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큐레이션을 통해 예술적인 공간이 된 파리 외곽 저택

컨템퍼러리 모던아트 수집가가 사는 파리 외곽에 자리한 저택이 아트 컬렉션에 조예가 깊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큐레이션을 통해 예술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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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품고 있는 거실은 벽면에 걸린 미국 화가 엘리엇 헌들리(Elliott Hundley) 그림 속의 색감과 어우러지는 톤으로 연출했다. 유선형의 보라색 벨벳 소파는 블라디미르 케이건(Vladimir Kagan), 가운데 놓인 브론즈 커피 테이블은 아도 샬레(Ado Chale),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램프 한 쌍은 미셸 누아예(Michel Boyer) 디자인이다. 

 

흑백의 대비가 돋보이게 연출한 벽난로가 있는 거실 라운지 코너. 실버 조각상은 다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 벽면에 걸린 회화 한 쌍은 미국 화가 글렌 라이곤(Glenn Ligon), 벽난로 앞에 놓인 토르소 조각은 스페인 작가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 작품이다. 소파는 빈티지를 벨벳으로 커버링한 것이고 스테인리스 스틸 라운지 체어는 크리스토프 피예(Christophe Pillet) 디자인이다.  

 

 

프랑스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샤를 자나(Charles Zana)는 열렬한 아트 컬렉터로 잘 알려져 있다. 수집가인 아버지 영향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0대 소년 시절 파리 생제르맹데프레 인근 중고 책방에서 예술 서적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25세에 1950년대 제작된 파란색 베니니 글라스 화병을 구입하며 아트 컬렉터의 길로 들어섰다. 30년이 지난 지금, 자나는 베니니 글라스를 300여 점 넘게 모았을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아트 오브제와 디자인사에 등장하는 주요 가구에 이르기까지 컬렉션 범위를 방대하게 확장해가고 있다. “특히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의 거장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ass)와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 작품은 편집광 수준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인상파, 초현실주의, 큐비즘 등 미술 운동에 관심이 깊었던 자나는 기하학과 수학에 능숙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 두 분야를 매치시킬 수 있는 게 건축이라는 판단하에 파리 보자르(Beaux-Art)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제가 건축가가 된 건 예술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추구하는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은 예술이 돋보이는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겸 인테리어 디자이너 샤를 자나. 예술과 건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고전주의’ 스타일을 구축한 그는 다양한 인문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프랑스 문화 훈장 중 하나인 슈발리에(Chevalier dans l'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를 수상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은 미국 화가 크리스토퍼 울(Christopher Wool), 블랙과 스카이 블루의 마블링이 돋보이는 유리로 된 소파 테이블은 아티스트 듀오 페랭&페랭(Perrin & Perrin) 작품.  

 

나선형 계단 가운데는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 작품, 벽면에는 앨런 맥컬럼(Allan McCollum) 그림이 걸려 있다. 

 

 

