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메이플소프의 작품 세계

20세기 문제적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개인전 <ROBERT MAPPLETHORPE : MORE LIFE>가 열린다. 국제갤러리 서울과 부산 전시관에 그의 작품 100여 점이 걸린다.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메이플소프의 작품 세계.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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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Moore’, Silver gelatin 50.8×40.64cm, 1981 

 

 

뉴욕 어느 좌판에서 호기심 많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가 비닐로 싸인 포르노 잡지를 뜯다가 주인에게 들키는 일화가 전해진다. 몹시 자존심이 상해 직접 촬영해보자고 다독이며 폴라로이드 필름을 넣고 카메라를 들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는 결코 포르노를 답습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죽어도 죽지 않는 예술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그러한 불멸의 존재 같다. 1946년 뉴욕 퀸스 플로럴 파크에서 태어나 에이즈 합병증으로 1989년 사망하기까지 메이플소프는 1960~70년대 뉴욕에서 불꽃 같은 삶을 산다. 1963년 프랫 인스티튜트에 입학해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던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예술적 문화적으로 풍요를 맞은 시기의 뉴욕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을 삶의 자양분 삼아 독보적으로 성장한다. 그는 처음부터 예술가이길 바랐고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며 결국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시대의 예술가다. 마치 이미지로 쓴 자서전 같은 작품들은 작가 개인의 욕망을 해소함과 동시에 예술의 영역으로 견인되는데, 그가 창조한 이미지들은 놀라운 시각적 경험을 안긴다. 흑인 남성 누드, 사도마조히즘, 게이 서브컬처 등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을 통해 퀴어 미학을 도착적 스펙터클로 전유한 그의 사진 연작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힘겨울 정도로 충격적이다. 섹슈얼리티를 실험한 자기 고백의 이미지들은 성소수자라는 삶의 영역에서 기원하는데, 쉽게 말해 사회적 관습과 윤리에서 과감하게 벗어난 것이라 관람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준다. 그 충격과 함께 관람자는 메이플소프가 의도한 대로 질문을 안게 된다. 사회적 문화적 담론을 의문에 부치는 질문들은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현시대 담론들과 결합해, 찬사와 분쟁 사이를 오가며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Lisa Lyon’, Silver gelatin 50.8×40.64cm, 1981

 

 

메이플소프의 국내 입성은 실로 오래 걸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다 되어가고, 해외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회고전 성격의 전시가 계속되어도, 국내에서는 현대사진 기획 전시에 몇 점 포함될 정도로 소개됐을 뿐 제대로 만날 기회는 없었다. 그의 연인이자 오랜 친구인 패티 스미스의 책들과 2017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나마 그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그의 방한을 기다려온 팬들 입장에서 무척 고무적이다. 더군다나 전시에는 문제작 ‘X 포트폴리오’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업이 퀴어의 하위문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에 한국에 늦게 들어온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생각됐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열리는 국제갤러리의 과거 전시를 보면 안드레 세라노와 같은 작가의 개인전을 2004년에 진행한 바 있고, 또 주제 선정에 있어 한국 아트신이 그렇게 보수적인지 의문도 들었다. “단순히 작품 주제의 문제만은 아니었다”고, 국제갤러리 송보영 부사장은 말한다. “사진이라는 장르 자체가 현대미술에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우리의 예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메이플소프를 비롯해 칸디나 회퍼, 신디 셔먼, 만 레이 등이, 국내에서는 구본창, 배병우 등의 작가들이 사진을 현대미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결정적 역할을 한 데다 김수자, 박찬경, 정연두처럼 사진이라는 재료를 작업 전반에 밀접하게 활용하는 작가가 많아지면서 사진이라는 장르가 완전히 현대미술의 핵심적인 한 분야로 뿌리를 내렸다. 사진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출중한 예술가들을 심도 깊게 한 명씩 소개하며 미술사적 맥락과 의미를 새기는 동시에 국제갤러리 프로그램에도 이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 그런 취지에서 그 전례를 찾기 어려운 사진 작품을 예술로 승화한 메이플소프를 당연히 다룰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Ken Moody and Robert Sherman’, Silver gelatin 40.64×50.8cm, 1984

 

 

