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머무르게 하는 전시공간 디자이너 김용주

전시는 작품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배치하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관람객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인식되기에. 관람객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김용주 전시공간 디자이너의 삶과 커리어, 그리고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에 대하여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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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찾은 리움미술관의 현대미술 상설전에서 아니쉬 카푸어의 ‘이중 현기증’과 이승조 작가의 ‘핵 86-74’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렸다. 두 작품이 만나며 생긴 효과는 놀라웠다. 그동안 냉철하다고 느꼈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이승조 작가의 작품을 거울처럼 비추며 새로운 옷을 걸친 듯 온기가 생겼다. ‘핵 86-74’로 시선을 옮기니 ‘이중 현기증’의 형태에 따라 휘어 보이던 작품의 잔상이 겹치며 화폭 속 원통이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생겼다. “작품도 사람과 같아요. 대화하는 타인과의 관계성에 따라 말투와 행동이 변하듯, 전시공간에 어떤 작품이 가까이 배치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죠.”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용주 전시공간 디자이너가 말했다.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초의 전시공간 디자이너로 합류한 김용주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첫 직장은 종교 건축물 프로젝트를 주로 맡는 설계사무소였지만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기에 한계를 느꼈다. 조금 더 분야를 확장하고 싶었을 즈음 공간 디자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건축이 공간 자체를 짓는 것이라면, 공간 디자인은 어떤 장소 안에서 벌어질 경험과 이야기를 만든다는 점이 흥미로워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시공간 디자이너로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이후 미국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비자 문제로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디자이너를 모집 중이란 소식을 들었어요.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급히 지원했는데 다행히 합격했죠.”


당시만 해도 ‘현대미술은 작품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전시공간 구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김용주 전시공간 디자이너는 결과물로 현대미술 전시에서 공간 디자인의 중요성을 보여줬다.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그가 담당한 전시 <한국의 단색화>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면서다. “<한국의 단색화>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전시였어요. 그룹전이었는데 마지막 작가의 참여 여부가 늦게 결정됐죠. 새로운 작품을 추가하려면 전시 입구 쪽에 일부, 끝나는 지점에 일부를 나눠 배치해야 했어요. 그래서 작품을 나눠 걸되, 벽을 뚫고 창을 내서 함께 바라볼 수 있게 했지요. 물리적 거리는 떨어져 있지만 시선, 즉 인식적인 면에서는 한 공간에 전시된 것처럼 느껴지게요.” 이후로도 전시 <올해의 작가상 2012>가 if 디자인 어워드, <최만린> 전이 굿 디자인 어워드 재팬,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전이 독일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등 연달아 쾌거를 이뤘다. 2018년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2021년 제3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공간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박물관의 전시품은 유물이기에 사용자가 누구인지 주목해요. 그러나 미술관에서 전시공간을 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출품작은 물론 작가에 대한 연구에 공을 들이죠. 특히 개인전을 준비할 때는 작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작고한 분이라면 ‘내가 작가였다면 이 작품을 어디에, 어떻게 두었을까’라고 끊임없이 상상해요.” 그룹전은 전시의 맥락을 파악하고 동선에 따라 스토리텔링한다는 생각으로 어떤 작품을 초반에 배치하고, 어떤 작품을 클라이맥스에 보여줄지 및 작품 간의 관계성을 고려해 어떤 작품을 서로 인접하게 둘 건지 등을 정한다.   


팬데믹을 겪으며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물리적 경험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공간에서 경험을 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경험의 퀄리티’가 더 중요해진 현재, 밀도 높은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공간의 기준은 무엇일까? “잘 디자인된 전시공간은 관객이 작품 앞에 머물면서 작품에 몰입해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만들어요.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전시장에 놓인 모든 것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죠.” 답변을 듣고 얼마 전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에 빠져든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최근 담당한 전시였다.

 

 

 

HER SPECIAL THINGS

 

 

1 평소 영화와 연극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등 고전 문학을 차용해 현시대에 유효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양정욱 감독의 연극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 <코리올라누스>는 지난해 서울에서 인상 깊게 관람했다. 서울 공연 이후 지방에서 동일한 공연이 진행됐는데, 오로지 이 작품을 다시 보겠다는 목표 하나로 진주로 향하기도 했다. 
사진 제공 LG아트센터 

2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의 공간 디자인을 준비하던 시기 존경하는 김종성 건축가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개인 소장 책을 해외에서 보내주었다. 건축가이자 큐레이터, 전시 디자이너인 A. 제임스 스피어의 이야기를 담은 <A. James Speyer>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조명한 <Mies Van Der Rohe. Continuing the Chicago School of Architecture> 제본 버전.

 

 

 

3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에 나오는 우주의 언어 개념을 통해 메타버스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국제 현대미술전 ‘카셀 도쿠멘타’에 참여하는데, 이곳에서 선보일 메타버스 파빌리온 디자인에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다. 
수입/배급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4 베니스에서 들른 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평소 좋아한 건축가인 소우 후지모토의 드로잉 노트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Sou Fujimoto: Sketchbook>. 

5 “작품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한 작품. 이전에도 윤형근 작가의 작품을 봤지만, 2018년 전시 <윤형근>을 준비하며 ‘다색(1989)’을 작업실에서 실견하는 순간 굴곡 있는 그의 생애를 가장 생생하게 느꼈다.  
윤형근, ‘다색’, 1989, 마포에 유채, 205×333.5cm, MMCA 소장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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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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