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프리즈 서울의 첫번째 수상자

부드러운 소재로 공간을 장악하는 아티스트 우한나가 ‘프리즈 서울’의 첫 번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기괴하고도 발랄한 작품이 탄생하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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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2회를 맞은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첫 번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를 발표했다. 주인공 우한나 작가는 부드러운 소재를 활용하여 조각·설치 작품을 선보여온 아티스트다. 색색의 천을 엮어 만든 심장과 콩팥, 가방처럼 멜 수 있는 아가미와 꼬리, 천장에 매달린 여성의 가슴 등 신체 일부를 패브릭으로 표현한 작업이 대표작이다. 파스텔 톤 천과 실로 재해석한 신체 이미지는 우리 몸을 낯설게 바라보는 거리감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인간의 피부가 그렇듯 진동에 흔들리거나 주름을 드러내며 동일시의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G갤러리에서 선보인 그룹전을 마치고 프리즈 서울 전시 준비에 한창인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작품 ‘블리딩(Bleeding)’.  

 

 

작업실에 초대해줘서 고맙다. 작업 공간으로 성북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근처를 떠나면서 정착한 첫 번째 동네다. 서울 도심과 가깝고 성곽이 보이며, 특히 성북천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이쪽에 터를 잡은 뒤 쭉 살고 있다.


프리즈 서울 전시 준비로 바쁠 텐데,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두 가지 섹션에 참여하는데, ‘아티스트 어워드’는 끝냈고 ‘포커스 아시아’는 아직 진행 중이다.


작업에 한창인 요즘 일과는 어떠한가? 오전 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을 목표로 일한다. 주말은 가급적 쉬려고 하고. 이전에는 쉬지 않고 작업했는데, 그러다 보니 몸이 망가지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퇴근 후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작가인 배우자와 함께 저녁을 먹고, 의무적으로 1시간 이상 산책한다. 최근에는 잠들기 전 직소 퍼즐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작업할 때 많이 쓴 머리를 비우기 위함이다.


퍼즐이 머리를 비우는 데 도움이 되나? 작업에 대한 생각은 입체적이다. 작품의 디테일뿐 아니라 제작 일정, 운송부터 작품의 제목이나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니 머릿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다. 퍼즐을 맞출 때는 시각적 뇌만 사용하니 머리를 비우는 데 도움이 된다.

 

 

 

작업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소프트 조각들.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심정이 궁금하다. 너무 좋았고 눈물도 났다.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판매가 잘되는 작가도 아니었기에 작업을 지속하는 게 점점 힘에 부치던 상황이었다. 나를 아끼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의 미술 관계자들은 “더 큰 작업을 해야지”, “더 나아가야지”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대형 작업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 제작비가 많이 들고 보관도 어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힘들었는데, 부상으로 제작비와 큰 작업 기회를 얻었다. 대규모 작업을 할 수 있는 제작비를 받아서 정말 기쁘다. 


대형 작업을 선호하는 편인가? 조각 설치 작가들은 대개 그럴 것이다. 왜 이 일을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그런 작품을 본 기억이 있어서다. 공간을 장악하는 대형 작품을 보고 ‘나도 이런 것 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나이에 이 정도 규모의 설치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고생을 잊을 만큼 짜릿했다.


큰 작품에 감탄한 원체험적 기억은 무엇인가? 대전에서 자랐는데, 중학생 때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설치미술 특별전이 열렸다. 그때 본, 붉은 조명이 비추고 위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장치가 무척 멋졌다. 그렇게 설치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방송이나 패션쇼의 무대 미술이나 쇼룸 등의 공간 작업을 꿈꾸며 그림을 공부했다.


패브릭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인가? 계기를 듣고 싶다. 대학에서 세부 전공이 분류되지 않은 조형예술과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1년간 다양한 주제로 하드 트레이닝을 했다. 한번은 주제어만 제시한 과제가 있었는데, 이불로 기괴한 유니콘 인형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았다. 안목이 높은 엄마가 보내준, 오래 사용해서 낡았지만 예쁜 이불을 가위로 잘라 만든 것이었다. 손재주가 좋지 않아 얼기설기 바느질한 것도 기괴한 느낌에 한몫했다. 그리고 3학년 때 교내에서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8점의 패브릭 조각을 제작했다. 늘 패브릭 작업만 한 건 아니고 영상이나 미디어 작업도 했다. 그러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는 패브릭이라 인정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위) Mama, 2023, Steel, fabric and cotton, 230×212×7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아래) Bleeding-5, 2023, Wire, fabric and cotton, 40×214×22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Photo by Lee Seungheon. 

