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조화성 미술감독이 창조한 스크린 속 세계

이름만 들어도 장면이 떠오르는 국내 대표 흥행작들의 미술을 담당한 조화성 감독. 약 25년간 그가 필름 속에 축조한 세계에 대하여.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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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절한 금자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 <베테랑>, <택시운전사> 그리고 <완벽한 타인>등 감독도 장르도 모두 다른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바로 화성공작소를 이끄는 조화성 미술감독이 미장센을 책임진 영화라는 사실이다. 1997년 영화 <초록물고기>의 미술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할렐루야>의 미술을 담당하며 미술감독으로 데뷔하고, 약 25년간 국내 영화계의 굵직한 작품의 비주얼을 만들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쉼 없이 선보인 그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부일영화상, 청룡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미술상을, <역린>과 <밀정>으로는 대종상영화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미술상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에서 웅장한 전투신과 위용 넘치는 거북선 모습을 구현해 ‘전투신과 거북선의 미장센을 위해서라도 봐야 할 영화’라는 평을 들으며 세간에 이슈가 되었다. 

 

 

1 2층 높이로 재현해 민첩함을 강조한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속 신형구선. 2 한산 앞바다는 영화의 주 무대가 되었다. 드라마 <악마판사>의 법정은 라이브 쇼로 재판을 진행하는 민주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원형 법정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이미지 제공 화성공작소

 

 

<한산: 용의 출현>이 대중에게 좋은 평을 받았죠. 신형구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흥분되더라고요. 사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영화는 고증 때문에 영화 미술 부분에 있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라 놀랐어요. 사극을 진행할 때 고증은 당연히 지켜야 해요. 하지만 정확한 사실이 기록되지 않고 ‘카더라’가 여러 가지 있다면 미술감독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죠. 예를 들면 구선(거북선)은 사료를 보면 판옥선을 지붕으로 덮은 형태라는 건 이견이 없는 사실이지만 구조에 있어서는 2층이었다, 3층이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 속 신형구선을 만들 땐 2층 구조로 재현했어요. 마치 납작한 스포츠카처럼 민첩하고 공격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요. 컬러도 일부러 어둡게 연출했죠. 

 

이런 빈틈이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네요. 그럼 대종상영화제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미술상을 받았던, 같은 역사극 장르인 <역린>에서도 이런 포인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역린>은 특히 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았어요. 예를 들면 임금의 옷을 세탁하는 세답방은 묘사된 기록 자료가 정말 별로 없거든요. 게다가 기존의 다른 사극에서 잘 다루지 않은 공간이기도 했고요. 다만 제작비 문제로 제가 처음 생각했던 바를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어요. 에셔의 그림처럼 3~4층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면 지하에는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여기서 빨래를 하면 그 위층에서는 다듬이질을 하고 다음 층에서는 옷을 개는 식으로, 마치 공장처럼 분업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애초의 계획보다 규모가 작은 세답방이 구현됐지만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하긴 제작비 문제로 원하는 그림을 제대로 실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겠어요. 그대로 구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대부분이 처음 기획 단계에서 구상한 것에 비해 30~50% 정도로 축소돼 재현된다고 보면 돼요. 드라마 <악마판사>에서의 원형 법정에도 더 많은 사람을 채우고 싶었는데 초기 계획보단 규모가 축소된 케이스죠.

 

 

 


<악마판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고 싶은데요, 이 드라마의 경우 가상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잖아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어떻게 보면 원형 법정도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고요. 이처럼 배경이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경우엔 무엇을 신경 쓰나요? 드라마 속 법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정말 많은 레퍼런스를 서치했어요. 고대 그리스 법정의 형태까지 살펴봤는데 원형이더라고요. 법정 라이브 쇼를 진행해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악마판사>의 설정과 잘 어울리겠다 싶어 모티프를 얻었죠. 완전히 새로운 설정일지라도 결국 보는 이한테 공감을 얻으려면 모두가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야 하고 저는 그걸 역사에서 찾은 거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인 사막의 조감도.

기묘함이 감도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등장하는 아편굴의 스케치.

