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에게 닭은 아주 오랜 기간, 따뜻하게 곁을 지켜준 대표적인 식재료다. 퇴근길에 아버지가 사 온 치킨 한 마리를 앞에 두고 가족들은 거실 탁자에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무언의 대화를 이어갔다. 희미하게 번지는 기름 냄새 속에서 서로의 고단함을 어루만져주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닭은 늘 결정적 순간에 식탁에 등장한다. 무더위에 지친 한여름에 번지는 삼계탕 냄새, 생일잔치 상 한가운데를 위풍당당하게 장식한 양념통닭의 자태를 기억하는지. 닭은 그런 아련하고 소중한 기억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닭을 한국인의 소울 푸드라고 하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닭 음식은 역시 튀김이다.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은 이미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미식 격전지인 뉴욕과 런던의 골목에서도 치킨 무와 함께 제공되는 양념과 후라이드 반반 세트는 더는 낯선 조합이 아니다. 뉴욕에 오픈한 꼬꼬닭은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이 얼마나 트렌디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바삭한 튀김옷과 매콤달콤한 양념의 조화는 폭발적인 인기로 한국 문화의 자긍심이 되었다.
닭튀김이 유독 사랑받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닭 요리로는 ‘삶은 닭’을 꼽을 수 있다. 종로와 약수 일대에는 이북식 찜닭을 만드는 노포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고, 동대문에는 닭을 통째로 삶아 내는 ‘닭한마리’가 오랫동안 서울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왔다. 안동식 간장찜닭은 큼직한 당면과 함께 ‘밥도둑’으로 불리고, 춘천에서는 닭을 양념에 재워 철판에 구워 먹는 ‘춘천 닭갈비’가 하나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몸이 허한 날에는 백숙에 소금을 조금 얹어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는 에피소드가 잇따른다. 삶은 닭이 보약의 기능을 해왔다면, 숯불에 구워 먹는 닭은 대표적으로 여수의 약수산장이나 제주도의 신례토종닭식당처럼 지역 농장과 연계되어 갓 잡은 신선한 토종닭을 닭 회, 구이와 함께 제공한다. 몇 년 전부터 은화계, 효계, 계탄집 등 닭구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식당들과 함께 남영탉, 효도치킨 같은 트렌디한 닭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닭 요리는 또한 여러 가지 상징성을 담고 있다. 닭백숙에서도 프라이드치킨에서도 누가 닭다리를 먹는지가 중요하다.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닭다리를 누가 차지하느냐가 식탁의 위계 서열을 보여주기 때문.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닭다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파리의 ‘에피큐어’나 리옹의 ‘폴보퀴즈’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브레스 닭’을 돼지의 방광에 넣어 서서히 찌는 식으로 조리한다. 그리고 닭가슴살만 분리하여 제공하고 나머지는 육수를 내는 데 사용한다. 일본은 닭을 가장 섬세하게 다루는 나라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야키토리를 들 수 있는데, 닭을 꼬치로 만들 때 가슴살부터 염통, 간, 껍질, 목살, 연골, 허벅지살, 엉덩이살, 꼬리살 등 부위별로 분리해서 굽는다. 부위별로 굽기와 양념을 달리하여 다양하고 깊은 맛을 내는데, 단순한 구이가 아니라 닭이라는 재료의 세계를 탐험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도 닭을 조리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중국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닭 손질 방식, 양념 방식, 조리법이 달라 하나의 식재료가 얼마나 무한히 변주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광둥성과 홍콩에서는 무엇보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조리법이 발달했다. 특히 간단히 소금물이나 맹물에 삶아 꺼낸 다음 차갑게 식혀 내는 백잔계/바이잔지는 닭 특유의 담백함과 부드러움이 극도의 감칠맛을 끌어낸다. 홍콩의 대표적인 닭 요리는 홍콩식 바비큐인 시우까이/시우메이다. 간장, 오향분, 샤오싱주, 꿀 등의 양념에 충분히 재운 후 숯불 혹은 고온의 화덕에 노랗게 구워 내는데 윤기가 흐르는 껍질은 아주 바삭하고 속은 놀라울 정도로 촉촉하다. 허난성이나 화북 지방에는 좀 더 토속적인 거지닭이 있는데, 진흙과 연잎에 닭을 완전히 밀봉하여 반나절 이상 숯불에 익혀 낸다. 오래 익혀 극도로 부드러워진 닭에서 뿜어져 나오는 육즙과 향신료, 연잎의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용산 웨이 티하우스에서 본토와 흡사한 거지닭을 먹을 수 있다. 사천 지역에서는 침닭이라고 불리는 구이계가 대표적인데 삶은 닭을 차게 식힌 후 고추기름과 마라, 산초, 식초, 땅콩 등을 곁들여 얼얼하게 매운맛을 낸다. 유럽에서는 닭을 오븐에 굽는다. 버터와 허브를 골고루 바른 닭을 통째로 오븐에 넣어 천천히 굽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로스트 치킨은 그들의 대표적인 가정식이다. 프랑스에서는 닭을 레드와인에 천천히 푹 익혀 내는 코코뱅을 즐긴다. 일본에서는 닭을 샤부샤부로 먹는 방식도 인기다. 얇게 썬 닭고기를 끓는 육수에 담갔다 건져, 채소와 함께 담백하게 먹는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품종인 히나이도리나 나고야 코친 같은 지토리는 살이 단단하고 향이 깊어 이런 요리에 특히 잘 어울린다. 미국의 경우는 바비큐가 1순위로 꼽힌다. 켄터키식으로 천천히 훈연한 바비큐 치킨은 그 자체로 한 끼의 주인공이다. 뉴욕에서는 버팔로윙이 인기인데, 닭날개에 매콤한 핫소스를 입혀 맥주와 샐러리와 함께 먹는 방식으로 전 세계적으로 닭날개 요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중동과 지중해 지역의 닭은 ‘샤와르마’라는 이름으로 회전식 구이 그릴에서 긴 시간 굽는다. 향신료가 깊게 밴 닭다릿살을 얇게 저며내 피타브레드에 말아 먹는 그 맛은 기존의 닭고기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서울 이태원의 ‘두바이 레스토랑’이나 ‘아라빅하우스’에서 맛볼 수 있다.
