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와 마천루, 사막 위에 세워진 신기루처럼 여겨진 아랍에미리트가 점차 강력한 실체를 지닌 문화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는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구축한 자본을 소프트 파워에 투자하여, 석유 산업의 쇠퇴를 대비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국가적 비전과 막대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
2026.01.30
1, 3 아부다비,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 Sheikh Zayed Grand Mosque. UAE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셰이크 자이드’라 이름 붙인 곳. 2 두바이, 미래박물관 Dubai, Museum of the Future. 4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DIFC), 게이트 빌딩. 두바이 국제금융센터의 상징적인 관문 건물로, 왼쪽에는 아랍에미리트의 초대 대통령, 오른쪽에는 초대 부통령이자, 두바이 초대 통치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아랍에미리트 국가가 추구하는 비전의 정수는 바로 아부다비의 ‘뮤지엄 아일랜드’ 구축으로, 1830년대부터 베를린에 설립된 뮤지엄 섬에 견줄 만하다.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4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침체된 국가적 위상을 높이고, 베를린을 런던, 파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문화 수도로 격상시키기 위해 슈프레섬 위에 다섯 개의 박물관을 집중적으로 설립했다. 특히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고대 문물을 집중 수집하고, 이를 독일 학문과 문화로 연결시킴으로써 프로이센(현 독일)이야말로 유럽 문명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내세우고자 하였다. 이제는 아부다비 사디야트섬에 고대 문명뿐 아니라 현대 디지털 미디어를 아우르는 온갖 종류의 박물관이 들어서 문화의 새로운 수호자를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1~3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 4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2017년 개관.
가장 대표적인 곳이자,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이 2017년 개관한 루브르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도입부는 서구와 동양,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중동 지역의 예술품을 비교 전시하는 교차 문화적 테마로 시작한다. 하나의 유리관 안에, 서구의 가톨릭과 기독교, 동양의 불교나 도교,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교에 관련된 예술품을 각각 하나씩 모아, ‘모자상’, ‘의식용 그릇’ 등 인류 공통의 테마로 묶은 것이다. 사는 지역과 종교는 달랐지만, 결국 그 마음속에 자리한 인류 보편의 정서가 같았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더 이상 타 문화를 배척하는 태도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 이처럼 박물관의 시작은 관람객들이 이슬람교 혹은 중동 지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랜 편견이나 오해를 풀고, 종교와 문화를 초월한 인류 문명의 보편성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박물관의 끝에서, 비로소 장 누벨 건축의 정수를 만나게 된다. 7,850개의 별 모양 패턴을 8개 층으로 겹친, 약 7,500톤의 세계 최대 규모의 돔은 아랍에미리트의 강력한 태양을 막고 내부 온도를 낮추는 친환경적 차양막이자,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빛만으로도 시시각각 달라지는, 아라베스크 무늬를 만드는 빛의 조각품이다. 마치 럭셔리 리조트의 수영장처럼, 박물관 내부에서 물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특별하다. 인공섬 위에 지어진 건축물로, 인공적으로 조성된 수로를 따라 아라비아만의 바닷물이 박물관 주변을 둘러싸도록 조성한 덕이다. 덕분에 박물관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특별한 장소로 떠올랐으며, 카약을 타고 박물관 주변을 돌아보는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 프로그램을 즐길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새로운 박물관이 속속 개관하고 있다. 2024년 미디어 아트 전용관 ‘팀랩 페노메나’에 이어, 2025년 11월에는 자연사 박물관과 노먼 포스터 건축가가 참여한 자이드 국립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2026년에는 프랭크 게리 건축의 구겐하임 미술관도 완공될 예정이다. 또한 이슬람 종교를 세계 종교와 협력 관계로 보는 ‘아브라함 패밀리 센터’도 지척에 있다. 가나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이며, 미국 워싱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박물관을 디자인한 데이비드 아자예(David Adjaye)가 설계한 세 개의 건축물이 그것이다. 이슬람 사원, 기독교 교회, 그리고 유대교 시나고그를 하나의 단지 안에 동일한 크기로 배치한 것으로 각각의 지향점인 메카, 동쪽, 예루살렘 방면을 향하고 있다. 이는 종교 간 대화와 화합, 관용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2019년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사상 처음으로 아부다비를 방문하여 이슬람 수니파 최고 지도자를 만나 인간의 형제애 선언에 공동 서명한 것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1~4 아부다비 아트페어. 2007년 아트파리 아부다비로 출발, 2009년부터 ‘아부다비 아트’로 개명, 중동 지역 최대 아트페어로 성장했다. 2026년부터 프리즈 아부다비로 전환할 예정이다.
