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홍진훤은 이 세계가 이미지를 위해 존재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세계를 벗어난 바깥 존재를 향한다.
2026.08.27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 작가로 아티스트 홍진훤이 선정되었다. 그는 사진, 영화, 웹프로그래밍 등의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주목해온 작가다. 집회 현장에 매료된 이후 외신 사진기자로 일했고, 2009년 용산 참사를 계기로 이미지가 비극을 다루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구작을 제외하고 세 편의 영상과 하나의 사진 연작을 공개했다. 그중 한 쌍의 영상 작품인 ‘명순응(2026)’과 ‘암순응(2026)’은 권력이 존재를 어떻게 과잉 재현하고 철저히 비가시화하는지 드러낸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2026)’는 중국의 프로파간다 발레 공연 푸티지, 동물행동학자 존 캘훈의 ‘유니버스 25’ 실험, 그리고 학생 몸짓패의 퍼포먼스, 집회 기획자 인터뷰 등을 엮은 작품이다. 여기서 ‘유니버스 25’는 죽음의 위험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쥐 사회를 관찰한 연구다. 초반에는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증가하지만, 포화 상태에 이르자 공격성이 발현되고 무리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을 꾸미는 데만 열중하는 ‘아름다운 자들’이 등장하며 사멸하고 만다. 현실이 겹치는 서늘한 결과지만, 영상 속 몸짓패의 ‘몸짓’은 여전히 절박하고 애틋하다. 그리하면 ‘아름다운 자들’의 도래를 막을 수 있다는 듯이.
‘사실 은하수는 유령입니다(2026)’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담은 ‘정치적 풍경 사진’들과 천문학자 안톤 판네쿡의 연구 이미지를 교차한 작품이다. 판네쿡은 은하수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주관적 시각이 결합한 ‘유령적 이미지’로 보았다. 고요한 풍경과 비극을 단번에 연결 짓기란 쉽지 않다. 제주 강정마을, 체코 테레지엔슈타트, 일본 후쿠시마, 독일 베를린…. 그러니 이 작품은 기억이라는 데이터를 품은 관객 앞에서만 작동한다. 홍진훤은 그런 관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 홍진훤, ‘명순응’, 2026,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26분 28초. 작가 제공. 2 홍진훤, ‘암순응’, 2026,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29분 12초. 작가 제공. 3 홍진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 2026, 단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32분 50초. 작가 제공.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다큐멘터리 <멜팅 아이스크림(2021)>을 기점으로 영상 언어를 본격 수용했다. 그간 매체와 작업 방식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했나? 외신 사진기자로 일하다 용산 참사를 겪은 뒤 그동안 찍었던 사진과 포토 저널리즘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이후 정치적이고 비극적인 서사를 다루되 이미지가 스펙터클로 소비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약 10년간 사진을 찍었고, 개인전 <랜덤 포레스트(2018)>와 책 <사진에 관한 대화(공저)>를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수해로 손상된 민주화운동 기록 필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귀중한 자료이니 복원 과정을 영상에 담기로 했다. 그렇게 촬영하다 의심쩍은 것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멜팅 아이스크림>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후 의도치 않게 작품이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다. 매체 환경에 따르다 보니 우연히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신작 ‘명순응’의 마지막 장면에 “그것은 영화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반복해 흐른다. 이 음성으로 작품을 마무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영화를 규정하는 것은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관람의 주도권을 지닌 전시장과 달리, 극장에서는 생산자가 주도권을 갖고 관객의 감각을 조종한다. 고립된 공간에서 관객은 수동 상태에 놓인다. 그것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고 정체성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순응’ 속 문장은 인간이 세계에 수동적 상태로 놓이는 상황을 가리킨다. 나치 선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용소의 현실을 조작한 것처럼, 영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조작된 현실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이 세계는 이미지를 위해 존재하고, 나아가 세계가 ‘이미지로서’ 존재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미지를 위한 통제와 조작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우리 모두 이에 가담하는 셈이다.
