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출신 요리사가 해외 레스토랑에서 단련하는 일은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배경이 현대 미식의 최고봉인 덴마크의 ‘노마(Noma)’라면, 궁금증이 피어난다. 노마에서 셰프 드 파티(Chef de partie, CDP)로 일하는 2001년생 요리사 변종인은 일찍이 세계 무대를 꿈꿨다. 스톡홀름 ‘프란첸(Frantzén)’에서 견습 생활을 경험한 뒤 서울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에빗’에서 수 셰프로 성장했고, 프란첸의 자매 레스토랑인 싱가포르의 ‘젠(Zén)’을 거쳐 2023년 ‘노마’에 합류했다.
장소를 옮겨 미국 LA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둔 그가 지난 7월, 서울의 플라야 라운지에서 팝업 디너를 선보였다. 그간의 경험과 기량을 집약한 5코스 요리는 호평을 이끌었다. 팝업을 위해 한국에 방문한 영 셰프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1 레스토랑 젠의 가금류 요리. 일본 허브인 미쓰바와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였다. 2 플라야 서울 팝업 디너에서 선보인 물회. 3 노마의 2025 여름 메뉴 ‘플라워 핫팟’. 4 젠의 한 입 거리 타르트.
어린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어요. 언제부터 요리사를 꿈꿨나요? 어릴 적 과학을 좋아했고, 화가를 꿈꿀 정도로 손으로 하는 일에 관심이 컸어요. 초등학교 방학 때 집에서 두부를 만든 적이 있는데, 간수를 부어 두부를 굳히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요리 세계가 막연하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임정식 셰프님이 뉴욕 ‘정식’의 메뉴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고, 파인 다이닝과 <미쉐린 가이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일찍이 해외로 시선을 돌린 계기가 궁금해요.열일곱 살 여름방학 때 돈을 모아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 ‘기 사부아(Guy Savoy)’를 방문했어요. 학생이라 신용카드가 없어 현금을 챙겨 갔는데, 유료인 물 값에 서비스 비용까지, 메뉴판 속 가격보다 100유로나 더 비싼 거예요. 다이닝이 처음이라 몰랐던 거죠. 영어도 불어도 하지 못해 번역 앱으로 겨우 소통했더니 레스토랑 측에서 양해해주고 주방도 구경하게 해줬어요. 거기서 또래 프랑스인이 견습생으로 일하는 모습도 보았고요. 그렇게 견습생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서울로 향했죠. 처음 견습생으로 일했던 ‘레스토랑 오세득’에서 만난 외국인 셰프의 권유로 ‘에빗’의 문을 두드렸어요. 이전부터 막연히 해외 생활을 상상했지만 에빗에서 조셉 리저우드 셰프를 만나 시야가 넓어졌어요.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할 수도 있었는데 자퇴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남보다 뒤처지는 게 싫었어요.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제 또래 아이를 보았으니, 검정고시를 치른 뒤 유학을 떠날 생각이었죠. 그래서 주말에만 견습생으로 근무했어요. 그러던 중 조셉 셰프에게 서울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아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했어요.
이후 스웨덴의 프란첸과 싱가포르 젠에서 경험을 쌓고 노마에 지원했어요. 노마는 살아 있는 전설과 같은 레스토랑이라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1년 뒤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도전을 결심했어요. 또 레스토랑을 선택할 때 가능한 한 한국인이 없는 곳에 가려고 해요. 젠이 재패니즈-프렌치 스타일이었기에 정반대의 요리를 시도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어요.
실제로 경험한 노마는 어땠나요? 레시피를 그램, 방울 단위까지 정확히 체크하는 젠과 달리, 노마는 정밀함을 추구하지 않아요. 핀셋을 사용하는 대신 손으로 빠르게 플레이팅해서 메뉴를 내보내는 식이죠. 음식으로 사람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노마의 목적이기 때문이에요. 온기 있는 음식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요리사들이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신경 써요. 성격상 젠이 더 잘 맞지만 노마가 추구하는 방향을 이해하기에 둘을 융합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노마에서는 CDP로서 어떤 파트를 담당했나요? 노마는 다른 레스토랑처럼 파트가 나뉘어 있지 않아요. 대신 CDP가 각자 한 메뉴를 맡아 팀장 역할을 해요. 시즌 시작 전 테스트 키친에 모이면 헤드 셰프가 메뉴를 시연해요. 그러면 CDP들은 담당 메뉴를 효율적으로 완성할 방법을 연구하는 거죠. 예를 들어 셰프가 종이를 하나하나 칼로 오려 나비 모양을 만들었다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3D 몰드를 발주하는 게 저희의 역할이에요.
노마에서 3년을 근무했어요.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9월에 LA의 레스토랑 ‘솜니(Somni)’에 합류할 예정이에요. 스페인 ‘엘 불리’의 수 셰프였던 아이토르 사발라(Aitor Zabala)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재오픈 7개월 만에 미쉐린 3스타를 받았어요. 스페인 요리 테크닉은 물론 레스토랑 운영이나 재무 등 많은 것을 배우리라는 기대가 커요.
유럽에서 방문한 다이닝 중 인상에 남은 곳을 소개해주세요.덴마크에서는 ‘알케미스트(Alchemist)’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레스토랑이에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제시하기 위해 메뉴를 플라스틱처럼 만들고, 고객의 SNS 속 사진을 음식에 프린트해서 내놓기도 해요. 마드리드의 ‘디베르소(DiverXO)’는 스패니시 퀴진에 아시안 터치를 더한 곳인데, 매운맛을 활용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볶음밥의 마지막 한 숟가락을 긁어 먹듯이 자꾸 생각나는 맛이랄까요.
이번 서울 팝업을 위해 어떤 메뉴를 준비했나요? 색깔이 저마다 다른 다이닝에서 일했다는 것이 저의 강점이에요. 그래서 여러 레스토랑의 개성을 조합해 메뉴를 준비했어요.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요소인 신맛과 매운맛은 꼭 더했고요. 콜드 디시 ‘물회’는 노마의 샐러드와 고향인 경남식을 접목했어요. 단새우, 홍합, 가리비 등의 해산물과 오이꽃, 돌나물, 당귀꽃을 활용했고, 발효한 쌀뜨물, 고추장, 매실청으로 맛을 냈어요. 월계수잎 식초는 산미를 담당하고요. 콩을 주제로 만든 메뉴도 있어요. 같은 맥락 속에서 각국의 고유한 문화가 녹아 음식이 탄생하는 데서 착안했어요. 청서리태로 만든 한국식 순두부와 일본의 유바(두부피), 스페인식 콩 분말 폼을 조합한 뒤 멸치 육수와 명란젓, 우니를 더했어요.
미래에 오픈할 나만의 레스토랑을 상상해본다면요? 제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비단 요리 때문에 오지 않아도 돼요. 의자가 편해서 와도 좋고, 음악이 마음에 들어 들를 수도 있어요. 음식은 호불호의 영역이라 모든 사람에게 맞을 수 없잖아요. 무엇보다 다이닝은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골이 많고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는 레스토랑이 되길 바라요. 요리는 지금처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저만의 것이 탄생하지 않을까요?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DITOR : 박지형PHOTO :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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