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마늘 같은 삶

어린 시절 추억의 조각이었던 마늘은 이태리 갓포 분이네의 김병일 셰프에게 조금 특별하다. 지금도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식재료다.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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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포장된 단 두 톨의 마늘 사진. 얼마 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 ‘해외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마늘의 양’이라는 제목과 함께 올라와 화제가 되었다. 초라한 두 톨의 마늘 사진 아래엔 ‘한국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마늘 포장’이란 설명과 함께 A4 사이즈만 한 비닐봉투에 마늘이 가득 담겨 있는 사진이 이어졌다. 마지막엔 이런 문장이 첨언돼 있었다. ‘타 국가에서 마늘은 향신료지만 한국에서는 고구마나 감자 같은 하나의 작물이다.’ 실제 한국의 1인당 연간 마늘 소비량은 전 세계 1위다. 그것도 2위와 아주 큰 격차를 벌리며.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마늘, 이태리 갓포 분이네의 김병일 오너 셰프가 기억하는 처음 손질해본 식재료도 마늘이었다. 아마 여섯 살쯤이었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가 가끔 마늘 찧기를 부탁하셨어요. 저는 TV를 보며 마늘을 찧곤 했죠. 어린아이가 칼을 쓰지 않으면서 놀이처럼 요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신 거 같아요.” 시골에 사는 친할머니가 작은 텃밭에 직접 키워 보내준 마늘을 어머니는 껍질을 벗겨 절구에 담아 넘겨주곤 했다. 절구를 건네받은 외아들은 리듬에 맞춰 콩콩 찧었다. 요즘엔 아이의 정서 발달을 위해 함께 요리하는 가정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부엌은 남자가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주말이면 간식으로 도넛도 직접 튀겨주었을 만큼 요리에 능했던 아버지가 있던 그의 집안에 이런 편견은 머물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눈이 맵거나 팔이 아프단 이유로 싫었을 법도 한데 그는 군말 없이 절구질했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생활의 일부였던 거죠.” 시선은 TV를 향하지만 팔은 관성적으로 움직였고 가끔 튕겨 나가는 건 다시 그러모아 절구에 담아 빻았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가 고개를 기울여 눕기도 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그리고 조금씩 성장하며 마늘 찧기는 멸치 손질이 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콩나물 뿌리 따기가 되기도 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김병일 셰프는 열여덟 무렵, 미술이 아닌 새로운 진로로 요리를 택했다. 흩어져 있던 일상의 물방울들이 구름이 되고 종국에는 비가 되어 내려오듯 축적된 어린시절의 기억이 그를 자연스럽게 인도했다. 놀이 도구 중 하나였던 마늘은 그의 새로운 팔레트를 채우는 물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며 그에게 마늘의 이미지는 조금씩 달라졌다. 어린 시절 마늘은 각종 나물, 찌개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요리에 눈대중으로 한두 스푼 듬뿍 떠 넣을 수 있는 식재료였다. 자신을 과시하지는 않지만 늘 뒤에서 우직하고 든든하게 머물렀고 빈자리는 선명했다. 하지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선보이며, 특히 오랜 시간 몸담았던 프렌치 퀴진에서는 조금만 어긋나도 완전히 다른 존재처럼 낯빛을 바꾸는 식재료였다. “맛이 섬세한 프렌치 퀴진에서는 향이 강한 마늘을 조금만 과하게 사용해도 전체를 망쳐버려요. 대신에 적절한 양을 사용하면 맛을 완전히 끌어올리죠. 마늘이란 식재료 자체도 품종이나 재배 환경 등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요. 아주 섬세하게 다뤄야 하죠.” 너무나도 익숙한 식재료였던 마늘은 깊게 알수록 복잡하고 어려웠다. 마치 너무 많은 걸 알게 된 어른은 세상에 눈이 아직 트이지 않은 아이가 만끽하는 ‘무지의 행복’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것처럼. “요즘엔 집에서 마늘을 빻는다고 하면 층간 소음부터 걱정하잖아요. 어린 시절 유복한 편은 아니어서 반지하에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반지하에 살기에 아랫집이 없어서 자유롭게 마늘을 빻을 수 있었음을 알지만 당시엔 어려서 그런 것들은 몰랐어요. 층간 소음 문제나 돈과 같은 부분들. 그냥 재미있는 놀이였어요. 현실적인 걱정 없이 가족과 함께 요리를 만들고 먹었던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았죠.” 


김병일 셰프에게 마늘의 특별함은 어린 시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비슷해요. 적절하게 사용하면 요리 전체를 살리지만 욕심부리면 되려 망치는 마늘처럼 지금의 위치에서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요.” ‘마늘 같은 삶’, 어감이 낯설다. 누군가는 피식 웃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늘 같은 삶’은 대단한 무언가가 될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아주 평범한 보통의 존재가 된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유효한 삶의 방향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의 특권이었던 ‘무지의 행복’은 더는 누릴 수 없고, 무한한 꿈은 이제 없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우리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말해주니까. ‘마늘 같은 삶’이란 표현이 나는 전혀 우습지 않다.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더네이버, 푸드 에세이, 마늘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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