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는 피카소의 말처럼, 노련함보다 갖기 힘든 것이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다.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을 맞아 해맑은 어린아이의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을 모았다.

2022.05.04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Paola Pivi, ‘I was born this way’, 2019, Courtesy the artist and Perrotin. Photo by Guillaume Ziccarelli. 

 

모든 존재에게 사랑을 

파올라 피비

거꾸로 뒤집어져 다리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핑크빛 아기 북극곰이 말한다. “난 이렇게 태어났어(I was born this way).”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기 곰을 ‘이렇게 태어나게 한’ 아티스트는 파올라 피비(Paola Pivi)다. 알래스카부터 인도까지, 전 세계 곳곳에 머무르며 조각,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는 형광색 깃털을 손수 붙여 만든 북극곰 조각이다. 인도에 거주하던 시기, 곰 성체의 실제 사이즈로 제작하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작가가 자녀를 출산하면서 자연스레 아기 북극곰으로까지 확장됐다. 2019년, 전시 <We are the baby gang>을 위해 형광 아기 곰 70여 마리가 페로탕 뉴욕에 모였다. 자신이 태어난 방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I was born this way’를 비롯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레드 컬러의 ‘I just miss my mom’, 어딘가를 향해 폴짝 뛰어오르는 코발트블루 컬러의 ‘Time for homework’ 등 각기 다른 상황과 성격의 아기 북극곰이 갤러리를 가득 채웠다. 생각과 행동이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아기 곰들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존재는 ‘사람’, ‘북극곰’ 등 종으로만 구분지을 수 없는 고유성을 지녔으며, 이들은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존중을 필요로 한다. 

 

 

 

Michael Scoggins, ‘I (heart) My Friends’, artist crayon, graphite, colored pencil on paper, 170x129cm, 2019

 

어린이의 순수한 용기

마이클 스코긴스

나이가 든다는 건 환상 속에 가려져 있던 세상의 민낯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세상을 잘 모르기에 하고 싶은 대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던 어린 시절의 용기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래알처럼 손 틈새로 빠져나가며 수많은 금기만을 남긴다. 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는 어른이 되며 진솔하게 다룰 수 없게 된 이야기를 어린아이의 생각과 문법으로 표현한다. 화가인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레 그림을 그리며 성장한 그는 대학에서 페인팅을 전공하며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을 가장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린 시절 끄적이던 그림임을 깨달았다. 작가는 작품에 늘 ‘MichaeL S.’라는 서명을 새기는데 이는 마이클 스코긴스의 어린이 버전 예술적 페르소나다. 직접 제작하는 성인의 키만 한 커다란 노트 종이 역시 지금은 작게 여겨지는 그림 노트가 어린 시절에는 커다랗게 느껴졌던 점에서 착안한 것. 그의 작품 ‘I (heart) My Friends’에는 ‘I ♥ MY Friends’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팔을 활짝 들어 올린 어린아이 다섯 명이 원을 그리며 서 있다. 인종과 성별은 다양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 ‘나는 과연 작품 속 아이들처럼 어떤 조건이나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자유롭고 용감한 어린아이인 마이클 S.와 수많은 금기를 안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사이에 생긴 간극에는 쉽사리 답변할 수 없는 질문들이 부유한다. 

 

 

Adam Handler, ‘Sweet Valentine Ghost’, oil stick and acrylic on canvas, 61x51cm, 2021, 이미지 제공 더 트리니티 갤러리

 

스스로를 위한 치유의 창작

아담 핸들러

맑고 순수한 눈망울의 유령과 화려한 빛을 내뿜는 UFO, 그리고 폭죽이 터지듯 흩날리는 꽃잎들. 천진난만함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미국의 아티스트 아담 핸들러(Adam Handler)의 대표 연작 ‘고스트 납치(Ghost Abduction)’ 중 하나다. 그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자기 탐험의 결과물이기도 한 박쥐, 곤충, 유령 등을 화폭에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아담 핸들러의 작품은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인지한 사건과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데, 유령은 그가 삶 속에서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그리움의 메타포다. 20대 초반 소꿉친구를 떠나보내고, 유년기 기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조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터득하게 된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담은 피사체다. 그의 고스트 납치 시리즈는 삶과 죽음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화풍으로 죽음을 피하고 싶은 두려운 것이 아닌, 우리와 늘 함께하는 우호적인 어떠한 것으로 표현했다. “어린이는 관객을 위한 미술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창작을 한다. 예술을 하는 행위는 순수한 마음과 공간에서 시작하며 삶 사이사이의 사랑과 고통이 나의 원동력이 된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충실하게 반영한 아담 핸들러의 작품은 작가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마음까지 치유한다. 