로버트 메이플소프 재단은 메이플소프가 죽기 1년 전인 1988년 5월 27일 설립된다. 국제갤러리는 재단과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고 전했다. 그런 시간 후에 첫 결실을 맺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개인전 <ROBERT MAPLETHORPE: MORE LIFE>는 국제갤러리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 진행된다. 국제갤러리는 게스트 큐레이터로 미디어 역사문화 연구자이자 현재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연구소의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인 이용우 교수를 영입했다. 그는 뉴욕 대학교와 코넬 대학교에서 한국 근현대 비판적 미디어 문화 연구, 시각 연구, 영화 이론과 동아시아 대중문화 등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현대미술이나 사진사, 미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미디어 문화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이번 전시에 잘 맞는 인물이다. 기사에 참조하기 위해 이용우 교수에게 보낸 질의서에서 그의 답변은 길어졌다. 메이플소프의 예술이 불러일으킨 예술적 논의가 방대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왜 그의 작품을 봐야 하는지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용우 교수 또한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다소 긴 글이지만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전시를 감상하려는 사람이라면, 파격적인 이미지들 사이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그의 답변을 읽고서 전시장을 찾기를 바란다.

 

 

 

‘Patti Smith’, Silver gelatin 40.64×50.8cm, 1978

 

 

해외 아트신에서의 논란과 화제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번 전시의 작품 선정 기준을 듣고 싶습니다. 국제갤러리와 본 전시를 기획할 당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남겨놓은 미학적 유산의 현대적 가치, 인스타그램 등 SNS를 중심으로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그의 사진이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를 전하는지였습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은 위태로운 에로티시즘과 죽음의 그림자를 띤 타나토스의 미학이 구현되어 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생전의 메이플소프에게 호의적인 비평을 선사한 수전 손탁은 <에이즈와 그 은유(AIDS and Its Metaphors)>라는 책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에이즈는 전염병이 아니라 역병처럼 취급되고 도덕적인 퇴폐에 대한 형벌이라는 은유로 사람들에게 독해되고 있다”고 말이죠. 어쩌면 이런 사회적으로 합의된 은유로서의 질병은 메이플소프를 관통하는 하나의 클리셰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에이즈로 사망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사진작가’로 말이지요. 따라서 본 전시에서는 에이즈, 동성애자라는 필터 혹은 컬트 히어로라는 타자적 해석뿐만 아니라, 사진의 범주를 초월하여 일상성 안에서 마술적 환상성과 영화적 서사를 구현하는 사진 자체의 완벽하고 정교한 질서와 서사성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따라 2000여 점 이상의 포트레이트, 꽃,  누드,  풍경, 광고,  정물 사진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사진적/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즉물성이 촉발하는 어떤 시각적 정점의 순간들, 사회문화적 담론을 끌어내고 포착했던 문제의 사진들, 그리고 마치 회화적 질감을 뿜어내는 다양한 질료와 물성으로 변주된 사진을 통해, 각 전시장을 구획해기획하게 되었고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메이플소프의 ‘X 포트폴리오’ 작품 전체가 포함돼요. 아마 이런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등 공공기관이었다면 기획할 수 없을 것이고, 국제갤러리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남성 누드 연작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왔습니다. 흑인, 남성, 동성애 등을 내포하니까요. 이전엔 없던 시도, 다루지 않던 대상이라서 파격적이라는 것 외에 생각해봐야 할 관점이 있을까요? 당대 아무도 포르노그래피라는 시각적 구현물을 예술적 지점과 연결해서 보려 하지 않았어요. 그를 다른 작가와 다른 지점에서 놓고 봐야 하는 구별점입니다. 또 남성 누드를 예술적 경계에 놓고 구현한 작가가 별로 없다는 것도요. 메이플소프 이전에도 조지 플렛 라인즈와 같은 사진작가들이 남성 누드와 동성애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 연작을 선보였고, 마돈나의 앨범 재킷 사진으로 유명한 허브 릿츠, 캘빈클라인 속옷 광고로 명성을 얻은 브루스 웨버와 같은 상업 사진작가들이 당대 페미니즘, 성 개방 풍조, 동성애자 인권운동 등과 맞물려 대중문화 안에서 남성 누드와 퀴어 미학을 구현했습니다만, 메이플소프처럼 다양한 피사체와 하위문화, 예술, 패션, 담론을 아우르며 예술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으로 시대적 도상을 구현한 작가는 없었습니다. 여성 차별 문제, 인종 문제, 성소수자와 같은 타자의 재현에 관한 문제를 작업에 적극 투영했죠. 터부시됐던 사회 규범에 도전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이고요. 그는 당대 문화 전쟁의 아이콘이자 사진작가로서 컬트적 위치를 구축했다고 봅니다. 

