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삶을 짓는 건축

<뉴욕 타임스>가 주목한 아난티 클럽 서울을 필두로 휴식, 주거,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공간 패러다임을 제시해온 SKM 건축사사무소의 민성진 대표. 좋은 건축물은 인간의 삶과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2021.03.12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오전 10시의 햇살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곳에 놓인 화분의 초록 잎사귀들은 빛을 머금고 싱그럽게 반짝였고 테이블의 색감은 한층 더 따스해졌다. 빛을 한껏 끌어안은 SKM 건축사사무소 사옥에서 그곳의 주인이자 설계자인 민성진 대표를 만났다. 그의 사진을 찍는 동안 나뭇잎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은 벽에 무늬를 그리며 내려앉았고, 부드러운 그림자가 드리운 민성진 대표의 얼굴은 한층 더 온화해 보였다. 촬영을 마치고는 아무 생각 없이 몸과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던 종전의 인터뷰와는 달리 눈이 부실까 염려해 조금 안쪽 자리에 앉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태양이 이동하며 조도가 바뀌었다. 한층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림자는 사진 촬영을 할 때보다 진지해진 그의 표정과 잘 어울렸고 그가 엷은 미소를 띨 때면 잠시 빛살이 스쳐 생동감을 부여했다. 민성진 대표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아 완성한 이 공간은 머무는 이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이게끔 했고 순간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건축 기사를 쓰며 관습적으로 ‘생명력이 느껴지는’, ‘유기적인’, ‘생동감 있는’이란 수식어구를 남용했지만, 건축물이 정말로 살아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인터뷰 후 공간에 대한 감상을 묻는 민성진 대표에게 생명력 넘치는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눠 좋았다고 답했다. 진심이었다. 신이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한 건축물에도 생명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가 아닌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은 공유 별장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기술적으로는 독일의 친환경 설비 회사인 임텍과 협업해 수방식 복사냉난방 기계 설비를 적용했다. 

 

 

근원을 향한 질문

SKM 건축사사무소의 민성진 대표는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사, 하버드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도시디자인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5년 SKM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한 그는 <뉴욕 타임스>가 ‘2012년 가봐야 할 45곳’ 중 하나로 언급한 아난티 클럽 서울을 비롯해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아난티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부산 아난티 코브, GS 자이 주택문화관, 엠파크 허브 중고차 매매단지, 헤르만 하우스, 세스코 아카데미, 아크로비스타 등 폭넓은 분야에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건축물을 남겼다. 본인의 이름을 건 건축사사무소를 세운 이래 현재까지 1년에 한두 개꼴로 프로젝트를 완성해온 그는 다작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대상, 한국공간디자인문화제 최우수상, 굿디자인 대통령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 명망 있는 건축상을 섭렵했다. 그러나 기성적인 수상 경력은 도시와 건축, 그리고 삶의 근원을 탐구하는 그의 건축 세계를 온전히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프로젝트에 착수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에요. 무언가 설계하기로 결정됐을 때 ‘건축주가 이 건물을 지으려는 이유가 뭘까’부터 시작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죠. 예를 들어 리조트를 설계하면 과연 리조트라는 건 어떤 공간인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누리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집과 리조트가 구분되는 지점은 어디인지 등을 물으며 근원과 본질에 대해 탐구하죠.” 이러한 프로세스는 그의 모든 프로젝트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요즘 한창 진행하고 있는 병원 프로젝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병원이란 공간은 무엇인지에서 시작해 사람들이 병원에 왔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길 원하는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원하는 환경은 어떤 모습일지 등 건축물의 기능을 재정립하고 존재의 당위성을 찾기 위한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한 시간이 이미 규정한 특정 공간에 대한 정의를 되묻는 이런 행위는 관습적으로 반복되어온 구조와 형태를 뛰어넘기 위한 과정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실존의 영역에 옮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이런 곳에 머물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꿈의 공간이 있잖아요. 건축은 사람들의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비효율적인 구조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지어져 왔으니까’란 이유로 따르는 건 옳지 않아요. 항상 질문하고 고민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죠.” 클럽하우스의 전형에서 벗어나 풍경을 건축화한 아난티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정원과 마당을 들여 모델하우스의 패러다임을 바꾼 GS 자이 주택문화관, 공유 별장의 개념을 도입한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등은 모두 건물의 본질과 당위성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었기에 가능했던 작업이다. 그가 완성한 건축물은 혁신적인 디자인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근원에 대한 탐구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다. 물론 처음부터 보기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민성진 대표는 자신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건축물을 마주한다. “사람은 모두 개별적인 존재잖아요. 개개인의 특성은 물론 장단점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도 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죠. 건축물도 마찬가지예요. 설계 중간 단계에서는 소위 말하는 못생긴 건물이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그 건축물이 지닌 가능성을 믿고 고유한 개성을 지켜주면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 누군가는 관념적인 영역에 지나치게 매몰된 게 아닐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야말로 보다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건축물을 완성하는 정도(正道)일지 모른다.  

