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잃어버린 향기를 찾아서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은 기억과 감정을 좌우하는 감각이다. 이러한 후각의 특수성을 이용한 마케팅은 소비자의 무의식에 침투해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특별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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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속 우르비노 박사는 ‘아몬드 향’을 맡을 때면 짝사랑의 운명을 떠올렸고, 소설 <국화꽃 향기>의 승우는 미주와의 첫 만남을 ‘국화꽃 내음 같은 좋은 향’으로 추억했다. 향으로 기억되는 것이 비단 사랑의 흔적뿐일까. 나는 매서운 바람이 뺨을 스치기도 전 찾아온 겨울 냄새에 수십 번을 거쳐온 지난 겨울날을 상기했다. 서너 달 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장마철에는 내딛는 걸음마다 올라오는 비릿한 풀 향과 흙 내음을 맡으며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의 끝자락에 자리한 유년 시절의 집을 떠올리기도 했다. 불시에 찾아온 어떤 향들은 아득히 멀어진 어느 날의 선명한 풍경과 상황, 기분을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져 올렸다. 때로는 언제 어디서 느낀 건지, 또 특정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감정을 복기시키기도 했다. 같은 향일지라도 저마다 떠올리는 것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이 동의할 만한 사실은 향은 인간의 특정 기억과 감정에 대한 트리거 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고 많은 브랜드는 향의 이러한 특성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향기 마케팅은 영국에서 처음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고, 최초로 실현된 것은 1949년 일본에서다. 비누 회사 미쓰와가 비누 향이 나는 향료를 잉크에 섞어 신문에 광고를 게재한 것. 국내에서는 1986년 삼성전자가 중앙일보에 게재한 냉장고 광고가 최초의 향기 마케팅 사례로 알려져 있다. 향기 마케팅이 국내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향기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야는 화장품, 식품, 주방용품 업계인데 대부분 제품에 향을 입히는 방식으로 향기 마케팅을 현실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향기 마케팅은 백화점, 호텔, 갤러리, 자동차, 패션, 심지어 건설업계 등 분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제품에 직접 향을 입히기 어려운 경우에는 공간에 향을 입히는 방식으로 보다 은유적으로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공간 향기 마케팅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9월 오픈한 코오롱스포츠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와 10월에 오픈한 그랜드 조선 부산, 1월 오픈 예정인 그랜드 조선 제주를 꼽을 수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침엽수림을 떠올리게 하는 시그너처 향 ‘그리너리(Greenery)’를 개발해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채웠는데, 브랜드 DNA 중 하나인 자연을 향한 경외를 잘 표현했다. 그랜드 조선 부산과 제주는 금귤, 히아신스, 머스크가 어우러지는 시그너처 향 ‘더 모멘트(The Moment)’를 공간에 입혀 방문객에게 여행의 설렘과 편안함을 선사했다. 


단순히 제품과 공간에 향을 입히는 것을 넘어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가미해 향기 마케팅을 활용한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2020년 10월 초부터 한 달간 신세계백화점은 본점을 포함한 12개 매장에서 ‘추억을 품은 향기 이야기’를 테마로 백화점 곳곳에 다양한 향기를 설치해 고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는 2019년 3월 실시한 봄 향기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재요청에 따라 기획된 이벤트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향수>는 영화 제작과 함께 주요 장면을 표현할 수 있는 15개의 향기를 조향한 바 있다. 티에리 뮈글러는 이 냄새들을 향수 세트로 제작해 한정 판매했다.


지금도 우리 생활 곳곳에서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향기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향기 마케팅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일 터. 많은 브랜드가 향기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고 활용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뉴로마케팅과 후각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뉴로마케팅은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성적인 판단 외에 무의식에서 느끼는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주목한 마케팅 기법이다. 소비자의 무의식 속 제품 및 브랜드에 대한 감정과 소비 메커니즘을 파악해 마케팅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한편 후각은 기억과 감정을 같이 불러올 수 있는 대표적인 감각이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와 달리 후각으로 받아들인 정보는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를 통해 처리되기 때문. 실제 2006년 <마케팅 저널(Journal of Marketing)>지에는 특정 제품을 홍보하거나 판매할 때 향기 마케팅을 접목하면 긍정적인 평가나 선호도가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2013년 삼성의 연구 보고서에도 좋은 향과 함께 쇼핑을 즐긴 소비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실제 쇼핑 시간보다 짧게 느끼고 더 많은 매장을 방문했다는 조사 결과가 게재됐다. 이처럼 후각을 자극하는 향은 소비자의 무의식 속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과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뉴로마케팅의 효과적인 매개체인 셈이다. 


모든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향기 마케팅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국내 향기 마케팅의 경향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1996년 설립돼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그랜드 조선 부산 및 제주, 현대건설의 디 에이치 아파트 등 국내 유수 브랜드의 향기 마케팅을 담당해온 기업 센트온의 유정연 대표에게 물었다. “초창기 국내 향기 마케팅은 좋지 않은 냄새를 중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벤더, 로즈, 레몬 등 강한 향취를 선호하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죠. 하지만 최근엔 대중적인 공간으로 향기 마케팅의 영역이 확장되며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향기가 개발되고 있어요. 이전에는 그냥 ‘라벤더 향’이었다면 요즘엔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라벤더밭에서 느끼는 청량한 가을 향기’같이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향기로 표현되고 있죠.” 목적 또한 악취 중화를 넘어 시그너처 향을 통한 브랜드의 이미지 구축, 새로운 제품 및 공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 등 다양해지고 있다. 고객이 집에서도 브랜드 및 공간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기억할 수 있도록 공간의 향을 담은 디퓨저, 룸 프레이그런스, 드레스 퍼퓸, 향주머니, 향수 등을 함께 개발하는 것도 요즘의 향기 마케팅 트렌드. 앞으로도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의 생활 방식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향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향을 활용한 산업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몇 년 전부터 성장하고 있는 홈 프레이그런스 산업이 이를 방증하죠.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의 공간에서 향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향 관련 업종의 매출이 많이 상승했어요. 이런 시대적 상황에 따라 향기 마케팅도 이제 대중적인 공간에서 개인의 공간으로 점점 세밀하고 정밀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정연 대표는 단순히 향기로운 향을 넘어 항균, 소취, 힐링 등 기능성 향기 시장이 더욱 성장할 것이라 덧붙였다. 


우리는 매 순간 호흡하며 다양한 향을 맡고 이를 기억 속에 저장한다.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웠던 시절이 아득한 요즘, 생생한 향을 맡는다는 행위는 소중한 감각의 경험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향기 마케팅과 산업에 주목하는 까닭에는 지난날의 감각을 되찾기 위함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향기 마케팅과 산업이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란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이 감정은 타이핑을 할 때마다 코끝을 간질이는 핸드크림의 로즈메리 향 때문일 수도 있고.    

 

Advice 유정연 대표(센트온) Reference <나는 향기가 보여요>-문제일,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 

 

 

 

 

 

 

 

더네이버, 향기, 향기 마케팅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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