 

1970년대 현대 사진사에서 정체성은 관심이 높았던 주제입니다.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헬무트 뉴튼, 존 코플랜즈 같은 사진작가들도 인간의 육체를 대상으로 삼았죠. 메이플소프가 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메이플소프에게 성은 피사체와의 친밀함과 그에 대한 경이로움, 강인함과 세속적 욕망이라는 양가적 미학을 통해 완벽한 서사성으로 구현돼요. 따라서 상업 사진이라는 자장 안에서 패션 누드나 에나멜처럼 완벽하게 세트화되고 물신화된 여체를 구현한 헬무트 뉴튼, 페티시즘적 인체의 특정 파트에 천착하며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주체의 죽음에 천착한 코플랜즈와 달리, 메이플소프는 늘 피사체(모델)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정교한 질서와 서정적 서사성으로 구현해내요.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메이플소프의 1975년도 <자화상>을 빌려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요. 푼크툼이란 사진을 뛰어넘는 어떤 완벽한 이미지의 순간, 즉 이런 이미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시각적으로 구현된 것,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착각을 보여주는, 어떤 절대적이고 결정적 순간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메이플소프 사진의 포르노그래피와 에로티시즘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포르노그래피는 관람자의 성적 흥분을 유발시키는 명백한 목적과 방향성이 있는 반면에, 에로티시즘은 완벽한 예술적 공명을 통해 성적 흥분이라는 부차적인 욕망을 초월하기 때문이죠. 

 

 

‘Frank Diaz’, Silver gelatin 50.8×40.64cm, 1980

 


현대 사진사가 얘기해온 그의 작품 가치 중 근래로 넘어오면서 부각되는 측면이 있을까요? 메이플소프 사후 3년 정도 다양한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그의 예술적 유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동성애적 욕망, 흑인 남성 누드, 대안적 여성상의 창출을 통해 사진에 구현된 도착적이고 강박적인 완벽한 순간과 아름다움에 대한 메이플소프의 미학적 천착. 결과적으로 그가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습관적인 방식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의식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하며 시각적 전복을 꾀했는지를 방증하는 징표라 생각됩니다. 메이플소프의 카메라에 미묘하게 포착되는 어떤 뉘앙스들, 마치 영화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 인물과 사물의 가장 완벽한 순간은 피사체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정교한 질서와 서정적 서사성으로 구현된 그의 독특한 시각 언어와 완벽한 기술적 구현성, 독자적 사진 미학을 통해 우리에게 다양하고 확장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여기서 더 연구돼야 할 지점은 그가 사진을 촬영한다는 행위, 즉 자신의 개인적 삶과 예술 행위를 별개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자신의 모든 작품 안에 개인적인 삶을 전경화(全景化)했다고 말할 수 있죠. 셀프 포트레이트를 선보인 신디 셔먼이나 개인적 삶의 편린과 기억의 파편을 시각 언어로 직조한 낸 골딘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말하자면 뉴 포트레이트 시대를 연 것이죠. 

 

그의 생은 너무 짧았고, 평생의 친구였던 패티 스미스를 비롯한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여전히 생을 계속하며 그를 얘기합니다. 작품 측면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을 꼽을 수 있을까요? 메이플소프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예술적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알려졌다시피 패티 스미스는 물론 카메라라는 시각 구현물의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한 샌디 데일리, 큐레이터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샘 와그스태프, 오랫동안 사진 조수로 활동한 남동생 에드워드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질적 정신적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중 앤디 워홀은 메이플소프에게 가장 강력하게 예술적 영감을 준 예술가예요. 그가 사진을 예술적 도구로 삼기 시작할 무렵, 메이플소프는 앤디 워홀의 잡지 촬영 초상 작가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당시 워홀 팩토리는 알려졌다시피 다양한 펑크 뮤지션을 비롯하여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등 많은 예술가들이 교류하는 장이었죠. 출렁이는 빠른 비트와 공격적인 펑크 미학, 그리고 1980년대 신스팝으로 대변되는 뉴 웨이브 신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비주얼 아트와 하위 대중문화 간의 상호작용을 촉발했습니다. 이를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들은 메이플소프의 다양한 초상 연작에 잘 구현되어 있어요. 