 


그렇다면 리메이크작 같은 경우는요? <완벽한 타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로도 꼽히던데. 심지어 장소조차 호스트의 집이 거의 전부잖아요. 같은 스토리를 원작과 다르게 표현하는 게 되려 힘들 것 같아요. 너무 유사해지는 걸 방지하려고 일단 원작을 먼저 봐요. 안 보면 어떤 부분은 오히려 닮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의 이야기가 7명의 인물이 모인 테이블을 중심으로 진행되니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 한정되죠. 대신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인물을 배치하고, 그 뒤로 보이는 배경에서 성향을 보여주려 했어요. 예를 들면 호스트인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 부부는 중정이 보이는 중문 앞에 자리하게 해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보여줬어요. 보수적인 남편과 순종적인 아내의 전형을 보여주는 태수(유해진)와 수현(염정아) 부부는 벽과 서재가 이어지는 꽉 막힌 공간 앞에 배치해 답답한 느낌을 의도했죠. 반대로 자유로운 영혼의 준모(이서진)와 그의 아내 세경(송하윤)의 자리는 뒤편으로 거실이 보이는 곳으로 설정해 밖과 연결되는 느낌을 주고요. 마지막으로 영배(윤경호)는 의외의 모습이 있는 캐릭터이기에 알쏭달쏭한 느낌이 들게 서재 앞으로 자리를 정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장르에 가까운 영화라서 작업이 즐거웠어요. 


좋아하는 장르에 가깝다는 점이 의외인데요? 사람이 실제로 자주 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잖아요. 그동안 누아르 등 장르물을 많이 작업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소한 삶을 담은 휴먼 스토리를 좋아해요. 이런 영화는 장르물에 비해 시각적으로 강렬한 요소가 적어요.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에서 캐릭터의 성격이나 스토리의 당위성을 만들어내야죠. 예를 들면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두는 것조차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올려놓는가 하면 평소 조심성이 강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타입이라면 늘 뒤집어서 올려놓겠죠. 이런 사소한 것들로 인물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요. 드라마 <여신강림>도 그런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작업이었죠. 

 

영화 <밀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은밀한 대화를 나눈 장소가 된 화물칸의 렌더링.

 


감독님의 대표작을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색감이 눈에 띄었어요. 초록색을 사용할 때는 올리브그린에 가까운 컬러, 빨간색을 보여줄 때도 버건디에 가까운 레드 등 채도 낮은 색을 자주 사용해 세련된 느낌을 주더라고요.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채도 낮은 색을 즐겨 쓰는 편이에요. 원색에 가까운 색은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곤 현실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 튀거든요. 물론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의 배경지는 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죠. 세트장에서 촬영할 경우 그 신의 모든 색은 통제할 수 있지만 다음 신에서 회색빛 도시의 풍경이 나온다면 이질감이 들 테니까요. 그래서 색을 사용하는 건 참 어려워요. 이런 지점에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죠. 사막 아니면 모두 세트에서 진행해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었으니까요. 색감을 비롯한 여러 미술적 요소를 통일성 있게 보여줄 수 있었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 도서관 신의 렌더링과 실제 스틸컷. 이미지 제공 넷플릭스

 


하지만 주로 작업하는 장르물은 피가 낭자한데, 강렬한 비주얼과 이런 채도 낮은 색이 잘 어우러지는 게 신기해요. 오히려 보완해주는 효과죠. 예를 들면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학생들의 교복이 초록색이에요. 피의 붉은색이 눈의 피로도를 높이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색을 사용한 거죠. 강렬한 색에 시선을 뺏겨 인물들의 행동을 관객이 좇지 못할까 봐 사용한 이유도 있고요. 


한 번에 여러 작품을 함께 진행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요즘엔 어떤 것들을 하나요? 우선 웹툰 기반의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참여 중이고요, 배우 이선균과 문채원이 출연하는 복수극인 SBS 드라마 <법쩐>도 맡고 있죠. 그리고 1편에 이어 <아스날 연대기 2>의 미술도 담당하고 있어요. 


드라마 작품이 많네요? 아무래도 코로나19가 영화계에 미친 여파가 크니까요. 지금 작업을 마치고도 개봉이 유예돼 공개되지 않은 영화가 꽤 많아요. 사실 처음엔 드라마 작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영화에 비해 스케줄이 촉박해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쓸 수 없고 대본이 처음부터 전부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자칫하면 개연성 부분에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OTT가 활성화되고 사전 제작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이런 부분은 많이 해소됐어요. 

