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하여 - 희즈돌 남경희 대표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 어린아이가 훗날 지금의 시기를 반추했을 때 기분 좋을 추억을 선물하는 어른들을 만났다.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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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맞춤 인형부터 자체 캐릭터 인형까지, 그동안 만들어온 인형들을 앞에 두고 활짝 웃는 남경희 작가.

 

 

오직 나만을 위한 인형

희즈돌 남경희 대표

어린 시절, 내 곁을 가장 오랜 시간 지킨 장난감은 양 모양의 봉제 인형이었다. 역삼각형의 통통한 아이보리색 얼굴, 복슬복슬한 하얀 털, 축 처진 귀를 갖고 있던 그 인형은 내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인형놀이를 할 때면 왕국의 공주가 되기도 했다. ‘애착로봇’, ‘애착블록’ 같은 단어는 없지만 ‘애착인형’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 사람들의 유년기 기억에 언제 어디서나 함께했던 인형이 하나쯤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맞춤 수제 인형 브랜드 희즈돌(Hee’s Doll)을 이끄는 남경희 작가의 작업은 유년기 기억의 한편을 차지하게 될, 혹은 지난날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를 만드는 과정이다. 첫 직장 생활을 증권사에서 시작한 그가 인형 작가를 꿈꾼 적은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와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증권사 업무가 그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퇴사 후 큰맘 먹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림을 배웠다. 귀국한 뒤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일을 쉬던 시기 우연히 알게 된 집 앞 문화센터의 컨트리 인형 만들기 수업이 주는, 회사를 다니던 시절 느끼지 못한 만족감이 빈 곳을 채웠다. 이후 포크아트, 냅킨아트, POP 손글씨, 선물 포장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지만 종국에 택한 건 인형이었다.

 

작가의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인 슬림걸즈. 은은한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7~8차례 채색 과정을 거친다.

 

 

다양한 공예를 배웠어요. 각기 다른 매력이 있을 텐데, 그중 인형을 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에요. 사실 인형 만들기 수업을 듣기 전까지 특별히 인형을 좋아하진 않았거든요. 다만 무의식 속에 있던 아쉬움이 저를 이끈 게 아닐까 싶어요. 어린 시절 집안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며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없었죠. 인형은 제가 갖지 못했던 것 중에 하나였고요. 


희즈돌의 특별한 점은 주문자의 요청 사항에 꼭 맞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형을 제작한다는 것이에요. 맞춤 인형의 종류도 여러 가지일 텐데 어떤 작품을 만드나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인물 맞춤 인형이에요. 사진이나 생김새에 대한 묘사에 따라 제작하죠. 인형이 입는 옷이나 소품도 전부 직접 만들고요. 동물이나 특정 캐릭터 맞춤 인형 작업도 물론 가능해요. 다음으로는 복원 인형이 있어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낡은 애착인형이나 의도치 않은 사건으로 형태가 망가진 인형의 본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인형이에요. 그 외 희즈돌 자체 캐릭터 인형이 있고요.  


제품의 특별함 덕분에 선물용 의뢰가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형 하면 어린이가 떠오르는데, 아이 선물용으로는 어떤 인형이 인기 있나요? 자체 캐릭터 인형 중 무지개 뿔이 달린 양 인형인 ‘카멜양’이 있어요. 주문에 맞춰 만드는 다른 인형과 달리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유일하게 한정 수량 생산한 제품인데 귀여운 생김새 덕분에 선물로 인기가 많아요. 소재도 오가닉 면 타월을 사용해 안전하죠. 그 외에 아이의 얼굴을 본떠 만드는 인물 맞춤 인형을 의뢰하는 경우도 많아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기의 모습을 인형으로 기록하는 셈이죠. 나이가 들어서도 아기였던 자신의 모습을 한 인형이기에 소장 가치가 충분하고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닌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인형인 만큼 제작 과정에서 고려하는 부분도 다를 것 같아요. 인물 맞춤 인형을 제작할 때는 얼굴 페인팅에 가장 공을 들여요. 특정 인물을 의뢰했는데 얼굴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얼굴을 그려요. 마음에 안 들면 뜯고 새로운 얼굴을 붙여 다시 그리기도 하고요. 복원 인형의 경우 레퍼런스가 아주 오래전에 찍은 사진 한 장, 혹은 의뢰자의 설명이 전부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인형을 제작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자세히 상담한 후 만들기 시작해요. 

 

 

희즈돌 자체 캐릭터 인형 중 하나인 모리. 이 인형과 인연을 맺는 모든 이들이 인형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Memory’란 단어를 따와 이름을 지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파손된 인형은 의뢰자와의 깊은 상담을 거쳐 최대한 유사하게 재현한다. 

 


복원 인형의 경우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의뢰자가 많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궁금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인데, 의뢰자가 불에 타서 형태가 사라져버린 인형을 들고 왔어요. 상담 시 개인적인 부분은 묻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없으나 굉장히 소중해 보였어요. 다 녹아내린 코와 눈만이라도 좋으니 복원 인형 제작에 사용할 수 없느냐고 물었을 정도니깐요. 기본적으로 희즈돌의 복원 인형은 기존의 형태가 남아 있더라도 이를 수선해 완성하지 않고 아예 새로 만들어요. 하지만 정말 간절해 보였고 다행히 눈과 코를 되살려 새롭게 제작한 인형에 붙일 수 있었죠. 


앞서 말한 내용처럼 복원 인형 의뢰는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겠어요. 그래서 작업하기 가장 힘든 인형이에요. 부족한 레퍼런스 때문에 만드는 과정 자체도 어렵지만 이 인형이 의뢰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기에 부담감이 크거든요. 하지만 이런 요소가 계속하는 이유가 되기도 해요. 그들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싶다는 소망과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거죠.


자녀가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희즈돌의 제품 중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은 무엇인가요? ‘슬림걸즈’라고 자체 캐릭터 제품 중에 몸이 길쭉한 소녀 인형이 있어요. 제 딸아이는 그 인형이 제일 예쁘다며 좋아해요. 슬림걸즈는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7~8차례에 걸쳐 천에 색을 입혀요. 아이가 이 인형을 좋아하다 보니 채색하고 있으면 가끔 ‘엄마 나도 같이 하고 싶어’라며 슬며시 다가올 때가 있어요. 물론 조금하다가 금세 지쳐 뒷정리해야 할 도구만 늘어나 조금 번거로워지긴 해요(웃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즈돌의 인형을 구매하는 이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나요? 대량생산된 기성품이 워낙 많은 시대이기에 대부분은 돈만 있으면 소유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세상에는 돈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도 있죠.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제작한 인형처럼요. 비록 물건일지라도 단순히 금액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고유의 가치를 알고 누릴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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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재철(인물), 희즈돌(남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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