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상적인 이상윤

연극 <라스트 세션>으로 다시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이상윤. 그가 발견한 이상적인 세계와 이성적으로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완성되어가는 저 너머 어딘가.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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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유신론자인 영문학자 C.S. 루이스. 연극 <라스트 세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지성인이 신과 종교, 삶과 죽음, 욕망, 고통, 사랑, 양심, 유머에 대해 벌이는 설전을 심도 깊고 또 유쾌하게 풀어내는 작품이다. 2020년 7월 막을 올린 초연 캐스팅인 배우 신구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을 수상한 배우 전박찬과 더블 캐스팅으로 합류한 배우 이상윤은 초연에 이어 루이스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무대로 향한다는 소식에 따라붙은 호기로운 시선을 수많은 N차 관람 후기로 증명한 요즘. 배우 이상윤은 무대에 오르기 전과 후 확연히 변한 자신을 바라본다. 

 

 

니트 톱 디올 맨, 스퀘어 토 블로퍼 쏘유레슈어, 네크리스와 왼손 링 모두 락킹에이지, 오른손 링 구찌,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극 <라스트 세션>은 프로이트와 루이스, 두 학자의 지적인 대화가 제2차 세계대전의 시대적 배경만큼 치열하더군요.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땐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텍스트로 읽는 두 남자의 지적인 대화 속에서 위트와 유머를 한눈에 발견하긴 쉽지 않았거든요. 연극 대본은 처음이라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제가 서울대 출신 연기자라 이런 어려운 작품을 제안하신 건가 싶었어요(웃음). 2020년 초연을 끝내고, 올해 재연 무대에 올라보니 굉장히 재밌고 매력적인 작품이구나 싶어 다시금 반했죠. 


어렵다는 건 이를테면요? 한 달 반 동안 연습하고, 두 달간 공연하며 치열하게 연구하면서 마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대본을 보니까 새로운 것들이 또 보여요. 원작에서는 영어로 언어 유희를 풀어놓는데, 그 뉘앙스를 어떻게 잘 살리느냐가 관건이었고 연출가님께서 잘 풀어주셨어요. 등장인물과 시대 배경, 단어의 뜻을 곱씹을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작품이기도 해요. 학자들의 설전이라 해서 어렵게 느낄 수도 있지만, 따라가다 보면 굉장히 재밌는 작품이라는 점에 공감하실 거예요. 

 

 

재킷 드리스반 노튼 바이 분더샵 맨, 셔츠 킹스맨 바이 미스터포터, 데님 쇼츠 리바이스, 슈즈 닐바렛, 재킷 포켓에 꽂은 아이웨어와 아이웨어 액세서리, 벨트, 삭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사람의 만남은 원작 소설 속 상상에서 이루어졌지만, 모두 실존 인물이에요. 루이스는 옥스퍼드 영문학 교수이자 비평가였고, 우리에겐 <나니아 연대기>로도 잘 알려졌고요. 이번 연극을 보며 <반지의 제왕>을 집필한 톨킨의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어요. 당신이 연구한 루이스는 어떤 인물인가요? 신의 존재를 변증법을 들어 이성적으로 풀어내는 그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에요. 원작 소설 <루이스 vs 프로이트>와 그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보면서 매일 연습하며 깨지고 집에 돌아와 복기하고, 다시 연기하기를 반복했죠. 이번에는 그를 더 자세히 독파하리라 마음먹었다가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루이스라는 사람이 신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놓지 않되 연극에 더 집중하자는 작전을 세웠죠.


당신과 같고 또 다른 면이 있던가요? 그처럼 지성이 풍부하진 않지만, 불태우는 승부욕의 결은 비슷하다고 느껴요.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제가 설득을 하든 설득을 당하든 둘 중 하나로 결론이 나야 하거든요. 


납득되어야 하는군요? 그래서 연출부에서도 저의 루이스는 승부욕이 하나의 키워드라 얘기하곤 해요(웃음).  

 

앞서 연기하며 깨진다는 표현이 흥미로워요.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은 깨지고 고치고 나아가는 순간의 연속이에요. 연기에 대한 피드백이 돌아오면 그걸 받아 적고 계속 고뇌하죠. 술도 한잔하고요. 아침까지 고민하다 나름의 답을 찾아 연기로 확인하고, 선후배 동료들과 토론하며 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셔츠와 레더 재킷, 팬츠 모두 구찌. 

 

승부욕이 발동하는 무대가 매일 펼쳐진 셈이군요? 맞아요! 드라마에서는 반복적으로 연기할 기회가 흔치 않아요. 리딩하고 피드백을 받고 고민해 촬영하지만 재촬영을 무리하게 진행할 수는 없어요. 반면 연극은 연기를 보완해가면서 계속 재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죠. 고통스러웠지만, 좋았어요.   


배우들은 무대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표현해요.궁금했던 카메라 밖, 저 너머의 무대를 경험해보니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함께 연기한 선후배들이 왜 그렇게 늘 무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알겠어요. 배우의 근간은 무대이고, 또 돌아가야 할 곳도 무대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왔거든요. 이런 시간들로 다져온 사람들이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전 아주 운이 좋아 연기를 시작한 경우예요. 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은 갈망이 컸는데 연극을 하면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진에게 캐스팅 이유를 들은 적이 있나요? 해외에서 작품을 들여올 때부터 저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어요. 아마 제 이미지가 배역에 잘 맞는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청년 시절의 루이스 사진을 보니, 강아지상의 호감형 얼굴에 2:8 가르마로 포마드를 잔뜩 바른 헤어스타일을 한 당신과 싱크로율이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초연 때는 좀 더 멋을 부린 헤어스타일을 했어요. 이번 재연 무대에서 2:8 가르마를 활용한 스타일을 해봤는데 반응이 좋네요(웃음).    

