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전지적 ‘호랑이’가 온다

맹수, 숲속의 제왕, 백과사전 속 빤한 호랑이는 이곳에 없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 창조적 예술가의 낯선 호랑이를 소환했다. 액을 쫓기 위해 호랑이 그림을 걸던 선조들의 마음처럼, 호랑이의 기운이 절실한 지금.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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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nt Landscape, 130×161cm,  Pastel on canvas, 이미지 제공 띠오(Theo)

 

이질적이고 낯선 초현실의 풍경 
김남표

얼룩말과 폭포와 하이힐, 호랑이와 풍랑의 바다. 도저히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사물의 조합이다. 초현실주의 풍경화로 대표되는 김남표의 낯선 풍경. “나는 동물의 표정, 질감 등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특히 강인함 이면의, 독립생활을 하는 호랑이의 습성에서 오는 외로움과 가련함의 양면성을 담아내려 했다.” 그의 작업에서 ‘즉흥성’은 중요한 단서다. 그는 밑그림이나 사전 계획 없이, 그리면서 동시에 상상하며 채워나간다. 즉흥성을 통해 무한 증식한 상상의 끝에서 우리는 그만의 초현실적인 풍경화를 만나게 된다. 역사와 현재, 자연과 문명 등 이질적인 요소가 섞여 만들어낸 낯선 풍경. 그것이 건네는 찰나의 에너지를 즐겨볼 것. 1월 7일까지 띠오에서 열리는 <사이(Sa;i)> 전에 출몰할 초현실의 호랑이와 함께.

 

 

 

제주생활의 중도, 2010, 91×117cm, 장지에 혼합재료, 이미지 제공 왈종미술관 

 

차별 없이 평등한 호랑이와 나 
이왈종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조급함, 욕심 따윈 스르륵 내려놓게 된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삶의 희로애락을 화폭에 담은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시리즈를 통해 중도의 철학을 전하고 행복을 되묻는 작가, 이왈종. 훌쩍 제주로 떠난 지 30여 년, 그의 화폭엔 오늘도 활짝 핀 매화가, 춤추는 나비가 노닌다. 까치를 등에 태운 익살스러운 호랑이가 춤춘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원근법의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집보다 호랑이가 더 크고, 사람보다 새, 나무가 훨씬 크다. ‘중도’에 그 답이 있다. 그는 불교 사상인 ‘중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그의 화폭 안에서는 새와 호랑이,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 절대 자유의 세계, 그곳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호랑이가 산다. 

 

 

산책, 24×33cm, Acrylic, 2021, 이미지 제공 청화랑

 

희망 낚기, 60×72cm, Acrylic, 2021, 이미지 제공 청화랑

 

해학과 관조의 호랑이 
안윤모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고, 낚시를 한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호랑이라면? 의인화된 동물을 등장시켜 친근한 해학과 웃음을 던지는 안윤모. “조선 시대의 호랑이 그림이 그 시대의 희로애락의 해학적 표현이었다면 지금 나의 호랑이 그림은 희락(喜樂)의 해학적 표현으로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찾게 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해학과 위트로 써 내려간 그의 화폭에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흐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낚시하듯 ‘희망을 낚는’ 호랑이가, 우리라는 자화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띠 작가, 안윤모가 펼쳐놓은 현대판 우화. 호랑이의 해, 청화랑에서 안윤모의 <호랑이의 세상 밖 외출>이 시작된다. 전시는 1월 10일까지다. 

 

 

Tiger in Nature, 21×29.7cm, Acrylic markers and acrylic paint, and colored ballpoint on 180 gram paper 

 

동물과 식물이 혼재된 꿈결 같은 세계 
노에미 이바르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노에미 이바르스(Noemi Ibarz). 판화를 전공하고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15년을 일한 이력 때문일까. 판화와 디자인의 묘한 결합이 엿보인다. “나는 늘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컬러와 유기적 형태가 존재하는데, 호랑이 역시 그 일부분이다.” 그녀는 동물과 식물이 혼재된 자연을 사전 스케치 없이 물 흐르듯 그린다. 유려하게 흐르는 선으로 의미를 쌓는 과정은 마치 명상하는 것과 같다고. 유기적인 선과 강렬한 색채의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숲속을 산책하거나 바다로 들어가는 것 같다. 꿈결 같은 세계 속으로. 현재 작가는 카탈루냐 해안의 작은 마을에서 남편, 딸, 고양이 다섯 마리, 미치광이 개와 함께 그녀의 영혼을 위한 치료로 매일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Tiger, 120×240×130(h)cm, 스테인리스에 우레탄 도장, 2021

