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빛이 경이로워질 때

<디파인 서울 2023>에서 개인전을 펼친 지오파토&쿰스를 만나 달과 서예, 매화와 은하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영감을 얻는 순간과 마법 같은 상상을 실현시키는 기술은 다음과 같다.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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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영국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부부인 크리스토퍼 쿰스와 크리스티아나 지오파토. 

 

화면에서 나와 곧게 이어지며 은하계로 향하는 금속 조명 ‘밀키웨이(Milky Way)’. 

 

 

선이 자유롭게 그려질 때

볼펜심의 잉크가 떨어질 때까지 선을 그리는 상상을 했다. 손목이 움직이는 대로 이어지는 곡선과 직선의 구불구불한 춤은 어느 순간에는 아름다우리라. 챗GPT는 볼펜의 잉크 용량이 길이 2km 정도의 선을 그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볼펜에는 2km의 자유로움이 들어 있는 셈이다. 


성수동에서 열린 <디파인 서울 2023>에선 내 상상보다 앞선 자유로움을 발견했다. 공중에 걸린 가늘고 검은 선은 바람이라도 분 것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전시장에 떠도는 관객의 호기심과 빛이, 오브제와 전구로 변해 선에 걸려 있었다. 작품명은 ‘DAL 달-Drawing a Line’이고, 디자이너는 지오파토&쿰스였다. 잠깐 이들을 소개하자면, 크리스티아나 지오파토(Cristiana Giopato)와 크리스토퍼 쿰스(Christopher Coombes)는 이탈리아와 영국의 건축가이자 부부로 2006년 이탈리아에서 지오파토&쿰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가구와 조명을 선보이고 있다. <디파인 서울 2023>의 대표 프로젝트로 참여해 한국 서예와 디자인을 결합한 ‘DAL 달-Drawing a Line’, ‘매화’ 컬렉션, ‘문스톤’과 ‘밀키웨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시에는 크리스토퍼 쿰스가 참석했고,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먼저, ‘DAL 달-Drawing a Line’에선 선을 다루는 그들의 방식이 알고 싶었다. 일직선이 아니라 자유롭게 흐르는 선이라면, 어디서 어떤 연유로 시작해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마다 그려진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작품 설명에 따르면 한국 서예와 디자인을 결합한 작품으로, 파리에서 작품을 공개할 당시에는 한국의 거장 이배 작가의 ‘Brushstroke’와 함께 전시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파리에서 공개되었지만, 지오파토&쿰스와 이배 작가가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은 베니스였다. 때는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부는 이배 작가 ‘Brushstroke’에 매료되고, 지오파토&쿰스 스튜디오에 그가 방문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그때는 ‘DAL 달-Drawing a Line’을 연구하던 시기였다. 프로젝트는 시작했지만 구체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배 작가와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 “이배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의 작업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지오파토&쿰스가 이배 작가의 ‘Brushstroke’에서 처음 느낀 것은 리듬, 방향감, 제스처였다. 붓질하는 작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고 한다. “이배 작가가 캔버스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 몸의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또 인상적인 점은 재료를 대하는 태도였다. “이배 작가는 소재로서의 숯에 초점을 맞추고 숯을 실제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소재에 대한 집중은 저희의 작업과 유사해요. 소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작업하다 한발 물러서서 소재가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은 서예가가 붓질을 하며 먹물이 한지를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과도 닮았다. 크리스토퍼 쿰스는 이배 작가 작업과의 공통점을 ‘창의적인 연결 고리’라 표현했다. 이후 이배 작가는 정기적으로 그들의 스튜디오에 방문했다. 석 달 동안 세 번이나 만남을 가졌고, 부부는 새로운 전시회의 주제를 정의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달의 질감을 재현한 ‘문스톤(Moonstone)’.

 

유리섬유와 흰색 대리석을 혼합한 것으로 표면에 대리석 가루를 묻혀 달의 질감을 표현했다. 

