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열린 오트 쿠튀르 위크. 패션의 도시로 꼽히는 파리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이다. 이번 2025 S/S 시즌은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오트 쿠튀르 데뷔 쇼부터 110주년을 맞이한 샤넬 오트 쿠튀르,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이 해석한 장 폴 고티에, 한국인 쿠튀리에 박소희의 미스 소희 쇼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했다. 눈을 뗄 수 없는 이색적인 장치로 더욱 웅장해진 무대 위 쿠튀르 정신이 깃든 찬란한 아트피스들을 들여다보자. 

이번 오트 쿠튀르 위크의 메인 이벤트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 데뷔 쇼였다. 현기증을 주제로 한 ‘베르티지누(Vertigineux)’ 컬렉션은 총 48개의 룩으로 구성됐다. 200페이지 분량의 쇼 노트에는 하나의 룩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작업 시간과 각각의 룩이 연상시키는 수십 개의 단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실루엣, 소재, 컬러, 철학, 인물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단어들은 런웨이 위 모델 뒤에 붉은 글씨로 함께 등장하며 색다른 무대를 연출했다. 모두의 이목을 끈 룩은 압도적인 사이즈의 오프닝 드레스. 경쾌한 컬러가 다이아몬드 패턴을 이루며 미켈레의 타고난 컬러 감각을 가장 잘 표현한 이 드레스는 무려 1,300시간이나 걸려 완성됐다고.  

어느덧 110주년을 맞이한 샤넬의 오트 쿠튀르는 색채 예술가로 불렸던 가브리엘 샤넬의 감각적인 컬러를 집중 조명했다. 동틀 무렵의 새벽녘을 표현한 실크 크레이프 소재 파자마, 햇살을 머금은 옐로 트위드 슈트, 달과 태양을 장식한 블랙 벨벳 벨트 등 55개의 룩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컬러 팔레트를 펼쳐냈다. 그랑드팔레 중앙에는 브랜드 로고를 모티프로 한 더블 C 형태의 거대한 런웨이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두아 리파와 릴리 로즈 뎁 등의 해외 셀럽, 지드래곤과 제니, 고윤정 등 국내 셀럽들이 총출동해 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매 시즌 게스트 디자이너를 섭외해 쇼를 진행하는 장 폴 고티에. 지난 시즌 꾸레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스 디 펠리스에 이어 8번째로 루도빅 드 생 세르냉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2017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해 도발적인 젠더플루이드 디자인을 선보여온 1990년생인 그가 장 폴 고티에의 최연소 게스트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린 것. 흠뻑 젖은 머리카락과 밧줄 디테일, 머메이드 실루엣을 통해 쇼의 테마인 ‘난파선’을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16번 룩은 1998년 S/S 시즌 고티에 컬렉션에서 선보인 배 모양 헤드피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이목을 끌었다. 

빅터 앤 롤프와 스키아파렐리는 특유의 과장된 실루엣을 베이지와 골드, 블랙 등 세련되면서 차분한 컬러로 풀어내며, 오트 쿠튀르의 고급스러운 매력을 극대화했다. 지난 시즌 기하학적 실루엣이 돋보였던 빅터 앤 롤프는 베이지 트렌치코트와 화이트 셔츠, 블루 팬츠 등 클래식한 의상을 쿠튀리에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이카루스를 테마로 한 스키아파렐리는 오간자와 실크, 스웨이드 등 소재와 조각적인 실루엣에 집중해 여성의 관능적인 면면을 우아하게 드러냈다. 거기에 은은한 광채를 내뿜는 메탈릭 장식으로 대담한 무드를 연출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배가했다. 

 

 

 

디올과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드라마틱한 실루엣과 섬세한 디테일로 로맨틱한 무드의 쇼를 전개했다.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쇼를 진행한 디올은 하우스 아카이브 속 두 개의 룩에서 힌트를 얻었다. 1952년 F/W 시즌 크리스찬 디올이 선보인 라 시갈 무아레 디너 드레스와 1958년 S/S 시즌 이브 생 로랑의 트라페즈 드레스가 그 주인공. 특히 19세기부터 이어진 시폰 깃털 제작 기술로 완성한 깃털 드레스, 버드 케이지 스커트 위로 오간자와 시폰, 비즈로 만든 작은 꽃을 1,000개 이상 이어 붙여 갈랜드처럼 늘어뜨린 드레스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모로코에 경의를 표하며 선명한 레드와 핑크 컬러를 전면에 내세웠다. 허리가 잘록한 아워글래스 실루엣에 풍성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트레인이 극적인 실루엣을 완성하고, 큼직한 리본을 더해 오트 쿠튀르의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었다. 

쿠튀르 위크를 빛낸 많은 쇼들이 있지만 이번 시즌 더욱 특별했던 쿠튀리에도 있다. 주인공은 한국인 쿠튀리에 박소희와 인도 출신 쿠튀리에 가우라브 굽타. 미스 소희를 전개하는 박소희는 처음으로 공식 게스트 하우스 자격으로 참가하며 더욱 뜻깊은 쇼를 선보였다. 단단한 가죽 소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조각한 코르셋 드레스, 한산 모시로 만든 드레스, 진주로 제작한 헤드피스 등 한국적인 요소를 재해석하고 서구적인 요소를 결합한 독보적인 피스들이 그의 실력을 증명했다. 2023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데뷔한 가우라브 굽타는 지난해 화재로 작업실이 소실되고 파트너가 화상을 입는 큰 사고를 겪었다. 이번 컬렉션은 화재로 인한 상처와 고통, 회복의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것. 움직이는 불꽃을 닮은 구조적 디자인의 코르셋, 두 명의 모델이 입고 등장한 오렌지색 드레스, 블랙 드레스 전체를 크리스털로 장식해 어둠 속 빛과 희망을 표현하는 등 상실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했다.

 

 

 

Louvre Couture

루브르 박물관과 오트 쿠튀르, 듣기만 해도 웅장해지는 만남이 성사되었다. 지난 1월 24일 231년의 역사를 이어온 루브르에서 사상 최초로 패션을 주제로 한 전시 <루브르 쿠튀르(Louvre Couture)>를 개최한 것. 샤넬과 발렌시아가, 베르사체와 이브 생 로랑 등 45개의 패션 하우스에서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선보인 전설적인 쿠튀르 피스 100여 점을 모아 전시하며, 전례에 없던 예술과 패션의 상호작용을 보여주었다. 전시의 포문을 연 첫 피스는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디올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 ‘Musée du Louvre’, 오트 쿠튀르 역사상 박물관 이름을 딴 유일한 작품이다. 돌체앤가바나, 알렉산더 맥퀸, 지방시, 로에베 등 쿠튀르 하우스부터 마린 세르, 아이리스 반 헤르펜처럼 현대적인 감성의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세대가 만들어낸 쿠튀르 피스들을 볼 수 있는 전시는 7월 2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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