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매 순간 새로워지는 ‘익명자’, 구본창

한국 예술사진의 개척자, 동시대 사진가를 알린 기획자, 백자의 작가 등 구본창을 소개하는 수식어는 무수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작가의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면을 조명하려는 고민에서 출발한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를 개최한다. 때로 격랑이 휘몰아치고 때로 잔잔한 그의 바다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당신이 구본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그의 다른 면모를 조우할 기회다.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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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박힌 흔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어요. 흔적이 내 화두인 거죠.” 작가 구본창의 차분한 목소리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기자간담회장에 울려 퍼졌다. 과연 그의 대표작 면면을 들여다보면 무언가 머물렀다 떠난 흔적이 남은 자리다. 이별의 연쇄라고 해야 할까. 박제된 곤충과 동물(‘굿바이 파라다이스’), 병상의 아버지와 숨 거둔 생명들(‘숨’),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달항아리(‘백자’), 손에 닿아 닳은 ‘비누’, 빈 차고와 상자(‘인테리어’)까지. 생이 지난 자리에는 그저 적막이 고여 있다. 시인 황지우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라고 읊조렸다면 구본창은 그 폐허를 응시하는 일에 집중했다. 


3월 1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구본창의 항해>는 70대에 접어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전시다. 총 50여 개 연작 가운데 43개를 선별했고, 전시 작품 수만 500여 점, 관련 아카이빙 자료와 수집품이 600여 점에 달한다.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수집품과 습작이 전시된 ‘호기심의 방’에서 출발해 3개 섹션을 지나면 스냅사진 시리즈를 모은 ‘열린 방’으로 이어지는 순서다. 미술관 1, 2층을 모두 활용한 대규모 전시를 개막 전날 작가와 함께 둘러봤다.

 

 

‘긴 오후의 미행 004’, 1985, 젤라틴 실버 프린트, 세피아 톤, 23×33.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아름다운 물건을 모으는 본능

“이미 도면으로 전시장을 어떻게 나눌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벽이 세워지고 통로가 나타나니 정말 방대하더군요. 이걸 다 채울 수 있나, 생각도 들었고요. 큰 공간을 채울 만큼 작품이 쌓였다니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관람객이 섹션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걱정스레 말했지만 그간의 작업물과 수집품이 상당했기에 작가와 큐레이터는 분류 작업에 긴 시간을 쏟았다. 지난 1년은 전시 준비에만 매달려 있었다고. 조수들이 퇴근한 후에도 새벽까지 전시에 대해 골몰하는 나날이었다. “저녁을 먹으면 1~2시간은 뉴스나 외국 다큐멘터리를 즐겨 봐요. 아침에 온 신문을 들추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관심을 쏟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일만 생각하던 게 조금 풀리고, 2~3시간 더 일할 수 있는 거죠. 주말에는 정원의 식물에 물도 주고 한 바퀴 돌면서 휴식하지만 작업은 계속해요. 꼭 사진 작업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자료를 찾고 수많은 메모를 꺼내서 정리하다 보면 그 속에서 작품이 하나둘 정리되곤 하더군요.”


주말이면 메모를 꺼내 뒤적인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소문난 수집가다. 아끼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성정 때문이다. 물건으로 가득한 그의 스튜디오와 집이 매체를 통해 공개된 적도 있지만, 이번에는 수집품을 미술관으로 가져왔다. ‘호기심의 방’에 전시된 오래된 책과 잡지, 달력, 영화 포스터, LP판, 아버지의 섬유 회사에서 가져온 직물 샘플 등은 유년 시절부터 간직해온 물건이다. “고가의 귀금속이나 명품을 수집하는 게 아니에요.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건 나에게 가치가 없어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고 나름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모으려 해요. 벼룩시장에서 산 작은 물건 같은 건 그것만의 모양을 갖추고 있기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상물이 되는 거죠. 전문적으로 분류하진 않지만, 인쇄물과 책, 깡통, 목기, 유리 등으로 그룹을 나눠 보관해요.” 전시품 가운데 5개의 스탠드 선반 속 자료는 전시 기간 중 두 차례 교체될 예정이다. 공사장에서 주운 철사나 망사 등이 등장할 거라고 그가 귀띔했다. 

