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박세리 감독

박세리 감독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다. 골프계 프런티어로 활약한 과거에도, 후배들을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세운 지금도, 여전히 선구자의 길을 걷게 될 앞으로도. 고맙고 또 고맙다.

202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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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S 1961 매듭 디테일의 블랙 롱 코트.BEAKER 스트라이프 터틀넥. 팬츠와 슈즈는 에디터 소장품.

 

 

박세리는 신화적 존재다.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골프를 세계 무대로 올린 프런티어다. 지금은 많은 매체가 그가 과거에 이룬 성취를 몇 문장으로 축약해 전하지만, 사실 그가 개척하다시피 걸어온 그 긴 여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고 그가 이룬 성취는 전무후무한 전설로 남았다. 박세리가 무서운 신인으로 활약한 1990년대만 해도 국내 방송에서 골프 경기를 중계하는 경우는 없었다. 세계 무대에 선 박세리를 본 외신 역시 한국이라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골프 선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IMF로 모두가 힘들었을 시절, 미국 LPGA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1998년의 무대는 한국인에게 ‘살아 있는’ 위로였다. 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이 목표였던 그는 기적처럼 꿈을 이룬다.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으로 입회 자격을 획득하고 거짓말처럼 다가온 슬럼프까지 극복한 후 거머쥔 영광이다. 2006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재기에 성공하고 입회 조건을 모두 달성해 LPGA 명예의 전당은 물론 같은 해 세계 명예의 전당에도 동시에 이름을 올린다. 아시아 최초다. 넘을 수 없는 산 같았던 목표를 향해 혹독한 자기 통제와 끝없이 반복된 훈련은 마치 기적처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고, 그는 마침내 전설이 된다. 


박세리는 어깨 부상의 더딘 회복으로 2016년 10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끝으로 은퇴했다. 개인 기록으로는 LPGA 메이저 5승을 포함한 25승, KLPGA 13승(아마추어 자격 6승)을 남긴 후다. 인생 첫 번째 챕터에서 골프로 역사를 쓴 박세리는 은퇴 후 두 번째 챕터를 열며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골프 교육 콘텐츠 회사의 공동 대표직을 수행하는 사업가로 변신한 것. 이번에도 골프와 스포츠 선수를 위한 일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얼굴을 내민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수 시절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언니 같은 친숙함과 특유의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빛나는 여제의 자리에서 내려와 더 많은 사람들 곁에 와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과거의 기록이 희미해질 만큼 긴 시간이 지난 현재, 그 영광과 위로를 다시 들춰보고 새길 수 있어서 말이다. 인터뷰를 위해 장시간 찾아본 영상 자료는 당시의 위로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할 만큼 뭉클하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목표, 새로 개척한 그 길을 이젠 후배들이 걷고 있다. 박세리는 세리 키즈들의 활약을 보면서 스포츠 선수들의 곁에 서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두 번째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OFF-WHITE™ 소매에 라벨을 더한 블랙 롱 코트. PLAN C 멀티 컬러 스트라이프 블록 드레스. COS 울 소재의 쇼트 비니.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많이 웃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경기할 때는 집중하다 보니까 웃는 모습은 보이지 않죠. 평소에는 잘 웃는 편이에요. 


굉장히 차갑고 도도한 선수로 기억되거든요. 특히 20대의 박세리는. 현역 시절과 은퇴 이후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요. 나이가 가져다준 여유라든지. 저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방송이 보여준 선수로서의 모습은 저의 일부일 뿐이죠. 운동하는 모습, 우승한 모습, 트로피 들고 있는 모습 말이에요. 우승한 제게 하는 질문도 거의 똑같아요. 답변도 한정적이고. 짤막한 인터뷰로 본 박세리만 기억하시는 거예요. 그간 사적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과거에 비해 요즘 방송 프로그램의 성향이 달라졌어요. 저는 그대로인데 이제야 본모습이 대중에게 노출된 거죠. 예능을 하고 나서야 저를 본래와 다르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망설였다고 들었어요. 거절도 했고. 특히 <나 혼자 산다>는 이렇게까지 보여줘야 하나 고민했다고요. 하지만 골프 여제의 카리스마 이면에 있는 다정하고 친숙한 모습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이 프로그램 출연이 화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일상의 모습이 어떻게 호감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죠. 나는 언론에 많이 노출된 사람이니까, 잠에서 깬 모습까지 보여주는 게 과연 괜찮을지 한편으로는 걱정했어요. 늘 생각하는 건데 집에서의 모습은 누구나 다를 게 별로 없잖아요. 아침에 자고 일어난 얼굴이 갑자기 말끔해지진 않죠. 부스스한 얼굴, 흐트러진 헤어 상태의 모습을 누가 좋아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평범한 생활을 하는 제 모습에서 친숙함을 느낀 것 같아요. 나와 다르지 않네, 하고. 박세리는 굉장히 다르게 생활할 거라고 생각한 분이 많았더라고요. 

