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혁신’의 유산을 남긴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세상을 떠났다. ‘혁신’의 유산을 남긴 채.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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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초 피아노와 공동 설계한 퐁피두센터는 ‘하이테크 건축’, ‘인사이드 아웃 건축’의 이정표가 된 리처드 로저스의 대표 프로젝트다.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는 5×4m의 개구부를 통해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2 88세의 나이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건축 거장, 리처드 로저스. 

 

지난 12월 18일. 건축사무소 RSHP(Rogers Stirk Harbour+ Partners)는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렸다. 그의 나이 88세. 그와 40년을 함께한 팀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사교적이며, 지위에서 완전히 자유롭고, 포용적이며, 항상 탐구하고, 앞을 내다보는 동료이자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시니어 파트너 이반 하버(Ivan Harbour)는 “나는 그의 짓궂은 미소, 전염성 있는 웃음, 아버지 같은 본성, 날카로운 지성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건축가는 아니었지만 독특하고 멋진 인간이었다”며 그를 추모했다. 이토록 그를 사랑한 동료들과 2020년 87세의 나이로 은퇴하는 그날까지 온전히 건축과 함께했으니, 그의 마지막 길이 외롭거나 허무하지는 않았으리라. 

 

 

 

우아한 곡선의 플로팅 루프로 유연하고 드라마틱한 히스로 공항 제5터미널. 

 

논란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세계 건축계의 거장이자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리처드 로저스,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무엇일까. 최첨단의 기술 요소를 건물 디자인에 통합한 ‘하이테크 건축’과 건물의 안과 밖을 뒤집는 ‘인사이드 아웃 건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9·11테러로 파괴된 세계무역센터 제3빌딩을 비롯해 런던 로이드 빌딩, 그리니치의 밀레니엄 돔, 런던 히스로 공항 제5터미널 등 주목할 많은 걸작을 남겼다. 특히 그의 하이테크 건축 사조의 본격적인 이정표가 된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는 대중에게 그를 각인시킨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1977년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와 함께 선보인 퐁피두센터는 처음 공개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심지어 ‘내장이 튀어나온 것 같다’, ‘괴물 같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로저스 자신이 퐁피두센터의 건축가임을 밝혔다가 우산으로 머리를 맞았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전해진다. 공조 시스템, 통풍구, 배관, 엘리베이터 등이 외부로 드러난 파격적인 디자인.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파리 한복판이 아닌가. 그는 배관 등을 외부로 드러낸 내부에 전시장은 물론 공공도서관과 공연장 등을 두어 공간의 활용성을 확장했다. 또 부지의 절반을 광장으로 만들어 특정인을 위한 박물관이 아닌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퐁피두센터는 파리의 가장 빛나는 랜드마크가 됐다.
 

시기를 막론하고 논란은 늘 리처드 로저스의 뒤를 따라다녔다. 천막 같은 돔 형태에 삐죽삐죽 솟은 기둥을 설치한 밀레니엄 돔은 1999년 완공 당시 ‘텔레토비의 집’에 비유되며 혹평에 시달렸고, 심지어 최근작인 한국의 파크원 역시 건물 외관의 붉은 테두리가 논란 대상이 됐으니. 이쯤에서 그가 동료에게 늘 이야기했던 말이 떠오른다. “만약 우리가 즉시 마음에 드는 건물을 만든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 그의 건축물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 것이다. 2007년, 그는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그가 퐁피두센터에서 보여준 실험 정신과 하이테크 건축을 높이 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마침 그 시기는 퐁피두센터의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했다. 

 

 

 

은퇴 전 마지막으로  진행한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 

 

그의 대표작, 그리고 마지막 프로젝트

2020년 6월, 리처드 로저스는 87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건축가로서 살아온 오랜 세월만큼 퐁피두센터 외에도 내로라하는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그가 은퇴 전 마지막 프로젝트로 진행한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The Richard Rogers’ Drawing Gallery)는 하이테크 건축의 선두 주자로 불린 그의 면모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2020년 11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 샤토 라 코스트(Chteau La Coste)에 공개된 이 갤러리는 그간의 대규모 작업과는 상반된 120m2(약 36평) 크기의 소박한 규모다. 샤토 라 코스트는 500에이커 규모의 와이너리로, 안도 다다오, 렌초 피아노, 아이 웨이웨이 등이 참여해 미술과 건축, 와이너리가 어우러진 꿈의 목적지를 향해 항해 중이다. 이들은 2017년 새로운 갤러리의 디자인을 위해 리처드 로저스를 와이너리로 초청했고, 갤러리 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와이너리의 드넓은 대지를 두고 그가 고른 곳은 경사진 산비탈 지역. 포도원과 인근의 뤼브롱(Luberon) 국립공원 등을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가 이곳이었다고. 경사 끝에 자리한 부지의 특성상 특별한 제작 기법이 필요했다. 그의 선택은 캔틸레버 공법. 건물의 한쪽만 산비탈에 고정하고 다른 쪽은 돌출시킨, 실험적인 설계를 감행했다. 그 덕에 높이 4m, 너비 5m, 길이 27m의 직사각형 갤러리는 공중에 붕 뜬 구조다. 하이테크의 거장답게, 구조물을 고정하는 케이블은 기온 변화에 따라 수축 팽창하면서 적절한 장력을 유지하도록 설계했다. 외부로 노출된 오렌지 컬러의 철골 뼈대 역시 그의 흔적을 명확히 증명한다. 풍경을 액자화하고 싶었던 그는 직사각형의 맨 끝에 5×4m의 개구부를 두어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냈다. 외부 테라스로 나서면 감동은 배가된다. 최첨단 기술을 차용하면서도, 프로방스의 자연을 범하지 않는 최소한의 건축.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는 풍경 속 조각 작품처럼 겸허하다. 

