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거장이 보내온 선물, 예술 순례지

이제 서랍 속에 묵혀둔 여권을 꺼내 들 시간이다. 긴긴 인내의 시간을 단번에 보상해줄 최고의 예술 순례지가 지금 막 문을 열었다. 예술과 문화가 흐르는 프랑스 아를과 일본 나오시마가 설렘의 종착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곳의 실체는?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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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이우환이 프랑스 아를에 자신의 세 번째 미술관을 열었다. 그에게 아를은 어떤 의미였을까. © 이우환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김용관,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Installation View of Lee Ufan Arles, 2022. © ADAGP Lee Ufa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Courtesy of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1 Installation View of Lee Ufan Arles, 2022, Showing Chemin Vers Arles (Road to Arles). © ADAGP Lee Ufa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Courtesy of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2, 4 Installation View of Lee Ufan Arles, 2022. © ADAGP Lee Ufa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Courtesy of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3 Installation View of Lee Ufan Arles, 2022, Showing Ciel Sous Terre (Sky under earth). © ADAGP Lee Ufan. Photo: Archives Kamel Mennour, Courtesy of the Artist and Kamel Mennour, Paris

 

 

이우환의 또 다른 울림
Lee Ufan Arles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 고대 로마 유적과 현대건축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도시는 일찌감치 예술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빈센트 반고흐 역시 이곳에 머물며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 ‘카페 테라스’ 등을 탄생시켰다. 아를은 새로운 문화공간과 함께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건축 거장 프랭크 게리의 설계와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컬렉터 마야 호프만의 강력한 의지로 문을 연 뮤지엄 루마 아를(LUMA Arles)이 이슈를 낳은 데 이어, 최근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이 자신의 이름을 건 ‘이우환 아를’을 오픈했다. 사실 그의 미술관은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나오시마에 문을 연 ‘이우환미술관’을 시작으로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에 설립된 ‘이우환공간’에 이은 세 번째 미술관. 그는 왜 이곳을 택했을까. 한국인 최초 베르사유 궁전 전시, 퐁피두 메츠 센터 회고전 등 그에게 아를은 더없이 뜻깊은 곳이었고, 로마 문화의 보물을 간직한 이 찬란한 도시에 그 역시 매혹되었다. 
미술관이 들어선 곳은 16~18세기에 지은 개인 저택(Hо^tel de Vernon, 베르농 호텔)으로,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참여했다. 3층 규모, 1500㎡. 미술관을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공간으로 이어진다. 안락하고 고즈넉한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방과 방이 연결되는 구조로 거대하고 웅장한 미술관과는 거리가 멀다. 명상을 부르는 전시 공간, 회의나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 가능한 다목적 공간, 부티크 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각, 그림 등 이우환을 대표하는 작품 30여 점은 공간에 깊이를 더한다. 특히 조각은 1층에 배치되어 있는데, 1972년부터 선보여온 설치 작품 ‘관계항(Relatum)’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돌, 철판 등 자연 및 산업 재료를 이용한 설치 작업을 통해 물질, 시간, 공간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해온 이우환. 인간이 만든 철판과 자연이 빚은 돌은 그의 중재로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며, 어느 순간 우리가 알던 장소, 일상은 잠시 잊히고 새로운 장소, 비일상의 우주로 치환된다. 최소한의 점과 선, 여백을 통해 특유의 철학적 사색을 이끌어내는 이우환의 그림 역시 관람객을 맞는다. 자신의 작품 앞에서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처럼 작품과 온전히 마주해보기를. 
건축가이기에 앞서 친구인 안도 다다오는 이우환을 위해 특별한 공간 하나를 선사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한 높이 2m가 넘는 매끈한 나선형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것. 달팽이 형태의 미로 구조인 콘크리트 실린더 내부에는 공기를 통해 천천히 이동하는 흰 구름이 바닥에 투영된다. 친구 이우환에게 아를의 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던 안도의 마음이 담긴 조형물로 ‘Ando, ​​Ciel sous terre(Sky under earth)’라 이름 붙여졌다.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동시에 다양한 예술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후원하는 역동적인 공간을 꿈꾼다는 이우환. 그곳엔 요란스럽지 않은 담대하고 묵직한 울림이 있다.
www.leeufan-arles.org

 

 

 

슬릿 구조의 기다란 틈을 설치해,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인 밸리 갤러리. 쿠사마 야요이의 ‘나르시스 가든’이 갤러리의 안과 밖을 잇는다. Yayoi Kusama, Narcissus Garden, 1966/2022, Stainless Steel Spheres, Copyright of Yayoi Kusama Photo: Masatomo MORIYAMA 

 

폐기물 찌꺼기인 슬래그(Slag)를 이용해 만든 오자와 츠요시의 ‘슬래그 불상 88’. Tsuyoshi Ozawa’s ‘Slag Buddha 88’ Features 88 Buddha Statuettes Made from industrial Waste.  2006/2022