 

E채널의 <노는 언니>는 <나 혼자 산다>나 <정글의 법칙> 때와는 좀 달랐죠. 잘 드러나지 않는 스포츠 종목의 여자 선수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애착을 두고 있다고요. 사실 남자 선수들은 방송을 통해 많이 보잖아요. 은퇴한 선수뿐만 아니라 현역으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까지 여러 채널에서 볼 수 있어 익숙해요. 반면 여자 선수들의 방송 노출은 굉장히 적었어요. 같은 종목의 여자 선수도 많은데, 남자 선수만 자주 출연하니까. 이런 의견이 반드시 남녀 평등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에요. 여자 선수들이 가진 매력도 남자 선수들만큼 많다는 거죠. 제작진과 사전 미팅을 할 때 그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해서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죠. 

 

ISABEL MARANT ÉTOILE 에스닉한 패턴의 하프 집업 니트.

 

 

실제 방송을 봐도 리더이자 맏언니로서의 포지셔닝이 확실해요. 탁월한 예능감에 대한 칭찬도 이어지고 있고. 박찬호, 박지성, 박세리가 출연하는 <쓰리박> 또한 MBC에서 기획 진행 중이죠. 은퇴 후 방송인으로 활약하는 선수도 제법 많은데,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방송은 부차적인 활동이에요. 솔직히 저의 ‘부캐’라고 할 수 있는데, 방송만 보면 본캐처럼 보이죠. 방송 덕분에 본업에 도움을 받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운동선수들 육성에 관심을 갖고 교육 콘텐츠를 만들거나, 훈련과 교육이 함께 이뤄질 수 있는 학교를 세우고 싶거든요. 바즈인터내셔널도 그래서 설립했고. 운동선수들이 방송에 노출되면서 운동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골프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선수들의 매력을 함께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2016년 10월 은퇴 당시 인터뷰에서 3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해왔다고 했어요. 은퇴하고 이제야 쉴 수 있게 되었는데, 본의 아니게 노출된 특출난 예능감으로 이렇게 바빠져서 어떡해요? 사실 은퇴 전에 다짐한 게 몇 가지 있었어요. 골프를 시작한 이래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자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밥 한 끼를 먹더라도 정말 맛있게 먹자, 잠도 푹 양껏 자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은퇴하면 가능해지니까, 보통의 삶을 기대했죠. 그런데 은퇴하면서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일의 고리들이 연달아 생기는 거예요. 제가 구상한 골프 사업을 조금 늦춰도 되는데 시작하게 되었고, 골프 해설자로 나서면서 대회를 후원하게 되었고. 충분히 쉬다가 공허해지면 일을 해볼까 싶었는데, 그럴 새 없이 계속 일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과연 내가 쉴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까 저는 바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더라고요. 이런 생활이 제 몸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예능 프로그램과 줄줄이 이어지던 매체 인터뷰에서 “2등, 3등을 왜 해? 1등 해야지”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사실 승부욕이나 성취를 통한 만족감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그런 승부욕을 갖게 된 데엔 아버지의 영향이 크겠죠? 아무래도 아빠의 그런 면을 물려받은 건 확실한 듯하고. 세 자매 중에 저만 운동을 좋아했거든요. 언니와 동생보다 욕심이 더 많은 사람인 거예요, 제가. 뭐든지 잘하고 싶은 사람? 뭔가를 할 때 대충 하는 면이 없어요.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을 골프에 매진했어요. 지독한 자기 통제와 끝없이 반복된 훈련, 힘들었던 슬럼프를 극복한 후에도 계속 골프를 했죠. 골프가 그렇게 매력적이었어요? 처음엔 골프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알려졌다시피 육상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 육상부를 선택했죠. 육상 선수로 스카우트되어 중학교에 입학했고, 2학년 때 골프와 인연을 맺었어요. 조금 늦게 시작한 경우예요. 훈련을 시작하고 1년 반 만에 대회에 나가 우승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성공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생겼죠.

 

 

MONCLER COLLECTION 광택감이 도는 독특한 소재의 블랙 스커트. MONCLER + RICK OWENS 베이지 브라운 니트 톱. 슈즈는 에디터 소장품.

