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이규한

환경을 위한 업사이클링 디자인부터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이미지의 재활용까지. 자신만의 시선으로 버려진 것들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가구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2022.07.05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작업실에서 만난 이규한 작가. 그가 앉아 있는 오렌지색 소파부터 뒤편의 검정 조명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규한 작가를 만나고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구나.’ 그는 버려진 나이키 신발 박스를 이용해 가구를 만든다. 다만 신발 박스를 재료로 삼은 이유는, 버려진 박스가 야기할 환경 문제 때문이 아니다. 나이키 신발 박스가 갖고 있는 심미적 측면에 주목해서다. “누군가에는 그저 쓰레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박스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그저 ‘신발 패키지’란 용도로만 짧게 소비하고 버리는 것이 아까웠죠.” 이미지 과잉의 시대, 우리는 디자인도 낭비한다. 이규한 작가가 재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가볍게 소비하고 버린, 그러나 다시 사용할 가치가 충분한 이미지와 디자인이다. 

 

 

 

 

 1 헤리트 리트펠트의 작품을 오마주한 레드 블루 체어. 기존의 작업보다 훨씬 공들여 제작했다. 2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오마주한 선반. 

 

 

언제부터 나이키 신발 박스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나요? 2018년쯤인 것 같아요. 당시 대학의 리빙 디자인과에 재학 중이었고, 가구 수업 중에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골판지나 종이를 이용해 미니어처로 만드는 과정이 있었어요. 주로 골판지를 이용하는데, 때마침 골판지를 다 소진한 거예요. 무엇으로 대신할지 생각하다가 방 안에 쌓여 있는 신발 박스가 눈에 띄었죠. 한창 신발을 수집할 때였거든요. 이후 이걸 실물 사이즈로 만들어도 재밌겠다 싶어서 작업을 시작했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어요. 


종이는 가구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소재이지 않나요? 그래서 작업의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어요. 직접 몸으로 부딪쳐 깨달은 게 많죠. 특히 종이의 물성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들였어요. 때문에 자세히 보면 초기작과 최근작의 디테일에 차이가 느껴져요. 예를 들면 요즘은 박스의 골을 죽이는 작업을 한 후 작품으로 가공하지만 초창기 작품은 손으로 꾹 누르면 표면이 살짝 들어갈 만큼 박스의 골이 다 살아 있어요. 내구성 문제는 합판이나 철판으로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박스를 덧대는 방식으로 생각보다 쉽게 해결했어요. 


종이를 가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박스 본래의 형태와 그래픽 디자인을 살려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기존의 디자인을 살리는 것은 아무래도 디자인적으로 제한이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처음부터 나이키 신발 박스 자체의 디자인적 가치를 제 작품에 활용하기 위해 시작했어요. 그래서 곡선을 줘서 형태를 변형하거나, 로고가 훼손되게 재단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접근했죠. 박스 자체의 패턴이나 그래픽 요소를 어떻게 작품에 적용할지, 정해진 비율을 갖춘 박스를 어떻게 조합해 실제 의자 사이즈로 만들 것인지 등에 초점을 맞췄죠. 디테일한 부분에도 이런 노력을 더했는데, 예를 들면 암체어의 팔걸이 부분은 박스 뚜껑 옆면의 너비와 동일해요. 선반도 한 면의 두께는 실제 박스 한 면의 두께와 동일하고요.  

 

신발 모델별로 박스의 컬러, 사이즈, 그래픽 디자인이 다르죠. 버려진 박스를 재활용하다 보니 원하는 박스를 필요한 만큼 구하기 힘들 텐데 작품에 활용할 박스 종류는 어떤 기준으로 정하나요? 박스 수량에 따라 어떤 작품에 활용할지 정해요. 예를 들면 가장 기본형인 오렌지색 박스는 큰 스케일의 작업에 사용하거나 수량이 적은 디자인의 박스는 스툴이나 1인용 의자 등에 활용하죠. 서로 다른 컬러의 박스를 섞을 때는 전개도 사이즈가 비슷한 것끼리 묶는다거나 등 몇 가지 저만의 기준을 갖고 있어요. 

 

 

 

 

3 나이키 SB 박스로 제작한 민트색 1인용 체어. 4 다양한 디자인의 박스를 섞어 만든 벤치. 5 오렌지색 박스로 제작한 데이베드. 이규한 작가는 나이키 신발 박스를 이용해 의자뿐만 아니라 테이블, 선반, 조명 등 다양한 종류의 가구를 제작한다. 

 

 

헤리트 리트펠트(Gerrit Rietveld)의 작품을 오마주한 레드 블루 체어가 인상 깊었어요. 정해진 규격과 디자인이 있어 구현하기까지 공이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직선적인 디자인의 헤리트 리트펠트의 작품이 제가 지향하는 방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진행한 작업이었어요. 박스를 접는 방식부터 재단 비율 등 모든 걸 기존의 작업과는 다르게 해야 했죠. 일반적인 의자 작업이 1~2주 걸리는 데 비해 저 작품은 2~3주 소요됐어요. 


헤리트 리트펠트 외에 또 영감을 준 아티스트나 작품이 있을까요?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도널드 저드(Donald Judd)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이 팝적인 요소가 강하다 보니까 형태는 최대한 직관적이고 미니멀하게 구현하려 하거든요. 선반 작업은 도널드 저드의 작품을 오마주한 것이기도 해요.


나이키 신발 박스를 이용한 작품 외에 새롭게 구상 중인 작업도 있을까요? 현재 맥도날드의 포장지를 이용한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팬데믹 시기 작업실에서 배달 음식을 먹을 일이 많았는데 자주 시켜 먹은 메뉴 중 하나가 맥도날드 햄버거예요. 배달 시 크래프트지 쇼핑백에 메뉴가 담겨 오는데, 이를 이용한 작품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사무 노구치의 램프에서 영감을 받아 한지 공예의 기법적인 부분을 차용한 조명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버려진 소재를 활용했네요. 제 작업의 재료는 늘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한 번 사용하고 버리기엔 아쉬운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버려진 소재를 활용하게 되었네요(웃음).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인물), 이규한(작품)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