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이국의 도시, 마라케시에서 포착한 예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통용되고, 흑인보다는 베르베르족과 유럽과의 혼혈 인구가 더 많이 살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곳. 북아프리카에 위치하지만 ‘몸은 아프리카에, 머리는 아랍에, 눈은 유럽에’라는 표현이 걸맞은 이국적인 도시, 바로 마라케시다.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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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 시내의 쿠투비아 모스크 탑(미너렛)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하지만 여러모로 유럽적 분위기가 흐르는 나라다. 20세기 들어 한참 동안 프랑스 보호령 아래 있어 인구의 35% 이상이 프랑스어를 구사할 정도다. 또한 북부는 스페인과 맞닿아 있어 스페인어도 종종 쓰인다. 인종도 흑인보다는 베르베르족과 아랍계, 그리고 유럽인과의 혼혈 인구가 더 많이 살고 있고,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어 중동 같은 느낌도 있다. 그야말로 ‘몸은 아프리카에, 머리는 아랍에, 눈은 유럽에’라는 표현이 걸맞은 곳이다. 
이러한 특징은 모로코의 역사로부터 기인한다. 고대 로마제국의 일부였다가,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국이었다가, 788년에 이 지역의 토착민인 베르베르인에 의해 이드리스 토후국이 세워졌다. 이 이드리스 토후국을 모로코 국가의 기원으로 여긴다. 이후 중동 지역의 아랍인과 스페인에서 쫓겨난 무어인의 이주로 아랍 문화가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1912년 프랑스의 보호령 아래 있을 때도 이슬람 문화와 기존의 왕조 체제를 유지하면서 그 위에 프랑스식 행정과 도시 계획을 접목했다. 그 결과 모로코의 도시는 미로 같은 구시가지와 넓은 도로가 있는 유럽식 광장이 공존한다. 또한 이 시기 건설된 철도는 지금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져 국가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모로코는 1956년 왕정을 유지한 채 공식 독립하였고, 현재도 왕정을 유지하고 있다. 무함마드 6세 국왕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종교적 권위도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시민들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등 온건한 개혁과 경제 발전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국왕은 헌법을 개정해 국왕의 권한을 축소하고 총리와 의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금도 대통령은 없고 국왕이 최고 통치권자 역할을 맡지만 총리와 의회가 함께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모로코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이유도 큰 국가적인 혼란 없이 안정을 유지해온 덕분이다. 

 

 

 

1, 3, 4 마라케시의 가장 대중적인 명소, 제마 엘프나(Jemaa el-Fnaa) 시장과 광장. 2 마라케시 국제공항. 모로코의 전통 이슬람 건축 양식이 현대적인 기술로 펼쳐진 사례로, 스위스 건축사무소 E2A와 현지 건축가 압두 랄루(Abdou Lahlou)가 설계했다. 

 

예술가를 끌어들이는 도시 

모로코를 오늘날 전 세계에 알린 건 바로 예술가들이며, 그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건 바로 모로코의 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100년 전 마티스가 탕헤르(Tangier)를 방문한 후 더욱 화려한 색채를 갖게 되었다면, 이 시대의 마티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색채 감각이 독보적인 현대미술 작가 캐서린 번하드(Katherine Bernhardt)는 모로코에 반해 현지인과 결혼하며 이곳의 카펫을 미국에 알리기도 했다. 세로로 길게 뻗은 국토 덕분에 지역마다 기후적 특징이 다르고, 그에 따라 도시의 색도 다르다. 대체로 사막과 황토색 흙으로 이루어졌지만, 카사블랑카는 ‘하얀(블랑) 집(카사)’이라는 이름처럼 하얀 건축이 지중해의 햇살을 반사하는 도시다. 셰프샤우엔(Chefchaouen)은 15세기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하늘과 신을 상징하는 푸른색으로 집을 칠해놓아 곳곳에서 파란색을 볼 수 있는 도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붉은 도시로 알려진 마라케시(Marrakesh)다. 붉은 진흙과 사암을 섞어 만든 벽돌로 성벽과 주택을 지은 탓에 도시 전역이 장밋빛을 띤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붉은 노을이 붉은 흙벽에 반사되어 도시 전체가 불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피어난 이 강렬한 색감은 생명력과 삶의 환희를 불어넣는 에너지가 된다. 사막 도시 마라케시는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선선하고 온화한 겨울이 특징으로 생각보다 살기 좋은 기후다. 아틀라스산맥에서 내려오는 물 덕분에 올리브와 감귤류 같은 농작물이 재배되고, 도시 곳곳에 다양한 가든이 조성되어 있다. 도시 외곽에는 녹지와 정원이 많고, 최근에는 자연 지형을 활용한 골프장도 조성되어 휴양지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마라케시를 모로코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는 이곳이 고대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11세기 베르베르 부족의 무라비트 왕조가 이곳에 제국을 건설하며 베르베르어로 ‘신의 땅’을 의미하는 마라케시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뒤를 이은 여러 왕조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및 북부 아프리카를 통합할 정도로 강대했고, 마라케시는 제국의 수도다운 위성을 다졌다. 높이 77m의 쿠투비아 미너렛이 바로 이 시기, 1195년경 세워진 것으로 당대 제국의 위세를 보여준다. 도심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보다 더 높은 건축물은 짓지 못하는 방침을 두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이 탑은 마라케시 도심 어디에서도 눈에 들어와 마치 파리의 에펠탑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라케시라는 이름은 일찍부터 외국에 알려졌고, 마라케시를 라틴어식으로 발음한 ‘모로코’가 국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수도는 라바트(Rabat)이지만 여전히 마라케시가 모로코의 정신적, 예술적 수도 역할을 하는 셈이다. 