파리에 인접한 교외에 자리한 노이쉬르센(Neuilly-sur-Seine)의 한 아트 컬렉터의 집은 자나의 아트 큐레이팅 솜씨가 완벽하게 빛을 발한 곳이다. 예술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성공한 사업가 부부가 1980년대부터 살고 있는 집에는 아메리칸 컨템퍼러리 아트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고, 그중 대부분은 블루칩으로 꼽히는 작품일 만큼 수준급을 자랑한다. “3층으로 구성된 이 주택은 1950년대 지어진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로, 처음 완공된 당시 디자인 양식을 벗어나 개조를 거듭하면서 각 공간이 제각각 따로 노는 형국이었지요. 한마디로 조화미가 파괴된 느낌이었습니다.” 집주인은 무엇보다 같은 아트 컬렉터로서 건축가 자나라면 자신의 집에 관해 명료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자나 역시 이곳에 있는 예술 작품이 공간 안에서 제대로 숨을 쉬고 본래 가치를 되찾게 해주고 싶었다고. “건축가로서 제게 맡겨진 임무는 이상적인 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의 모든 아트 컬렉션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해줄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자나는 이 집을 개조할 때 프랑스 모던 건축의 거장, 로베르 말레-스테뱅스(Robert Mallet-Stevens)의 건물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하고 기하학적인 건물 구조 자체의 조형미를 노출시키는 데 집중한 로베르 말레-스테뱅스의 세련된 건축 언어를 차용한 것. 그리고 이를 제일 먼저 적용한 곳은 외관이었다. 건물 형태는 바꿀 수 없지만 외부로 노출된 문과 창문은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표현하는 캔버스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여기에 힌트를 준 건 루이스 바리에(Louis Barillet)의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신성함의 대명사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도상학적 관점을 통해 지오메트릭 패턴으로 재해석해 시민적인 디자인으로 거듭나게 한 루이스 바리예의 작품을 떠올린 자나는 이 집의 문과 창문을 루이스 바리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맞춤 제작했다. 1층부터 3층까지 전 층에 걸쳐 아트 컬렉션이 펼쳐질 실내는 마감재뿐 아니라 가구 모두 작품과의 조화를 고려해 디자인되었다. 현관문 양쪽에는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조각상이 경비를 서듯 자리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의 오목한 원반 형태 조형물이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이 작품들은 일종의 환영 인사를 건네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처음 이 집에 오는 사람도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실내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죠.” 집주인이 갖고 있는 조각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다카시 무라카미 작가의 ‘오벌 부다 실버(Oval Buddha Silver)’는 두 섹션으로 구성된 거실의 경계에 놓아 마치 양쪽을 조망하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했고, 이 맞은편 경계선 벽면에는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그린 직선 드로잉을 걸었는데 그림 속 수직선이 바닥에 착륙하듯 착시 효과를 선사한다. 

 

 

 

텍스트로 된 아트워크는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작품이며 그 아래 놓인 콘솔은 에릭 슈미트(Eric Schmitt) 디자인이다. 

 

정원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우드 소재와 부드러운 곡선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다이닝룸. 모던한 샹들리에는 지노 사르파티(Gino Sarfatti) 디자인으로 빈티지, 테이블은 마르탱 세클리(Martin Szekely), 의자는 장 푸르베 디자인으로 비트라 제품. 책장에 전시된 푸른색 사진은 볼프강 틸만스 (Wolfgang Tillmans) 작품이며 도자기 인형 디캔터는 1920년대 Robj 컬렉션이다.   

 

입구에서 창가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러운 곡면으로 이어지는 책장이 매력적인 서재는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돌을 쌓아 만든 다리가 매력적인 우드 책상은 최병훈 작가의 아트 퍼니처, 의자는 장 푸르베 디자인이다.  

 

 

이 집의 가구 중 상당 부분은 아트 컬렉션을 위해 특별 제작한 것으로 맞춘 것처럼 딱 맞아떨어지게 매치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다이닝룸에 놓인 마르탱 세클리(Martin Szekely) 디자인의 테이블은 다리가 브라스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다이닝룸에 걸린 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 Orozco)의 골드 톤 그림과 어우러지도록 제작했고, 현관에 걸려 있는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텍스트 페인팅 아래 놓인 디자이너 에릭 슈미트(Eric Schmitt)의 빈티지 콘솔은 가로 길이가 그림과 딱 맞아떨어지며 감탄을 자아낸다. 건축가 자나의 세계에선 가구와 예술품이 이렇듯 정확한 인과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진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간 전체의 문맥을 이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나는 이 집을 개조할 때 냉정함과 유연함이라는 대비가 강렬한 대칭을 이루고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축을 공고히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두 섹션으로 이뤄진 거실 중 한쪽은 블랙&화이트의 대비가 돋보이게 연출했는데, 이 색상 대비는 비등한 부피의 가구와 그림 등으로 이뤄지는가 하면 소파 양쪽에 놓인 디자이너 미셸 부아예(Michel Boyer)의 직사각형 테이블 램프 자체에도 존재합니다.” 이 집은 자나의 여러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미니멀한 가운데 벽면 우드 패널 장식과 베르사유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 등 프랑스 전통 건축의 우아한 스타일이 적절하게 인용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나는 대학 시절 예술사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프랑스 전통 장식 예술의 역사와 장인 정신에 대해 남다른 경외감을 갖게 되었고, 언제나 이를 자신의 프로젝트 안에 현대적인 고전미로서 조화롭게 적용시키고 있다.  