 

음하영, ‘Nancy & Sally’, Acrylic, paint on wooden board, 130x89.5cm, 2016

음하영, ‘My Button Works’, Acrylic on canvas, 130.3x97cm, 2019

 

이미지의 전방위적 콜라주

음하영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취향은 온전히 내 안에서 생겨난 것일까? 음하영 작가는 이런 질문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그는 오래전 전쟁 소식을 마치 광고처럼 가볍게 다루는 뉴스를 보며 자신이 보고 듣는 것들이 과연 완벽한 ‘진짜’일까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동화 속에서는 반딧불이같이 묘사된 팅커벨이 어른이 된 우리의 머릿속엔 특정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모습인 초록색 옷을 입은 금발 요정으로 그려지듯, 작가는 대중 매체가 제공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며 잃어버린 어린아이의 때 묻지 않은 시선을 되찾고자 했다. 그는 미디어의 영향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단, 이를 이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방법을 택했다. 음하영 작가는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특정 상황에서 의식 위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무작위로 꺼내 조합하고, 이를 다시 일부러 파괴하는 일련의 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떠오른 이미지의 조각들은 분명 미디어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이것들을 모아 완성한 작업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1 유재연, ‘Dandelion Picker’, oil on canvas, 152.5x121.8cm, 2021  2 유재연, ‘Night Dandelion’, oil on canvas, 122x91.5cm, 2021  3 유재연, ‘Great to see you’, oil on canvas, 152.5x121.8cm, 2021

 

깊은 밤 펼쳐지는 환상 동화

유재연

헤르만 헤세는 산문집 <밤의 사색>에서 이렇게 말했다. ‘잠 못 이루는 밤에만 영혼이 외적인 충격 없이 놀라움이나 공포, 판결이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짙은 어둠이 깔리는 밤은 이성이란 장막 뒤에 가려진 내면의 감정이 놀랍도록 솔직하게 드러나고, 여기서 파생한 상상력이 무한하게 샘솟는 시간이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유재연 작가는 밤의 신비를 안다. 그는 일상 속 현실과 밤에만 얼굴을 드러내는 환상의 세계가 충돌하며 생긴 파편을 화폭에 담아 ‘나이트 워커(Night Walker)’ 시리즈를 제작했다. 달과 별빛을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해변을 배회하는 한 사람과 민들레를 수집하고 있는 하얀 새, 그리고 마침내 만나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는 둘의 모습은 어떠한 부연 설명 없이도 한 편의 환상 동화를 직조한다. 그가 화폭에 펼쳐내는 신비로운 판타지 세계는 사회와 개인, 유년기와 현재,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George Morton Clark, ‘Sevette’, 183x160cm, 2019

 

캔버스에 등장한 캐릭터

조지 몰튼-클락

강렬한 색감과 원근감이 없는 평면적 구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비정형적인 선, 조지 몰튼-클락(George Morton-Clark)의 작품은 어린아이의 낙서에 자주 비유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지만 페인팅에 매료돼 회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작품에는 매번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불쑥 등장한다. 종류는 미키 마우스, 톰과 제리, 도라에몽, 호빵맨, 고양이 펠릭스 등 동서양을 아우른다. “만화에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연결 고리가 있다. 유년 시절 우리는 모두 만화를 보고, 그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했다. 내게 만화 캐릭터는 추상화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다. 그것은 관객이 작품의 나머지 부분을 보기도 전에 그림의 의미와 연결점을 미리 제시해준다. 즉, 캐릭터는 관객을 사로잡는 ‘낚싯바늘(hook)’이다.” 작가의 말처럼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게 된다. 그러나 작품 속 만화 주인공은 유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캔버스 안 캐릭터는 거칠게 그어 내린 선, 몇 가지 색으로 채운 면 등 추상 화면과 만나며 현재의 새로운 존재로 탈바꿈해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아트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더 트리니티 갤러리(아담 핸들러), 작가 제공(유재연, 음하영), 지갤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