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음악과 펼친 60여 년간의 로망스

1999년 첫 내한 공연 이래 매번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한국 청중이 가장 아끼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그는 올해도 한국에서의 공연을 이어간다. 6월 5일 열릴 공연 <Meditation>을 앞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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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wook Lee 이미지 제공 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유키 구라모토의 콘서트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의 팸플릿 인사말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희로애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중 (제 공연은) 희애락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분이 고양되는 것은 있지만 노여움(怒)은 없을 예정입니다.’ 홍진호 첼리스트를 주축으로 진행한 1부가 끝나고 2부가 되자 유키 구라모토가 씩씩하게 걸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올해 72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노장은 소년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서툰 한국어로 관객들에게 곡에 대해 설명하고 때론 농담을 건넸다. 연주를 시작하면 사뭇 진지해졌지만 입가에는 내내 엷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연주에 몰입했을 때 보이는, 미간을 잔뜩 찡그린다거나 긴장한 듯 입을 앙다무는 모습은 없었다. 인사말의 문구처럼 노여움이나 불편한 감정은 어디에도 없었고 공연장의 공기마저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처럼 평온했다. 
잔잔한 음률이 마음속에 동심원을 그리는 ‘Lake Louise’, 영화 <달콤한 인생>에도 수록된 ‘Romance’ 등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대표곡을 선보인 일본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유키 구라모토. 첫 내한 공연 이래 매해 한국을 찾는 그는 6월 5일에도 롯데콘서트홀에서 콘서트 <Meditation>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피아노 솔로와 더불어 콰르텟(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과 합주를 펼친다. 서울 공연 이전에는 5월 15일 인천 정서진 스프링 클래식, 20일 공주문예회관, 21일 다산아트홀, 27일 거창문화센터, 28일 여주 세종국악당을 순회한다. 

 

1 한국 진출 10주년을 기념한 앨범. 2 국내 첫 앨범 <Reminiscence>의 20주년을 맞아 발매한 앨범으로 한국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Cordiality’이 수록됐다. 3 지금의 유키 구라모토를 있게 한 ‘Lake Louise’의 싱글 앨범. 4 새로운 편곡의 ‘Nostalgia’의 디지털 싱글. 

 

 

공대 출신의 음악가

유키 구라모토가 피아노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르간만 보았던 소년은 ‘피아노는 건반이 이렇게나 많구나’ 생각했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며 집도 피아노도 모두 잃었다. 연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어린 유키 구라모토는 학교에 있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등교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학교에 머물렀다. 추운 겨울엔 두꺼운 장갑을 끼고서라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공대에 진학해 응용물리학을 전공하며 석사까지 취득했지만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내내 여러 호텔 라운지, 레스토랑 등에서 파트 타임 연주자로 일했다. 연습 또한 여전히 열성적으로 했다. 여름철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학교에서 수영복만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피아노를 쳤고, 맹장 수술 후엔 배에 붕대를 감은 채 건반을 두들겼다. 

 

 

 

지난 4월 진행한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에서 연주하고 있는 유키 구라모토. 이미지 제공 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트

 

 

요즘은 피아노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세요? 어린 시절과는 달리 잘 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즐기기보다는 피아노를 좀 더 엄격하게 대하게 되었달까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지난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한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을 관람했어요. 사실 연주에 몰입하면 표정을 관리하기 힘든데, 내내 평안해 보여서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한가 싶었거든요. 공연할 때는 콘서트장 분위기나 음악의 멜로디에 모든 걸 맡기기 때문에 그런 표정이 나올 수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제 곡은 잔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대부분이니깐요. 다만 연습할 때는 다르죠. 마치 스포츠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기 전에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듯, 손목이나 손가락의 쓰임이나 테크닉 부분에 집중하며 연주하거든요.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피아노 연습 일화를 들었어요. 맹장 수술 후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연습을 쉬지 않았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무언가요? 해야만 했어요. 대학교에 재학하며 호텔 라운지 등에서 파트 타임 연주가로 일했는데, 파트 타임이다 보니 한 번의 실수로도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었어요. 다행히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대학원 졸업할 무렵 생활의 90%가 연주일 만큼 많은 일을 맡게 되었어요.


매일매일이 서바이벌인 상황이네요. 여러 곳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기에, 내일 당장 모든 일이 사라질 수 있다고 걱정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미래가 없을 수 있겠다는 우려는 늘 있었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죠. 피아노를 시작하고 계속하게 된 과정은 비교적 잘 알려졌지만 작곡을 어떻게 배웠는지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젊은 음악가가 처음부터 자신이 작곡한 곡을 남들에게 선보이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저 역시 편곡부터 시작했어요. 성인이 된 후 파트 타임 연주자로 일할 때 주로 대중 음악을 연주했는데, 대중 음악은 편곡이 필수거든요. 당시 제대로 된 대중 음악 악보를 팔지 않았고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곡을 조금 변형해서 쳐야 하는 상황도 많았어요. 반주로 공연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도 편곡이 필요했고요. 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한 것이 시작인 셈이죠.  