 

1, 3 2006년부터 오롯이 이곳 연못을 지켜온 쿠사마 야요이의 ‘나르시스 가든’이 전시장에 침투했다. Yayoi Kusama, Narcissus Garden, 1966/2022, Stainless Steel Spheres, Copyright of Yayoi Kusama Photo: Masatomo MORIYAMA 2 외딴 계곡에 자리한 밸리 갤러리는 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구조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탄생했다. Photo: Masatomo MORIYAMA

 

 

안도 다다오의 소우주                     
Valley Gallery 

1992년 ‘재생’이라는 뜻깊은 프로젝트와 함께 세계인이 사랑하는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한 나오시마. 이곳에 다시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생겼다. 지중미술관, 베네세 하우스 등 섬 전체를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승화시킨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Benesse Art Site Naoshima) 프로젝트의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 흥미로운 움직임에 동참한 것은 프로젝트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그가 설계한 또 하나의 작품이 나오시마 외딴 골짜기에 들어섰다. Valley, ‘골짜기’, ‘계곡’이라는 의미처럼 주변 지형을 그대로 품어낸 ‘밸리 갤러리(Valley Gallery)’다. 이것은 작년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나오시마의 대표작 쿠사마 야요이의 ‘옐로 펌킨(Yellow Pumpkin)’을 포함한 세 섬을 복원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부다. 섬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아홉 번째 건물이자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의 일부인 밸리 갤러리는 기존의 판에 박힌 예술 경험과는 분명 다르다. 
갤러리의 위치 역시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연결된 나오시마에서 가장 도전적이고 외진 장소가 아닐까 싶다. 그는 부지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존 지형과 나무를 보존하면서 독립적인 건축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정확히 밸리 갤러리에 녹아들었다. 총면적 96㎡. 안도 다다오라는 거장을 앞세운 갤러리치고는 아담한 규모다. 그 때문일까. 기하학적인 낯선 구조물은 오히려 자연 속에 더욱 겸손한 모습이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가 아닌가. 작지만 강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밸리 갤러리는 작지만 힘 있는 오라를 뿜어낸다. 안도 특유의 경건함과 고요함, 긴장감 역시 여전하다. 자연 속 계곡과 어울릴까 싶은 독특하고 기하학적인 구조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안도 다다오의 시그너처라 할 콘크리트와 들쭉날쭉 각진 철제 지붕을 가진 사다리꼴 모양의 독특한 골격. 멀리서 보면 종이접기를 떠올리게 하는 밸리 갤러리는 계곡을 유영하는 작은 새를 연상시킨다. 전시장 내부 또한 여느 갤러리와는 차별화된다. 콘크리트 구조에 기다란 구멍의 슬릿(slit)을 적용, 빛과 공기가 공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두 개의 모서리 개구부 역시 30도 각도로 열린 구조로, 외부의 하늘을 끌어들이며 비, 바람, 햇빛, 눈과 같은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연조명만 사용해 온종일 콘크리트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해시계처럼 날카로운 실루엣을 형성한다. 자연의 빛이 곧 완벽한 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일본의 신사처럼 규모가 작더라도 사람들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존재하는 특정한 공간성을 지닌 건축물을 목표로 했다.” 밸리 갤러리를 통해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다는 안도 다다오. 갤러리로 향하는 길은 그 사색의 서막이다. 계곡 한가운데에 놓인 짙은 초록은 방문객에게 절대적인 고독을 안겨주며, 의도적으로 길게 이어진 오르막길은 주변 자연, 특히 진달래와 벚나무가 만개하는 봄철에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갤러리가 예술을 위한 특별한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접근하는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안도의 말이 십분 이해되는 순간이다. 입구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마치 거울처럼 작은 호수에 투영된 쿠사마 야요이의 ‘나르시스 가든’을 만나게 된다. 그 인근에는 산업 폐기물 슬래그(Slag)를 이용한 오자와 츠요시의 ‘슬래그 불상 88’이 묵직하고 경건한 인사를 건넨다. 특히 2006년부터 연못 주변을 장식해온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깊은 숲속 산세와 어우러져 낯선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과 예술이 선사하는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즐겨보길 바란다. 
거대함을 뽐내는 대신 주변과 동행하는 소박한 공간, 자연의 빛이 선사하는 예술을 품은 공간, 불필요한 것은 모두 지워진 겸허한 공간. 안도 다다오는 자신만의 소우주를 고즈넉한 계곡 안에 명민하게 안착시켰다. 자연,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밸리 갤러리는 이곳 섬으로의 여행을 더욱 심오하게 해준다. 외딴 계곡 속에 정착한 안도의 소우주. 이 낯설고도 특별한 예술 순례지를 그 어떤 곳과 비교할 수 있을까.
benesse-artsit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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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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