 

 

 ‘콘크리트 광화문 01’(왼쪽), ‘콘크리트 광화문 03-1’(오른쪽), 201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0×75cm. 

 

 

한국 현대 사진의 개막

그가 1988년 기획한 전시 <사진 새 시좌(視座)>는 그의 이력, 나아가 한국 현대 사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작가는 특히 당시 사진을 배우던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한다. 실험적 연출 사진이 이미 익숙한 세대의 관점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파장이다. “유학 이후 1985년 귀국했을 때의 사진전 출품작은 풍경 사진이나 일반적으로 길에서 마주친 장면을 찍은 사진이 보편적이었어요. 하지만 저나 <사진 새 시좌> 전 작가들은 직접 연출한 상황을 담거나, 길에서 만난 풍경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프린트했죠. 필름을 담뱃불로 태워 구멍을 내는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평범하게 보이지 않도록 표현했어요. 보통 한국 학교에서는 노출이 맞고 구도가 아름다운 사진만 찍으라고 배우는데, 우리가 보여준 사진은 어딘가 흔들렸고 노출도 덜 맞은 것 같은 비정형적 사진이니 학생들이 용기를 얻은 거죠. <사진 새 시좌> 전에는 아주 큰 사진도 있고 입체물도 있었어요. 학생들은 ‘인화지가 이렇게 커도 되는구나’, ‘인화지에 붓질을 해도 되는구나’ 깨달은 거예요. 설령 100% 완성된 작품이 못 되더라도 그런 실험의 기회가 생긴 게 큰 변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나아가 그는 큐레이터 역할까지 도맡았다. 1987년 서울예대 제자들과 함께한 그룹전 <죽은 듯 엎드려 실눈 뜨고>를 시작으로, 2000년대 미국 포토페스트, 덴마크 오덴세 사진 트리엔날레 등을 통해 한국 작가를 국제 무대에 소개했다. 그는 왜 자신뿐 아니라 동료 사진가를 알리고자 했을까? 업계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유학 시절 1950년대 독일 현대 사진을 부흥시킨 오토 슈타이너트(Otto Steinert)를 접했어요. 의사이자 사진가, 컬렉터였는데, 전쟁 이후 사진가로 일하며 에센에서 사진을 교육하고 컬렉션을 남기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의 자료를 읽고 감동해 한국에 가면 사진을 부흥시키는 일을 해야겠다 꿈꿨어요. 당시 한국에는 사진 갤러리가 기껏해야 하나둘 있었고 사랑방 역할만 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실력 있는 작가를 알리고 싶었어요. 사진 전문 큐레이터도 드물어서 직접 나서지 않으면 해줄 사람이 없었죠. 그래서 <사진 새 시좌> 전이나 해외 행사 제안이 있을 때 한국 사진을 소개했어요. 내가 그러한 도움을 못 받았기 때문에 반대 입장이 되었을 때 눈에 띄게 해주고 싶다는 엉뚱한 의욕이 있었던 거예요.” 한 청년의 ‘엉뚱한’ 꿈이 예술 분야의 지평을 넓혔다.

 

 

 

‘긴 오후의 미행 007’, 198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세피아 톤, 23×33.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익명자 71’, 201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25×19cm. 3 ‘자화상’, 1972,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9cm. ‘시간의 그림 01’, 1998, 젤라틴 실버 프린트, 73×101.5cm.

 

‘일 분간의 독백’, 1980~1985, 시바크롬 인화, 11×17cm(×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응시의 힘