 

 

 

1, 2, 3, 4 이브 생 로랑 뮤지엄. 프랑스의 스튜디오 KO가 설계했으며, 벽돌을 쌓아 직물의 씨실과 날실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  

 

자크 마조렐과 이브 생 로랑
오늘날 마라케시를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만든 인물로는 단연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66년, 서른 살 나이에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다. 붉은 흙빛 건물, 강렬한 색채, 이국적인 식물과 따뜻한 사람들. 마라케시는 그에게 창작의 원천 자체였다. 사실 이브 생 로랑은 모로코의 이웃 나라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성장한 그는 프랑스와 북아프리카 두 곳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마라케시는 프랑스도, 고향도 아닌 제3의 영감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가 특히 사랑한 곳은 그보다 먼저 마라케시의 매력을 발견한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Jacques Majorelle, 1886~1962)의 가든이다. 그는 프랑스 낭시 출신으로 아르누보 시대의 대표작가 루이 마조렐의 아들이다. 아르누보의 중심 도시였던 낭시 출신의 그는 마을에 있던 목공, 도장, 금속 등 각 분야 장인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낭시에 이어 파리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1917년, 30세에 요양을 위해 방문한 마라케시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그는 마라케시에 정착하여 정원을 조성해 가꾸며 40여 년의 시간을 보낸다. 정원 안의 빌라에 바른 푸른색은 ‘마조렐 블루’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독특하고 신비롭다. 그러나 1962년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점차 황폐해져 1980년대에는 철거 위기에 놓였다.
마라케시에 별장을 두고 자주 방문하며 이곳을 사랑했던 이브 생 로랑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는 마조렐 정원을 인수해 복원했고, 바로 옆에 이브 생 로랑 뮤지엄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모로코의 모든 색이 다 깃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브 생 로랑 뮤지엄 건축의 붉은 벽돌, 셰프샤우엔을 연상시키는 푸른색 빌라, 자연의 초록색, 타일의 하얀색, 곳곳에 칠해진 노란색과 주황색 화분, 다양한 빛깔의 비단잉어는 생생한 생명력을 뿜어내며 각기 다른 존재감을 발한다.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보고 있자면, 늘 새로운 창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던 이브 생 로랑에게 이곳이 마음의 쉼터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며 만개한 색의 박동은 그 자체로 창작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마라케시 최고의 관광지로 떠오른 마조렐 정원 앞에는 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일찍부터 온라인 예약을 해야만 입장표를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대별로 입장 시간이 나뉘어 있어 표를 사도 들어가기 위한 긴 대기 줄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일까, 줄 서서 힘들게 들어왔기 때문일까? 일단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낙원처럼 아름다운 요소가 곳곳에 가득하다. 