사디야트섬에서는 매년 11월 ‘아트 아부다비’가 열린다. 2007년부터 시작된 중동 지역 최장수 현대미술 아트페어로, 국가문화부 주도하에 약 70곳의 갤러리가 참여하던 행사다. 2025년에는 약 140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최대 규모를 자랑했고, 디자인 페어 ‘노마드’도 같은 시기, 아부다비 구 항공터미널에 행사를 열며 본 행사를 측면 지원했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시기, 작은 도시 바젤에 ‘스코프’ 등 수많은 위성 아트페어가 열리는 것처럼, 같은 시기에 성격과 규모가 다른 여러 페어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곳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다.
2026년부터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그룹인 ‘프리즈 아트페어’로 통합되며 보다 글로벌한 아트페어로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다만, ‘아부다비 문화관광부’와의 협력 형태로, 디렉터 디알라 누세이베(Dyala Nusseibeh)를 수장으로 하는 공공 부문의 주도권은 유지될 전망이다. 2026년 2월에는 카타르에서 아트바젤 페어가 열리는데, 이는 중동 지역 최초의 글로벌 아트페어다. 상반기와 하반기 두 도시에서의 경쟁과 협력은 중동 지역의 미술 허브를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공사가 끊이지 않는 사디야트섬을 둘러보다 보면, 이제 박물관 건립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모양새고, 그 사이사이를 잇는 대형 빌딩들이 눈에 띈다. 세계 곳곳에서 오는 관람객을 위한 호텔, 레스토랑일 뿐 아니라, 이곳에 거주하며 미래 산업을 함께 일구어갈 인재들의 다양한 주거 및 사무 공간들이다. 패션 광고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것도 바로 부동산 광고다. 미래 문화 도시 설립을 위해 국가적 투자도 물론이지만, 세계의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현실적인 유인책도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랍에미리트는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만장자 순유입을 기록한 국가다. 개인 소득에 대한 세금 0% 정책과 장기 거주를 보장하는 ‘골든 비자’는 파격적인 이민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골든 비자는 최소 200만 AED(약 7억5,000만원) 이상의 가치 있는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연간 매출이 일정 기준 이상인 회사를 설립한 사업가, 과학자, 의사, 엔지니어, 예술가, 문화 전문가, 스포츠 스타 등 특정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이나 인정된 성과를 보유한 재능인, 혹은 일정 기간 이상의 고정 수입이나 예치금 기준을 충족하는 퇴직자 등이 취득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를 통해 세계의 자본과 재능을 끌어들여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게다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해, 이 지역 부호들에게 약 8시간 비행 거리 내에 세컨드 하우스를 고민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지역으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K-City 조성 계획도 발표했는데, 이는 단순히 한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쇼핑타운을 넘어, 한국의 스마트시티 기술과 K-라이프스타일을 중동에 이식하여 외국인 거주자와 전문가를 위한 고품격 정주 환경을 구축하려는 양국의 합작 프로젝트다.

1 두바이몰, 젠틀 몬스터. 젠틀 몬스터는 2019년 중동 지역 최초로 두바이몰에 플래그십을 오픈했다. 2 두바이,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가 디자인한 주상복합건축 ‘더 오퍼스’ (The Opus by OMNIYAT). 3 두바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에미레이츠 타워(Emirates Towers).
