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Remembrance)’, 1995, Oil on Canvas, 162×130cm

 

오방색+현대적 조형 언어의 결합

오승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알던 풍경화가 아니다. 오승윤의 대표작 ‘풍수’ 시리즈. 그곳엔 산과 초가집, 물고기, 꽃, 인간 등 온갖 생명이 조화롭게 자리한다. 한국적 삶의 풍경 위에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방색’을 접목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오승윤. 그는 음과 양,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상생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오방색 풍경 안에 담아낸다. 그 틈에서 우리는 이끌리듯, 평온과 위안을 찾는다. 한데, 한국적 자연과 색으로 풀어낸 그의 화폭은 어찌 된 일인지 더없이 현대적이다. 그만의 실험적인 조형 언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 꽃, 물고기 등 그의 조형은 너무도 단순하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본질의 의미를 되묻는다. 한국적 색채와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완성된 그의 풍경화 앞에서 깊은 마음의 파장이 이는 이유다. 

 

 

 

‘U:유언비어 (流言蜚語) U: Words like flowing water, like crawling insect = Rumor’, 2019, 진주명주, 통영 누빔 장인과의 협업 Korean silk, collaboration with Korean Nubi quilter of Tong-Yeong, 195×155×1cm, Production La Criée centre d’art contemporain Rennes France 2019, Courtesy Gallery Hyundai Seoul, Seulgi Lee © Adagp Paris 2022, 이미지 제공 갤러리현대

 

'이불'로 직조한 주술적 조각

이슬기

기하학적인 패턴과 색. 한데 이것의 정체가 이불이라면? “겉과 속이 있는 이불은 사람이 태어나거나 죽거나, 자거나 쉬거나, 아픔을 달래거나 사랑을 하는, 지극히 친밀하면서도 자칫 지나치기 쉬운 공간이다.” 1992년부터 프랑스에 머물며 작업 중인 작가에게 배달된 한국의 누비이불. 이것에 매료된 작가는 통영의 누비 장인과 협업, 한국의 속담을 누비이불로 풀어낸 대표작 ‘이불 프로젝트 U’를 선보였다. 한데 왜 속담이었을까. “공동체 의식이 담긴 속담이 이불 속에 들어가면 그 이불을 덮고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 이불이 주술적 조각이 되지 않을까?” 한 공동체의 지혜와 유머가 담긴 속담과 보편성을 덧입힌 오방색, 공예에 깃든 묘한 과학적 직조 체계. 이불로 엮어낸 그의 낯선 조각은 꿈결처럼 우리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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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Likes Obang Color？／R’, 2021,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54×54×7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Who Likes Obang Color？／Y’, 2021,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54×54×7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명상을 부르는 고요한 울림의 색채

김현식

‘누가 오방색을 좋아할까?’라는 저돌적인 제목을 내걸고 보란 듯이 오방색을 화면 가득 채운 김현식.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서구의 미니멀 아트가 떠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투명한 에폭시 레진층 아래로 화면 가득 메워진 반입체적 색선(色線). 그 실체는 작가의 반복된 ‘노동’의 결과물로, 프레임에 레진을 바르고 말린 뒤 송곳으로 수직의 가는 선을 빼곡히 긋는다.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헝겊으로 닦아내면 골 사이에 물감만 남는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입체적인 선의 레이어가 형성되고 선과 선 사이에는 그가 의도한 ‘사이 공간’이 완성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가운데에 놓인 ‘사이 공간’. 그는 이 신비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형태적 정교함과 오방색 특유의 색채가 뿜어내는 고요하고도 강한 울림. 누가 오방색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대모신 - 오똑이’, 2020~2021, 혼합 매체 Mixed media, 각 45(h)cm, 이미지 제공 학고재

 

인류를 향한 모성 '오똑이'

양순열

눈, 코, 입 없는 얼굴과 가느다란 목과 허리, 펑퍼짐한 한복 치마를 입은 듯한 낯선 조각상. 양순열의 조각 ‘대모신(大母神) - 오똑이’다. 그는 왜 대지의 어머니인 대모신을 소환했을까? 인간의 이기심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극단의 길로 치닫고 있는 지구. 이 시대 인류가 맞닥뜨린 지구는 마치 시한폭탄 같다. 어머니의 마음을 품은 ‘대모신’을 그가 소환한 이유다. 유려한 형상의 대모신은 빨강, 노랑, 초록 등 자연의 색을 입은 채 따듯하고 풍요로운 모습이다. 그의 대모신은 다양한 크기로, 그 어디로든 출몰 가능하다. 바람에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서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넘어지지 않는 ‘오똑이’의 숨은 비밀은 9월 학고재에서 열릴 양순열의 개인전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인류애적인 모성과 풍요로운 미래를 기원하며. 