 

마라케시의 보석들
마라케시를 사랑한 사람은 이들뿐이 아니다. 1910년에 지어진 다르 엘 바샤 궁전은 당시 마라케시의 통치자였던 총독의 집으로, 중앙의 사각형 정원을 중심으로 사방이 6개 방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리야드 양식의 건축물이다. 정부 청사로 쓰이던 이 건물이 뮤지엄으로 개조된 데에는 모로코를 사랑하고 후원한 패티 버치(Patti Birch)의 컬렉션이 있었다. 그녀는 화상이자 컬렉터이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후원자로, 1987년 마라케시를 방문한 이후 중동 지역의 문화와 예술에 매혹됐다. 이후 마라케시의 에펠탑이라 할 수 있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민바르(이맘이 설교하는 강단)를 복원하는 후원자 모임을 주도했으며, 1999년 다양한 문명의 보석과 유물로 구성된 소장품의 상당 부분을 모로코에 기증했다. 버치 여사와 모로코시는 이 귀한 컬렉션을 보존하고 전시할 장소로 다르 엘 바샤 궁전을 선택했고, 오랜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7년 컨플루언스 박물관(Confluences Museum)으로 개관했다.
이 박물관 내부에는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바샤 커피’ 1호점이 있다. 1910년대 이 궁전에서 자크 마조렐, 찰리 채플린과 같은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던 사교 문화를 계승했다는 마케팅을 취하고 있는데, 실은 2019년 싱가포르에서 론칭한 현대적인 브랜드다. 박물관 내 커피하우스를 복원하는 것과 때를 맞춰 구성한 가상의 스토리로, 형제 회사라 할 TWG 티하우스와 같은 맥락이다.
한편 엘 바히아 궁전의 스토리는 진짜인데도 마치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적이다. 흑인 노예 가문 출신인 한 장군이 뛰어난 지략과 정치적 감각으로 술탄의 신임을 얻어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고, 1900년 무렵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는 궁전이다. 중앙 광장 주변을 둘러싼 여러 방은 과거에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여성들만의 공간 하렘(Harem)으로 4명의 부인을 동등하게 대접하기 위해 같은 사이즈로 방을 구성했다고 한다. 천장과 벽의 화려한 나무 조각과 타일, 거대한 규모가 당대의 권력을 말해주는 듯한데, 안타깝게도 장군이 죽자마자 그의 재산이 순식간에 약탈당했다고 한다. 

 

 

 

1  마조렐 정원. 중앙의 파란 빌라는 피에르 베르제 뮤지엄으로, 베르베르 전통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2 모로코의 문화재 복원을 후원하고 수많은 컬렉션을 기증한 미국 여성, 패티 버치의 초상. 컨플루언스 박물관 전시 장면. 3 다르 엘 바샤 궁전 내 커피숍, 바샤 커피. 4 다르 엘 바샤 궁전 내부 정원. 현재는 컨플루언스 박물관으로 활용 중이다.  

 

관광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의 재건
이처럼 과거 모로코와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의 열정적인 스토리는 오늘날 일반 대중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그 관심 덕분에 적극적으로 과거의 문화 공간이 복원 중이다. 수공예와 향신료 농업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는 도시라 관광업과 부동산 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편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도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의 유입으로 도시를 재건하고 전통을 지켜 나가는 선순환의 동력이 되고 있다. 가장 럭셔리한 곳은 18세기 술탄의 공간이었다가, 1923년 호텔로 변모한 라 마무니아 호텔이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화려한 건축과 거대한 정원을 자랑하는데,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은 겨울마다 이곳을 찾아 마라케시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고 한다. 한편 가장 대중적인 공간으로는 제마 엘프나 광장을 들 수 있다. 향신료와 직물, 수공예품을 파는 시장이 열리고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가득한데,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유산이라 할 만하다. 
가장 럭셔리한 곳에서 가장 대중적인 곳까지, 마라케시는 모든 이국적인 것들이 응축된 도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낯선 곳에서 어린 시절의 고향이나 과거일 수도 있고 동화책이나 영화에서 본 신비로운 기억일지도 모를 무언가가 떠오른다는 점이다. 마법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렸던 영화 속 주인공이 비로소 과거의 조각을 되찾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영화 속 장면처럼,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잊고 있던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게 된다.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는 영감의 원천으로서 마라케시는 앞으로도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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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김영애(아트 칼럼니스트 이안아트컨설팅 대표)PHOTO : Ianart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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