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밀라노와 베니스 사이, 지성의 도시 파도바

밀라노와 베니스 사이, 놓칠 수 없는 도시 파도바로 떠나는 시간 여행 .

202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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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바는 이탈리아 북부의 강소 도시로 서쪽으로는 밀라노, 동쪽으로는 베니스, 남쪽으로는 피렌체에 둘러싸여 있다. 주변 도시의 유명세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지만,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유서 깊은 교육과 문화예술의 도시다. 
전설에 따르면 파도바는 트로이의 영웅 안테노르가 기원전 1183년에 세웠다고 한다.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아스가 로마를 세운 것이 기원전 753년이니 로마보다 400여 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셈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곳이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천혜의 지형 덕분이다. 비옥한 평야가 있고, 강줄기가 도시를 섬처럼 감싸 요새 역할을 해주며, 강이 베네치아의 바다로 연결되어, 내륙의 농산물과 자원을 지중해로 실어 나르는 물류의 거점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파도바는 유럽 최대 규모의 물류 터미널을 갖춘 무역 도시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1, 4  파도바 도심. 2 스크로베니 예배당 외관. 3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 하늘을 나는 천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예술을 통한 속죄 

파도바의 부가 찬란하게 꽃피운 시대는 중세다. 부유한 은행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고리대금업으로 악명이 높았던 아버지의 죄를 씻어내고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건축한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가장 유명한 명소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를 연 혁신적인 거장 조토 디 본도네가 1303년부터 1305년 사이 완성한 프레스코화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은 예배당 패러디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현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로마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 벽화가 16세기 르네상스의 대가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을 보여준다면,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벽화는 그보다 200년 앞선 예고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규모도 달라졌다. 시스티나 성당 벽화가 높이 약 21m에 폭 13m, 길이 약 40m의 압도적인 대서사에 가깝다면, 스크로베니 성당 벽화는 높이 13m, 폭 8.5m, 길이 약 20m의 소박한 사이즈다. 
조토는 예배당을 가로 세 줄로 나누어, 모두 38개의 패널로 완성했다. 내용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다. 전체적으로 배경을 파란색으로 통일했는데, 준보석 광물로 만든 가장 비싼 안료로 작업해 이 성당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당대 피렌체에서 가장 명성을 날리고 있던 조토를 초청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작품은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으로 미술사에 기록된다. 먼저 남쪽 벽 상단부의 성모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과 안나가 황금문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자. 아이가 없어 상심해 있던 안나가 천사에게 곧 임신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성문에서 남편을 만나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포옹을 하며 입맞춤을 하고 있는데, 세계 최초의 ‘키스’ 장면이다. 또한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장면에서도 노란 옷을 입은 유다가 예수에게 입맞춤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감정 표현의 절정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 하늘의 천사들이 머리를 감싸고 절규하는 모습은 이전의 경직된 중세 미술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파격이다. 구체적으로 신을 묘사하는 것도 금지되어 인간 신체의 볼륨감도, 사실적인 표현도 자제하고 딱딱하게 그려졌던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낸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중세의 끝이자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어로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및 예술 부흥 운동으로, 신 중심의 중세에서 벗어나 인간의 개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되살리고자 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전환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사회 곳곳의 여러 변화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미술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을 1305년 완성된 조토의 스크로베니 예배당 벽화로 꼽는다면, 문학에서는 단테가 1321년까지 약 20년간 집필한 서사시 <신곡>을 꼽는다. 
저자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 단테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만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당대의 통념을 벗어나 처음으로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서술하고, 인간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색욕, 폭식, 탐욕, 분노 등 여러 이유로 지옥에 빠진 신화 및 역사 속 인물 중에는 당대의 무능하고 부패한 교황은 물론, 여러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점이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탄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파도바의 부유한 고리대금업자 레지날도 스크로베니가 사망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그의 아들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아버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털어내고,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예배당을 지었다. 일종의 면죄부인 셈이다. 예배당 제단 중심의 십자가 아래 천사들의 편에서 예배당을 하늘에 봉헌하는 인물이 바로 엔리코 스크로베니고, 반대편에 지옥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속죄의 행위로 지어진 예배당임에도 그의 집안 사람들만을 위한 저택에 부속된 호화로운 개인 용도의 건축물이라는 점은 진심 어린 회개였는지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결국 단테의 <신곡> 속에서 스크로베니는 다른 고리대금업자들과 함께 지옥에 떨어져 불비를 맞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1  1222년 설립된 파도바 대학, 40인의 방. 벽면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학교 관계자들의 초상 조각이 걸려 있다. 2 파도바 대학 전경. 3 1594년 설립된 파도바 대학의 인체해부학 극장. 세계 최초의 고정식 상설 해부학 교실로 가파른 타원형 계단식 극장으로 구성하여 최대 300명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1 세계 최초의 여성 박사학위를 받은 파도바 대학 졸업생, 엘레나 피스코피아의 조각상. 2 파도바 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흉상. 3 파도바 대학 식물원. 1545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학 부속 식물원으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탈리아 지성의 뿌리, 파도바 대학

