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불도장의 전설이 다시 돌아왔다!

호텔업계 최초 셰프 출신의 임원, 국내외 VIP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명장. ‘살아 있는 전설’ 후덕죽 셰프를 수식하는 단어는 50여 년 동안 끝없이 경신되고 있다. 올 초 수장을 맡은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호빈’에서 새로운 도전 중인 그를 만났다.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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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책임지며 다수의 휘하 조리사를 지휘하는 수장을 의미하는 ‘셰프’.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을 뜻하는 ‘명장(名匠)’. 50여 년 동안 중식에 매진하며 그 이름이 한국의 중식 역사가 된 후덕죽 셰프는 국내 중식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마스터 셰프이자 여전히 새로운 전설을 써 나가고 있는 명장이다. 1970년대 국내에 광둥요리를 들여온 그는 43년 동안 서울신라호텔에 근무하며 중식당 ‘팔선’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대표 차이니스 퀴진으로 성장시켰는데, 특히 그가 1987년 처음 소개한 ‘불도장’은 지금도 여전히 ‘후덕죽=불도장’이라는 공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각종 산해진미를 오랜 시간 끓인 불도장은 조리법 자체는 평범하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호화스럽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국빈 만찬 등 중요한 테이블에 오를 정도다. 후덕죽 셰프의 불도장은 소도가니, 오골계, 돼지고기 등 15가지 진귀한 산해진미를 6시간 이상 고아낸 보양식으로 중국 본토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후 2019년 르메르디앙 서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중식당 ‘허우’을 열었던 후덕죽 셰프는 지난해 말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로 자리를 옮겨 2022년 1월 ‘호빈’을 오픈했다.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호빈의 보양채보 코스 중 베이징덕.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중에서도 중식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처음 일을 시작한 게 1960년대예요. 아버지 친구분이 UN센터 호텔에서 그릴 레스토랑을 하셨는데 거기서 일을 배우면 어떠냐고 하셔서 가게 되었죠. 조그마한 호텔 레스토랑이라 양식을 위주로 하면서도 중식, 일식도 몇 가지 갖추고 있었어요. 거기서 처음 일을 배우면서 광범위하게 중식을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지금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반도호텔 중식당 ‘용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대만에서 셰프를 영입해 쓰촨요리 위주로 선보이는 최고의 식당이었죠. 두 번이나 찾아가서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세 번째 찾아가니 저의 근성을 잘 보았는지 면접도 보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간신히 허락받았어요. 그때가 스물한 살이었네요. 홍콩 무협영화 보면 무언가 배우고 싶어서 사부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달라 해도 단번에 되는 경우는 없잖아요. 심부름시키고, 잘 못하면 맞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사람이 되었구나 싶을 때 하나씩 가르쳐주죠. 당시 호텔 식당도 마찬가지였다고 보면 돼요. 석 달 동안은 정말 월급 하나도 안 받고 바닥 청소부터 온갖 심부름에 셰프 옷 빨래까지 도맡아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자신의 기술을 그냥 가르쳐주나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이 친구가 사람이 됐구나 하는 평가를 하고, 하나씩 알려주는 거죠. 제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후배나 제자에게도 그렇게 얘기해요. 일을 배우기에 앞서 인간 됨됨이가 가장 중요하다. 음식이란 재료를 만지고, 조리해서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음식을 손님에게 전할 수 없다. 석 달을 잘 버텼더니 4개월째 접어들면서 용돈 정도의 급여를 주더군요. 그렇게 점차 중국요리를 익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또 호텔이 매각되어 문을 닫게 되었어요. 

 

 

후덕죽 셰프의 시그너처 메뉴, 후불도장. 산해진미 15가지를 6시간 이상 조리한 대표 보양식이다. 

