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아메리칸 드림 속에서 자란 미나리

개봉 전부터 전 세계 영화제 61개 부문에서 수상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영화 <미나리>. 하루하루가 고난인 이주민 가족을 통해 보편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화법은 지루하지 않다.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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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이토록 화제를 일으킨 영화가 또 있을까? <미나리>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 영화제 61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대사의 50% 이상이 외국어면 작품상 후보가 될 수 없는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후보작 선정 방식에 인종 차별 논란까지 일으켰으니,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수상하지 못한다 해도 가장 적은 제작비로 미국 영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으로 기억되기에 충분하다.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스티브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일구겠다는 일념으로 전 재산을 팔아 미국 아칸소 농촌으로 이민 간다. 그곳에서 그들이 마주한 것은 풀만 무성한 허허벌판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바퀴 달린 컨테이너 하나다. 제이콥은 감별사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거친 땅을 개간하는 데 남은 하루를 온전히 바치지만, 그토록 꿈꿨던 삶은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다. 하루하루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하는 제이콥과 모니카(한예리)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 농촌의 삶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두 아이를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모니카의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순자(윤여정)는 가방에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앗을 담아 미국 땅을 밟는다. 하지만 두 아이는 영어도 못하고, 쿠키도 못 굽고, 이상한 냄새도 나는 할머니가 못마땅하다.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화투 놀이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개울가에 미나리를 함께 심는 일이다. 할머니는 정성스레 미나리를 심으며,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고, 어떤 음식에 넣어도 맛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모든 것을 잃은 그들에게 미나리만 남아 있기 전까지는. 어느 날 순자는 풍을 맞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가 된다. 제이콥의 농장일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견디지 못한 모니카는 아이들과 함께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제이콥은 농장의 채소를 팔 업체를 찾아 나선다. 그날 저녁 농장에 혼자 남아 있던 순자는 그만 채소 창고를 몽땅 태우고 만다. 그렇게 제이콥은 자신이 꿈꿨던 아메리칸 드림을 잃는다. 그런 제이콥에게 위로하듯 남겨진 유일한 것이 순자가 산에 심어놓은 미나리다. 어디서든 잘 크는, 어떤 음식에 넣어도 맛있는, 약으로도 쓰이는 미나리. 그런 미나리가 제이콥 가족이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 

 


<미나리>는 하루하루가 고난인 이주민 가족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힘든 삶을 전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은 힘든 만큼 다정하고 경쾌하다. 어쩌면 어디서든 버텨내는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이야말로 정이삭 감독이 바라보는 제이콥 가족의 실체라 할 수 있다. <미나리>의 감동은 억지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보여주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이처럼 전형적이지 않을 수 있음이 놀랍다.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이 없었다면 이러한 정서적 울림이 가능했을까? 세상 누구나 그리워하는 보편적인 할머니를 연기하면서도 오직 윤여정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펼친다. 그런 윤여정 곁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한예리의 존재감 역시 주목해야 한다. 한예리가 부른 영화 엔딩 테마곡인 ‘레인 송’마저 얼마나 아름다운지. 

※ 이 글을 쓴 안시환은 영화 평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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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판씨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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