‘명순응’과 ‘암순응’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이다. 작가에게 두 시각 현상이 흥미롭게 다가왔으리라 짐작했는데, 작품은 어떤 지점에서 출발했나? 두 단어를 좋아한다. 인간의 신기한 신체 능력이며, ‘순응’이라는 단어의 복합적인 의미도 흥미롭다. 하지만 작업이 단어에서 출발한 건 아니다. ‘언다큐먼티드 모나리자(2025)’에서 도로시아 랭의 다큐멘터리 사진 ‘이주민 어머니(Migrant Mother)’가 어떻게 재현, 복제되며 끊임없이 가시화되는지 다룬 적이 있다. 반면 한국의 이주노동자 투쟁은 찬성 쪽이건 반대 쪽이건 가시화되지 않길 바란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들이 피해자의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데 투쟁하는 모습은 누구에게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다. 이미지로 세계를 통제하는 방식은 ‘이주민 어머니’처럼 과잉 가시화되는 ‘빛의 과잉’, 그리고 이주노동자, 장애인 투쟁과 같이 가시화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빛의 소멸’로 나뉜다. 나조차 장애인 투쟁 현장에서 평소 보기 어려운 신체의 움직임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장애를 소비하는 듯해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지금은 모든 투쟁의 본질이 가시화라고 생각한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인터뷰이로 출연한 대학생 몸짓패 ‘골패’의 최수지 씨, 집회 기획자 이사라 씨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이사라 씨는 오래 집회 현장을 오가며 알게 되었다. 드물게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집회만 기획하는 독립 기획자다. 최수지 씨는 요즘도 현장에 나오는 대학생 몸짓패가 있는지 수소문 끝에 소개받았다.
작업 전에 먼저 텍스트로 작품을 설계한다고. 동물행동학자 존 캘훈의 ‘유니버스 25’ 실험과 몸짓패의 퍼포먼스, 프로파간다 공연 영상 등의 구성 요소를 어떻게 연결하고자 계획했나? 글쓰기는 설계의 목적도 있지만 스스로 납득하기 위한 일종의 제의적 행위다. 비극을 다루지만 사실 누군가의 고통이나 상황을 전달하는 데 관심이 없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할 뿐이다. 그렇기에 작업이 세상에 나와도 될지 고민하며 글로 정리해본다. 지금이 몸짓의 마지막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여전히 지키고 있는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집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탈락하는 존재들을 한 번은 언급해야 하지 않겠나. 캘훈의 실험을 주머니에 넣은 지는 오래됐다.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 당시 자연스레 참여자와 전투경찰이 대치할 상황이 벌어졌다. 집회에서는 일상다반사다. 그런데 시민들 사이에서 “전경들을 밀지 말라”, 더 나아가 “전경 차에 스티커를 붙이지 말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폭력을 반기겠냐만, 폭력이라는 가능성 자체를 스스로 소거하는 투쟁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일까. 결국 남는 것은 아름다운 국민성, 아름다운 시민성, 아름다운 이미지인 걸까. 지난 10년간 쌓인 집회에 대해 생각을 이리저리 엮어보았다.
대학 시절 선배들을 따라 처음 집회에 입문한 뒤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결정적으로 매혹된 지점이 궁금하다. 살면서 그렇게 공포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쇠 파이프를 들고 경찰이 우리를 쫓아오면 계속 도망가야 했다. 그런데도 무대 위 발언자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20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서사에 푹 빠졌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공간에서 어마어마한 해방감이 뒤따랐다. 세계의 바깥이라는 느낌에 매료된 거다.
