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의 질문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이 싫어서>를 공개한 장건재 감독은 청년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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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더는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남는 건 무력감이었다. 시든 화초처럼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열매를 떨군 나무가 다음 계절을 기다리며 메말라가듯이 그렇게 사는 삶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니까.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희망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더 나은 삶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지금까지 고군분투한 스테이지는 여기서 저장하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듯이 그렇게 과거와 단절하고, 나아갈 수도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우리 사회에는 회의감이 부풀어 올랐다. 풍선이 터지기 전에 ‘헬조선’을 떠나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도 많았다. 워킹홀리데이, 이민, 유학, 해외로 떠날 수 있는 여러 옵션 중 선택해 비행기에 몸을 실은 청년도 많다. 그들이 한국을 떠난 이유가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그중 한 명 정도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싫어서 떠난 이가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는 호주로 떠났고,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뉴질랜드로 떠났다. 영화 소개글에는 주인공이 희망을 찾아서 떠났다고 쓸 수 있지만, 사람 마음이야 본인도 알 수 없는 것. ‘만약 나였으면 어떻게든 현실에서 돌파구를 만들려고 싸우지 않았을까?’ 하는 태평한 생각으로 장건재 감독에게 물었다. 계나는 정말 희망을 찾아간 것일까? 아니면 도망한 것일까? 장건재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고, 이 작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어요”라고 말한 후 노래 한 소절 시간만큼 고민하고, 다시 답을 이었다. “계나가 한국 사회의 특정 트랙에서 벗어나 도망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죠.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한국을 탈출하고, 삶의 기반 자체를 바꿔보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든,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든, 그 차이는 종이 한 장 정도고, 그것은 걸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뒤바뀌고 뒤섞이는 것일 테다. 떠난 이후에는 왜 떠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곳에 도착했고, 삶은 계속되니까.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계나(고아성)는 직장과 가족, 애인을 두고 뉴질랜드로 떠난다. 

 


소설은 2015년에 나왔고, 영화는 8년이 지난 2023년에 나온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8년은 강산도 사람도 세상도 바뀔 시간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싫어서 떠난 계나의 이야기를 지금 다시 주목해야 하는 건 왜일까. 장건재 감독이 관객과 나누고자 한 이야기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한다. 201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였고, 그 변화의 영향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고. “당시 이 소설이 변화의 외침 속에서 들린 한 목소리였다면, 지금 이 영화는 더 평온한 온도에서 ‘그럼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대가 달라도 영화의 대상은 한국 청년이고,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죠.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장건재 감독이 말했다. 


40대 초반의 장건재 감독은 네 살 딸을 둔 아버지로서 원작 소설을 접했다. 당시 이슈였던 ‘탈조선’에 대한 픽션은 청년의 시각과 아버지의 시각이 달랐을 것이다. 장건재 감독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며 겪는 여러 통과의례가 떠올랐고, 그걸 생각하자 두려움과 공포, 피로감을 느꼈다고 한다.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사회 리더십을 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한국 사회는 치열하고, 경쟁에서 이탈하는 두려움이 크기에, ‘대안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중요하게 느꼈어요. 그 대안으로서 계나는 환경을 바꾸는 시도를 하는 것이고요. 계나는 한국에서 한국인이 갖는 특정한 욕망, 예를 들면 취업, 결혼, 가정, 장기 대출을 받아 집을 얻는 등 ‘트랙’에서의 삶 대신 다른 방식을 고민했고, 환경을 바꿔야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장건재 감독은 계나가 이동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이야기를 떠올렸고, 그런 의미에서 ‘우선 도망치고 보자, 그다음 생각하자’라는 생각을 계속했다고 한다. 


감독의 설명을 들으니, 도망갈 수 있었던 계나의 ‘용기’가 새삼 대단하게 다가왔다. 계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가족을 포함한 주변에게 분명하게 전달해왔다. 그녀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수긍하며 익숙해지기보다는 직접 나서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개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그녀는 독자에게 자신의 불만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며 계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장건재 감독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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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디테일, 그리고 끼인 세대

화려한 CG도 없는데, 자동차가 폭발하거나, 액션이 난무하는 것도 아니고, 신파가 작동하는 것도 아닌데 몰입되는 장면이 있다. 영화가 관객의 넥타이 끝자락을 잡고, 스크린으로 서서히 끌어당기는 힘은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이 모여 신선한 장면을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계속 바라보게 한다. 


장건재 감독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잘 포착하는 연출자다. <잠 못 드는 밤>에서 신혼부부의 현실적인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처럼. 대화가 끊기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보내는 시간 같은 것들, 여름밤 산책의 익숙하고 편하지만 허전한 그 미묘한 감정 같은 것을 잘 그려낸다. 영화가 내 일상을 훔쳐본 듯, 기시감을 느끼는 나는 이것이 일종의 요술이 아닌가 의심해보았다. “아마 대부분의 감독이 일상에서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큰 사건을 담는 영화도 있지만, 일상에서 무심코 넘어가는 반복되는 순간에도 가끔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저의 몇몇 작품은 그런 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담았고, 그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감정이 오간다고 느껴요. 영화는 시청각적인 매체이자,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그런 순간을 포착하고, 다른 예술 작품과 비교하며 나눌 수 있는 예술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작업을 좋아하고요. 소설, 음악, 미술에서도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작업을 정말 좋아해요.”  


