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사랑이 찾아온 찰나의 순간

영화 <화양연화>의 스토리만을 말하는 것은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분위기로 전하는 이 영화가 20년 만에 재개봉한다.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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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설레는 영화가 있다. 왕자웨이의 <화양연화>는 내게 그런 영화다. 첸 부인(장만옥)의 차파오, 차우(양조위)의 넥타이, 아슬아슬한 좁은 통로, 구두 소리, 골드핀치 레스토랑, 그리고 앙코르와트. 난 아직도 좁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차우와 첸부인이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던 장면을 떠올린다. 홍콩 여행에서 골드핀치 레스토랑을 들러야 하는 것은 <화양연화>를 기억하는 자의 의무라 믿는다. <화양연화>는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인물과 사물, 공간, 심지어 그곳을 감싸던 공기의 흐름까지도 우리의 기억에 흔적을 남긴다. 2000년 국내에서 개봉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속 깊이 남은 이 영화가 다시 극장에 오른다. 4K 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이 영화의 감동은 다시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화양연화’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첸 부인과 차우는 첫 만남부터 좁은 통로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 서로 지나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아슬아슬한 지나침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자신의 남편과 부인이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신감을 공유하던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비밀의 시간도 늘어난다. 첸부인과 차우는 서로 밀어내려 할수록 더 강하게 이끌리고, 이내 선택의 순간에 서 있음을 발견한다. <화양연화>를 스토리로 설명하는 것은 이 작품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제아무리 영화 속 장면을 멋들어지게 묘사한다 해도 그 장면에 담긴 사랑의 감정과 그 순간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In The Mood For Love’라는 <화양연화>의 영문 제목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게 흐르는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화양연화>의 올바른 감상법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순간은 찰나와 같아서 우리를 찾아왔다 싶으면 어느새 사라진다. 그 순간을 포착해 화면에 담는 것이 왕자웨이의 목표다. 


지독할 만큼 시간에 집착하는 왕자웨이의 특성은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 왕자웨이가 보여주는 사랑은 첸 부인과 차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그 시간적·공간적 ‘사이’에 존재한다. 차우는 한 호텔의 ‘2046호실’(이는 왕자웨이가 <화양연화> 후속편으로 만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곳을 찾은 첸 부인은 그 객실 앞에서 오가기를 반복한다. 첸 부인의 발걸음이 보여주는 전진과 후퇴의 움직임,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구두 소리는 사랑과 도덕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 마음의 쿵쾅거림을 그대로 담는다. 


<화양연화>는 궁극적으로 사랑의 실패담이다. 각자의 공간에서 이별을 직감한 두 사람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은 영화 후반부의 장면은 ‘슬프기에 아름답다’. 영화에서 이 장면만큼 두 사람이 아름답게 느껴진 장면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이별의 순간에 찾아오는 아이러니. 영화 엔딩에서 차우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향한다. 몇백 년간 정글 속에 비밀로 묻혀 있던 앙코르와트에 차우는 자신의 기억을 담아 순간의 사랑을 영원의 시간으로 봉인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영화는, 아직 없다. <화양연화> 외에는.  

 

※ 이 글을 쓴 안시환은 영화 평론가이다.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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