 

 

오해하진 마시길, ‘DAL 달-Drawing a Line’은 이배 작가에게 영감 받은 작품은 아니다. 그들은 지난 5년간 조명 작품에서 나온 여러 실험을 하나로 연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유려한 선의 적절한 리듬을 찾고, 선 위에 올릴 오브제와 소재, 램프를 연결하고, 또 이것들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도 맞춰야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궁금한 건은 선을 어떤 모양으로 표현하는가, 그리고 그 선이 휜 이유였다. “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어요. 결합하는 과정의 반복이었죠. 조각 서너 개를 점처럼 이어 붙여 선을 만들듯, 조각을 연결하는 시도도 했습니다. 크리스티아나 지오파토와 함께 선을 표현하는 소재인 플렉시블 튜브를 잡고 균형을 잡는 실험도 많이 했습니다. 반복의 과정이었죠. 춤을 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면 선을 아래로 내릴지, 위로 올릴지 고민이 많았어요. 선을 중심으로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었어요.” 크리스토퍼 쿰스의 말을 요약하면, 선 안에서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고 한다. 작업자가 선을 다루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재료가 가진 물성이 선의 휘어짐을 얼마나 통제하는지를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부부는 통제하지 않았다. 재료가 본연의 형태로 휘도록 직접 제어하지 않고 관찰했다. 그건 일종의 명상과도 같았다. “의도하지 않고 놓아주려고 할 때 선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재료와 다른 실험을 추가하면 선이 기울어질 수도 있어요. 너무 과하면 오브제의 소재를 바꿔야 했고, 그러면서도 약간의 긴장감을 줘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죠.” 


디자이너의 작업이라는 것이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기능적 솔루션을 고민하는 일이라면, ‘DAL 달–Drawing a Line’은 자유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로서, 자유로운 선을 그리고 싶은 그들의 바람이 담긴 작업이었다. 크리스토퍼 쿰스는 자신에게는 선이 자신들의 ‘창작 연대기’와도 같다고 말했다. “창작을 할 때는 흐름에 따라가야 합니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계속 나아가야 하죠. 마치 자유롭게 이어지는 선처럼요.”

 

 

 

1 ‘매화(Maehwa)’는 꽃잎이 서로 달라 보이도록 전구 크기를 세 가지로 제작했고, 빛이 은은하게 비치도록 전구 소켓을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2 매화가 만개한 모습을 형상화한 ‘매화(Maehwa)’. 

 

매화와 달 그리고 우주

<디파인 서울 2023>에 전시된 지오파토&쿰스의 다른 작품도 짚고 가야겠다. ‘매화(Maehwa)’ 컬렉션은 만개한 매화나무의 가지 하나를 뚝 잘라 가져온 듯한데, 램프는 실제 매화의 꽃잎처럼 생겨 멀리서 보면 꽃망울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디자인의 기원은 서초구 서래마을 몽마르뜨 공원이다. 예전에 서울을 방문했다가 공원에서 매화가 바람에 날려 흩날리는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 문득 쿰스의 머릿속에는 ‘세상에 빛을 비추자’는 생각이 스쳤다. “공원에서의 시간은 잊을 수 없어요. 경이로움으로 가득했죠.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 프랑스인, 영국인 모두 꽃잎이 날리는 순간 강한 유대감과 왠지 모를 친밀감을 서로 느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조명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매화 잎이 날리는 순간을 어떻게 재현할지가 관건이었고, 램프를 세 가지 다른 크기로 설계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지오파토&쿰스는 ‘3 Different Scales’ 디자인을 즐겨 하는 편이다. 특수한 조명 기술을 적용해 어느 거리에서든 아름답게 보이도록 했다. 예를 들면 매화 잎 안에 든 전구는 약간 구부러져 있고, 모두 손으로 직접 만든 유리이기에 그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조금씩 다른 반복을 자연스럽게 구성해 꽃잎이 나무에 피어나는 자연의 풍요로운 순간을 재현했다. 


지오파토&쿰스의 상상력은 우주로 이어진다. ‘문스톤(Moonstone)’은 달에서 한 조각 채취해온 암석처럼 우툴두툴한 거친 표면이 인상적이다. 왜 달을 소재로 했는가? 다시 달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이 저희 작품을 볼 때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자신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죠. 문스톤의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달나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쿰스는 창작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미개척지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유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사람들이 상상처럼 달에 갈 수 있다면, ‘달에 가서 뭘 할까?’, ‘달 여행 기념품으로 무엇을 가져올까?’. 크리스토퍼는 이 같은 생각 자체가 재밌어서 달의 질감을 재현한 조명을 디자인했다. 유리섬유와 흰색 대리석을 사용했고, 표면에는 대리석 가루가 묻어 있다. 

