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구마 겐고의 새로운 목적지

건축 거장 구마 겐고가 새로운 갤러리 작업을 선보였다고? 그것도 서울에?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을 향한 관심이 증폭된 이유다. 새로운 랜드마크를 예고하는 이곳, 남산과 이웃한 갤러리 루프톱에 그가 섰다.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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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Kengo Kuma)가 두어 시간의 짧은 서울행을 택했다. 아시아 메이저 갤러리인 화이트스톤이 일곱 번째 지점을 서울에 오픈하는 날이었고, 그가 인테리어를 맡았기 때문이다.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의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그들은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 한남동, 청담동 대신 이례적으로 남산을 택했다. 주변 환경, 자연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구마 겐고는 이 장소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검은 숲을 연상시키는 외관부터 독특하다. 도심 속 녹지와 예술 작품이 어우러진 루프톱은 새로운 명소를 예고한다.

 

 

 

남산에 문을 연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마치 검은 숲을 떠올리게 하는 파사드 너머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이 투영된다. 건물을 어둡게 한 것은 주변의 초록을 부각하기 위한 건축가의 숨은 의도다. 

 

 

최근 화이트스톤은 베이징, 싱가포르, 서울 지점을 연이어 오픈하며 다이내믹한 행보를 펼치고 있어요. 모두 당신이 작업을 맡았고요. 각기 어떤 색채를 투영해 작업했나요?
세계 각지에서 전개되는 화이트스톤의 작업은 도시의 문화와 특징을 공간으로 번역하고, 도시 안에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랜드마크’로서의 존재가 되는 디자인을 목표로 합니다. 각 지역의 공간 디자인에 고정된 한 가지 방법을 전개하지는 않았어요. 화이트스톤은 도시의 중심에서 도시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대변하는 중심적인 ‘목적지’로서의 디자인을 고려했죠. 


흙, 물, 빛, 바람, 목조 건축 등은 당신의 건축 세계를 보여주는 단어인데요, 화이트스톤 서울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투영되었을까요? 
기존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특성을 살려, 그것을 새로운 아트 경험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건물을 어둡게 만들어 주변의 녹지를 부각하고, 그 건축적 존재를 소멸시켜 도시의 일상에서 하얀 추상적인 아트 공간으로 의식이 전환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노력했어요. 내부는 기존의 스킵 플로어 구조를 활용해 변화가 풍부한 전시 공간을 건물 전체에 배치했고요. 화이트 큐브의 추상성과 복잡한 기존 구조가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있는 전시 공간에서 다양한 아트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목재와 초록의 자연이 어우러진 루프톱에 선 건축가 구마 겐고. 

 


네즈미술관, V&A 던디 등 주목할 만한 미술관을 많이 설계하셨죠. 미술관 디자인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화이트스톤 서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숨겨진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요? 
아트 공간은 우리를 일상의 세계에서 비일상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특별한 장소죠. 빛, 소리, 온도 및 공기를 느끼면서 작품과 마주할 때 감동은 높아지죠.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설렘과 기대감, 방문객이 작품에 몰두해 시간을 잊어버리는 공간은 예술 감상에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물의 존재감을 소멸시킨 추상적인 전시 공간을 잘 조합하여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서울 갤러리에서는 옥상 테라스에 계절별로 변화하는 식물을 식재하여 인접한 남산의 풍부한 자연과 녹지의 연결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죠. 서울의 도시를 바라보며 녹지와 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 이 하늘의 조각 정원은 도시와 자연에 둘러싸인 특별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작가와 건축가 사이에서 고민할 정도로 미술 쪽에 관심이 많았다고요.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셨나요? 당신의 예술적 취향이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시라가 카즈오(Kazuo Shiraga)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는 서양의 추상화와는 달리, 몸을 붓처럼 사용함으로써 붓의 선 끝 움직임으로 인간의 육체를 선명하게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제 건축도 그와 같은 질감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기존의 스킵 플로어 구조를 그대로 살린 다이내믹한 공간 연출이 돋보인다. 구마 겐고가 특히 사랑하는 나무를 포인트로 사용해 안락함 또한 느껴진다.

 

 

리움미술관, 롯데백화점에 선보인 나선형의 설치 작품 ‘SU:M’처럼, 최근에는 건축가뿐 아니라 작가로서도 관객을 만나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건축의 맥락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나요? 
아트, 제품, 건축 모두 나에게는 경계가 없습니다. 디자인하는 대상과 환경과의 관계를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을 아티스트로서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약한 건축>, <자연스러운 건축> 등 저술 활동을 꾸준히 하십니다. 글을 쓰는 일을 즐기신다고요?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건축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고,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예요. 중요한 활동이고, 물론 즐거워서 계속하고 있어요.


나무, 돌 등 “약한 것들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바로 그 약함 때문에 살아남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구온난화의 폐해가 눈앞에 닥친 지금, 우리 건축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산업화 사회에서는 대형 건물을 빠르게 짓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것이 습관화되었죠. 그러나 온난화의 폐해와 팬데믹을 겪은 이후 인간의 생활 양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천천히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평가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천천히’라는 개념이 다양한 영향을 미치며 건축도 180도 회전하게 될 것입니다. 