 

 

어머니의 눈물을 본 후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얘긴 유명하죠. 하지만 부모의 눈물을 봤다고 누구나 그런 결심을 하진 않아요. 또 굳은 결심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흔하고요.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크면 그럴 수 있어요. 어쩌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격일 수도 있고요. 저의 경우 그 순간이 굉장히 싫었어요. 어떤 미움의 감정도 있었지만, 자존심도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서 그런 결심을 한 것 같아요. 내가 꼭 성공해서 반드시, 똑바로,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물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당시 아픔이 저에게는 기회가 돼준 케이스였던 거죠. 그런 면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당시 동양인에, 여자이고 나이도 20대로 젊은 박세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을 거라 예상돼요. 여자로서의 차별보다는 아무래도 아시아인, 그것도 한국 선수로 출전했을 때 의아해했죠. 한국이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이 컸으니까요. IMF도 있었고. 한국 선수가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특히 골프 대회에 한국인이 나온다는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나 봐요. 심지어 한국 국기가 게양돼 있지도 않았어요. 제가 선수 생활하고 몇 년 있다가 태극기가 올라간 것으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우연이겠지 했는데 진짜 없었어요. ‘(출전이) 우연이겠지’, ‘운이 좋았던 거겠지’, ‘저러다 말겠지’ 이런 표정과 태도를 많이 받았어요. 현지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도 한국에 골프장이 몇 개나 되는지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박세리에겐 LPGA 명예의 전당이 꿈이었어요. 너무 힘든 목표였죠. 아시아에서 이름을 올린 여자 선수는 박세리가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목표를 그걸로 잡았기 때문에 슬럼프에 빠진 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다음의 목표라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밖에 없었을 테니까. 우연치 않게 나온 얘기지만 그렇다고 하면, 맞아요. 그런 것도 같네요. 내 최종 목표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이 꿈은 무조건 크게 가지라고 하셨지만 현실적으로 따졌을 때, 그건 불가능한 꿈이었어요. 운 좋게도 저는 노력한 만큼 그 꿈을 이뤘어요. 솔직히 꿈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잖아요. 그래서 목표에 거의 다다랐을 때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나, 다 이뤘네” 하며 안도하기보다 내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머릿속에 두고 계속 정진한 것 같아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갑작스럽게 슬럼프가 찾아왔죠. 이룰 것을 다 이뤘으니까, 목표 지점에서 갈 길을 잃어 그랬나 싶기도 해요. 


1년 반의 공백기를 가진 후 2006년 6월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통쾌하게 우승하며 재기에 성공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뭉클해요. 후배들에게 “자신에게 덜 인색하라”고 말해온 건 슬럼프 때문이라고요. 많이 배웠고 많이 성숙해졌어요, 슬럼프를 통해서. 많이 부족한 제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됐어요.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잘하고 있으니 더 잘하고 싶더라고요. 최고가 되고 나니 그 자리에서 내려오고 싶지 않고.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채찍질했던 거예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나를. 아파도 참고, 힘들어도 ‘나만 힘든 것 아니니까 참자’ 했어요. 최면만 걸었어요. 결국 내가 서 있어야 할 그곳이 두렵기만 한 거예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제일 크게 보였던 자리가 어느 순간 제일 싫은 곳이 되었죠. 내 자신의 소중함을 알았던 시기예요. 후배들에게 입버릇처럼 자신을 아끼라고 말해요. 자신에게 덜 인색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니까. 

 

 

ZARA 벌키한 실루엣의 그레이 후디 풀오버. FRED 18K 옐로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포스텐 브레이슬릿.

 


홀홀 단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박세리가 당시엔 후배들에게 자극을 주었다면, 이제는 그 길을 걷는 후배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 같은데요? 1998년 LPGA 시드를 받기 위해 1997년 프로테스트 자격증을 받으러 미국에 갔어요. 세계 무대에서 정상의 자리에 서는 게 제 꿈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꿈만 보고 갔죠. 저는 꿈을 이루고자 간 것인데 어느 순간 제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되고 있더라고요. 솔직히 ‘세리 키즈’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도 막 시작해 한창 정신 없이 바쁘고 고생할 때였으니까요. 나이도 어렸고. 넓고 큰 안목으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으니 처음에는 세리 키즈가 부담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너무나 고맙게도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어요. 이제는 KLPGA에 있는 한국 선수들이 LPGA 세계 투어 톱을 달리고 있죠. 나를 보고 시작했던 후배들이 그 자리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요. 그들을 보면서 점점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가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줬다면, 앞으로는 후배들이 그 길을 잘 찾아가 또 다른 문을 열 수 있게끔 인도하는 역할이 제 일인 것 같아요. 