파도바의 두 번째 보석은 바로 파도바 대학이다. 1088년 설립된,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의 엄격한 통제와 교회의 간섭에 반발한 교수와 학생들이 학문의 자유를 찾아 파도바로 집단 이주해 1222년 세운 대학이다. ‘파도바의 자유는 모두를 위한 것이며, 모든 곳에 존재한다’를 모토로, 학생과 교수의 자율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며 설립되었다. 파도바의 중심에 대학이 있을 만큼 파도바는 깨어 있는 지성의 도시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과 나치 점령군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학생운동이 활발하며, 인권이나 환경 이슈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저항의 도시로 꼽힌다. 학문적 성과도 상당하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과학자가 이 대학 출신이며, 지금도 약 6만 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으로 의학, 심리학, 항공우주공학, 물리학 분야는 이탈리아 내 1, 2위를 다툰다. 
유서 깊은 학교인 만큼 파도바를 찾는 관광객 중에는 대학을 둘러보는 이들이 많아 학교에서는 투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은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방문하기도 용이한 편이다. 투어는 지금도 학생들의 박사논문 발표회나 중요한 회의실로 사용되는 ‘40인의 방’에서 시작된다. 이곳 벽면에는 수많은 관계자들의 초상 조각이 걸려 있는데, 그중 갈릴레오 갈릴레이 교수는 거의 주인공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592년부터 1610년까지 18년간 이 대학의 수학 교수로 재직하며 망원경을 개량해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는 등 근대 과학의 기틀을 닦았다. 훗날 종교 재판으로 고초를 겪었으나, 사후 그의 명예가 회복되며 시신을 산타 크로체 성당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그를 숭배한 이들이 시신의 일부를 떼어내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지금 대학 및 과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1678년 여성으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엘레나 코르나로 피스코피아의 조각도 만날 수 있다. 그녀는 베니스 명문 귀족과 평민 어머니 사이의 자녀로, 사생아였지만 아버지의 지위가 올라가면서 점차 귀족 대접을 받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여겨질 만큼 여러 언어와 악기를 다룰 수 있었고, 20대에는 물리학, 천문학, 언어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 대학에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고 매진한 끝에, 신학 학위는 불가했지만 철학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박사 논문 발표와 학위 수여식 때 군중 앞에서 라틴어로 연설하며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위를 받고 6년 뒤인 38세에 결핵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박사학위 이후의 상황이다. 엘레나가 학위를 받은 지 몇 달 후, 파도바의 한 의학교수가 자신의 딸을 학위 과정에 신청했는데, 당시 대학은 여성의 졸업을 금지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 배후에는 자신의 딸만 예외적으로 학위를 받은 뛰어난 인물로 남겨두려는 엘레나 아버지의 의도가 있었다. 이 가문의 지원을 받은 파도바 대학은 그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1594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해부학 강의실이다. 깔때기 모양의 극장식 구조로, 아래에서 진행되는 해부학 과정을 위에서도 내려다보게 되어 있다. 당시 해부는 교회의 금기를 깨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지식 탐구에 열정적인 학자들에 의해 계속되어왔다. 
한편 파도바 시내의 식물원도 바로 파도바 대학에서 설립한 세계 최초의 대학 부속 식물원이다. 식물원은 감상, 식용, 연구, 휴식 등 여러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은 특히 의대생들이 약초를 연구하여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만든 연구실에 가까운 곳이다. 1786년 이곳을 방문한 괴테가 부채꼴의 야자나무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아 <이탈리아 여행기>에 남겼다. 1585년에 식재한 이 나무는 지금도 살아 있어 수령이 440살에 달한다. 이 나무는 식물원을 찾는 사람들이 꼭 보고 싶어 하는 인기 식물이 되어, 최근에는 별도의 유리 온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 프라토 델라 발레 광장, 18세기 건립. 2 안테노르의 무덤 전쟁으로 트로이가 멸망한 후 살아남은 무리를 이끌고 파도바로 건너와 도시를 건립한 시조로 알려져 있다.  3 파도바 시내 에르베 광장(Piazza delle Erbe). 약초나 채소 시장이 열리던 파도바 시내 중심부. 지금도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시장이 열린다.    

 

 

시민이 주인인 도시

프라토 델라 발레 광장은 파도바의 모든 역사와 정체성을 아우르는 곳이다. 18세기 말 정비된 곳으로 넓이가 약 9만m2에 이르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거대한 광장 한가운데에 작은 섬 같은 원형 구조가 있는데, 섬의 가장자리를 수로가 둘러싸, 강으로 둘러싸인 파도바의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을 연상시킨다. 광장을 둘러싼 78개의 조각상은 도시의 설립자 안테노르, 파도바 대학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 등 파도바를 빛낸 인물들을 기념한다. 최근에는 79번째 동상으로 엘레나를 세우자는 청원이 활발히 일어났으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광장의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에 부딪혀 아직 세워지지는 못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토록 넓은 광장이 있다는 것은 파도바가 시민이 주인인 도시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광장을 채우는 것은 바로 시민의 활동이다. 매일 저녁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들, 주말마다 열리는 장터, 계절별로 열리는 스포츠와 레저, 시민을 위한 축제가 그것이다.  
광장을 비롯해 파도바 시내를 다니다 보면 오랜 시간 지성과 자유, 시민의식을 지켜온 도시의 묵직한 여유와 품격이 느껴진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최초’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선구적인 지성이 있고, 발전이 더딘 도시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현대화가 갖춰졌고, 화려한 관광 도시가 되어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의 밀도를 느낄 수 있는 도시, 점잖은 이탈리아를 만나고 싶다면 바로 이곳 파도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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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김영애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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