 

 

셰프로서 겨우 시작인데 당시 시대 상황이 그래서인지 스펙터클한 일의 연속이었네요. 반도호텔 용궁에서 처음 했던 요리는 무엇인가요? 용궁은 쓰촨요리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소스였어요. 매콤하고 짠 스파이스가 요리의 풍미를 더하는 것이 핵심이었죠. 제 요리로 처음 손님 테이블에 올린 건 탕수육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이제 어느 정도 요리를 안다는 생각이 들었을 즈음 그냥 하면 되겠다,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서두르다 보니 설탕을 빼먹어서 탕수육 특유의 달콤한 맛이 전혀 없는 엉뚱한 요리가 되었어요. 손님에게 혼나고 쫓겨나기 직전이었는데 셰프에게 빌어서 간신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죠. 지금까지도 그때 일이 교훈으로 남아 있어요. 직원들에게 음식은 서두르면 안 된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 대충대충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고요. 


한창 요리의 맛을 알게 되었을 때 직장을 잃었으니 좌절도 컸을 것 같아요. 이후로 어떻게 다시 극복하고 이어 나갔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저희 집이 부유했어요.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집이었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조금 어려워졌을 때 주방에서 일하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있어요. 요리의 맛과 재미를 알아갈 즈음 호텔이 매각되고 다시 고민이 생겼죠. 이제 막 일을 알기 시작했는데 직장을 잃어버린 거니까요. 막연하게 누님이 계신 일본에 가서 일본어 공부도 하고 조금씩 일도 하면서 지냈는데, 중식당 몇 곳을 가보니까 한국에서 전혀 못 보던 음식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 일본은 광둥요리를 하는 중식당이 많았죠. 누님의 도움으로 일본 중식당에 들어가 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요리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바닥 쓸고 청소하면서 기술도 하나씩 배웠어요. 그렇게 3년 정도 광둥요리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식재료부터 조리법까지 많이 습득했죠. 서울에 돌아온 때가 1977년이에요. 당시 서울신라호텔이 오픈을 준비하면서 일본 오쿠라 호텔과 협업했던 시기인데 제가 일본어도 할 줄 알고 중식 경험도 있다 보니 무사히 면접을 통과하고 채용되었어요. 

 

 

색감과 텍스처가 고급스러운 호빈의 인테리어. 

 

 

일본 오쿠라 호텔에서 연수하면서 요리 외에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연수 당시 보니 일본에서는 남자 조리사가 브레이크 타임에 조리복을 입은 채 은행도 가고 볼일도 보더라고요. 그때 한국에서는 남자가 조리복을 입고 외부에 나갔다가는 무슨 남자가 요리하냐며 욕먹기 일쑤였는데 말이죠. 어떤 직업이든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달까요? 6개월 후에 서울로 돌아와 호텔을 오픈하고 정신없이 지내면서도 화교 조리사협회를 창립하고 제가 첫 번째 협회장이 되었어요. 그게 1985년 일이에요. 성실성이나 노력, 자질 등을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죠. 이후 많은 후배들이 셰프라는 직업으로 TV에도 나오고 활약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평생 이 업을 해온 만큼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후배를 키우고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서울신라호텔 팔선부터 후덕죽 셰프의 요리는 광둥요리의 기본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광둥요리만의 특징, 그리고 후덕죽 셰프가 만든 요리의 특장점은 무엇인가요? 보통 중국요리 하면 튀김을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광둥요리는 신선한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해요. 전국 각지에서 공수한 식재료를 주로 스팀으로 쪄서 조리하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죠. 서울신라호텔 팔선에서 근무할 당시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되 특유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 몇 달 동안 연구했어요. 여러 가지 버섯과 멸치, 조갯살 등 건어물을 베이스로 해 화학조미료 없이도 맛있는 중국 음식을 완성할 수 있었죠. 당시 팔선에서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후에도 제 요리가 맛없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건 호빈에서도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규칙이고요. 

 

 

장어뼈로 소스를 만든 원즙장어.