 

1, 2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제안으로 촬영한 김제 연주 영상.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미지 제공 MBC 라이프스타일 유튜브 <오느른>  3, 4 유키 구라모토는 국내에 악보집도 다수 발간했다. 섬세한 설명을 곁들여 마치 그가 옆에서 조곤조곤 가르쳐주는 듯하다. 

 

 

음악을 향해 조금씩, 천천히

유키 구라모토가 정식으로 음반을 발매한 건 1986년 피아노 솔로 앨범 <Lake Misty Blue>를 발표하면서다. 35세, 다른 음악가에 비해 늦은 데뷔였지만 지금도 널리 사랑받는 수록곡 ‘Lake Louise’가 호평받으며 전업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국내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진 1998년이 되어서야 앨범이 정식으로 수입되었다. 서정적인 멜로디의 곡들은 한국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99년 봄, 유키 구라모토는 한국에서 처음 공연을 갖는다. 스스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공연’이라고 말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은 첫 내한 공연은 물론 현재까지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그는 이러한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매해 한국을 찾는다. 때론 웅장한 오케스트라 구성으로, 혹은 6월 예정인 공연 <Meditation>과 같은 피아노 솔로와 콰르텟과의 협연 등으로 콘서트를 꾸리고 새로운 편곡 버전을 선보이며 오는 이를 맞이한다. 물론 연주를 위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으며 계속해서 기량이 늘고 있다고 답하는 유키 구라모토. 그러나 아직 원하는 만큼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며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비친다. 음악과 사랑에 빠진 지 60여 년이 지난 이제는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더 클 법도 한데, 여전히 그는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매해, 그것도 한 해에 여러 차례 한국에서 공연을 갖고 있어요. 각 공연별로 조금씩 차이를 두는 거로 알고 있는데, <Meditation>에서는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할까요? 피아노 솔로 무대와 더불어 피아노와 콰르텟 협연은 작년에도 한 번 했어요. 그러나 프로그램에 변화를 주었죠. 우선 피아노 솔로의 새로운 곡이 추가되었고 콰르텟 협주곡에서도 달라진 편곡 연주가 있어요. 지금까지 선보이지 않았던 곡도 몇 개 연주할 거고요. 


신곡도 선보일 예정이라고요. 하하. 사실 지금까지 녹음하거나 연주해 선보인 곡만 360여 곡에 이르러요. 하나의 신곡이 더 추가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해서 ‘이게 신곡입니다’ 하고 소개하는 건 조금 쑥스럽네요. 그래도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맞아요.


어떤 곡일까요? 코로나19로 많이들 지친 상태잖아요. 모두에게 위안이 될 만한 곡을 선보이려 해요.

 

 

 

©Sangwook Lee 이미지 제공 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트

 

 

국경 간 이동이 쉽지 않았잖아요.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제안을 받고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나요. 여러 공연이 줄줄이 취소돼 아쉬움이 크던 시기, <오느른> 제작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준비한 곡을 대중에게 들려줄 수 있겠다 싶어 기뻤죠. 

 

기존의 공연과는 굉장히 다른 형식의 연주였는데 어떠셨나요? 정말 재미있는 하루였어요. 많은 스태프가 도움을 준 것도 참 감사하고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어요.  ‘Dawn’과 ‘Meditation’은 일출 시각에 맞춰 촬영했는데, 해는 하루에 한 번만 뜨잖아요. 실수해도 다시 찍을 수 없는 셈이죠. ‘절대 실수해서는 안 돼’라며 굉장히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디지털 매체의 순기능이네요. 그렇죠. 하지만 음악가 입장에서 매체의 발전이 잔혹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떤 부분에서요? 지난 공연에서의 실수조차 두고두고 남으니깐요. 서툴렀던 과거의 모습이 업로드되기도 하고요. 가끔 유튜브를 둘러보면 1996년도 연주 영상도 나오더라고요. 


데뷔한 지 어느덧 36주년을 맞이했네요.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초창기에 세운 목표들이 이루어졌나요? 제가 원했던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피아노 중심의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왔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앞으로 더 노력할 예정이지만요.


대표곡 중 하나인 ‘Romance’의 제목을 빌려 마지막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은 음악과의 로망스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사랑 이야기였나요? 조금씩 다가가고 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직도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어요.    

 

COOPERATE 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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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양혜연PHOTO : <더네이버>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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