 

 

영화 <역린>의 세답방은 사료가 많지 않아 상상력을 발휘해 연출할 수 있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미술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이 우선이죠. 하지만 미술감독이다 보니 정말 미장센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일을 시작하고 10년 차가 될 때쯤까지는 그랬어요. 모든 장면이 화려하고 예쁘길 바랐거든요. 스토리와 비교했을 때 현실성이 조금 떨어질지라도요. 그러나 지금까지 일하며 깨달은 것은 영화와 드라마 미술의 본질은 스토리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보조 역할이라는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영화의 스틸컷이 공개됐는데, 그 한 장면이 정말 아름다워요. 그러나 영화 전체를 보았을 때 등장인물의 성격상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입고, 가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 있다거나 다른 장면과 이질감이 든다면 그건 결코 좋은 미술이 아니죠. 


스토리 분석은 영화와 드라마 미술의 시작뿐만 아니라 중심과 마무리 단계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네요. 그만큼 중요한 일인데, 감독님은 어떤 방식으로 분석하나요? 일단 등장인물의 캐릭터부터 탐구해야죠. 예를 들면 주인공은 30세의 평범한 어떤 사람이고, 내용상 그가 보내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다룬다고 가정해보세요. 시나리오에는 그 한 달간의 주인공 모습만 있겠지만 저는 그가 30년간 어떻게 살아왔나를 고민하는 거죠. 그 뒤 이 사람과 어울리는 공간을 상상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그가 흰 벽의 집에 산다 가정했을 때, 주인공이 무던한 성격이라면 이전 세입자가 칠해놓은 페인트를 그냥 그대로 두겠지만 결벽증이 있다면 직접 페인트를 꼼꼼하게 칠했겠죠. 가구와 가전 역시 누군가는 그냥 풀옵션의 집에 입주해 갖춰진 것을 이용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소품까지 철저하게 취향에 따라 사겠죠. 그렇다면 그의 취향은 어떨까 또 생각해요. 심지어 이 사람이 사는 집은 월세일까, 전세일까, 아니면 자가일까도 고민해요. 그리고 주인공의 개인적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모든 배경은 시청자가 보는 순간 공간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연출하는 데에 주안점을 둬요. 카페라면 보편적으로 우리가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인테리어에 곳곳에 녹여내요. 관객이 ‘어 나 이 카페 가본 거 같은데?’ 이런 느낌이 들게. 그러나 가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그 카페는 프랜차이즈거나 트렌디한 분위기의 카페거나 혹은 작고 아담한 공간일 수도 있겠죠. 

 

 

사건이 진행되는 주요 공간 중 하나인 <역린>의 존현각은 정조의 이지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벽면에 책을 높이 쌓아 올렸다. 

 


영화와 드라마의 미술이 아무리 스토리에 기반한 작업이라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미술감독의 취향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을 텐데요. ‘조화성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을까요? 미술감독으로서 제 목표는 크레딧을 보기 전까지 제가 담당한 작품이란 걸 관객이 모르게 하는 거예요. 특정 스타일로 굳어지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관찰력 좋은 사람들은 ‘보는 순간 딱 알겠던데요?’ 해요(웃음).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제가 어중간한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무언가 밀집된 공간을 연출할 때는 아주 빽빽하게, 텅 빈 공간을 만들 땐 거대한 장소를 완전히 비워버리는 식으로요. 그리고 공간에서 하나의 포인트를 반드시 잡는 것. 예를 들면 예쁜 카페에 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있잖아요. 포토존처럼. 관객들의 머릿속에 장소의 특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포인트 공간은 꼭 만드는 편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술감독에게 필요한 능력은 단순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스토리 이해력, 관찰력, 역사적 지식 등 다방면으로 많네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질을 꼽으라면요?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 그리고 이를 해체해서 재구성하는 능력요. 이를 위해서 책과 같은 다양한 자료를 보는 것도 좋지만 저는 기존의 콘텐츠를 많이 보고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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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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