너른 전시장은 제작 시기와 테마를 기준으로 나뉘지만 그 가운데 발걸음이 오래 머무는 전시실이 있기 마련이다. 1층 ‘하나의 세계’ 섹션 가운데 자리한 작은 방이 첫 번째 기착지였다. 방의 외벽에는 짙푸른 배경에 박제된 나비들이 가득하다. 포토그램 기법으로 인화한 작품 ‘굿바이 파라다이스 블루’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검은 벽에 흑백의 ‘숨’ 연작이 걸려 있다. 임종을 앞두고 사그라지는 아버지의 얼굴과 숨 거둔 생명을 목도한 작가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숨’은 별도의 공간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외벽에는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을 보는 듯한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내부에는 ‘숨’을 배치해 생과 사의 갈림길과 같은 이미지로 완성했죠. 아주 어린 시절 집에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낸 날이었어요. 밥을 지은 엄마가 빨리 와서 보라고 하더라고요. 달려가 보니 쌀밥 표면에 새가 지나간 듯한 발자국이 나 있었죠. 그걸 보여주며 엄마가 “밥 짓는 데 새가 나타난 걸 보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아마 새가 됐나 보다”라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사람이 죽으면 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영혼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사박물관의 죽은 새들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더라고요.”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나방의 죽음>이 떠올랐다. 죽음에 저항하나 결국 패배하고 마는 생명을 관찰한 글이다. 구본창의 담담한 응시에서 울프의 글과 같은 서늘한 위엄이 전해진다.


관람객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여길 대형 작품은 ‘백자’ 시리즈를 연결한 ‘문라이징 Ⅲ’일 것이다. 그는 2004년부터 세계 곳곳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국내 박물관을 비롯해 파리, 교토, 오사카 등지로 향했다. 어렵사리 허가를 구하고 장비를 챙겨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한 긴 노정의 결과물이다. 그것을 각기 다른 밝기로 작업해 곡선의 벽에 달의 위상 사진처럼 펼쳤다. 직관적으로 드러난 달의 나고 짐이 꼭 조선백자의 여정과 닮았다. 촬영 전부터 이 같은 인화 방식을 기획한 것은 아니다. “촬영 당시에는 우선 각 박물관 달항아리의 볼륨감과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원래는 그냥 ‘항아리’라고 했는데 점차 우리나라에서 크고 둥근 백자를 ‘달항아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잖아요. ‘실제 달이 뜨고 지는 것처럼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어둡고 밝게 프린트를 해보니 또 다른 여운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후작업으로 노출을 조정했습니다.” 


2010년 경복궁 경내에 전시되었던 광화문 부재를 촬영한 ‘콘크리트 광화문’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한 연작이다.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며 소실과 재건을 반복했다. 그러다 1960년 목조 대신 철근 콘크리트로 일부 복원했던 것을 이후 본래 형태로 재건하며 국립고궁박물관에 주요 부재 6개를 전시했다. 원래 자리를 떠나 외따로 놓인 건축 구조물은 기묘하고 이질적이다. 하지만 구본창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있으니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다. “시멘트와 페인트, 철근이 섞인 모습이 강렬했어요. 그런데 내 사진이라는 느낌을 주려면 태양 아래 그림자가 지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빛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구름 낀 날 찍었어요. 또 아무래도 독일에서 공부한지라 정석으로 대상물을 보여주는 구도가 몸에 뱄어요. ‘백자’나 ‘황금’ 시리즈만 해도 빛을 화려하게 연출한다든지 다른 효과를 내지 않았잖아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가장 파워풀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가능하면 군더더기를 없애고 보이는 대로 나타내요.”

 

 

 