 

전시장에는 화면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명도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 밀착된 금색의 일직선 조명 ‘밀키웨이(Milky Way)’는 은하계 같은 영상에 비치며 우주 끝을 향해 나아가는 빛의 직진성이 연상됐다. 또 조명 위에 매달린 조형은 블랙홀과 항성, 성운 등을 떠올리게 해 작은 은하계처럼 보였다. 밀키웨이의 시작도 지오파토&쿰스의 상상이었다. “예를 들어 일직선의 밀키웨이 위에 유리 디퓨저가 있는데 영상에선 유리 디퓨저가 녹아내려요. 물리학을 통해 상상하고, 중력이 없는 세상에서 물체가 녹는 것을 상상해보는 거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종류의 물리적 현실을요.” 
상상을 실현한 것은 기술이었다. 지오파토&쿰스의 작품은 이탈리아 공예 장인의 특별한 기술과 최신 조명 기술의 조합이다. 부부는 수천 년간 이어져온 소재인 금속과 유리를 연구해 새롭게 표현해왔다. 전통 재료로 시작해 전통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디자인에 맞는 전통 제작 기법이 없을 때는 3D 프린터를 이용한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이들의 연구를 물리적으로 실현할 장인이 이탈리아에 그렇게나 많을까? “베니스에는 장인과의 밀접한 네트워크가 있어요. 저희는 종종 소재에 대해 장인과 함께 연구하고, 그들과 작업 방식을 조율하기도 해요.” 지오파토&쿰스는 소재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를 시작하는데, 소재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기술적 난관은 장인과 풀어낸다. “소재를 다루는 기법은 100가지나 됩니다. 베니스의 여러 장인과 소통하며 적합한 기술을 찾아야 해요. 장인에게 연락을 취해 도움을 받기도 하죠. 때로는 장인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합니다. 재료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에 맞는 장인에게 찾아가죠.” 해당 소재를 수십 년간 직접 다룬 장인보다 소재를 잘 알 수는 없기에,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장인과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했다. 쿰스는 “장인은 만날 때마다 새로운 기술을 보여줘요. 그래서 덕분에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오파토와 쿰스의 만남

지오파토와 쿰스는 대학에서 만났다. 둘 다 디자이너였지만, 쿰스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조예가 깊었고, 지오파토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운 상태였다.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고, 서로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함께 디자인한 작품은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둘이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껴질 무렵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다. 2005년이었다. 


처음에는 이탤리언 가구를 만들었다. 나무 의자, 유리 테이블, 암체어, 소파 같은 것을 이탈리아 디자인 브랜드와 협업해 제작했다. 지오파토&쿰스가 조명을 만든 것은 2014년이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이듬해에 조명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조명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조명은 저희의 업무 방식을 바꿨는데요. 조명 디자인과 관련된 기술과 재료에 초점을 맞춘 전문성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어요. 조명 디자인에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죠.” 


지오파토&쿰스의 목표는 ‘세상에 경이로움을 전하는 것(Lighting the World with Wonder)’이다. 그들은 공간에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매화가 만개하는 순간의 감정을 전하려면, 공간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그들은 관객이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도록, 가능한 한 순수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술적 해법을 찾아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오파토&쿰스의 대표작은 ‘볼레(Bolle)’다. 비눗방울이 터지기 직전의 순간적이고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두 사람은 런던 남쪽 강변을 걷다가 커다란 비눗방울을 만드는 거리 공연을 보고, 그 순간 작품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의 작품 ‘볼레’를 보고 눈물을 흘린 관객이 있었다고 한다. 75세의 인도 할머니는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해줬다며 쿰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매화’를 공개했을 때, 작품 앞에서 전통 음악 공연이 열렸어요. 저에게는 그 순간이 꽤 감동적이었어요.” 


지오파토&쿰스는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몇 차례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했다. “김택상 작가의 작업 과정을 이해한 순간, 경이로움이 펼쳐졌어요. 그의 작업실에는 열린 지붕과 거대한 나무 쟁반이 있는데, 쟁반에 물과 안료를 넣은 다음 햇볕에 말려요. 시간과 태양에 의해 만들어지는 작품이었죠. 마치 자연처럼요.”


전통적 소재와 기법, 현대적 기술이 결합된 그들의 작품은 우아하면서도 위트가 있다. 지오파토&쿰스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상상으로 가득하다. “백일몽처럼요. 위트와 유머가 빛과 결합해 백일몽이 되는 거예요. 일상에서 순간 상상의 세계로 들어갈 때의 느낌을 주고 싶어요.” 
선, 매화, 달, 은하계를 거친 그들의 상상은 이제 안개로 넘어가고 있다. 6개월 후 열리는 <밀라노 가구 박람회(Salone del Mobile)>를 위해 안개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안개를 어떻게 조명으로 보여줄지, 그들의 상상을 어디로 어떻게 자유롭게 펼쳐낼지 기대된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조진혁PHOTO : Parker McC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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