누군가가 여자 골퍼들이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비교해놨더라고요. 박세리의 상금 기록을 깬 후배가 세리 키즈인 박인비 선수였어요. 그는 2016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선배 입장에서 그의 장점을 이야기해주세요. 성적으로 봐도 굉장한 거예요. 선수 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부상으로 슬럼프라 할 시간을 잠시 겪었지만 꾸준히 잘해주고 있잖아요.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예요. 제가 만든 기록을 후배들이 다시 세우고, 또 그들이 만든 기록을 후배가 다시 세우고. 누군가가 도전하도록 기록을 다시 세우는 거죠. 세리 키즈가 박인비 선수였다면, 박인비 키즈가 나오며 그러한 맥이 오랫동안 잘 이어졌으면 해요.  


은퇴 후 2019년에 설립한 회사 이름이 ‘바즈인터내셔널’이에요. ‘바즈’는 무슨 뜻인가요? 그리스어예요. 시장, 마켓을 의미하는데, 전통과 역사가 있고 크게 활성화된 뜻을 갖고 있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저와 공동 대표가 시작한 회사를 굳건하게 잘 키워보자는 의미를 담았죠. 


짧지만 그간의 성과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제 1년 돼가요. 그간 이룬 성과는 많죠. 우선 회사가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예요. 초기니까 모든 파트의 과정이 잘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잘 다지자고 마음먹었는데, 1년간 잘한 것 같아요.   


회사 운영에 있어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요? 걸림돌이라기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좀 있어요. 코로나19로 인해 더 크게 진행해야 할 대회가 규모를 키우기 힘들어지거나, 후원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딜레이되는 경우도 많고요. 제 생각에 이 사업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기반 구축에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거든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잘 만들 수 있을까, 우려가 크죠. 

 

 

VIVIENNE WESTWOOD 오버사이즈 데님 재킷. DEW E DEW E 러플 칼라 화이트 셔츠. PALN C 컬러 블로킹이 가미된 슬리브리스 드레스. REKKEN 블랙 레더 로퍼.

 


<노는 언니>를 통해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사업에서 골프 외에 다른 종목을 다뤄볼 생각은 없나요? 당연히 있어요. 시작은 골프이지만 점차 늘려가면서 모든 스포츠 종목을 키우고 싶어요. 회사를 통해 운동선수들이 교육과 훈련을 잘 받고, 훈련 외의 관리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현재로서는 선수들이 각자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고 있어요. 그들 또한 자신의 직업에서 톱을 달리는 사람들인데 자극을 받는 경우는 없을까요? 골프만 해서 아쉬운 마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단 한 번도 골프를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얻은 것이 있으면 잃은 것이 있는 게 당연해요. 어느 누구도 모두 얻지는 못하니까. 앞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수 있는 날이 많고. 긴 시간 많은 것을 포기하고 한길을 걸어와서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늘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호방한 웃음만큼 늘 즐겁게 사는 것 같은데요? 매번 즐거우면 거짓말이죠. 
그 웃음이, 또 한마디 툭 던지며 핵심을 찌르는 말이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줘요. 여전히 좋은 기운을 주네요. 과거에도 그랬듯이. 저는 늘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게 제게도 가장 큰 에너지예요.  


아까 월드 스타에게 이것저것 취향 아닌 스타일의 옷을 시도하게 해서 미안했어요. 스커트를 받았을 때 짧은 외마디 소리를 내던데요. 평소엔 전혀 입지 않나요?  불편해서요. 오늘 입은 스타일은 편하긴 한데, 치마를 입으면 자세가 조심스러워야 하잖아요. 입었을 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이것저것 검색해보니 자동차와 시계를 좋아한다던데요.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안전하게 타야 하니까 관심을 가졌고, 시계는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이라서 관심이 높았죠.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인 것 같아서요. 남성적이고 큰 것을 골라요. 제 몸에 그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중학교 때부터 40세 은퇴할 때까지 몸에 남은 세월의 기록은 없나요? 골프는 한쪽으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까 오래 하면 어깨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요. 왼쪽보다 오른쪽 어깨가 내려와 있어요. 교정을 받아도 마찬가지예요. 등 또한 활짝 펴져 있어야 하는데 구부정하고 둥그스름하죠. 제 경우 습관성으로 어깨가 탈골돼요. 이제는 연골이 다 닳아서 손으로 뭘 잡다가도 어깨가 빠지곤 해요. 빠지면 다시 넣어야 하는데 그 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죠. 넣고 난 이후에도 한동안 움직이는 게 어려워요. 은퇴한 운동선수들 중에 정상적인 몸을 갖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도 건강하다, 건강하다 하는데 옷을 갈아입을 때 보면 칼자국이 하나씩 다 있는 거예요. 한두 번 이상은 수술을 했으니까. 그게 다 영광의 상처죠. 

 

Hair & Makeup 서일주, 이지율(누에베 데 훌리오) Assistant 김소정

 

 

 

 

 

 

더네이버, 인터뷰, 박세리

 

CREDIT

EDITOR : 한지희(Director), 김재경(Editor)PHOTO : 박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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