작가의 수집품. 어릴 적부터 간직한 잡지와 앨범, 간행물, 직물 샘플 등이 가득하다.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익명자’라는 정체성은 평생을 관통해온 그의 자아다. 내성적이고 섬세하며, 언제나 눈에 띄지 않길 원했던 기질은 일생을 따라왔다. 하지만 익명자 소년은 사진이라는 몫을 찾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에 다행이라 말한다. 마지막 섹션 ‘열린 방’에는 익명자의 시선으로 담은 스냅사진이 빼곡하다. “내가 관심 있는 대상은 어딘가 소외되어 있거나 공허하게 혼자 놓여 있는 것이 많아요. 나와 대상물, 둘밖에 없었다면 아마 나도 침잠되고 외로워졌을 거예요. 다행히 내가 건져낸 외롭고 쓸쓸한 흔적이 작품으로 나왔을 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1993년에 곤충 상자(‘굿바이 파라다이스-박스’)를 전시했을 때, 한 관람객이 핀에 꽂힌 곤충이 요즘 자기 모습 같다는 거예요. 그걸 보고 눈물이 났지만 작품으로 만나니 행복하다고요. 아마 동질성을 느꼈기에 혼자여도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작품이 다른 이에게 위안이 되는 걸 느끼며 보람을 얻어요.” 민감하고 섬세한 성정은 예술가에게 축복이지만, 생활인으로서 고통일 수 있다. 단순하고 활달한 사람들이 부럽지는 않았을까? “어렸을 때 특히 그랬어요. 앞에서 노래도 잘 부르고 마이크 잡는 애들이 부러웠는데 직장 생활 때까지도 계속 열등감이었던 거죠. 그런 고민 탓에 결국 직장을 빨리 그만두게 된 거고요. 그러다 해외에 나가 학교를 다니다 보니 또 다른 세계가 있더라고요. 한국에서는 핀잔거리였던 기질이 거기서는 칭찬받았고, 제가 찾아내는 시선을 새롭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행복했죠.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나의 특질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도 이제 그걸 인정하자. 지금도 노래방에 가자고 하거나 건배사를 하라고 하면 질색해요. 할 말도 없는데 건배사를 시키면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사람이거든(웃음). 독일에서 ‘남처럼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다르게 사는 게 축복이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된다고, 용기가 생기노라고 답했다. “맞아요. 그런 용기가 필요했던 건데 서울에서는 용기를 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 몰라 혹처럼 달고 살았는데, 다행히 독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걸 인정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익명자’는 여전히 진행 중인 시리즈다. “아주 초기인 1982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수집했어요. 그렇게 찍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이걸 시리즈로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거장 피아니스트도 매일매일 피아노를 연습하는 것처럼, 카메라 렌즈로 눈을 훈련한다고 할까요. ‘열린 방’의 사진을 보면 조금 스산하지 않던가요?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내 사진이 뒷모습이나 얼굴을 가린 모습 위주인 건 변함없어요. 다르게 표현하려 해도 그건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어린 시절 형성된 성향이 결국 70년을 가네요. 내 사진의 느낌을 묶어서 보여주는 게 내가 할 일 아닌가 생각해서 경향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요즘 그는 손에 잡기 편한 후지 중형 카메라를 즐겨 사용한다. 의외로 스마트폰도 적극 활용한다. 지면을 위한 사진 촬영 와중에도 틈틈이 스마트폰을 꺼내 ‘인증샷’을 남겼다. 렌즈는 주로 촬영 중인 후배 사진가들을 향했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지 카메라 브랜드가 중요하진 않아요. 요새는 휴대폰으로 많이 찍어요. 휴대폰만큼 편한 게 없잖아요. 수시로 휴대폰으로 찍고 너무 좋으면 다시 카메라를 들고 가서 찍는 경우도 많아요. 옛날부터 브랜드에 욕심도 없었고 그다지 구애받지도 않았어요. 초창기에 처음 구입한 스트로보 조명 기구가 30만원짜리 국산이었어요. 그것 두 대를 쓰다가 제자인 박찬우 씨가 졸업 후 막 스튜디오를 운영하려고 할 때 물려주고 미제를 처음 샀어요(웃음). 30만원짜리로 패션 사진도 찍고 그랬죠.”


‘열린 방’의 마지막 작품은 아이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는 찰나를 담은 ‘긴 오후의 미행 007’이다. 1층 로비의 대형 포스터 속 사진도 동일하다. 그가 1987년 제주 탑동 어느 바다에서 아이를 발견해 찍은 것이다. 해를 등진 아이는 실루엣만 남아 얼굴을 볼 수 없다. 다만 팔을 굽힌 채 버티는 모양에서 안간힘을 짐작한다. 아이의 흔적에 작가 구본창이 겹친다. 조용하고 수줍음 많던 아이는 뭍을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았고, 이방인을 자처하며 길을 개척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최근 관심을 기울이는 피사체가 있는지 물었다. “‘황금’ 시리즈에서 백제, 신라의 금관과 이어지는 잉카의 황금 컵 사진 보셨나요? 우리나라 경주에도 사발 같은 컵이 많아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런 황금 용기들을 같이 찍어서 시리즈를 잇고 싶어요. 그리고 여행을 떠나 전시 생각을 떨쳐내고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습니다. 다시 익명자가 되는 거죠. 익명자가 될 때 내가 또 새로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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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지형PHOTO :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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