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휴양지의 설렘을 담은 인테리어

고전 건축미술 복원가에서 예술가로 거듭난 엄마, 그런 엄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세트 디자이너가 된 딸.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모녀가 이탈리아 중부 로마냐 리비에라 해안가에 아틀리에 하우스를 만들었다. 모녀의 변화무쌍한 작품으로 완성한 예술 무대를 소개한다.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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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처럼 생긴 넓은 거실은 벽체를 세우는 대신 그림을 걸 수 있는 이동형 프레임을 놓아 공간 분리 및 작품 전시를 가능하게 했다. 거실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에바의 작품으로 그녀와 협업하는 벽지 브랜드 월&데코의 원더(Wonder) 시리즈로 출시된 상품의 습작이다. 

 

“우리 집의 모든 장식이나 그림은 고정적이지 않아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까지 몇 달씩 그대로 두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루 만에 교체하기도 하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은 언제든지 그림을 옮겨 공간을 이전과 다르게 나누고, 새로운 작품을 걸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유동적인 공간이거든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북서쪽 해안가 로마냐 리비에라(Romagna Riviera)에 자리한 아티스트 에바 제르마니(Eva Germani)의 집은 일반 가정집과 사뭇 거리가 먼 모습이다.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정 건축양식을 따른 건물이 아닌, 창고형 건물에 자리 잡은 그의 집은 그림을 그리는 아틀리에가 생활 공간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과 패브릭을 천장부터 길게 늘어뜨려 각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은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이 집은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공간을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어요. 천장에 그림과 패브릭을 걸 수 있는 철제 막대를 설치했고 이동식 프레임도 마련해 배경을 쉽게 바꾸고 옮길 수 있죠.” 

 

 

거실 코너 벽면에 걸린 부채 그림 ‘랩소디 인 재팬(Rhapsody in Japan)’은 에바가 협업하는 벽지 브랜드 월&데코의 방수 벽지 컬렉션으로 출시되었다. 

 

거실에 마련한 식탁 공간의 벽면은 에바가 그린 그림과 직접 염색한 실크와 거즈 원단 커튼으로 꾸며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출한 것이 특징. 여인 초상화는 사진가 비비안 벨리니(Vivienne Bellini)가 촬영한 모델 마르게리타 체사라노(Margherita Cesarano)의  사진을 에바가 템페라 및 내추럴 피그먼트로 그린 것이다.  

 

어찌 보면 미완의 공간 혹은 임시 거처 같은 분위기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러나 에바는 이처럼 자신과 가족에게 설렘을 주는 집은 없었다 말한다. “이곳이 전형적인 집의 조건을 갖췄다면 전 아마 무력감을 느꼈을 거예요. 제가 이 집을 택한 이유는 휴양지로 유명한 바닷가에 있다는 것, 그리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삶의 방식을 반영해 자유롭게 공간을 구성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오랜 시간 역사적인 건축 벽화를 보존 및 복원하는 전문가로 활동하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아티스트 에바 제르마니. 작가 뒤에 보이는 ‘에덴(Eden)’, ‘호랑이와 사과(Tiger with Apple)’는 최근 그녀가 완성을 앞두고 있는 작품. 주인공이 되는 그림을 별도로 붙여 팝업 형식으로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에바가 그린 작품의 배경 중 정교하게 초목을 표현한 부분. 2요즘 새롭게 시도한 팝업(Pop up) 형식의 그림. 작품의 주인공인 호랑이를 별도 종이에 그린 후 오려 붙여 주제를 부각시켰다. 사실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감도는 세밀화의 일부분.

 

오랜 시간 고전 건축미술 복원 전문가의 길을 걸었던 에바는 부서지고 갈라지고 벗겨진 작품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남다른 예술관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화가로서 정체성을 찾은 행운의 주인공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그림을 되살리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뿌듯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러나 작업 중 항상 나를 매료시킨 것은 부수적인 아름다움이었어요.” 제단 주변의 벗겨진 표면, 갈라진 회반죽, 빛바랜 금칠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기술적이면서도 정교한 작업으로 한 치의 실수를 범해서도 안 된다. 에바는 이를 정확히 수행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취약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종이와 석회 같은 재료로 만든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황폐해지기 마련이죠. 저는 예술의 불멸성보다는 그 덧없음에 매력을 느꼈고 이를 회화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예술적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딸 프란체스카 안톨리니는 어려서부터 꽃과 인형을 만들며 놀 만큼 창의성이 뛰어났다. 지금은 영상 촬영을 위한 무대 세트 디자이너이자 소품 제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릇을 정리해둔 대형 선반은 에바의 친구가 구입한 호텔 건물을 해체해 가져온 것이고 싱크대는 에바의 친구가 운영하는 빈티지 숍에서 구한 것이다. 주방 벽지도 에바가 월&데코에서 발표한 패턴 시리즈 중 하나다. 

