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수행자와 예술가 사이

의학 전공자,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 매년 손수 꽃가루를 채집하는 예술가. 그를 둘러싼 이야기는 볼프강 라이프의 예술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02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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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Laib, Pollen from Hazelnut, 1992, Installation view: Centre Pompidou, Paris, 1992 © Wolfgang Laib / Photo: Carolyn Laib

 

Wolfgang Laib, Untitled, 2015, Installation view: Buchmann Galerie Berlin / Lugano Courtesy Buchmann Galerie Berlin / Lugano © Wolfgang Laib / Photo: Roman März 

 

 

전시장을 가득 채운 생동하는 노란색의 정체. 바로 꽃가루다. 전시장 바닥에 곱디고운 꽃가루를 체로 쳐서 작품을 설치 중인 이는, 독일의 개념미술가 볼프강 라이프(Wolfgang Laib).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동양의 작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동양의 종교와 철학에 깊이 매료된 그의 작업은 수행자의 의식과도 같다. 손수 조심스럽게 꽃가루를 채집하는 과정부터도 그렇다. 그는 매년 봄과 가을, 자신이 거주하는 독일 비베라흐(Biberach) 집 주변 들판에서 꽃가루를 모으고, 힘들게 모은 꽃가루를 심플한 유리병에 담아 전시하거나 바닥에 직접 체로 쳐서 찬란한 색채의 거대한 들판을 만든다. 이것은 그의 대표작 ‘Pollen Field’, 즉 ‘꽃가루 들판’ 시리즈로, 지극히 미니멀한 형태지만 명상을 이끄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왜 꽃가루였을까. 꽃가루는 삶의 잠재적인 시원으로 ‘창조’와 ‘시작’을 의미한다. 그는 생명의 원초적인 물질인 꽃가루를 통해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과 그 경이로움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드러낸다. 그는 꽃가루뿐 아니라 우유, 밀랍, 쌀 등 다양한 천연 재료를 작업 소재로 이용한다. 자연은 그의 작품의 출발점이자 아이디어의 원천. 꽃가루의 매개자로, 생태계 순환에 꼭 필요한 생명체 중 하나인 꿀벌이 생산하는 밀랍은 아주 오랜 세월 인류에게 달콤함과 영양을 선사해왔다. 그는 “밀랍의 향과 황금색이 좋았다. 무엇보다 꽃가루와 쌀처럼 나와 유럽 문화를 초월하는 소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언급한다. 밀랍은 그에게 ‘영적’ 존재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많은 생명체의 첫 번째 음식이자 신성한 액체로 여겨진 우유 역시 상징적인 힘이 있다. 이렇듯 그는 생태계와 관련된 단순하지만 상징성 강한 유기적인 재료를 통해 생명의 근원을 탐색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동양철학과 맞닿아 있다.

 

 

 

 Wolfgang Laib, Two Rice Houses in the Artist’s Studio © Wolfgang Laib / Photo: Wolfgang Laib 

 

Wolfgang Laib, Untitled, 1991~1999, Installation view: Kunstmuseum Stuttgart, 2023 MASI, Museo d’arte della Svizzera italiana, Lugano © Wolfgang Laib / Photo: Gerald Ulmann, Stuttgart

 

독일 비베라흐 인근의 자택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뉴욕에 스튜디오를, 인도 남부에 두 번째 거주지를 두고 있다. Wolfgang Laib in South India, 2023 © Wolfgang Laib / Photo: Ion Casado 

 

Wolfgang Laib, Rice Field, 2023, Installation view: Kunstmuseum Stuttgart, 2023 © Wolfgang Laib / Photo: Gerald Ulmann, Stuttgart

 

 

동양철학에 빠진 의학자 

볼프강 라이프는 1950년 메칭겐(Metzingen)에서 태어났다. 독일 출신의 그가 어떻게 동양철학에 심취하게 되었을까.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이미 광범위한 여행을 시작한 그는 극동의 문화와 철학을 접했고, 이는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중국 고대 철학, 특히 무위(無爲)를 선호하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노자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인도와 오랜 인연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탄트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 역시 16년 동안 인도 남부의 작은 마을 외곽에 세컨드 하우스를 둘 정도로 인도에 깊은 애정을 가졌다. 이쯤 되면 그의 종교가 궁금해지지 않나? 그는 영국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종교의 유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간디는 나에게 중요하다. 나는 비폭력을 강조하는 불교보다 훨씬 급진적인 자이나교에 관심이 많았다. 자이나교 승려는 벌레를 밟지 않기 위해 붓을 들고 걸으며, 음식에 벌레가 앉지 않도록 어두워지기 전에 밥을 먹고, 수도꼭지 아래에 천을 놓아 물속의 벌레를 걸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자이나교 예술을 좋아한다. 자이나교의 그림은 항상 똑같고, 개성적인 표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불교도도 아니고 자이나교도가 된 적도 없다. 내 종교는 예술이다.” 이것은 그의 철학을 명확히 드러내는 답변이 아닐까 싶다. 이런 그가 의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육체를 치유하는 의사에서 정신을 치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택한 볼프강 라이프. “인류를 연구하고 돕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출발했을 뿐, 직업을 바꾼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그의 작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자, 이제 우리가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뮤지엄으로 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하나 생겼다. 볼프강 라이프의 주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개인전 <The Beginning of Something Else>가 11월 5일까지 그곳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일반적인 순서를 바꾸어 3층에서 시작된다. 쌀더미 수천 개를 무한한 격자 구조로 배열한 ‘라이스 필드(Rice Field,)’가 그 시작. 관객은 바닥에 배열된 쌀더미 사이사이를 산책로처럼 걸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전시로는 처음 선보이는 ‘침묵의 탑(Towers of Silence)’이 두 번째 층에 이어진다. 밀랍으로 만든 이 조각품은 조로아스터교의 건축양식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잇는다. 천장이 높은 중앙 전시실에서는 노란색 꽃가루 카펫을 만날 수 있다. 그의 대표작 ‘Pollen from Pine’으로,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바닥에 소나무 꽃가루를 체로 쳐서 만든 커다란 직사각형의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부드러운 윤곽과 가루 같은 물성 때문에 노란색 표면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물질성과 비물질성, 즉각성과 시대성을 초월한 것 사이에서 관객의 사유를 이끈다. 전시가 끝나면 꽃가루는 다시 수집, 세척한 후 다음 전시실에서 볼 수 있듯 심플하고 투명한 항아리에 보관된다. 이 밖에 피난처인 동시에 인간의 마지막 집을 의미하는 ‘라이스 하우스(Rice Houses)’,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건축물과 ‘침묵의 탑’에서 영감을 받은 ‘침묵의 도시(City of Silence)’, ‘밀크스톤(Milkstone)’ 등과 함께 여행 중에 제작한 그림과 사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볼프강 라이프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1층에서 상영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영화감독 마리아 안나 타페이너와 영화 팀은 볼프강 라이프의 집이자 작업 공간이 있는 어퍼 스와비아(Upper Swabia)와 인도 남부에 있는 집 등 그의 작업 현장에 12개월 동안 동행하며 촬영했다. 영화는 볼프강 라이프가 작품을 개발, 제작하는 과정을 조명할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적 실천과 관련된 삶의 요소를 포착한다. ‘예술’이라는 그의 종교 안에서 고요한 수행의 시간을 부디 즐겨보기를.   

 

Cooperation Kunstmuseum Stuttgart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전시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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