 

 

 

구마 겐고가 디자인한 화이트스톤 갤러리 타이베이의 리셉션 공간. 나무로 만든 프라이빗한 아지트로 들어가는 듯 고요한 쉼과 휴식을 부른다. ⓒ Kengo Kuma & Associates

 


제약 없이, 자신을 위한 공간을 조성한다면,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제약’은 나에게 있어서 출발점입니다. 제약이 있어야 디자인할 수 있으므로, 제약 없는 건축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어요. 요즘 읽고 계신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도 좋고요. 
생태학자 수잰 시마드의 <마더 트리 - 숲에 숨겨진 ‘지성’을 둘러싼 모험>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인간 사회의 어머니와 같이 나무도 같은 종을 보호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흥미로워요. 


요즘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가요? 작가 구마 겐고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을까요? 
현재 ‘일본의 건축’이 무엇인지를 다시 살펴보는 책을 저술 중입니다. 그다음에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는 ‘언어와 건축’이에요. 언젠가 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원형 극장 구조의 ‘책꽂이 시어터’는 가도카와 컬처 뮤지엄의 시그너처다. Tokorozawa Sakura Town Kadokawa Culture Museum, ⓒ Kengo Kuma & Associates, Photography ⓒ Forward Stroke Inc., ⓒ Kenshu Shintsubo, ⓒ zomu Shimao/SS 

 

펼친 우산 형태인 오스힐파크는 후지산 능선에서 영감을 받았다. Oath Hill Park, ⓒ Kengo Kuma & Associates, Photography ⓒ Kawasumi-Kobayashi Kenji Photograph Office 

 

 

약하고 느린 건축, 구마 겐고

구마 겐고는 웅장함 혹은 ‘드러내는’ 건축과는 거리가 멀다(물론 이것은 단순히 크기의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약하고, 느리고, 자연스러운 건축을 추구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속 가능한 건축, 친환경이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지금. 그의 건축 철학은 더욱 이목을 집중시킨다. 2021년 미국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의 이름이 오른 것은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네즈미술관(2009), V&A 던디(2018), 도쿄올림픽 주경기장(2020), 가도카와 컬처 뮤지엄(2020), 오스힐파크(Oath Hill Park, 2021), 와세다 대학 국제문학관(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2021), 알버트 칸 박물관(2022) 등 구마 겐고가 지구상에 남긴 수많은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는 종이, 나무, 돌 등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토대로 자연과 어우러진 건축을 추구한다. 이른바 ‘약한 건축’으로 불리는 그의 건축 철학은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건축과 비견되곤 한다. 콘크리트 재료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된 구마 겐고의 건축은 자연을 ‘이기는’ 건축과는 거리를 둔다. 강한 콘크리트와 철조차 대지진 앞에선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목도한 그는 자연을 인정하고 그것에 순응하는 ‘약한 건축’을 자신의 건축 철학으로 끌어들였다. 나아가 장소의 기억을 중시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 그가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건축’은 그 지점에 서 있다. 그는 앞선 인터뷰에서 빠른 건축의 시대가 가고 ‘천천히’라는 개념이 평가받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꿈꾸고 그리는 건축의 미래 역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북부 도시 던디 해안가에 자리 잡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의 새 공간. 오크니섬의 아름다운 절벽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건축물을 통해 자연의 무작위성을 전달한다. V&A at Dundee, ⓒ Kengo Kuma & Associates, Photography ⓒ Ross Fraser McLean & HuftonCrow 

 

정신적인 예술 공간을 꿈꾼 네즈미술관. Nezu Museum, ⓒ Kengo Kuma & Associates, Photography ⓒ itsumasa Fujitsuka

 

 

대표작을 돌아보다 

구마 겐고의 대표작 중에는 유독 미술관 작업이 많은데, 그의 건축 철학이 예술적 공간과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2009년 미술관 건축에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도쿄 네즈미술관이 그것으로, 전시를 위한 공간을 넘어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이목을 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 중앙에 커다란 구멍을 내어 도시의 중심가와 인근 강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을 보여준 스코틀랜드의 V&A 던디, 세계 5대 대륙의 정원을 재탄생시킨 파리의 알버트 칸 박물관 등 그는 주변 환경, 자연과의 조화를 어느 것보다 우선시했다. 사이타마현에 자리한 가도카와 컬처뮤지엄은 건축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례다. 광활한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다면체의 조각 작품을 연상시키는 외관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다. 어둡고 무거운 외관과 달리 나무로 이루어진 높이 10m의 거대 도서관 내부는 편안함과 느린 휴식이 뒤따른다. 


이토록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구마 겐고가? 하지만 그였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속 휴게소와 화장실이 탄생했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곳이 있다. 시즈오카현의 오스힐파크 프로젝트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이 지역의 상징인 후지산의 형상을 차용했다. 펼친 우산 형태인 오스힐파크는 낮에는 눈 덮인 봉우리로, 밤에는 빛을 뿜어내는 봉화로 변신한다. 이렇듯 천천히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러운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문득 깨닫게 된다. 느린 건축, 느린 삶이 우리를 오래도록 지켜줄 수 있다는 잊힌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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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임한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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