 

 

 

 

프로이트 역으로 배우 신구, 오영수와 합을 맞췄어요. 무대에서 연기 장풍을 서로 쏘아대는 대결 같았죠. 그들과의 연기 호흡은 무엇을 남겼나요? 문득 현장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신구, 오영수 선생님과 2인극으로 무대에 오른 내가 앞으로 무서울 일이 무엇이 있을까! 더블 캐스팅된 전박찬 배우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눠요. 많은 배우가 지금 우리를 부러워할 거라고요. 지금도 영광스럽지만 분명히 10년 후, 20년 후가 지나 회상해도 지금의 내가 부러울 거예요.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특별한 순간을 꼽는다면요? 초연 때 신구 선생님께서 “이 극에서 나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너에게 이 작품을 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무서웠는데 그만큼 각오를 다지라는 의미였을 거예요. 재연을 앞두고 처음 모인 자리에선 “연기 앞에서 나이는 의미 없다”고 하시며, 연기자이기 때문에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예의를 차릴 필요 없이 덤비라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라고요. 오케이, 그제야 덤벼보자는 호기로운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었어요.    


이번 작품은 재연이잖아요.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재연까지 이어졌으니 자축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초연에 이어 재연을 해도 혹은 나중에 세 번째 무대에 서도 제겐 모두 처음의 영역이예요. 그런 경험이 제겐 너무 뜻깊어요. 


“무대를 경험하고 레벨업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아요. <라스트 세션> 초연을 끝낸 뒤 이어진 드라마 <원 더 우먼>에서 레벨업의 기운은 느꼈어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모든 영역에서 힘을 주고 뺄 때가 필요한데,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체득하기란 어렵잖아요. 예전에는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면, 이번에는 흐르는 대로 했어요.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자연스럽게. 정답을 맞추기 위해 힘을 주는 것보다 편하게 임하면 더 재미있음을 깨달았어요. 

 

 

셔츠와 팬츠 모두 발렌티노, 슈즈 발렌티노 가라바니,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승부욕을 태우는 기질과는 반대되는 지점이라 어렵지 않아요?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과 임하는 자세에서 집중하고 노력하는 부분은 분명 필요해요. 여전하죠. 변할 수는 없어요. 조금 다른 의미예요.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다 보면 내공이 차츰 쌓이면서 기술이 생기잖아요? 그 장점을 활용하면서 높아진 능력을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죠. 선생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능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기본을 연기하는 태도를 배워요. 신구 선생님께서 “억지로 하면 그 순간 연기는 역겨워진다”고 말씀하셨어요. 매번 그 인물로, 대본의 텍스트로, 출발점으로 돌아와 기본을 완벽하게 소화하시는 것이 존경스러워요. 이순재 선생님이 연습실에 놀러 오셨을 때 “이런 작품일수록 무조건 텍스트에 충실해야 하는 거야”라고 한 번에 본질을 간파하셨어요. 


얼마 전 정웅인 배우가 인터뷰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이순재 선생님이 연극 <리어왕>을 맡았다며 신나게 자랑하시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 멋져 보였다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월요일 하루 제외하고 6일 동안 매일 3시간씩 <리어왕> 무대에 서신걸요! 심지어 더블 캐스팅도 아니고, 반응이 좋아 연장 공연도 하셨으니까요.   


이상적인 배우의 정의를 묻고 싶었는데, 이제 답을 알 것 같아요. 그래서 목표점도 생겼어요. 제가 나아갈 지향점요. 나이가 들어 선생님들처럼 무대에 서고 싶어요. 갈 길이 머네요. 


끊임없이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어요? 어제 문득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봤는데 20, 30대에는 진짜 일만 했더라고요. 무대를 통해 얻은 경험과 사람과의 관계가 깊어진 요즘 매 순간 너무나 즐거워요. 차곡차곡 연기하며 지금도 연기를 하는 이 시간 자체가 연기자로서 자부심이에요. 

 

 

재킷과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네크리스 베루툼, 이너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기 앞에서 조급해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나요?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그때도 주변의 좋은 선배와 동료가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줬을 거예요. 귀에는 들렸지만, 가슴 안까지 파고들지는 않았을 테죠. 계속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치열하게 싸운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겠죠. 또 그때 제가 편안하게 연기에서 힘을 뺐더라면, 힘을 뺀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고 받아들였을 거예요. 신기하죠.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있기에 사람들은 제가 가만히 있어도 힘 뺀 연기라고 믿어주는 거예요. 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자부하거든요. 굳이 조언한다면 좀 더 세상을 넓게 보라는 정도? 


문득 요즘 이상윤을 들썩이게 만든 일상은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진짜로 연기요(웃음). 신구, 오영수 선생님의 연기와 대결할 생각에 긴장되면서 설레고요. 


연기를 빼고 인생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주는 걸 생각해본다면요? 날이 풀리면 작년에 시작한 바이크를 타고 싶어요. 차로 드라이브하면 풍경을 즐기게 되는데, 바이크는 그곳의 바람과 향까지 극적으로 쏟아지는 스릴이 있어요. 


상상하니까 바이크가 익스트림 스포츠란 생각이 드네요. 바이커의 세계에도 철저히 매너가 존재해요. 그 속에서 쌓아가는 인맥도 재미있어요. 물론 폭주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자동차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아! 예전에는 무대가 끝나면 술자리가 이어졌지만, 요즘은 상황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퇴근길에 맥주 한 캔 사서 야식과 곁들이곤 하는데요. 오늘은 막걸리와 파전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STYLIST 황금남 HAIR 김귀애 MAKEUP 오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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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소현PHOTO : 고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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