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공간 정물

평범한 듯 결코 가볍지 않아 오랜 시간 곁에 둬도 진중한 힘을 발휘하는 정물들. 붓이 아닌 빛으로 그린 정물 사진이 공간에서 힘을 갖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0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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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erry’, Gum Bichromate Print, 60×50cm 90×73cm, 2018

 

 

국내 인테리어 시장은 무한 확장 중이다. 처음은 드러나는 곳에서 보여주기 위해 인테리어를 시작하지만, 종국엔 가장 내밀한 공간을 변화시키려는 욕구가 생긴다. 제일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안도감을 느낄 가장 정적인 공간에서 김수강 작가의 검프린트 정물 작품은 더없이 영혼을 평온하게 한다. 몬타나 가구와 김수강 작가의 ‘수건’ 시리즈는 한 공간에서 작품과 가구의 경계를 허물고 모듈이 되었다.

갤러리 결 유지혜 대표

 

 

갤러리 결에서 진행된 <수수강 The Color of our time> 전시 일부.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여정   
김수강 작가 

커피를 먹고 버려진 종이컵들, 벽에 기대어 툭 놓인 우산, 마땅히 있어야 할 화장실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들. 또 작은 레고 조각이나 열쇠, 책, 수건, 과일 등 어느 것 하나 낯선 것이 없다. 모두 일상에서 가까이 두고 쓰는 사물들이다. 김수강 사진작가는 일상의 물건을 카메라로 담아왔다. “늘 주변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들, 내가 사용하거나 내 생활 공간에 있는 것들이 촬영 대상이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중 어떤 표정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표정이란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듯해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작가의 정물 사진은 처음엔 자연스럽게 어느 한 공간에 놓인 물건의 모습이었다가 이후 배경이 사라진다. 사물의 주변부를 맴돌던 작가는 사물을 향해 정면 돌파한다. 물건이 곧 작품의 주인공이 된 것. 그렇게 탄생한 정물은 바로 보자기, 그릇, 돌, 선반 위의 오브제, 수건 그리고 과일과 곡식이다. “일상에서 눈으로 직접 대상을 바라볼 때와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본 대상은 다르게 느껴져요. 멀리 있던 사물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특히 프린트는 거기서 한 단계, 아니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 정말 그 대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입니다. 눈으로 열심히 쳐다보고 촬영했다고 생각했는데, 프린트에 돌입하면 새로운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해요.”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포착된 정물들은 정교한 프린트 과정을 거쳐 아주 근사해진다. 김수강 작가는 19세기 인화 방식인 검프린트를 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 촬영과 프린트 방식이 디지털화 되고 이제는 필름마저 사라지는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다. 검프린트로 인화하려면 완성까지 최소 2~3일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작가가 손으로 그림을 그리듯 10회 넘게 프린트 과정을 반복해 평면에 레이어를 쌓으며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런 작업을 한 지가 30년이 다 되어가니 그의 손에서 탄생한 정물들이 다시 보인다. “그 과정을 끝내고 나면 대상을 완전히 이해한 느낌이 들어요. 그 완전한 느낌 때문에 이 작업을 계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함에 이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사물의 본질을 향한 작가의 경험은 그의 정물을 오래도록 곁에 둘 수 있는 증거가 돼준다. 

 

 

 

‘Bojagi 017’, Gum Bichromate Print, 60×50cm 90×73cm, 2004

 

‘Towels 06’ , Gum Bichromate Print, 60×50cm 90×73cm, 2014

 

‘Hanrabong ’, Gum Bichromate Print, 60×50cm 90×73cm, 2018

 


김수강 작가가 2014년 발표한 ‘수건’은 지난해 가구 브랜드 몬타나의 욕실 라인과 함께 갤러리 결에 놓였다. 오랫동안 한샘에서 한국 주거 문화를 다뤄온 갤러리 결 유지혜 대표의 기획이었다. 아름다운 색과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가구, 그와 함께한 작품들은 편안한 조화를 이뤘다. 현재 작가는 사탕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 오색찬란한 사탕들을 관찰하고 있다. 작업 과정을 통해 어떤 정물 사진이 도출될지 모르지만 결국 도달하지 않을까. 달콤함 이면에 가려진 사탕의 본질에. 