 

화가로서 에바가 선보이는 작품은 단연 독보적이다.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프레스코와 같은 작품을 복원한 경험은 시노그래피(배경화)를 지향하는 작품 활동으로 이어졌다. 에바가 고전 회화에서 수없이 접했던 꽃과 골드 컬러를 저채도 톤으로 변주해 적용한 시노그래피는 강한 복고풍 혹은 약간의 보헤미안 무드를 자아내며 공간을 신비롭게 물들인다. 에바의 작업은 전통적인 형식주의를 따르는 듯 재료와 기법을 우아하게 사용하다가도, 원시 재료의 거친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저는 여전히 고전 재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변색되고 황폐화된 작품에서 느낀 시적인 감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에바의 작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프로젝트 현장에 직접 구현되었고, 지금은 그의 개성을 알아본 세계적인 벽지 브랜드 월&데코(Wall&Decò)를 통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예술의 가변성에 무게를 둔 에바의 관점은 바닷가의 창고형 건물을 보금자리로 정할 때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연하게, 유동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비정형적인 공간은 시노그래피 작업을 하는 에바에게 최적의 인테리어 실험실이 되었고 바닷가에 인접한 입지는 예술가의 호기심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요소로 훌륭했기 때문. “바다 근처에 있으면 관광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휴양지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 다음 목적지로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의 부푼 느낌을 특권처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체스카가 거즈 소재로 만든 무대 의상과 장식. 에바의 딸 프란체스카가 영상 촬영을 위해 제작한 미니어처 세트. 엄마가 디자인한 벽지를 붙인 세트 안에 자신이 촬영한 가구, 소품 그리고 모델 사진을 실루엣을 따라 커팅한 후 입체감 있게 세워놓았다.  

 

에바는 몇 번의 이사 끝에 정착한 이 집이 자신의 마지막 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 의미 있게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예술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 프란체스카 안톨리니(Francesca Antolini)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아틀리에를 갖고 싶었던 엄마로서의 소망도 여기서 이뤘으니 말이다. 밀라노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하고 비디오 촬영 세트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프란체스카는 어려서부터 정원에서 꽃과 나뭇가지를 땋으며 늘 무언가 만드느라 꼼지락거렸고 인형 의상을 만들 줄 알게 된 후로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꿈꾸며 창의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25세가 된 지금 프란체스카의 작업은 엄마인 에바의 예술 세계와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서로가 영혼의 단짝임을 확인하는 중이다. 프란체스카가 즐겨 만드는 미니어처 세트 배경은 엄마가 디자인한 벽지로 장식되어 있고, 에바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욕실은 딸이 영상 촬영을 위해 제작한 수련을 그려 넣은 배경 천이 앤티크 주철 욕조 주위를 감싸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치 입구 너머에 자리한 침실. 낡은 듯하면서도 자연미가 돋보이는 벽면을 배경으로 빈티지 가구와 조명, 침구 등이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베딩과 쿠션은 모두 장인이 자연 염색한 패브릭으로 제작한 것이고, 샹들리에는 크리스털 펜던트와 패션용 컬러 레진을 재활용 및 조합해 만든 것이다.   

 

선형 구조의 실내는 사실상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휴일이나 규정된 근무 시간이 없는 우리 모녀에게 일과 삶이 공존하는 아틀리에 하우스는 흠잡을 데 없어요.”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집 개조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기 위해 에바는 이탈리아 남부의 오래된 호텔에서 가져온 주방 가구를 들이거나 앤티크 욕조, 빈티지 문 등을 설치했다. 간단한 공사였기에 전문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시공했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 분야의 친구들이 조언과 도움을 주기 위해 현장을 많이 방문했다. 그러나 그런 날이면 결국 모두가 함께 음악과 와인을 즐기는 휴식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복원한 빈티지 거울 여러 개를 벽면 가득 걸어놓은 욕실. 자연 채광이 풍부한 욕실은 모녀에게 아늑한 휴식처가 된다. 벽과 커튼 사이에 길게 늘어뜨린 네온 빔 조명은 렌초 세라피니(Renzo Serafini) 제품.

 

“저는 이 집의 의미를 게임 같다고 말하고 싶어요. 마치 제 딸이 만든 미니어처 세트 공간처럼 모든 것을 쉽게 옮기고 변화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곳은 제 인생에서 또 다른 곳을 향한 일종의 통로이자 전환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너무 자주 기준점을 잃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찾는 예술가의 삶, 에바의 집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갖게 될까.       

 

Styling & Production Francesca Davoli
Cooperation Carpet Editions(카펫), Renzo Serafini Lights(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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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Fabrizio Cicc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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