 

찬란한 유토피아로의 초대 
김우진

사슴, 말, 호랑이 등 그의 동물 조형은 미술관으로, 아파트 단지로, 그 어디든 출몰한다.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유닛을 불규칙적으로 이어 붙인 김우진의 조형은 왜 우리를 이토록 사로잡는가. BTS의 멤버 ‘뷔’ 역시 그의 작품을 구입해 화제를 낳았다. 한데 왜 동물인가. 어릴 적 동물 사육사를 꿈꾸던 작가는 그 기억과 추억, 꿈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써 내려간다. 형형색색의 컬러와 스테인리스 특유의 강한 물성은 그의 조형에 생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수천 개의 컬러 유닛을 조합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작업은 그만의 이야기를 꿰어가는 과정으로 그곳엔 꿈에 대한 열정, 추억이 담겨 있다. 레고 놀이를 하듯 꿈의 조각을 빚는 작가. 그의 찬란한 유토피아 안에서 꿈을 품은 호랑이가 기지개를 켠다. 

 

 

Stay Hungry XXVII, W90×H110×D5cm, Acrylic and mixed media on canvas

 

이 시대의 굶주린 호랑이 
첸 잉지에

중국 작가 ‘첸 잉지에(Chen Yingjie)’의 화폭에는 굶주린 호랑이가 있다. 굶주림의 크기와 비례하듯 강렬한 눈빛이다. 동물의 생생한 초상을 그린 ‘스테이 헝그리(Stay Hungry)’ 시리즈로 글로벌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그(이전의 그는 ‘화투난(Hua Tunan)’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작품의 핵심은 ‘배고픔’으로, 그는 액션 페인팅을 하듯 캔버스에 액체 페인팅을 뿌리고 던진다. 흩뿌려지고 레이어드된 그것들은 입체성과 야생의 기운을 고취시킨다. “나에게 ‘배고픔’은 예술적 창조의 정신적 원천이다. 숲속의 제왕처럼 왕관을 쓰길 꿈꾸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은 고난의 시간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 회화와 퍼포먼스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배고픈 호랑이. 그의 다음이 기대되는 이유다. 

 

 

모란 호랑이, 130.3×162.2cm(100호), Acrylic on canvas, 2017

 

평화와 위안의 미학 
아트놈

자신을 캐릭터화한 ‘아트놈’이라는 또 다른 자아로 대중 속에서 종횡무진 활보하는 아트놈. 마치 부적처럼 호랑이 그림을 걸고 평안을 기원한 선조의 마음처럼 그의 익살스러운 호랑이를 소환했다. 그를 대표하는 캐릭터인 귀여운 토끼소녀 ‘가지’, 강아지 ‘모타루’도 함께한다. 유쾌함 안에 철학을 녹여내는 그의 장기답게, 민화 속 ‘모란’이 주목된다. 부귀영화와 행복을 의미하는 모란은 민화의 단골손님이었다. 현대적인 캐릭터 위에 전통 민화와 동양화의 기본 골격인 ‘선’과 오방색을 차용, 감수성 넘치는 한국적 팝아트를 구축한 아트놈. 그의 팝아트에 위안과 평온이 뒤따르는 이유다. “코로나로 지칠 대로 지친 많은 사람들이 호랑이의 기운으로 역병을 버티고 이기고 물리쳐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운명, 150×150cm, 2019

 

너와 나, 우리의 공존을 꿈꾸며 
고상우

디지털 드로잉과 네거티브 사진 기법을 통해 신선하고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 고상우. 그는 코끼리, 사자, 호랑이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에 새 생명력을 입힌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사살된 600마리의 호랑이. 도마 위에 사살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생명의 상징인 ‘나비’와 함께 우리의 기억 속에 환생한다. 그는 네거티브 필름의 색 반전과 디지털 드로잉 작업을 통해 동물의 표정, 털 한올 한올까지 사실적으로 되살린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총천연의 호랑이는 묘한 판타지를 풍긴다. 화려한 색채와는 반대로 슬프고 아련한 분위기도 발견된다. 아련한 호랑이의 눈빛에서는 잠시 마음을 멈추게 된다. 멸종위기의 호랑이를 통해 건네는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는 더없이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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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더네이버>매거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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