 

 

‛Two Tulips’, Silver gelatin 50.8×40.64 cm , 1984 

 


국내에서 2018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메이플소프>(2017)는 앤디 워홀과의 관계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아요. 패티 스미스의 책 <저스트 키즈>에서 메이플소프가 그를 만나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었죠. 일부러 워홀이 자주 오는 맥스 바와 팩토리에 갔다고 하니까. 앤디 워홀 커미션인 1984년 그레이스 존스 사진 연작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얽혀 있어요. 키스 해링이 그레이스 존스의 몸에 페인팅을 하고 메이플소프가 촬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죠. 앤디 워홀이 당대의 아이콘인 그레이스를 인터뷰하며 잡지에 실으려고 했던 작업의 일환이었어요. 당시 워홀과 메이플소프는 약간 라이벌 관계였어요. 촬영 때 메이플소프가 어시스턴트에게 워홀의 플래시를 끄게 해서 워홀이 제대로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는 일화에서 드러납니다. 앤디 워홀이 되고 싶던 소년은 이후 당대의 아이콘으로 거듭나 그와 비등한 예술가적 관계를 맺게 된 거죠. 앤디 워홀 이외에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또 한 명의 인물을 선정하자면, 리사 라이언을 꼽고 싶어요. 


말년에 흑인 남성 위주로 누드를 촬영한 줄 알았는데, 리사 라이언은 여성이었어요. 패티 스미스를 모델로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었지만, 그 기회는 리사 라이언에게 돌아갔더라고요. 1983년 <Lady Lisa Lyon>을 내면서 메이플소프는 컬트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습니다. 그녀를 촬영한 이유에 대해 “그녀의 양성적 매력에 이끌려 모델이 되어주길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성 보디빌더인 리사의 단련된 완벽한 근육, 신체의 재현을 통해 당대 요구되었던 풍만하고 아름다우며 우아하고 정숙한 ‘여성스러움’이라는 우상성을 메이플소프가 파괴했다는 점입니다. 메이플소프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져온 여성성의 프로토타입으로서 사회적으로 공유된 여성성이나 여체의 재현 양식을 배제합니다. 마치 미켈란젤로가 남성의 근육을 재현한 조각을 구현한 것처럼, 근육을 지닌, 마치 니스를 달고 있는 듯한 여성성을 구현해요. 예술 영역 너머 당시 뉴욕 페미니즘 운동처럼 사회적 현상의 단층을 명백하게 드러낸 도상으로 사랑받았습니다. 그가 리사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메이플소프가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이 어디까지나 남성의 육체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도 포함돼 있죠. 이번 전시에는 리사 라이언의 초상화도 포함되었어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전시가 더 흥미로울 거예요. 


해외에서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진행한 그의 전시는 늘 논란을 동반했어요. 1989년 워싱턴 코코란 갤러리에서 열린 회고전은 결국 법정 공방까지 치렀고요.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그의 사진이 불러오는 ‘불편함’은 관객에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을까요? 또 전 세계 대중이기도 한 관객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성에 대한 보수적 입장에서 큰 변화가 없었을까요? 메이플소프의 사진에서 비롯된 생경함, 또는 이를 넘어서는 어떤 ‘불편한’ 감정이 1970~80년대와 동시대 대중의 취향과 잣대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는 분명 흥미로운 지점일 수 있어요. 다만 도덕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의 변화에 따라 이런 ‘보수적 가치’들이 중화되었다고 볼 수는 있겠지요. 우린 이미 스톤월 이후 성소수자 운동과 에이즈 미학을 담보로 한 다양한 퀴어 아트와 영화에 수없이 노출되어왔고, 또 열광하기도 했으니까요. 분명 메이플소프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점에 변화가 이뤄졌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대중이 메이플소프에 대해 취하는 사회문화적 관용성을 얘기하기보다, 그 트렌드가 언제든지 중세의 마녀 사냥식 담론 형성이나, 예술적 검열,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지으려는 문화 정치적 담론으로 떠오를 수 있음을 짚고 싶어요. 일례로 작년 포스트 코로나 사태 이후 이태원 게이 클럽 전파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혐오적 어젠다 세팅이나 성소수자 마녀 사냥 프레이밍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메이플소프가 활약했던 정치 문화적 상황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어떤 증표처럼 읽히니까요. 하지만 사진이 파생시키는 시각적 ‘불편함’이 만일 작가가 의도했던 예술적 이행 과제라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독해야 할까요? 또 언급한 “성에 대한 보수적 입장의 차이에 있어서의 변화”가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언제나 손쉽고 유동적으로 가변성을 띠며, 이번 팬데믹 상황처럼 어떤 위기의 국면 때마다 손쉬운 ‘희생양’을 찾는 형국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면? 메이플소프 사진의 힘과 담론이 여전히 존속하게 되는 어떤 구실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이 상황을 동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을 이번 전시를 통해 한 번쯤 던져볼 수 있기를 바라요. 