한편, 두바이의 글로벌 디자인 페어 ‘디자인 마이애미’는 ‘알세칼 애비뉴’와 함께 2027년부터 새로운 디자인 페어를 론칭할 계획을 발표했다. 알세칼 애비뉴는 두바이의 유력 가문이자 주요 후원자인 알세칼(Alserkal) 가문의 이름을 붙여, 기존의 알 쿠오즈(Al Quoz) 산업 지구 내 버려진 창고를 재활용하여 조성한 민간 주도형 창조 공간이다. 이곳은 현재 70개 이상의 현대미술 갤러리, 디자인 스튜디오, 독립 영화관 등이 밀집해 있는 두바이 현대 문화 예술의 심장부로 기능하고 있으며, 두바이의 다양한 창업 생태계와의 협력이 기대되는 곳이다. 곳곳에서 수없이 지어지고 있는 새로운 건축물과 주택 단지를 보고 있자면, 가구 및 인테리어에 어마어마한 수요가 필요할 것은 자명해 보이니, 긍정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 외에도 두바이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의 주요 비즈니스, 무역, 관광 허브로서 다양한 마이스(MICE) 산업을 유치하며 도시를 발전시키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및 스타트업 행사 ‘자이텍스 글로벌(Gitex Global)’, 전 세계 식품 및 음료 산업 박람회 ‘걸푸드(Gulfood)’, 세계 3대 에어쇼로 꼽히는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행사 ‘두바이 에어쇼’, 국제모터쇼, 1996년부터 매년 유치해온 ‘두바이 마라톤’ 등 무수하다. 그래서인지,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업도 두바이에 문화센터를 두고 있는데 바로 ‘자밀 아트 센터’다. 2018년에 문을 연 중동 지역의 주요 현대미술센터 중 하나로, 현재도 중동 및 아시아의 신진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와 공공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이곳은 사우디의 압둘 라티프 자밀(Abdul Latif Jameel) 가문이 설립한 비영리 독립 예술 기관으로, 두바이를 거점으로 삼아 걸프 지역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자밀 그룹은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독점적으로 판매하며 무역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후 건설, 금융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한 대기업이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도 예술센터를 지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도 제다, 리야드 등의 주요 도시에 미술관을 건립하고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등 빠른 속도로 중동 지역의 문화 대국을 따라잡고 있다.

4 두바이, 두바이몰 내에 2023년 조성된 차이나타운. 아시아 스타일 쇼핑 및 음식 문화 공간. 5 두바이, 알 파히디 올드타운 내 전통 시장. 향신료 및 염료용 분말 가게 .
아랍에미리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대국 사우디아라비아는 강력한 경쟁자이자 동반자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할 예정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살바토르 문디’도 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이자 문화부장관이 구매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을 중심으로, 국가 대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래형 도시인 ‘네옴 시티’와 홍해에 고급 관광지를 개발하는 것이며, 유네스코 유적지 알울라에 퐁피두 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문화 예술 허브로 육성하고, 제다 비엔날레 개최, 2030 리야드 만국박람회 준비 등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카타르는 십수년 전부터 미술관을 건립하며 문화적 위상을 다져왔고, 1인당 GDP는 약 7만 달러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나아가, 이 변화는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모로코 등 주변국으로까지 잇따라 확산되며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전체의 문화적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들은 지형적으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이라는 다른 이름의 대륙에 있지만, 이슬람 종교라는 점에서 통합되어 있고, 서구 열강에게 식민 지배 혹은 간섭을 당한 비슷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난한 토착국 혹은 유럽 제국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석유로 짧은 시간 막대한 부를 구축한 국가들이 이제는 문화 국가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다지며,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하는 중이다.
우리 역시 서구의 시선으로만 이들을 바라봤던 편견을 거두고, 새로운 문화적 흐름의 중심이 될 중동에 주목해야 할 시기다. 이들의 막대한 자본과 야망이 만들어내는 질서는 더 이상 ‘오일 머니’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뉴욕이나 파리가 아니라, 중동 지역으로 관광과 출장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이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상생과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모색할 때다. 2030년 이후가 기대되는 이유다.
art columnist KIM YOUNGAE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아랍아트페어
EDITOR :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PHOTO : Ian Art 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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