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의 힘은 표면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더듬을 때 비로소 전이된다. 일찍이 고가구의 아름다움에 눈뜬 김지은 대표는 고복희를 통해 은밀한 탐닉의 기쁨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한다.
2026.05.08
한지를 이용한 거치문 (톱니무늬)으로 입구를 장식했다. 벽 쪽에 놓인 가구가 강원도 찬장이다.
답십리와 장한평을 잇는 고미술 거리, 그곳에서 제법 알려진 이름 중 하나가 고복희다. 바로 김지은, 김성호 부부의 수장고이자, 한국 고가구와 서양 빈티지 가구의 조화를 선보이는 쇼룸이다. 결혼 후 본격적으로 옛 물건에 빠져든 두 사람은 2023년 봄, 수집한 가구를 보관하기 위해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고, 2025년 초 고복희라는 이름으로 아뜰리에의 문을 열었다. ‘고복희’는 길상의 뜻을 담은 옛 장식에 등장하는 ‘복 복(福)’과 ‘쌍희 희(囍)’에 ‘옛 고(古)’를 붙인 단어다.
아뜰리에에 들어서면 석재 조각이 전시된 복도를 지나 응접실로 이어진다. 본래 뚫려 있던 너른 사무실에 가벽을 세워 공간을 분리했고, 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고자 카펫을 깔았다. 안쪽 방의 문은 푸른빛으로 칠하고, 사무 공간 옆에 자줏빛 벽을 세웠는데, 이 색 조합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파리의 메종 라 로슈와 스튜디오 아파트먼트에서 착안한 것이다. 푸른 문 위에는 검은색 한지로 거치문(톱니무늬)을 붙여 고복희 아뜰리에의 상징과도 같은 광경을 완성했다.
5월 재개장하는 아뜰리에는 김지은 대표의 취향으로 가득 차 있다. 단정하고 차분한 한국 고가구와 피에르 잔느레의 목제 가구가 어우러진 가운데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 모델 3300 에어포트 소파가 활기를 더한다. ‘옛것에서 오는 행복과 기쁨’을 전하고자 하는 고복희 아뜰리에는 1년이 흐른 지금, 북적이는 고미술 상가의 중심에 자리한다. 마니아들이 알음알음 공유하던 행복과 기쁨이 어느새 더 많은 이들의 일상에 번지고 있다.

1 사무 공간 안쪽에는 아끼는 도자를 배치했다. 2 단순하고 간결한 스타일의 고가구가 주를 이루는 고복희 아뜰리에.
서양 빈티지 가구를 하나씩 모으다 한국 고미술품으로 관심이 이어졌다고. 고미술에 입문한 계기를 떠올려본다면? 신혼 초부터 빈티지 가구를 집에서 사용하려고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언젠가 배우자의 제안으로 답십리에 가서 떡살을 발견했다. 떡살은 어느 가게든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두고 판매하는 흔한 소품이다. 주로 나무 떡살이 많은데 기와 같은 토기 떡살이 눈에 들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선반에 둘 작은 기물을 모으다 큰 가구에도 빠져들었다.
결혼 후 함께 옛것의 매력에 빠졌다면 주로 어떤 곳을 방문했나? 둘 다 미대에서 공부했기 때문인지 박물관의 유물을 좋아한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전국의 박물관 소장품을 검색한 후 직접 보러 가거나 논문이나 책을 찾아 공부했다. 온양민속박물관을 좋아하고 국립중앙박물관도 자주 찾는다. 특히 2025년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이 기억에 남는다. 전시가 너무 좋아서 시간 날 때마다 들렀다. 백자로 시작해 서화, 불교미술로 이어지는데, 한 번에 한 챕터씩 집중해서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흩어진 유물을 한데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고, 방대한 유물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도 인상적이었다.