관객이 장건재 감독의 영화에 공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삶에 대한 그의 보편적 고민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일상을, 그러니까 삶을 짓누르는 그 어떤 종류의 불편함을 잘 보여준다. 그것이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무의식에 자리한, 앞서 말한 ‘트랙’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일 수도 있다. 또한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속 주희에게는 무대이고,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에게는 환경을 벗어나는 것일 테다. 주인공이 겪는 불편함이 아주 느리게 압박을 더하다가 임계점까지 주인공을 짓누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장건재 감독은 슬쩍 내민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생애 주기 안에서 이런저런 변곡점이 생기죠.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시점, 청년기에서 다른 시기로 넘어가는 시점, 삶의 큰 이벤트인 연애, 결혼, 출산, 질병, 죽음과 같은 순간요. 저 역시 그런 단계를 지나왔고, 앞으로 마주할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그런 시기를 지나고 나면, 저에 대해, 그리고 당시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내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이 어떻게든 제 작업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들과 저는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건재 감독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간이 흘러가며 조금씩 쌓여간다고. 작업자로서 생각을 잘 정리하지 못한다면, 작업도 삶도 전진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고. 그는 영화와 함께 잘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늙어간다는 데 동의할 순 없었다. X세대와 밀레니얼 사이에 낀 세대인 그는 10년 후에도 우리 사회의 중위 세대에 머무를 테고(저출산으로 인해 4050이 청년인 시대), 여전히 청년으로 분류될 테니까. 물론 사회적 기준이다. 장건재 감독은 자신을 사회 주도권을 쥐어보지 못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사회 초년기에 IMF를 마주한 세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세대라는 측면에서 중장년이 되었을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존재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는 40대 중반의 이민자 커플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세대가 한국 사회를 떠났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고, 직접 만나본 몇몇 모습을 참고해 그린 캐릭터다. “행복하신가요?”라고 영화에서 감독은 작게나마 그 이민자 가족에게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담긴 속뜻은 이렇다. “저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전 세대나 다음 세대와는 의식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부류로 남게 될지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건재 감독은 배우 고아성을 책임감이 강한 배우로, 재인을 연기한 배우 주종혁은 이전의 연기와는 다른 다양한 시도를 하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영화 만드는 사람

그가 처음 영화를 만든 건 대학에 입학한 1996년이다. 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보였다. 성실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사명감 때문일까? “저는 꽤 개인적인 사람입니다. 작업자로서 제가 만든 작품을 극장에서 관객과 나누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이 쓸모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작업이 가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럼, 장건재 감독이 관심 갖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어떤 목소리들이 그에게 펜을 들게 만드는 걸까? “그때그때 달라요. 내부에서 해보고 싶은 것과 외부에서 받는 영향이 섞여 작업이 만들어집니다. <한국이 싫어서>는 제 안팎의 목소리가 섞여서 만들어진 작업이에요. 최근 몇 년 동안 동시대를 다루는 한국 소설에 관심을 갖고 살폈어요. 젊은 작가들이 한국 사회를 구성원으로서 굉장히 잘 그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장건재 감독은 일상을 관찰하고, 그 일상에는 동시대성이 담긴다.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 상황,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야기의 바탕을 이룬다. 하지만 시대마다 화두가 있듯,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발간됐을 2015년과 지금 시대의 화두는 다를 것이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등장했을 때 화두는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였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람들이 혼자 생존하려 해도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가 협력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로 인식이 바뀌었어요. 환경 문제를 함께 고민하듯이요. 지금의 중요한 화두는 ‘우리 모두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긴급하게 다가온 화두죠. 이건 좀 변화된 질문의 형태가 아닌가 싶어요.”  


장건재 감독은 자신을 작업자라 불렀고, 나는 그를 창작자라 여기며 질문했다. 창작 과정은 탐험과도 같아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험난한 수고가 동반된다.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신선한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새로움을 일구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건재 감독은 혁신이나 새로움에 대한 강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산업이 어려움에 직면한 현재에도 여전히 영화를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극장을 중심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영화가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극장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자주 해요.”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발견했느냐 물었고, 장건재 감독은 “개봉 예정인 영화와 내년 초 선보일 다른 작품을 통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조금은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고 답했다. 


장건재 감독은 연출 외에도 다양한 일을 한다. 직접 각본을 쓰고, 편집하고, 제작도 한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대본 쓰는 일이고 반면 편집 과정은 행복하다고 한다. “대본과 편집은 매우 다른 과정인데, 힘들게 작성한 대본을 기반으로 제작을 거친 후, 편집 단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마치 리라이팅하는 단계와 같아요.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죠. 물론 힘들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과정이에요. 하지만 대본을 쓰는 건 항상 어렵습니다. 아마 제가 그 분야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는 영화를 하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1996년 처음 영화를 만든 때를 꼽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만들었어요. 영화 팬에서 갑자기 영화 제작 세계로 뛰어든 특별한 순간이었죠.” 영화에 열정적으로 몰입한 20대 초반에는 계속 영화를 제작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1996년은 부산국제영화제 첫해였는데, 그때 그는 부산에 왔고, 신인 감독으로서 여러 경험을 했다.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도 좋은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여기서 일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아무도 희생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일하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 자체로 저는 정말 행복하겠죠.” 장건재 감독은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값진 시간을 함께 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가 꿈꾸는 작업 환경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어디서 영화를 만들까? 이번에는 장건재 감독이 한국을 떠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는 종종 그런 상상을 한다며, 아르헨티나의 항구 도시 ‘마르델플라타’와 노르웨이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트롬쇠‛를 꼽았다. 그는 트롬쇠에선 아름다운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 말했다.   

 

 Styling 윤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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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조진혁PHOTO :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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