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계의 내 마음속 영원한 1순위 ‘나의 디자이너'

지난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난 알버 엘바즈.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했고, 새로운 행보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맞이한 갑작스러운 이별에 모두가 큰 슬픔에 빠졌다. 패션계 사람들에게 지금 당장 패션 신에서는 만나볼 수 없지만 내 마음속 영원한 1순위로 자리한 ‘나의 디자이너’에 대해 물었다.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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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

패션에 대한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했던 패션 학도 시절 나는 ‘해체주의’ 디자이너들에 매료되었다. 특히 일본의 ‘해체주의’와는 결이 다른 극강의 미니멀리즘과 재구성된 테일러링, 가죽을 우아하게 매만지는 마르지엘라의 솜씨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가 내놓는 것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인지 옷인지 모를 정도로 경이로웠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뿐인가? 숫자로만 구성된 암호 같은 라벨, 그리고 오로지 네 땀의 스티치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한 그의 신비주의는 더없이 멋져 보였다. 네 땀의 스티치가 새겨지는 순간 평범한 니트도 순식간에 ‘쿨’하게 변모하는 마법 앞에 모두가 열광했다. 여전히 메종 마르지엘라라는 빛나는 과거를 품은 브랜드 자체에 대한 애정을 이어오고 있지만, 존 갈리아노의 지휘 아래 현재는 전혀 다른 색으로 그려지는 ‘투 머치’한 메종 마르지엘라에 아쉬움이 커지는 만큼 그가 더욱 그립다. 언젠가 이 신비로운 디자이너가 귀환해 또다시 파격적인 작품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길 기대한다.
김현진(타임 옴므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예술가에 가장 가까웠던 패션 디자이너를 단 한 명만 꼽으라면 패션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렉산더 맥퀸을 떠올리지 않을까? 컬렉션 전체를 황홀한 예술로 표현해내는 패션계의 유일한 아티스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과거에 그가 선보인 무수한 쇼를 떠올려보면 단순히 ‘팔릴 만한’ 옷을 보여주는 시즌 품평회가 아니라 하나의 잘 구성한 예술 공연을 감상한 듯한 여운을 남겼다. 극한으로 ‘고어’하고 화려했던 알렉산더 맥퀸의 스타일이 완벽히 드러나는 무대, 경이로운 퍼포먼스, 음악과 함께 정제되지 않은 아름다움 속 우아함이 폭발하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선물해줬다. 패션 비즈니스의 유일한 예술가였던 그의 작품을, 그리고 그 대단한 쇼의 피날레에 수줍게 등장하던 청년 알렉산더 맥퀸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정혜승(소치이 대표 및 디렉터)    

 

 

 

 

 

피비 파일로
PHOEBE PHILO

이 글을 작성하기 며칠 전에도 올드 셀린느의 부츠를 어렵사리 손에 넣었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느를 떠났을지언정 내 마음에는 여전히 그녀가 곧 셀린느라는 그리움에 비롯된 합리적인 소비였다. 잡지사 어시스턴트를 하던 시절, 셀린느는 신드롬 그 자체였다. 당시 국내에서 그 누구보다 먼저 피비의 쇼피스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일을 하는 데 있어 큰 동력이기도 했다. 티끌을 모으고 모아 내 인생 첫 명품 가방을 셀린느에서 샀을 때의 기쁨 또한 잊지 못한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가방이 무어냐 물으면 고민도 없이 그 가방이라고 답한다. 그녀가 셀린느를 떠난 후 한동안 옷 입는 감을 잃었다. 나에게 피비의 셀린느란 단순히 좋아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옷에 대한 근본적인 영감을 주는 브랜드였기 때문. 거대 하우스의 공석이 날 때마다 그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지난해 본인의 브랜드 론칭 소식으로 복귀를 예고했다. 언제쯤 그녀가 다시 돌아올까? 그녀의 복귀설 한 줄이면 그녀를 사랑했던 모두가 환호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새 브랜드를 위해 적금을 들 테지. 
박민주(패션 콘텐츠 크리에이터)

 

 

 

스테파노 필라티
STEFANO PILATI

디자이너를 꿈꾸던 학창 시절은 이브 생 로랑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무한한 애정의 중심에는 당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스테파노 필라티가 있었다. 그의 컬렉션은 관능적인 우아함의 전형이었다. 테일러드 슈트와 시스루 시폰 블라우스를 입고 ‘YSL’ 로고가 새겨진 킬힐을 신으면 누구든 세련되고 섹시한 여성이 될 수 있었으니까. 내게 그는 좋은 취향과 패션 공식을 선사해준 바이블 그 자체였는데, 이브 생 로랑을 떠났을 땐 몇 년간 만나온 연인에게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은 양 실연의 아픔을 앓은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그가 패션계의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를 외치며 랜덤 아이덴티티라는 브랜드로 컴백을 알려왔을 땐, 근본 없는 트렌드에 지친 내게 단비가 내린 듯 기뻤다. 상업적인 성공의 압박에서 벗어나 많은 걸 내려놓은 그는 행복해 보였고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스테파노는 아직도 내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며 다시금 전성기를 기대해본다. 
나유리(EENK 여성복 디자이너)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CONSUELO CASTIGLIONI

마르니의 창립자이자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지난 2016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돌연 자신의 브랜드를 떠났다. 마르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터라 내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마르니 남성복을 특히 좋아했다. 2008년으로 기억한다. 폴 스미스의 위트가 버겁다고 느껴질 즈음 마르니란 브랜드를 알게 됐고, 남성복 특유의 밋밋함을 마르니의 색감과 패턴으로 중화하기를 즐겼다. 물론 후임자인 프란세스코 리소도 현재 마르니를 잘 이끌어가고 있지만 매년 봄이 되면 풋풋했던 그녀의 마르니가 그립다. 최근에는 딸과 함께 ‘Plan C’라는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쩍 들여다봤는데, 엄마를 꽤 많이 닮은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 그녀의 ‘Plan A’는 뭘까? 
이광훈(프리랜스 에디터)

 

 

 

헬무트 랭
HELMUT LANG

내가 헬무트 랭을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낡은 데님 재킷 때문이다. 헬무트 랭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을 때였고, 트러커 재킷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행어에서 찾은 미니멀한 데님 재킷의 라벨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헬무트 랭 티셔츠와 재킷 몇 벌을 더 구입하고 난 뒤였다. 그의 디자인은 로고나 라벨을 강조하지 않고 간결했다. 런웨이 의상을 실제 리얼웨이에서 입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것도 내가 헬무트 랭을 좋아하는 이유다. 다만 더는 그가 디자인한 옷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헬무트 랭의 레이블은 존재하지만) 참 아쉽다. 
이영표(프리랜스 에디터 & 호텔 세리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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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재경PHOTO : 덩더니(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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