 

 

 

무채색으로 단장한 마스터 베드 룸 벽면 가운데는 이우환, 왼쪽에는 리처드 프린스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침대 헤드보드와 양쪽에 놓인 램프, TV 캐비닛은 모두 피에르 본느필(Pierre Bonnefille) 디자인.

 

바닥과 욕조 그리고 카운터 캐비닛까지 모두 칼라카타 대리석으로 만든 욕실. 왼쪽 벽면에는 엘라드 라스리(Elad Lassry), 오른쪽 벽면에는 월리드 베슈티(Walead Beshty)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핀 율(Finn Juhl) 디자인의 펠리칸 암체어와 소파 세트로 안락하게 꾸민 침실 내 라운지. 벽면에 다양한 아트워크를 전시해놓아 갤러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각 장식이 된 실버 도어의 캐비닛은 크리스토프 콤(Christophe Côme), 보라색과 파란색 불빛이 나오는 벽 조명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요해나 그라운더(Johanna Grawunder) 작품이다. 

 

곳곳에 조각상을 배치해 야외 갤러리처럼 꾸민 정원. 분수 연못 가장자리에는 프랑수아 자비에 라란(François Xavier Lalanne) 조각가가 만든 비둘기 조형물이 자리하고 벽돌로 세운 벽에는 토머스 하우즈아고(Thomas Houseago) 조각가의 부조 작품이 걸려 있다. 

 

 

예술이 진화할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창조하려는 건축가 자나와 집주인의 열망은 조명 시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급 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 회전 및 자리 이동이 가능한 스폿 조명을 설치해 그림과 사진을 원하는 곳에 설치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다이닝룸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는 패널 장식을 배제했다. 하지만 이런 만반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현재 자리 잡은 작품은 거의 대체될 가능성은 없다고. 작품과 공간의 이상적인 큐레이팅이 빛나기까지 시행착오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 집주인은 토머스 하우즈아고(Thomas Houseago)의 조각상을 집 외관에 설치하자는 의견을 냈고, 막상 이를 시행하려다 보니 갈등 아닌 갈등이 생겼다. “생각해보니 조각상을 집 외관에 설치하면 이웃들에게는 작품 감상의 기회가 생겨 좋긴 한데, 상대적으로 저희 부부는 이를 볼 수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집주인의 솔직한 심경을 이해한 자나는 정원에 벽돌벽을 세워 조각품을 설치했고, 이는 거실 소파에 앉았을 때 정면으로 보인다. 실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 곳은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다. 3m에 이르는 나선형 계단부 중심 보이드에는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거대한 유리구슬 조형물이 설치되어 공간의 독특한 구조와 스케일이 돋보인다. 그리고 3층 위에는 집주인 아내를 위한 홈 오피스가 새롭게 증축되었다. 스튜디오 같은 느낌을 요청한 클라이언트의 바람대로 철제 빔을 노출하고 우드로 마감한 천장 덕분에 느긋한 분위기가 감도는 서재는 자나와 집주인이 고른 부메랑 형태의 오크우드 상판에 돌을 쌓아 올린 다리가 인상적인 최병훈 작가의 책상이 중심에 자리 잡으며 창의적인 공간으로서 존재의 의미를 확실히 표현했다. “책상은 우리 부부도 사용하지만, 손자 손녀들이 놀러 왔을 때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 만들고 있을 때 더 빛을 발하죠.” 예술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일상에서 확인하는 집주인 부부는 지난 2018년 국제 컨템퍼러리 아트페어 FIAC(Foire Internationale d’Art Contemporain) 기간에 오픈 하우스로 참여해 대중에게 공간과 아트의 조화라는 종합 예술을 선보이며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 집은 저와 집주인의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한 진심이 결실을 맺은 값진 공간이자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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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정민PHOTO : RICHARD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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