 

 

‘Self Portrait’, Silver gelatin 60.96×50.8cm, 1988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그의 캐릭터 외에 발견된 의외성이 있나요? 강렬한 정신력을 꼽고 싶습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메이플소프 아카이브 외에 영화, 다큐멘터리, 자서전, 패티 스미스의 자서전, 잡지 기사, 인터뷰 등 무수히 많은 2차 텍스트를 접하면서 저에게 가장 강렬하게 와닿은 것은 죽음에 임박한 메이플소프의 마지막 초상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결과적으로 스스로 찍은 영정 사진이 될 꽤 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이보다 더 큰 울림을 준 것은 1989년 <배니티 페어> 2월호에 실린 단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랑스러운 피날레’라는 제목 기사의 메인 컷입니다. 생전 마지막 개인전이었던 휘트니 미술관의 오프닝에 참석한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는 마치 가까운 미래에 있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 묵묵하게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 사진은 비록 포토 저널리스트가 촬영한 것이지만, 이 모든 상황 자체가 그가 의도한 하나의 연출처럼 보이는 기이한 순간을 포착합니다. 메이플소프는 기사가 나간 후 그다음 달인 3월 9일에 생을 마감합니다. 아마 이 기사에 실린 글의 내용도, 사진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을 메이플소프의 무시무시한 예술적 승화와 정신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에서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어떤 작품들로 구성돼 있나요? 부산관에서는 좀 더 사진의 양식적 측면을 고려한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폴라로이드에서 출발한 메이플소프의 양식적 시초가 된 젤라틴 흑백사진에서 다이 트랜스퍼 컬러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진적 물성의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는 포트레이트, 정물, 청동상, 풍경 사진을 중심으로 한 포트레이트, 정물, 흑인의 육체뿐만 아니라 후기에 천착한 꽃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작업 등을 선보이고자 했어요. 그는 “나의 꽃은 어딘가 내부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고, 일반적인 꽃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떤 통렬함이 있다”고 말했는데, 극도로 클로즈업한 꽃과 정물 등을 통해 기립, 발기한 성기의 암시, 의인화된 신체의 확장으로서 꽃과 정물이라는 피사체를 구현하고 있어요. 사진의 양식과 함께 시각적 은유의 활용을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전시 부제목이 ‘MORE LIFE’예요. 육체는 떠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수상하며 ‘미국 문학의 획기적 전환점’이라는 평가를 받은 토니 쿠시너(Tony Kushner)의 연극 <Angels in America>(1991)의 마지막 대사에서 인용한 부제목이에요. 이 연극은 2명의 상이한 동성 커플을 중심으로 1980년대 에이즈가 창궐한 뉴욕의 현실을 판타지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제가 뉴욕에 거주할 당시, 2018년에 이 연극을 관람한 적이 있어요. 이 연극의 말미에 끝까지 살아남은 에이즈 보균자인 주인공 월터는 관객을 바라보며 방백으로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더는 비밀리에 죽지 않을 거예요. 세상은 앞으로 돌아가고 있죠. 우리는 결국 이 세계의 시민이 될 겁니다. 때가 왔어요. 안녕히 계세요. 당신들 하나하나는 정말이지 멋진 생명체입니다. 당신들을 축복해요.” 그러고는 “보다 나은 풍요로운 생을 살아가세요(More Life)”라고요. 만약 메이플소프가 1989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요? ‘More Life’라는 말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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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네이버, 아트,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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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한지희PHOTO : 국제갤러리(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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