 

 

‘오색찬란’ Inkjet Pigment Print, 2017

 

 

김용훈 작가의 작품을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시 <미술가의 정물>(2018)을 통해 오랜 기간 감상했다.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익숙한 사물을 다룬다는 점과 함께 독특한 색감이 큰 힘을 발휘한다. 아트를 넘어 패션 영역에서도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또 작품에 드러난 선들은 구조적으로 읽히는데 이 점이 공간을 재해석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오브제에 담은 내러티브를 곱씹으며 오랜 시간 곁에 두기 좋은 작품이다.

신세계 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김신애

 

 

 ‘사계’, Inkjet Pigment Print, 2020

 

 

사물에 얽힌 기억의 초상    
김용훈 작가 

김용훈 사진 작가는 사물 관찰자이자 수집가이다. 디자이너였던 아버지에게 풍부한 문화적 감성을 선물받은 작가는 30년간 사진 예술을 탐구해왔다. 대상은 정물이다. 사진 속 사물은 작가의 사적인 기억과 사유에서 비롯된 존재이다. 선택한 사물을 그의 감각과 표현력으로 배치해, 빛으로 근사한 정물화를 도출해낸다. 감정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만지고 사용하고 바라보던 사람과의 교감. 작가는 그러한 사물과의 연결 고리를 사진에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 2014년 발표한 ‘시대정물’ 연작에는 책과 문구, 도시락 통 등이 등장한다. 모두 작가의 사적인 내러티브가 얽힌 물건이다. “가령 조선 시대의 사물들은 역사적 가치는 있을지라도 내 기억 속 사물이 아니므로 아련한 마음이 없죠. ‘시대 정물’ 속 오브제는 내 기억 속에 기록된 추억이 있는 사물이어야 했어요. 그래야 감정이 작업 속에 녹아들 수 있죠. 거기엔 어린 시절 기억도 응축돼 있어요.” 작가가 15년간 다뤄온 꽃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만큼 애정이 많은 대상이다. 2016년 ‘오색찬란’ 연작에서 과감한 트림으로 매력을 강조한 꽃 사진을 발표했는데, 이후 그는 꽃에 어울리는 화병 수집에도 공을 들이며 신작을 구상한다. 작업실 가득 수집한 화병들 하나하나는 쉽게 구한 것이 아니다. 사적인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사물들, 그것을 찾는 과정, 또 만지고 관찰하며 오랜 시간 함께한 후에야 작가는 촬영을 시도한다. “사진 속 정물은 조명의 인공적인 빛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소재이고 오랜 관찰 끝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정물은 저에게 완벽한 소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중앙 계단에 김용훈 작가의 ‘오색찬란’ 작품이 전시된 모습. 

 

‘시대정물’, Inkjet Pigment Print, 2014

 

 

김용훈 작가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해 아날로그 촬영 방식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 단순한 듯, 평범한 듯하지만 그만의 의도된 작업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은 공간에 놓였을 때 감흥이 커진다. 여기엔 색감도 큰 힘을 발휘한다. “에드워드 호퍼나 알렉스 카츠의 작품과 같은 원색적 색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작가는 사물이 본래 가진 색과 질감, 프레임에 투과시킨 빛을 오랜 시간 연구하여 회화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정물 사진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고 있다. 올해 김용훈 작가가 신작으로 선보일 작품은 ‘사계’ 연작이다. 싱어송라이터 짐 크로치의 1970년 발표 곡 ‘Time in a bottle’에서 영감을 얻었다. 짐 크로치가 “흘러가는 시간을 병 속에 담을 수 있다면”으로 노래하는 가사처럼 작가는 계절 과일이 자신에게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던 느낌을 버려진 빈 병에 담는다. 과일은 계절을, 유리병은 시간을 은유한다. “시간이 품은 숭고한 의미가 이 두 가지 오브제에 고전적 감정으로 혼합된 작품을 선보이려고 해요.” 신작들은 오는 봄, 개인전을 통해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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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Sookang Kim, Yong Ho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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