 


수집한 패브릭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나? 학생 때는 제작비가 없어서 학교 게시판에 안 입는 옷이나 이불을 모은다고 글을 올렸다. 친구들은 물론 잘 모르는 선배들까지 천을 갖다준 덕에 작업실에 엄청나게 쌓였다. 그들이 준 것은 옷이었지만 내게는 피부의 재료였다. 정해진 규칙이 있다기보다는 직관으로 피부를 고른다. 초기에는 재료를 분류하고 조합한 뒤 부족한 소재는 비슷한 것끼리 엮어서 영역을 연장했다. 파슬파슬한 마나 면보다는 글로시한 광택이 나는 새틴이나 텍스 원단이 원하는 피부의 느낌과 더 닮아서 주로 사용한다.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전시 작품을 미리 소개해달라. 천장에 매달린 ‘밀크 앤 허니(Milk and Honey)’ 시리즈의 연장선인 ‘더 그레이트 볼룸(The Great Ballroom)’은 ‘크고 작은 가슴의 향연’일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박쥐들의 향연’일 수도 있다. 여성의 가슴을 전면적으로 언어화해 드러냈지만, 박쥐 떼가 아트페어장에 등장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핑크와 실버, 블랙, 연보라 네 가지 컬러로 구성한 9점을 설치할 예정이다. 풍성한 커튼 드레이핑 하면 유럽의 고택이 연상되지 않나. 그래서 일부러 고택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 반하는 컬러를 골랐다. 그렇게 떠올린 게 펑크족이고. 펑크족이 많이 사용하는 색상이자 평소 작업과 연관된 네 가지를 골라 연회장에서 볼 수 없는 색들로 볼룸을 완성한 작품이다.


고택의 반대로 펑크족을 떠올리다니 흥미롭다. 작품에서 유머가 느껴지는데, 웃음 요소도 미리 고려하나? 평소 주위 사람 웃기기를 좋아한다. 함께 일하는 어시스턴트 친구들을 웃기는 일이 낙이다. 하지만 웃음 코드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배우자는 유치하다고 말하더라. 개그 코드가 남자 중학생 수준이라고(웃음). 그런 면이 작업에 녹아드는 것 같다.

 

 

 

(왼쪽) Finger, 2023, Aluminum and fabric, Dimensions variable, Courtesy of the artist and G Gallery. Photo by Lee Seungheon. (오른쪽) Milk and Honey 5, 2023, To be shown as part of ‘The Great Ballroom’,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by Lee Seungheon.

 


작업에 착수할 때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즉흥성을 이용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작업에서 계획을 하는 영역이 있고 계획하지 않는 영역이 있는데, 계획 영역을 철저히 해야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 직관을 활용할 수 있다. 본래 계획에 서툰 편이라 오히려 초기 계획은 긴장하면서 준비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직관을 마음껏 발휘할 만한 믿는 구석을 마련하는 셈이다. 계획을 잘 짜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3주 정도는 직관으로 칼춤 추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전 계획을 어떻게 짤까 고민할 때 갤러리 기획자나 주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 대형 작업은 혼자 할 수 없으므로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계획의 일종이다. 


직관을 활용한 영역은 어디인가? 신작인 ‘보우 앤 트윅(Bough and Twig)’의 경우 뼈대를 만드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 조소를 전공한 게 아닌지라 딱딱한 재료가 익숙하지 않아 작업하는 과정에서 배워나갔다. 원본인 나무 위에 점토를 입혀 형태를 만들고, 운반하기 위해 일정한 사이즈로 자르고, 철공소에 주물을 맡기기까지 시간 계산이 쉽지 않았다. 이때는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2안의 계획까지 마련해야 한다. 여기까지 작업한 후에는 직관을 활용해 내게 익숙한 패브릭과 실로 작업했다.


낯선 소재를 시도한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포커스 아시아’ 섹션을 계획할 때는 익숙한 작업을 하려 했다. 그러다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을 계기로 ‘밀크 앤 허니’ 작업을 대규모로 보여주게 된 것이다. 패브릭 작업만으로 ‘포커스 아시아’를 채운다면 관람객도 재미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 내 작업의 다른 차원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기에 수상 발표 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완전히 처음 시도한 작업이라 시행착오를 겪었다.

 

 

 

작업 중인 ‘블리딩’ 연작. 

 


건강 검진을 계기로 신체 장기 작업을 했고, 여성의 신체와 노화에 대해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작업에서 스스로의 경험이 중요해 보인다. 내 작품은 순전히 나로부터 출발한다. 무언가에 대해 모르고 말하는 걸 두려워한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발언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다. 누군가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심지어 그 대상이 아픔이 있는 타자나 사회적 약자인 경우에는 더 참지 못한다. 아직은 조명을 잘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기에 늘 그 점을 경계한다. 


마지막으로, 분야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영감을 얻는 작품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음악가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존경한다.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 류이치 사카모토로 구성된 1970년대 3인조 밴드로, 일본 전자음악이 이들에게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동양인 밴드가 1970년대에 뉴욕에서 동양풍 테크노 음악 공연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창의력이 필요하거나 기운을 받고 싶을 때 그들의 초기 앨범을 찬찬히 듣는다. 


한 가지 앨범을 추천한다면?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노티 보이즈(Naughty Boys)> 앨범이 떠오른다. 최근 ‘키미니 무니 큔(君に、胸キュン)’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펑펑 울었다. 세 멤버 중 둘(다카하시 유키히로, 류이치 사카모토)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젊은 그들이 전형적인 시티 팝 의상을 입고 귀여운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나 아름답다.


음악의 힘이란 어찌나 강렬한지. 음악을 들을 때면 꿈을 꾸는 것처럼 다른 시각성을 인식하는 순간이 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이 새로운 조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서 작업할 때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두고 일종의 트랜스 상태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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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박지형PHOTO : 강현욱(인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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