 

 

 

‘우주오봉도’, 2015, Acrylic and Ink on Embossed Wood Panel, 120×200cm

 

글과 색으로 쓴, 목판 위의 염원

성태진

우주 태초 저편 어딘가의 이야기를 담은 ‘우주오봉도’ 속 판타지에도, 산동네 청년의 삶을 그린 ‘어떤 이의 꿈’ 속 현실판 다큐에도, 페르소나 같은 그의 태권V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의 태권V는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로, 무엇보다 재미나게, 화면 속에 부활한다. 만화적 요소와 우리 전통 기법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는 성태진. <팔만대장경>에 새긴 활자 속 염원처럼 그는 ‘목판’ 위에 마음을 새긴다. 나무를 조각칼로 파내고 그 위에 여러 번 덧칠을 통해 원색(때로는 오방색)을 구현하는 고된 노동은 수행과 같다. “초기에는 직접 쓴 시를 새겼다. 요즘엔 대중가요 가사를 차용한다. 리듬을 타며 읊조리다 보면 다른 공간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이 그림이 생각날 것이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는 염원을 담아 유쾌하게 ‘자력갱생’을 외친다.

 

 

 

‘Memories’, 2019, Fabrics, Cotton, 160×160×12cm

 

자투리천으로 깁고, 이은, 세계

이혜민

“외할머니께서 결혼할 때 만들어주신 이불부터 시어머니의 한복, 이불 등 쓸모를 다한 천을 모아 베개 작업을 시작한 지 25년째다.” 버려지고 방치된 이불, 한복 등 자투리천을 모아 바느질로 꿰매고 엮은 이혜민의 ‘필로우(Pillow)’ 시리즈. 학부에서 조소를, 대학원에서 비디오아트를 전공한 이력만 보면, 손바느질로 베개를 깁는 현재의 작업은 쉽사리 연결되지 않는다. “한국적인 컬러, 그리고 가장 순수한 방식의 작업을 하고 싶었다. 바느질을 하다 보면 생각은 맑아지고 순수해진다. 꿈속으로 들어가고는 한다.” 작가에게 바느질은 누군가의 버려진 추억과 꿈을 잇는 과정이며, 큰 꿈을 향해 가는 고단하고도 행복한 여정이다. 오늘도 작가의 ‘꿈꾸는’ 베개는 부조로, 설치로, 끝없이 자생하며 세계로 확장 중이다. 자투리 한복 천의 힘 있는 파장과 위안을 싣고서.

 

 

 

‘The Precious Message’, 2021-12-1, Oil on Canvas, 45×45cm, 이미지 제공 비디갤러리 

 

‘The Precious Message’,  2019-17, Oil on Canvas, 100×100cm, 이미지 제공 비디갤러리 

 

무엇이든 포용하는 치유의 보자기

김시현

우리에게 보자기는 물건을 담는 ‘용기’보다 ‘정서’에 가깝다. 김시현에게도 보자기는 특별한 의미였다. “어머님이 시집올 때 가져온 장롱 속 형형색색 자수 무늬 이불보가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영락없이 온전한 프레임을 갖춘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어린 시절 각인된 어머니의 장롱 속 이불보. 작가는 극사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을 끌어들여 질감까지 생생한 보자기를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보자기는 실용적인 도구 이상의 존재감이다. 선물을 담아 건네는 소통과 교감의 상징이기도 하다. 보자기 안에 담긴 ‘특별한 호기심과 설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작가의 보자기는 미니멀한 색면의 보자기로, 전통 민화인 ‘책가도’를 보자기와 결합한 시리즈로 다양하게 변주 중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김시현의 보자기는 포용의 마음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듯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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