종의 진화에 상호 영향을 미치며 진화하는 것을 뜻해요. 수천 년 전 지질학적 사고의 산물인 돌, 그리고 강철과 유리와 레진, 각각 자연과 인공을 상징하는 소재의 결합에서 물웅덩이처럼 보이는 형상 등이 어우러집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조화라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새로운 추상을 만들며 결국 인간 대 자연의 양의성을 깨뜨리고 싶었고, 이런 의미에서 전시 제목을 ‘On Earth’라고 지었습니다. 

 

 

3D 프린팅으로 암석 모양을 따서 만든 레진과 유리가 어우러진 작품. 반투명한 성질의 레진과 유리가 빛과 공기로 결합된 초현실적 물성을 보여준다.

 

 

돌과 인공 소재의 결합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커다란 암석이 작품의 중심이 됩니다. 돌의 단면을 자르면 그 안에 품고 있는 곡선이 나타납니다. 곡선은 인간이 흉내는 낼 수 있어도 결코 만들어내지는 못한 자연의 것입니다. 돌을 잘라 나온 단면의 곡선을 3D 프린트해 인공 소재에 그 모양 그대로 대입해 작품을 만듭니다. 지난해 발표한 ‘Stone & Steel’ 시리즈에서 레진 소재를 추가한 것이 특징입니다. 스톤은 자연의 시간입니다. 부서지고 구르고 퇴화하면서 탄생한 자연의 물체죠. 그리고 스틸 플레이트는 사람의 시간인 동시에 자연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죠. 돌을 보면 바깥쪽은 갈색이고 안은 검정이 보입니다. 돌 안에 철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녹이 슨 것이 갈색으로 나온 것이에요. 이렇게 서로 연관이 있으면서도 또 다른 두 가지를 결합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 그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심플한 아이디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단순하냐 복잡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궁극은 철학입니다. 

 

 

자연을 상징하는 암석과 인간의 기술을 상징하는 강철 소재의 결합은 둘 사이의 공진화를 시사한다.

 

 

자연과 인간의 공진화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자연의 선과 함께 극도로 절제된 형태를 활용하고 있어요. 이런 당신의 작품 세계를 일컬어 미술계에서 ‘후기(포스트) 미니멀리스트’라고 표현하던데요.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인간과 자연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는데요. 이를 표현하는 조형 언어에서 나온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최소한의 디자인과 제스처를 사용합니다. 자연에 최대한 적게 개입하는 것은 무위(無爲) 사상과도 맞닿아 있어요. 이것이 저의 작품이 일견 매우 모던해 보이지만 동양적 미니멀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동시에 모노하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노하는 산업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했고 자연 재료와 공업 재료를 사용해 변하지 않은 상태로 배열했습니다. 여기에 저만의 방식으로 재료를 더하고 배치했으니 포스트 모노하에 대한 저만의 화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들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발자취입니다. 

 

지난해 화산암과 산업용 강철판을 사용한 ‘Stone & Steel’에서 처음으로 암석을 작품에 활용했어요. 이 돌은 이사무 노구치와도 일한 일본의 채석장에서 온 것이라고요? 네, 맞습니다. 이 채석장을 만난 것은 운명같이 느껴집니다. 7년 전 이탈리아에서 레진으로 만든 ‘Haze’ 시리즈를 전시하고 있을 때 채석장 소유주를 처음 만났어요. 그는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일본 미야기현에 소재한 채석장 돌을 보여주며 이사무 노구치도 이 채석장을 돌을 사용했고 자신의 돌을 잘 다룰 수 있는 작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다가 시간이 흐른 후 곡선과 자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며 채석장을 방문하고 연구하면서 작품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전시 오픈 전부터 판매가 많이 됐다고 들었어요. 컬렉터들과 교감하는 편인가요? 팬데믹을 거치고 작품 제작 비용이 많이 올라서 작품 가격도 덩달아 비싸졌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판매가 잘 되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는 저의 작품을 좋아하고 지켜봐온 팬들이 꽤 많이 방문했습니다. 작가로서 박원민이라는 이름의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의 작품을 소장하는 분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이미 페인팅에는 일가견이 있고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지닌 분들이 소장한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높은 안목으로 심혈을 기울여 꾸미기 때문에 페인팅뿐 아니라 아트 퍼니처에도 관심이 많아요. 갤러리에서 만난 어느 컬렉터는 알프스 별장에 제 작품을 가져다 놓았는데 산의 풍경과 어우러져 정말 멋지다는 코멘트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의 첫 번째 전시 작품인 ‘Haze’ 시리즈는 정말 큰 호응을 받았지요. 이번 신작에도 레진을 다시 활용했습니다. 당시엔 레진이 흔한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유난히 빛과 컬러에 관심이 많아서 우여곡절과 실패 끝에 물 같은 상태의 레진에 전용 염료를 섞어 시리즈를 완성했어요. 마치 공기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컬러의 미세한 변주를 포착하고 싶었고, 레진이 지닌 투명함과 빛의 투과는 색의 순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레진을 다시 활용한 것도 이 같은 이유입니다. 

 

 

2015년부터 발표한 <Haze> 시리즈는 레진을 사용해 만든 가구 시리즈로 반투명한 레진에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감을 넣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님은 디자이너로 아티스트로 혼동해서 소개되곤 합니다. 어떻게 불리길 원하나요?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했고 가구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으니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조각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요. 다만 완성된 작품이 테이블, 의자 등 기능이 있는 것뿐입니다. 기능을 아예 없앤 작품도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동시에 파리의 아파트에 놓을 가구를 직접 만들고 있다고요. 네, 조각 작품에 오래 집중해왔지만 요즘에는 양산이 가능한 가구도 구상하고 있어요. 나무를 활용해서요. 파리에서 결혼하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가구가 필요해졌는데 제가 사용할 가구를 직접 만들기로 했어요. 르몽드 기자가 샤를로트 페리앙도 그렇게 가구 디자인을 했다며 저의 가구를 곧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썼는데요.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하네요(웃음). 

 

 


 

지난해 런던 왕립예술대학의 건축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최근에 결혼과 2세 탄생까지 변화가 많았네요.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장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체감하나요? 디자인과 아트 두 분야의 뚜렷한 경계를 나누기보다 더 새롭고 넓은 분야, 즉 공간으로 시야를 확장하고 싶어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어요. 하지만 건축 또한 기존의 건축과는 다른 나만의 예술적 건축을 하고 싶은데 일단은 건축 공부가 정말 만만치 않아서 도전 정신을 불태우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뒤늦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에 학교를 졸업하고 또 유럽에서 활동해오면서 40대가 되었네요. 그런데 이 시간들이 정말 빨리 지나갔어요. 아마도 앞으로의 10년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빨리 지나갈 듯합니다. 제 작품이 에너지 소모가 많은 과정이지만 새로운 재료들을 실험하는 여정 끝에 무언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50대에는 건축에 더 천착해 좀 더  스케일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바쁘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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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강보라PHOTO : CARPENTERS WORKSHOP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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