 

 

정원과 마당을 들이며 모델하우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GS 자이 주택문화관. 

 

엠파크 허브 중고차매매단지는 세련된 형태로 기존의 중고차매매단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기법으로 완성해 시간, 재료, 비용을 모두 절약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건축

부산에서 나고 자란 민성진 대표는 중학생 시절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는 글렌데일 중앙도서관(Glendale Central Library)이 있었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가 건축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노출 콘크리트를 건물 외벽에 사용한 2층짜리 건물이었어요. 외부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층고가 굉장히 높은 홀이 있어 공간감이 느껴졌어요. 학교가 끝나면 그곳에서 공부하고 책도 읽으며 안정감을 느꼈어요.” 글렌데일 중앙도서관에 머무는 동안 공공 건축이 사람들의 감정에 미치는 힘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그가 지금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건축’이라는 지향점을 설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인공물인 ‘건축’과 생명체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 언뜻 보기엔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개념 사이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건축(Architecture)이란 단어에는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이란 의미가 담겨 있어요. 건축물의 아름다운 형태가 이용자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면서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기술로 구현될 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건축물의 본래 기능에 충실한 것이 선행되어야 하죠.” 특히 건축물은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적인 제품보다 수명이 훨씬 길기에 이러한 것들에 대해 더욱 깊게 고민하고 신중하게 지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축물을 흔히 짓는다고 표현하잖아요. 밥을 짓는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며 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난티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프로젝트인 아난티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 기존에 진행해온 프라이빗한 공간 프로젝트에서 한 단계 도약해 대중이 이용하는 퍼블릭한 프로젝트 진행의 시초가 되었다.

 

부산 아난티 코브 내에 위치한 아난티 힐튼 부산과 아난티 펜트하우스 부산. 관습적으로 따라온 기존의 구조를 탈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자연과 도시를 아우르는 우주

지난해 25주년을 맞이한 SKM 건축사사무소는 이를 기념해 SKM 건축사사무소의 지향점을 담은 스물다섯 개의 키워드를 뽑아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민성진 대표를 직접 만나기 전 책을 살펴보며 모든 키워드를 아우르는 0번인 건축(Architecture)을 제외하고 가장 첫 번째 장에 우주(Universe)가 놓인 점이 의외로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가며 제게 더욱 명징하게 와닿는 건 ‘우리 모두는 하나다’라는 사실이에요. 많은 사람이 나 자신만 신경 쓰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본인은 물론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그는 도시와 환경이 많은 사회적 현상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행위 대부분은 건축물 안에서 이뤄지고 건축물들이 이룬 도시 안에서 인간의 모든 삶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민성진 대표는 덧붙여 말했다. “윈스턴 처칠이 말했죠.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은 우리를 만든다’라고.” 그는 사람과 건축물, 그리고 도시와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합일된 우주로 바라본다. 민성진 대표는 주어진 대지의 특성을 이해하고 머무는 자가 자연과 합일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짓는 데 힘을 쏟는다. 그리고 이 공간 안에 모든 생명의 근원인 빛을 한껏 들여 미감을 완성한다. 기술의 영역에서는 짓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운용에 있어 에너지와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신중하게 적용한다. 기능성, 심미성, 독창성, 완성도 면에서 모두 최상을 추구하지만 그는 건축물은 완공된 이후에도 미완의 영역에 머무른다 말한다. 건축물은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쓰임에 따라 변화하며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태까지 고뇌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이 과연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동안 몇몇 직업군을 제외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일정 궤도에 오른 이들의 결과물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성공 뒤에 따라오는 상여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민성진 대표를 만나며 이 인과관계가 바뀔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혹은 애초에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복된 인과관계이거나.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법을 고민하고 실천했을 때 그에 상응하는 성공과 업적이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그가 처음으로 되돌아가 공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찾은 해답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건축물이라는 결과로 돌아오는 것처럼.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수진(인물), SKM 건축사사무소(사진제공)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