 

 

 

가운데를 비워 공간감을 극대화한 로이드 빌딩. 저층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2 배관, 엘리베이터 등이 외부로 노출된 로이드 빌딩은 마치 공장 건물 같은 파격적인 모습이다. 

 

퐁피두센터의 아이디어를 확장 적용한 로이드 빌딩(Lloyd’s of London)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대표작이다. 얼핏 공장 건물로 착각하게 하는 이곳은 다름 아닌 런던 로이드보험의 사옥. 로이드 빌딩은 타워 6개의 외관을 스테인리스스틸로 마감해 하이테크 이미지가 더욱 부각된다. 건물의 내외부를 뒤바꾸는 로저스만의 특기는 여기에서도 발현된다. 엘리베이터, 냉난방, 급수관, 계단 등을 외관 타워에 분리 배치하고, 내부를 비웠다. 비워진 내부는 특정 용도에 맞게 구획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트리움 구조 내부에는 높이 13~14m의 거대한 반원통형의 둥근 유리 지붕을 설치해 자연 채광을 내부로 끌어들였다. 런던의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에 들어선 파격적인 건물은 지금 봐도 신선한 충격이다.

 

 

 

돔 위에 12개의 기둥이 꽂혀 있는 밀레니엄 돔. 


2000년을 기념해 설계된 런던 밀레니엄 돔은 또 어떤가. 지름 365m의 돔 위에 높이 100m의 기둥이 꽂혀 있는 독특한 형태(기둥 12개는 12달을, 지름은 365일을 상징한다). 이곳은 2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전시, 공연장으로 탄생했지만, 수많은 논란과 운영 문제 등으로 1년 만에 문을 닫는 불명예를 안았다. 하지만 리모델링을 거쳐 2007년 O2 아레나로 다시 태어났으며, 마이클 잭슨, BTS 등 글로벌 스타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펼치며 명성을 되찾았다. 독특한 건물의 형상 때문에 하늘에서 보았을 때 존재감을 더 뽐내는 밀레니엄 돔은 런던의 독보적인 랜드마크다. 

 

 

 

그의 부모님을 위해 설계한 ‘로저스 하우스’. 


상업 공간으로 유명한 그가 설계한 ‘집’이라면? 예상 외로 차갑지 않고 안락하다. 런던의 로저스 하우스(Rogers House)다. 그가 부모님을 위해 설계한 이 집은 하이테크 스틸 프레임 하우스의 혁신적인 본보기로 칭송받는다. 노란색 페인트를 칠한 스틸 프레임 골조와 전면을 유리로 마감한 단층 건물로, 이동 가능한 내부 파티션으로 변형과 확장이 자유롭다. 실용적이면서도 자연을 벗 삼아 살 수 있는 은둔적인 주거 공간. 현재 이 집은 2013년 2등급 문화재로 등록되었으며, 영국의 모든 등재 건물 중 상위 8%에 올랐다. 

 

 

 

런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리처드 로저스의 1986년 전시 <London as it could be)>.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의 랜드마크를 새로 쓰며 종횡무진으로 활약한 거장 리처드 로저스. 그는 논란을 기꺼이 즐기는 실험적인 건축가이자, 자신의 건축 철학 앞에 흔들림 없는 굳건한 철학자였다. 관습과 평범함을 거부한 이 혁신적인 건축가는 그간의 거대한 족적을 뒤로하고 프로방스 작은 갤러리라는 마지막 선물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 최소한의 공간 속에 그의 철학을 집약시켜놓은 채. 퐁피두센터로 대변되는 그의 젊은 날과 리처드 로저스 드로잉 갤러리로 대변되는 그의 마지막이 오버랩되며 큰 울림을 전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건축만이 아니다.     

 

cooperation Rogers Stirk Harbour + Partners(RSHP)

 

 

 

 

 

 

 

 

더네이버, 피플, 건축가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Rogers Stirk Harbour+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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