1 찻물이 깊게 밴 분청 덤벙 사발. 불이 남긴 요변 자국이 고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2 피에르 잔느레 선반에 제기, 도자 등 작은 소품을 진열했다.
어떤 스타일의 고가구를 선호하는지 취향이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서양 빈티지 가구와 어울리면서 생활 환경을 해치지 않는 가구로 선택한다. 조선시대 남성이 주로 기거하는 방이 사랑방, 여성의 생활 공간이 안방인데, 사랑방 가구를 선호하는 편이다. 선비들은 단아하고 담백한 미를 추구해 가구에 장식적 요소가 덜하고 나뭇결이 살아 있다. 하지만 안방 가구나 궁중 가구처럼 화려하고 장식적인 품목도 언젠가 다뤄보고 싶다.
한국과 서양 고가구를 조합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집에 새 가구를 들이면 요리조리 옮겨보면서 어떤 조합이 어울릴지 고민했다. 6~7년간 반복했으니 일종의 연습이 된 셈이다. 덕분에 아뜰리에를 준비할 때 가구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예를 들어 피에르 잔느레 가구는 나무 느낌이 한국 고가구의 결과 비슷해 잘 어울린다. 한동안 안쪽 공간에 전시한 샤포 가구도 마찬가지고. 요즘 아파트에는 붙박이 가구가 일반적이고 새로운 가구를 들일 일이 없기에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그래서 이 공간을 집처럼 꾸미려고 노력했다. 소반은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에 적합한 높이라면, 향상이나 향탁은 조금 더 높아서 소파의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적합한 고가구를 매칭하면 이질감이 덜할 것이다.

어두운 색의 가구 사이에 컬러 벽이 포인트 역할을 한다.
가구를 수집한 이래 가장 대담한 소비는 무엇인가? 모든 가구가 그렇지만 특히 안쪽에 있는 강원도 찬장은 처음 구매한 큰 가구다. 구입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마땅한 공간도 없었고 예산이 부족해 바로 가져올 수 없었다. 답십리에서 좋아하는 가게에 있던 물건인데 팔릴까 봐 아주 조마조마했다(웃음). 4년 동안 사장이 계시든 안 계시든 가게 앞에 가서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2023년 이 공간을 마련한 뒤 들였다.
강원도 찬장의 어떤 면에 끌렸나? 가구 하나로 집 안 분위기의 중심을 잡기 쉽지 않은데, 이 찬장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보자마자 운명처럼 끌렸고, 내 것이 되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어느덧 취미가 일이 되었다. 언제 본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나? 오픈할 때는 반응이 있을 거라 예상치 못했다. 이러한 가구를 사람들이 좋아할까 싶었다. 그런데 큰 관심을 받게 되어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빠르게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것을 매일 보는 일은 행운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다. 다만 회사 다닐 때와 달리 외부 상황에 따라 스케줄이 정해져서 생활을 계획적으로 하기 어렵다. 그 점을 제외하곤 만족도 최상이다(웃음).

재개장을 앞둔 고복희 아뜰리에의 김지은 대표.
최근 고미술 상가에 젊은 층의 유입이 늘었다. 오픈 전후를 비교해 변화를 실감하나? 아뜰리에 오픈 초기 SNS에서 회자되었지만, 체감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패션, 인테리어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방문한 정도다. 그러다 성수동의 프로젝트 렌트 대표님이 이곳에 오브를 오픈했고, 호박포크아트갤러리와 가화도 문을 열었다. 젊은 팀이 나란히 가게를 운영한다는 소식이 바이럴된 후 대중에게도 알려지면서 체감할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다. 불과 두세 달 사이의 일이다.
고복희 아뜰리에는 5월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에는 방문객이 옛 가구에 쉽게 다가가길 바라며 지역별 고가구를 현대인의 생활 공간에 맞춰 배치했다. 이번에는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가구를 중심으로 수장고처럼 선보이고자 한다. 작년보다 조금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언제든 자세한 설명을 해드릴 수 있다. 6월에는 이도옥션과 함께 조선 초기 계룡산 지역에서 생산한 분청사기를 모아 전시할 예정이다. 도자는 같은 가마에서 나와도 결과물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매력이다. 색과 모양, 유약이 남긴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며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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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박지형PHOTO :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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