인도는 닭을 가장 향기롭게 요리하는 나라다. 탄두리 치킨은 빨갛게 물든 외관만큼이나 강렬한 매운맛과 요구르트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탄두르라는 전통 점토로 된 오븐에서 오랫동안 구워 부드러운 살코기와 다양한 향신료가 스모키한 향과 섞여 특유의 맛을 완성한다. 한남동의 ‘인디카’는 요즘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탄두리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곳 중 하나. 태국에는 ‘가이 양’이라는 닭구이가 있다. 레몬그라스와 고수, 피시소스가 어우러진 이 요리는 숯불에서 구워 스모키하면서도 새콤한 향이 올라온다. ‘툭툭누들타이’나 ‘소이마오’에서 이 특유의 이국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좋은 닭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때면 군자역에 위치한 ‘야키토리 루왁’을 찾는다. 간판은 없고 도쿄의 어느 골목 안으로 들어선 것처럼 오래된 기무라 타쿠야 포스터가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작은 식당 안에는 도쿄타워가 불을 밝히고 있고, 블루자이언트 포스터에서 깊은 테너 색소폰 소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화로의 숯불이 연기를 내뿜는 동안 낮고 따듯한 조명 아래 셰프님은 마치 무대 위 배우처럼 재료를 손질한다. 닭고기의 결과 불의 온도에 맞춰 각 부위를 올리는 손끝은 날카롭다. 숯에서는 향기로운 닭고기 향이 올라온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닭은 육계가 아니라 토종닭이다. 최근 한국에는 전통적인 토종닭인 청계, 오골계 외에 지역 및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육성한 소래1호 토종닭, 우리맛닭, 황실토종닭, 제주재래닭 등과 같은 특수 품종이 등장하고 있다. 토종닭은 육계에 비해 지방이 적고 붉은 살이 많아 질긴 편이라, 부드럽게 굽는 기술이 중요하다. 하지만 적절히 구워졌을 때 그 식감, 감칠맛과 육향은 육계가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먼저 등장한 가슴살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하다. 허벅지 살은 파와 함께 타래에 묻혀 극강의 감칠맛과 은은한 불향으로 이어진다. 엉덩이살은 고소하고 깊은 풍미를 퍼뜨리고, 꼬리살은 기름이 적당히 배어 먹는 순간 그 고소한 지방의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염통은 촉촉하고 특유의 식감이 매력적이다. 셰프님은 더 많은 내장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싶지만 유통 구조상 그러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달큰한 표고와 졸깃하고 고소하여 튀기듯이 ‘겉바속촉’으로 굽는 껍질이 재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나오는 피망 속에 넣은 완자구이는 피망의 달큰하고 아삭한 맛과 완자의 뭉근하고 부드러운 맛의 조화로 입안에 폭죽을 터트린다. 모든 꼬치 코스가 끝나면 마무리는 라멘이다. 무엇보다 이 라멘은 꼭 먹어봐야 한다. 진한 닭 육수에 마늘 향이 어우러지고 파채와 꼬들한 면이 그릇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며칠이 지나도 그 감칠맛이 입안을 맴돌 정도로 인상적인 맛이다. 그래서 우리는 닭을 소울푸드라고 한다. 누구나 힘들 때 떠오르는 닭 요리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야키토리 루왁
‘야키토리 루왁’에서는 불의 온도에 맞춘 여러 부위의 닭고기를 맛볼 수 있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구운 가슴살부터 파와 함께 구운 허벅지살, 고소한 엉덩이살까지 토종닭 특유의 감칠맛과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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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변제익(미식 칼럼니스트)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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