 


서울신라호텔 팔선 이후 르메르디앙을 거쳐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호빈으로 왔습니다. 다른 호텔에 가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끝까지 후배들한테 박수 받으며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르메르디앙이 오픈하면서 중식당을 열겠다며 저를 여러 번 찾아왔어요. 오랜 고민 끝에 강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시작했는데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코로나19 때문에 호텔이 문을 닫고 저 역시 도전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마무리하게 되었지요. 이참에 좀 쉬어야겠다고 했는데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연락이 온 거죠. 호텔을 리뉴얼하면서 새로운 중식당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여러 번 설득해 저도 마음을 다시 잡고 올 초 호빈을 열었습니다. ‘귀한 손님’을 뜻하는 중식당은 제 마음을 그대로 담은 곳이에요. 허우가 영업하지 않아 아쉬워했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이 놓이는 부분이고요. 이곳에 온 지 6개월 정도 지났으니 이제는 저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재료부터 레시피, 맛까지 보다 정성스럽게 드릴 수 있게 되었지요. 나이도 있고, 더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호빈이라는 이름 그대로 손님을 위해 최고의 요리를 준비하고 즐길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지금도 직접 메뉴를 개발하고 새로운 재료와 조리법을 찾으시나요? 물론이죠. 저는 서울신라호텔 오픈 때부터 43년 동안 근무하면서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목표 아래 일해왔어요. 이건희 회장은 해외 출장 중에 특별한 음식을 드셨다 하면 우리에게 출장 가서 직접 경험해보게 했어요. 유럽,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 어디든 가서 최고를 경험한 것이 메뉴 개발이나 프레젠테이션 등등 저에게도 큰 발전의 계기가 되었고요. 지금도 요리를 하는 제 일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크죠. 

 

 

샤프란 소스와 제비집, 캐비아 등 최고의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바닷가재찜. 호빈에서는 중국요리와 매치하기 좋은 다양한 중국 술도 구비하고 있다. 

 

호빈에서 셰프님의 대표 요리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호빈은 오픈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그동안 제 색깔을 온전히 다 내진 못했어요. 진귀한 산해진미를 6시간 이상 고아 만드는 보양식 ‘후불도장’은 이곳에서도 선보이고 있고, 이번 여름 보양식 코스인 ‘보양채보’ 중 장어뼈로 소스를 만든 ‘원즙장어’나 샤프란 소스와 제비집, 캐비아 등 최고의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바닷가재찜은 물론, 앞으로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새로운 요리를 준비하고 있어요. 중국 광저우에서 베이징덕 전문 셰프가 7월 중순에 들어와요. 중국 10대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셰프라 그의 합류로 바비큐가 한결 기대됩니다. 또 제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대량 생산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최고의 식재료로 한정된 양만 만들어야 품질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베이징덕 역시 하루에 10마리 정도만 판매할 계획입니다. 그래야 양질의 오리를 공급받아 오리 껍질 특유의 바삭함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리하지 말고, 우리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 요리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손님에게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는 길입니다.

 

전통적인 레시피도 따르지만 시대에 따른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사람들이 중국요리 하면 기름지고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깔끔하고, 소화도 잘되는 데다 맛도 빼어난 중국요리를 제안합니다. SNS를 하지 않고 TV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편도 아닌데 저를 찾아 이곳에 오는 분들도 많다 보니 더 신중하게 메뉴를 선별하고 있어요. 한식이나 양식 등 다른 분야의 요리도 두루 접하면서 항상 머릿속에 새로운 방법, 새로운 조화를 담아두죠, 아내와 외출해도 집사람이 다른 층에 쇼핑하러 가면 전 식품 매장으로 따로 갑니다. 어떤 재료가 나왔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현장에서 보면서 익혀요. 

 

 

 


워낙 동안이셔서 70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어렸을 때 잠시 피웠던 담배도 서울신라호텔에 입사하면서 끊었어요. 식재료를 다루는 직업인데 담배를 피우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하루 1시간 이상 운동하고, 술도 가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외에는 즐기지 않습니다. 전 조리사라는 직업이 고객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저렴한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괜히 기분이 나쁘고 본전 생각이 나잖아요. 제가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이들을 보면 저까지 즐거워지거든요. 의사가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고 주사를 놓고 수술하면서 환자를 회복하게 만드는 역할이라면, 조리사 역시 사람들을 건강하고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욕심이나 목표를 세우고 있지는 않아요. 50년 넘게 요리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이루었어요. 이제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아마 호빈이 저의 마지막 레스토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후덕죽이라는 사람이 만든 맛있는 요리를 만날 수 있는 곳, 호텔에 많은 이익이 나지는 않더라도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이라는 브랜드에 기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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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영채PHOTO : 박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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