2024년 말, 윤석열 탄핵 집회에 응원봉이 새롭게 등장해 주목받았다. 집회 덕후에게는 어떤 사건이었나? 물론 훌륭한 집회였다. 다만 나의 관심사는 집회의 목적이나 성취가 아니다. 응원봉 집회를 두고 한국 문화, K-팝에 주목하는데, 오히려 그곳에 진입하지 못하고 쭈뼛대는 몸짓패, 기획자, 민중가요를 지켜온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전통이 아니라, 투쟁 문화가 자본주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민중가요나 몸짓, 풍물은 상업자본 밖에서 독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그것들의 마지막 풍경을 조명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회를 K-팝의 시대로 보내고 싶지 않다. 나의 ‘최애’를 그렇게 떠나보낼 수 없다.
집회 기획자 역시 집회가 퍼포먼스로 변해가는 상황을 우려한다. 이러한 때 현장의 동력은 무엇일까? 이사라 씨도 영상에서 이야기하지만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싸운다. 우리가 볼 수 없을 뿐 지금도 고공 농성을 하고, 공장 앞에서 투쟁하고, 민중가요를 지키려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 싸우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사람들이 늘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절박함 앞에서 또 다른 집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6> 홍진훤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사진 홍철기.
골패 멤버의 몸짓을 길게 담았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희망처럼 다가왔다. 촬영팀과 이야기하면서 ‘몸짓’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감각이 현재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몸짓을 하는 20대가 있고, 자본주의 바깥을 고민하는 시도가 이어진다는 희망을 품고 싶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음악가인 한정인 씨를 섭외해 몸짓 공연을 본 뒤 당신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내 영상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 게 아니라 영상과 음악, 별도의 작업을 물리적으로 합쳤다. 나의 해석과 다음 세대 예술가의 해석을 섞은 시도다.
‘사실 은하수는 유령입니다’는 ‘정치적 풍경 사진’ 연작이다. 언제부터 촬영해왔나? 앞서 이야기했던 용산 참사 이후였다. 남일당 건물 아래서 이틀 동안 찍은 사진을 살펴보니 어떻게 하면 멋있는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고 있었더라. 나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사람이라 결론 내리고 새로운 촬영 규칙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수평·수직을 비틀지 않는다’, ‘배경에 전경을 겹쳐 인위적인 레이어를 만들지 않는다’, ‘과도한 광각이나 망원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가급적 정면성을 유지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사람을 찍지 않는다’ 같은 것들. 가이드를 지키며 그간 몸에 밴 습성을 빼기까지 5년 정도 걸렸다.
<올해의 작가상>은 보통 구작과 신작을 함께 소개하는데, 유일하게 신작만 전시했다. 현실적인 이유와 개인적 욕심이 있었다. 먼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타이틀 매치’ 전시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같은 작품을 다시 전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개인적 욕심이 더 큰데, 이렇게 작업만 할 수 있는 시기가 작가 인생에서 드물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업을 최대한 많이 완성했다.
영화 ‘패배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은 민중가요의 마지막 풍경에 대한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작업은 얼마나 진행되었나?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그리고 민중가요를 남겨야겠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세 가지 모두 사그라들고 있어서다. 민중가요만 듣고 살았던 시기가 있었을 만큼 의미가 큰데, 응원봉 집회가 등장하면서 민중가요에 대한 생각이 넓어졌다. 이렇게 빨리 사라질 줄 몰랐던 거다.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민중가요와 몸짓, 기획 등 집회라는 매체 전반의 마지막 풍경을 다룰 것 같다.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는 일종의 프리퀄이다. 3부작의 끝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아서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현재 몰두하는 작업은 무엇인가? 2년 전 지역 미술을 고민하며 만든 컬렉티브 ‘세컨드 콤플렉스’에서 한창 작업 중이다. 예술이 사회의 위험 요소로 작동하길 기대하지만 집회가 안전해지듯 한국 예술도 점점 안전해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급진적으로 위험을 생산할 힘은 어디 있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곳이 ‘지역’, 즉 ‘비서울’이다. 그곳에는 일종의 콤플렉스와 ‘될 대로 돼라’ 식의 패배 의식, 서울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에너지와 절박함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 부산이라는 도시를 탐구하고 있다.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DITOR : 박지형PHOTO : KIM C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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